파업 노동자, 성 소수자 축제를 보고서…

[여기, 유성 잇다 ③] "석 달에 월급 20만 원, 그래도 싸웁니다!"

3월 17일, 한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동료들은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5년이 넘도록 현대차와 유성기업은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한 온갖 공작을 펼쳤다.

그러나 파괴된 것은 노동조합만이 아니다. 일상, 평화, 우정, 희망, 관계…. 노동조합은 이런 말들의 다른 이름이었다. 깨져본 사람은 안다. 이런 말들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말로 만난다. 인간의 존엄.

한광호 열사를 이대로 보낼 수 없는 유성 노동자들을 또 다른 사람들이 만난다. 직업병 피해자, 장애인, 성 소수자, 철거민, 밀양 할매….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속 깊은 친구들이 되어줄 사람들의 만남을 전한다.

혐오 사회에서 살아가기

처음 이어 말하기에 함께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의 기대와 설렘은 까맣게 잊은 채 시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며칠 전 미국 올랜도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으로 49명이 목숨을 잃었다. 며칠째 죽음, 혐오, 테러, 살아남은 사람들, 공동체, 추모, 삶 등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 속에서 급하게 추모 집회를 조직하고 일정들을 소화한다고 피곤에 쩐 상태였다.

바로 전 주말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퀴어 문화 축제가 사상 최대 참여 인원을 갱신하며 성대하게 열렸다. 축제 현장 한 귀퉁이에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 열사 분향소가 있었다. 반대 시위의 소란과 축제의 한복판에서 분향소를 지키던 유성 노동자들이 성 소수자들의 축제를 어떻게 바라봤을지 내심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다부진 체격에 수줍은 듯 웃음기 머금은 눈매의 노동자가 분향소를 지키고 있었다. 시청 분향소를 지키는 김순석 동지였다. 한 달 전 올빼미 거리 강연에 초대를 받아 성 소수자와 노동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 날 강연 이야기로 분위기가 풀어졌다. 시청에 분향소를 차리면서 지켜보게 된 '동성애 반대'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대한민국을 망가트리는 거라면서 비방을 하는데, 세상에서 약한 사람들 공격하는 거죠. 제가 여기 오래 있다 보니까 저희도 비판하더라고요. 유성노조 천막도 걷어가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실상 거리에서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은 세월호 특별법에 반대하고 민주노총을 반대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쓴웃음이 나는 지점은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온갖 '엄정'하게 집행되는 법이 혐오를 조장하고 차별을 선동하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관대하다는 사실이다. 유성지회 노동자들은 노동 파괴 공작으로 회사 안에서 차별과 괴롭힘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사측이 남발한 고소, 고발로 끊임없이 조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어버이연합에 대한 조사는 지지부진하듯이 수차례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이 개최한 공청회나 행사, 성 소수자 집회를 폭력적으로 방해한 이들을 공권력이 대하는 태도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 자본이 고용한 용역 깡패들이 대놓고 폭력을 행사해도 경찰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2011년 직장 폐쇄와 용역 깡패들의 폭력은 충격적이었지만, 이후 6년 간 현장에서 이어진 노조 파괴 공작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 기회가 드물었다. 김순석 동지는 한뎃잠을 자면서 농성장을 지키는 시간이 오히려 휴가 같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현장의 탄압이 지독했다는 말이다.

"지금도 집행 유예 걸려 있고, 몇 건인지도 모르는 재판 맨날 다니고 현장에서 맨날 싸웠으니까.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시기 전에 회사 앞까지 출근 했다가 도저히 못 들어오고 다시 나가고 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회사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데도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막 떨려요. 우리 조합원들 대부분이 그래요."

민주노조 조합원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낙인과 배제, 괴롭힘에 직면한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은 말 그대로 피폐해졌다.

"우리 조합원들 속을 들여다보면 가정이 파탄난 경우도 허다해요. 매일 파업 들어가는데 회사는 자기들 방식대로 임금 다 까버리고. 맨날 경찰서 가야되지, 검찰 가야되지, 법원 가서 재판받아야지. 이러니까 월급이 없어요. 노조 간부로 활동하는 한 후배는 최근 석 달 합쳐서 월급을 20만 원 받았대요."

한광호 열사 죽음은 노조 파괴가 노동자의 존엄과 삶을 파괴한다는 것을 드러낸 비극이었다.

▲ 유성 노동자와 성수자가 만났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존엄으로 연대하기

노동자들이 석 달 넘게 연일 파업을 벌이며 싸우는 이유는 결국 살기 위해서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투쟁을 이어간다는 것이 쉬울 수는 없다.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어떤 의미인지 경험한 노동자들이 함께 싸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성 노동자들은 한 사람이 부당한 일을 당하면 함께 싸우는 노동조합, 차별에 맞서고 노동조건 개선을 이끈 노동조합을 경험했다. 관리자와 노동자 작업복 색깔이 다르고, 밥 먹는 순서도 다르던 차별을 없애고, 출근 시간 30분 전에 출근해서 체조하는 관행을 없앤 역사였다.

"이게 엄청난 싸움 속에서 바꿔 온 거에요. 사람 위에 사람 있냐, 같은 사람 아니냐 하면서요."

차별과 억압은 사실 굉장히 자연스럽다. 성 소수자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편견과 혐오가 쉽게 용인되고, 직급에 따라 높고 낮음이 있고 부당한 일에 항의하고 저항하기 어려운 것이다. 투쟁의 경험은 당연한 차별을 당연하지 않게, 부자연스러운 존엄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제가 입사했을 때는 조금 이상했어요. 과장, 차장이면 그래도 높은 사람인데 어떻게 현장에 있는 사람이 욕을 하고 몽키를 던지지? 그런데 차별을 당할 때는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바꿔놓고 보니까 아닌 거였죠."

성 소수자들이 성 소수자를 억압하는 세상이 문제라며 억압에 맞서고, 자긍심을 외친 역사를 통해 존엄을 지켜온 것처럼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인간다운 삶, 존엄을 스스로 지켜내 온 것이다.

노동조합 투쟁과 성 소수자 인권, 개인사와 사회상을 넘나든 대화는 두 시간이 넘는 수다로 이어졌다.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서로 존엄하게 연결되는 일이기도 하다. "노동조합 쇠파이프", "동성애 항문 성교" 따위의 낙인과 편견을 깨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권력이 정해 놓은 질서 속에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들, 언론이 외면하고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삶들이 이어지고 말해지는 순간이 투쟁과 연대 속에서는 가능해진다.

며칠 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은 현대차 앞에서 유성 노동자들과 함께 문화제를 진행했다. 그렇게 만나고 대화하면서 우리는 혐오를 넘어서고 함께 살아가는 법, 존엄한 존재로 연결되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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