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번역가 "소주, 선생님…그대로 썼어요!"

데보라 스미스 "한국 노벨 문학상 집착 이해 안 돼"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창비 펴냄)를 번역해 올해 맨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작가와 공동 수상한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노벨 문학상에 집착하는 한국 문학계에 일침을 놨다.

15일 코엑스에서 열린 제22회 서울국제도서전의 한국 문학 세계화 포럼 초청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한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에서 노벨상에 이처럼 큰 관심을 가지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좋은 작품을 독자가 잘 감상하고 즐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작가에게) 충분한 보상이다. 상은 상일뿐이다"라고 말했다.

맨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적 권위를 가진 문학상이다. 영연방 작가에게 주는 상인 맨 부커 부문(Man Booker Prize)과 영연방 외의 작가와 번역가에게 주는 인터내셔널 부문(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으로 나뉜다.

인터내셔널 부문은 올해부터 작가는 물론, 번역가에게도 상을 증정한다. 다른 언어의 작품을 번역하는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데보라 스미스는 <채식주의자>(영문판 [The Vegetarian])로 번역가로는 처음으로 이 상을 받았다.

그간 노벨 문학상 등 국외 문학상을 한국 국적 작가가 타야 한다는 의견은 문학계에서 꾸준히 나왔다. 한국 문학계가 침체된 국내 문학 시장의 돌파구로 해외의 권위를 얻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왔다.

데보라 스미스는 이런 분위기가 옳지 않다고 지적한 셈이다.

데보라 스미스는 한강의 작품 외에도 안도현 작가의 <연어>(문학동네 펴냄, 영문명 [The Salmon Who Dared to Leap Higher])를 지난해 국외에 소개했다. 배수아 작가의 <에세이스트의 책상>(문학동네 펴냄, 영문명 [A Greater Music])을 올해 10월 국외에 소개했고, <서울의 낮은 언덕>(자음과모음 펴냄, 영문명 [Recitation])과 <올빼미의 없음>(창비 펴냄, 영문명 [The Owl's Absence])을 각각 내년과 내후년 국외에 소개할 예정이다.

'한국 문학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관해 그는 "답변하기 어렵다"며 국적이 아니라, 작가의 작품을 중요하게 본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는 "(한국에도) 다양한 작가와 다양한 작품이 있기 때문(에 한국 문학의 매력을 말할 수 없다)"이라며 "한국 문학이 국외에 더 많이 번역 출간되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독자를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건 한국의 여러 (문학 관련) 기관"이라며 "번역 종사자로서 보자면, 한국 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 15일 한국 문학 세계화 포럼 초청 기자회견에 참석한 데보라 스미스. ⓒ한국문학번역원

데보라 스미스는 자신의 번역 철학에 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한강의 작품이 맨 부커상을 수상한 후, 국내 문학계에서 그에 관한 관심은 커졌다.

번역 대상 도서 선정 기준으로 그는 "줄거리와 인물, 배경 등이 어느 정도 정립된 작품보다 문체, 글의 스타일에 관심이 많다"며 "나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흥미로운 내용을 독자에게 제시할 문장이 있는 작품을 번역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영국 독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채식주의자>를 어떻게 번역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번역한 책이 영국 독자가 처음 접하는 한국 문화가 될 수 있다"며 "소주, 만화, 선생님 등의 단어를 그대로 번역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처음 편집자들은 소주를 '코리언 보드카', 한국 만화를 '코리언 망가(만화의 일본어)', 선생님은 '센세이(선생님의 일본어)'로 번역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며 "그러나 나는 (한국 특유의) 문화적 개념이 타국 문화에서 파생된 것으로 설명하는 게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고 번역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데보라 스미스에 따르면, 이미 많은 일본 문학을 읽은 영국 독자는 망가, 센세이 등의 단어를 영어로 그대로 번역해도 불편함 없이 이해한다.

그는 이어 "<소년이 온다>(한강 지음, 창비 펴냄, 영문명 [Human Acts])에는 '형', '언니'와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도 그대로 영어로 썼다"며 "더 많은 (한국 문학) 번역 작품이 나올수록, 영국 독자가 한국 특유의 표현도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식주의자>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처음 읽었을 때 곧바로 탁월한 작품임을 느꼈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강렬했고,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세 화자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서술되는 연작 소설이라는 형식도 독특했다. 영국에는 연작 소설 개념이 없다"며 "각각의 단편이 시각적으로 (각자) 강렬한데, 그럼에도 전체를 관통하는 내러티브가 독자를 이끌어간다"고 설명했다.

또 "애틋함과 공포라는 두 이미지의 어느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완벽한 균형을 이룬 작품"이라며 "잘 관리되고 통제된 문체도 인상적이었다. 이 점에 주의를 기울여 번역했다"고 덧붙였다.

번역가로서 가져야 할 자세에 관해 그는 "번역가가 원작의 중요한 부분에 충실하기 위해 다른 부분에 불충하는 건 불가피하다"며 "나는 원작의 정신에 충실하려 했고, 이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원어의 형태에도 충실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번역가는 원작을 보강하는 역할이 아님을 잘 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번역이라 하더라도, 보잘 것 없는 작품을 역작처럼 포장할 순 없다"고 단언했다. 돌려 이해하면, 번역가로서 자신이 번역한 작품을 쓴 작가에 관한 상찬인 셈이다.

그는 "<채식주의자>에 관한 내 번역은 완벽하지 않다"면서도 "이 작품을 번역한 2013년 이후 제 한국어 실력은 더 좋아졌다. 제가 사랑하는 작품을 다른 독자와 공유하기 위해 번역가가 되었다"고 말했다.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어를 공부한 지 단 3년 만에 한강의 작품을 국외에 알렸다는 점에서도 놀라움의 대상이 됐다.

그는 "처음은 당연히 어려웠지만, '이 작품을 읽고, 번역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했다"며 "좋은 책을 많이 접하면서 더 많은 (한국어) 책을 읽었으므로, 빨리 언어를 습득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데보라 스미스는 비 영어권 국가의 문학을 영미권에 알리기 위해 지난해 틸티드 악시스(Tilted Axis Press)라는 출판사를 설립했다. 이 출판사는 한국문학번역원과 1년에 한 권 이상의 한국 작품을 영국에 소개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한국 문학을 시리즈로 번역 출판하는 프로젝트 추진도 논의 중이다. 이번 내한 동안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의 일부 출판사와 만나 다음 번역 작품 출간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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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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