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에 대한 충성도, 인물에 대한 선호도, 이슈에 대한 찬반도 명료하지 않은 선거입니다. 한 표 행사의 준거를 찾기가 너무 힘듭니다. 헌데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분위기 파악도 안 됩니다.
여론조사는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풍요 속의 빈곤, 또는 질 대신 양이란 말로 대체해도 무방할 정도로 부실 여론조사 가능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단적인 예 하나만 들겠습니다. 요즘 나오는 여론조사의 대부분은 지역구별로 보통 500명 정도의 표본을 뽑아 조사한 것입니다. 표본의 크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국 단위 조사가 대략 1000명 안팎의 표본을 구성하는 걸 고려하면 그보다 인구가 훨씬 적은 지역구에서 500명을 조사한다면 성·연령·직업 등등의 구성을 하고도 남는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조사방식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표본구성을 흐뜨러트립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의해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를 유심히 살펴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부분이 유선전화 걸기 방식의 조사입니다. 간혹 휴대전화 패널 조사 같은 방식을 결합한다지만, 극히 일부입니다. 뼈대는 유선전화 조사인데요. 이 방식이 어떤 문제를 발생시키는지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집 전화가 없거나 집에 늦게 들어가 유선전화를 받을 수 없는 젊은층의 여론이 조사에서 누락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 때문이겠죠? 들리는 말로는 여론조사기관이 20~30대의 응답 내용을 보정한다고 합니다. 워낙 응답량이 적어 곱하기 몇을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여론조사 결과의 왜곡 가능성이 커지는 문제가 발생하는데요.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왜곡된다면, 그만큼 한표 행사에 잘못된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커집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전략 투표 성향이 강할뿐더러, 야권 분열로 전략 투표를 안 할 수 없는 야권 지지층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지는데요. 전략 투표는 판세 계산을 전제로 합니다. '죽어도 몇 번'이 아니라 '될 만한 몇 번'을 고려해 한 표를 행사하는 건데, '될 만한'이란 판단의 근거 수치가 잘못 입력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여론조사와는 달리 정당이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여론조사는 안심번호를 갖고 표본을 제대로 구성해 조사한다고 하는데요. 내놓지를 않습니다. '자체 판세 분석'이란 타이틀로 어느 지역구에서는 우세고 어느 지역구에선 경합이라는 식의 거칠고 피상적인 결과만 내놓지 구체적인 수치는 전혀 내놓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엄살만 떱니다. 자기네 당 안 찍으면 금방 망하기라도 할 듯 울상을 짓습니다.
정당의 이런 태도는 얼핏 보면 저자세 같지만 사실은 고자세입니다. '구체적인 판세는 알 것 없고 무조건 우리 당 후보 찍어'라는 말과 진배없으니 고자세를 넘어 뻔뻔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의 판세를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뭘 믿고 한 표를 행사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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