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입씨름이 공전되고 있기에 주위를 둘러봅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재벌이 500조 원의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소식에다가 가계도 금융기관에 100조 원 가까운 돈을 쟁여두고 있다는 뉴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기업은 투자할 만한 사업이 없어서, 가계는 불안한 미래 때문에 투자와 소비를 안 하고 있다는 분석을 입증하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강봉균 위원장의 양적완화가 '난센스'라는 김종인 대표의 주장에 귀가 쏠립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김종인 대표의 경제민주화가 절실한 과제임을 입증하는 사례는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수저계급론'을 확인해주는 숱한 갑질과 차별 사례가 도열하고 있는 게 우리 사회 현상입니다. 더 말해 뭣하겠습니까?
어떨까요? 이쯤 되면 김종인 대표의 승리로 판정하고 두 노장의 입씨름 관전을 끝내도 될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얘기는 '시비'의 영역에서 통용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영역, 즉 '선호'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3월 29일부터 30일까지 전국의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와 유선전화 혼합 전화면접조사 방식(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3.1%P)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정부가 주력해야 할 경제정책으로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꼽았습니다. 경제 악화의 원인 1순위(43.5%)로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꼽고,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가 56.2%로 나온 조사에서 이 같은 응답이 나왔습니다.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비판하고 야당을 지지한 사람들조차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경도된 의견을 보였습니다.
아직도 국민 다수는 성장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경제민주화 담론에 공감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당장의 '약발'을 우선시한다고 봐야 할 겁니다. 당장 먹고사는 게 급하다 보니까 당장의 효과를 가져오는 성장정책에 무조건 반사를 하는 걸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하고도 넓은 진영은 보수 진영, 여당 진영 이전에 성장 진영입니다. 강봉균 위원장과 새누리당은 이 진영에서 표를 긁어모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강봉균 위원장이 양적완화 얘기를 꺼내자마자 시장이 출렁였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단과 처방, 평가와 대안의 불일치 현상이 반복됩니다. 국민 다수는 경제활성화에 올인하다시피 한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대안으로 또다시 성장카드를 집어들고 있습니다.
이건 분명 모순이지만, 한편으론 현실입니다. 선거는 이 현실 속에서 치러집니다. 옳고그름의 논리가 아니라 좋고 싫음의 관념이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치러집니다. 게다가 그 관념은 '먹고사니즘'의 관성에 의해 부단히 자기 재생되면서 맹목의 철벽을 쌓아올립니다. 이 철벽에 갇히면 심판론에 고개 끄덕이면서도 발은 움직이지 않는 어긋남 현상을 마주해야 합니다.
'문제는 경제다'라는 사실은 말 안 해도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다음입니다. '정답은 투표다'는 다음 순위를 점하는 구호가 아닙니다. 솔직히 투표로 더민주 밀어주면 경제가 나아질 거란 믿음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이보다 앞서야 하는 구호는 '정답은 ○○이다'입니다. 임팩트 있는 비전입니다. 맹목의 철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킬러 컨텐츠입니다. 비슷비슷하고 하나 마나 한 각론은 그게 수십 수백 개라 해도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건 유권자의 가슴에 가서 꽂히는 하나입니다. 경제민주화 기조를 대번에 드러내면서도 그 효과 또한 한방에 알릴 수 있는 '딱 하나'입니다. '투표' 두 글자보다 앞서는 그 무엇입니다.
문제는 '딱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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