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총선, 누가 '청년'을 이야기하고 있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20대 총선, 청년 공약을 파헤치다

한 달이 지나면 정말 투표를 하는 걸까 날짜를 확인해볼 정도로 선거 분위기가 허전하다. 선거구 획정이 늦은 탓인지 큰 기대를 버리고 미리 마음을 비워둔 탓인지 모른다. 세계 정치사에 기록될 필리버스터로 말미암아 국회에 모였던 의지들은 자기 생활로 다시 흩어졌다.

그렇다고 여의도 소식이 끊긴 것은 아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야당 대표의 말이 정치 뉴스를 휩쓸더니, 물밑 암투로 벌어지던 공천 과정의 갈등이 취중 진담처럼 우스운 꼴로 모습을 드러냈다. (권력자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아무리 서로 미워도 죽여버리지는 말자.) 다른 쪽에선 컷오프니 전략 공천이니 하며 경선 대진표가 하나둘 그려지고 있다. 이제 국회의원 선거가 한 달 남았다.

새해를 맞아 선거를 전망하는 이야기에는 '청년'이 빠지지 않았다. 헬조선과 흙수저가 2015년의 단어로 꼽히고 청년 문제에 모두가 관심을 보이니, 이번 선거에서는 청년이 반드시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것은 과학적 분석이나 예측이라기보다는, 청년의 삶이 나아지길 바라거나 새로운 정치적 에너지의 등장을 기대하는 열망의 표현에 가깝다. 청년층의 표심을 원하는 기성 정치권의 욕심도 얼마큼은 담겨있을 것이다.

물정에 빠른 언론들부터 청년에 주목했다. 보도에 담긴 기성세대의 시선은 최연소 출마자와 20대 후보들을 소개하며 젊은 사람들의 '패기 있는 도전'을 높이(!) 샀다. '얼짱' 운운하며 외모를 칭찬(!)해주기도 했다. 한편 정당들은 앞다퉈 청년을 위한 정책을 발표했다. 청년 희망 아카데미부터 청년 일자리 70만 개, 청년 안전망, 청년 희망 둥지, 청년 디딤돌 급여, 그리고 청년 기본 소득까지 그 구성이 어느 때보다 다채롭다. 청년 유권자들의 운동도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총선 청년 네트워크, 대학생·청년 공동 행동 네트워크, 대학생 참여 네트워크가 구성됐다.

이 시점에 중간 점검을 한번 해야지 싶다. 다가오는 총선은 청년과 우리 사회에 어떤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정세와 구도를 읽을 깜냥까진 없으니, 선거의 기본 요소인 후보·정책·유권자의 세 가지 측면에서 현재 상황을 짚어보고자 한다. 특히 청년층의 투표율을 유독 강조하는 접근에 대해서는 강한 유감을 전한다.

청년 후보, 나이의 문제가 아냐

청년 몫의 비례대표를 따로 두는 정당도 있거니와, 이번 선거에서는 '청년 후보'라는 타이틀이 눈에 자주 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따라 한 공개 경쟁은 사라졌지만, '청년 정치인'의 도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청년이라는 이름표는 후보에 의해 표방되기도 하고, 바깥에서 붙여지기도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청년이 제도 정치의 행위자이자 자기 세대의 대표자로 직접 나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세대'의 문제로 나타나는 당사자의 목소리는 역시 같은 세대인 사람이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세대 사이에는 아무래도 문화적 코드의 차이도 있고 말이다. 20대인 국회의원을 상상해 보라. 분명 기성세대 의원과는 다른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척도에서도 좋은 일이다. 기득 정치인들이 공고히 쌓아둔 진입 장벽과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에 차세대의 정치 신인들이 좌절해선 안 된다. 다양한 삶의 요구를 대변하는 새로운 사람들이 국회에 끊임없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청년 후보'가 뜻하는 바에 있다. '청년 후보'는 무엇인가? 생물학적인 나이가 25세 이상 40세 이하인 젊은 출마자인가, 아니면 세대 교체의 기치를 내건 차세대 정치인인가? '스스로 청년인 후보'인가 아니면 '청년이 지지하는 후보'인가?

나는 어떤 의미에서건 모든 청년 후보들이 선전하길 응원한다. 누구도 불공정한 게임의 피해자가 되거나 선거 흥행의 장식품으로 쓰이지 않길 바란다. 청년들도 이만큼 실력이 있다고 증명해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4월 13일에 어떤 후보가 나와 같은 세대라고 해서 그에게 투표할 계획은 없다. 청년이기 때문에 청년을 지지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나쁜 것이다. 그런 사고 방식이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 후보'는 마땅히 청년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후보여야 한다. 청년 후보의 원리적인 성립 요건은 우선 청년의 고유한 이해관계가 형성되어야 하고, 다음으로 그것이 모이는 결사체가 있고, 마지막으로 조직된 요구와 후보 사이에 정치적 통로(political channelment)가 존재해야 한다. 노동자 후보도 여성 후보도 마찬가지다.

결국, 청년 당사자의 대중적 움직임 없이는 '청년 후보'도 존재할 수 없다. 이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은 다른 나라에 있다. 바로 미국 대선의 버니 샌더스 후보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정치의 내용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청년 정책, 모든 세대를 위한 사회적 기획으로

녹색당은 지난 1월에 발간한 총선 정책 공약집을 통해 "청년과 사회의 새로운 계약 맺기"라는 청년 정책의 비전을 가장 먼저 발표했다. 지역 단위의 청년 배당을 확대하는 한편, 전면적 기본 소득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출발선에서 우선 만 15~29세의 청소년·청년에게 월 40만 원의 기본 소득을 지급하는 핵심 공약을 밝혔다. 정치적 시민권, 교육권, 주거권, 노동권을 청년 세대의 권리로 제시하며 종합적인 공약을 선보였다. 녹색당의 청년 정책은 '권리'를 키워드로 삼을 수 있다.

노동당은 소득 보장을 핵심 목표로 두고 "청년에게 월 100만 원의 보장 소득을"이라는 제목으로 청년 정책을 제시했다. 대학 등록금 무상화로 월 60만 원, 생계비 절감으로 월 10만 원, 기본 소득으로 월 30만 원을 합산하여 전체 월 100만 원의 소득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노동당은 부채 탕감, 노동 시간 단축, 최저 임금 1만 원 등의 내용도 청년 정책의 틀 안에서 구성했다. 노동당의 키워드는 '소득'이다.

국민의당은 창당 1호 법안을 국민 연금이 참여하는 청년 공공 임대 주택 사업으로 선정한 이후, 지난 7일에는 "청년 희망 프로젝트 : 공정한 출발"이라는 제목으로 10가지 청년 공약을 발표했다. 취업 활동에 나선 청년에게 고용 보험 기금으로 월 50만 원씩 6개월 동안 300만 원의 구직 급여를 지급하고 취업 후에 갚도록 하는 '후납형 청년 구직 수당'이 대표 공약이다. 그 밖에 청년 스타트업 제품의 공공 구매 확대, 청년 구직자 인권 보호, 대학 입학금 폐지와 등록금 심사제도, 국가 장학금 사각지대 해소가 주요한 내용이다. 국민의당이 보도 자료를 통해 스스로 강조한 키워드는 '공정'이다.

아쉽게도 다른 정당들은 아직 종합적인 청년 정책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정의당은 "국민 월급 300만 원"이라는 슬로건의 노동 정책에 최저임금 1만 원과 공기업·대기업의 5% 청년 고용 할당제를 포함했고, 청년에게 특화된 공약으로는 "복지 임금 100만 원" 10대 과제에 들어간 '청년 디딤돌 급여'를 제시했다. 지원을 필요로 하는 미취업 청년에게 월 50만 원, 연간 최대 540만 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27세 취업 준비생 1인 가구의 경우, 통신비·주거비의 절감과 청년 급여를 통해 매월 59만 원 상당의 가계비를 낮출 수 있다는 사례를 들었다. '복지'라는 키워드를 꼽을 수 있겠다.

더불어민주당은 2월 초에 발표한 민생 복지 공약에 청년 정책을 담았다. "청년에게 희망을"이라는 메시지로 청년 일자리 70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익숙한 약속과 더불어 월 60만 원씩 6개월간 취업 활동비를 지원하고 패키지형 공공 고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청년 안전망'을 제시했다. 셰어 하우스 임대주택 5만 호와 신혼부부용 소형주택 5만 호를 공급하는 청년주거 정책도 있다.

한편 새누리당은 3호 정책 공약인 "일자리 더하기"와 5호 정책 공약인 "배려 나누기"에 청년 관련 정책을 두었다. 청년 희망 재단에서 운영하는 '청년 희망 아카데미'의 전국 확대, 벤처 장학제도, 1~2인 가구 임대 주택 공급 확대, 행복 주택 신혼부부 특화단지 조성, 대학 연합 기숙사 확충이 있다. 우리 딸과 아들의 일자리를 위해 노동 개혁을 추진했던 당론에 따르자면, 집권 여당의 청년 정책이란 기승전'노동 개혁'일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중요한 것은 개별 정책 공약이 아니라 그것이 배치되는 큰 그림이다. 그런 관점에서 총평했을 때, 정당마다 권리·소득·공정·복지·안전망으로 가치와 원리는 다양하지만, 전반의 방향에서 청년 정책이 '일자리 창출'과 '취업 지원'이라는 기존의 범위를 넘어서 '소득 보장'과 '사회 안전망'의 넓은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본 소득·구직 수당·실업 급여 등 형태는 개성 있지만, 크게 '청년 수당'으로 통칭할 수 있는 공통점이 새누리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에서 나타났다. 저성장 시대 개막, 산업구조의 변화, 불안정 노동의 확대, 불평등의 심화라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현실로부터 약자의 상징이자 시민의 다른 이름인 '청년'을 위한 정책 또한 패러다임 수준의 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발견되는 청년 정책의 전환에 우리 사회가 복지 국가로 나아가는 길이 있다. 생애 단계마다의 각종 위험에 대응되도록 잘 설계된 복지 제도의 틀에서 청년에 특화된 프로그램이 있을지언정 오로지 청년만을 위한 정책은 없다. 청년을 위한 것은 모든 세대를 위한 것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청년의 권리를 통해 모든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재현해야 한다.

정책이 중심이 되는 아름다운 모습을 당장 보기는 어렵겠지만, 복지 국가라는 해법과 시장주의 노선 사이의 갈림길 앞에 각 후보·정당들이 그러한 사회적 기획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진심으로 요청한다.

청년 유권자, 투표율 올리기를 넘어

마지막으로 유권자 운동을 살펴보겠다. 소위 '청년 유권자 운동'의 과제가 청년층의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너무 많다. 선거가 다가오니 또다시 20대 투표율 이야기가 나온다. “대통령은 투표하는 국민이 만든다”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가 오르내린다. 투표율이 높아야 표심을 좇는 후보와 정당들이 청년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건 당연한 말이다. 그리고 투표독려 캠페인을 성실히 하자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투표율 높이기'는 유권자 운동이 책임질 몫이 아니다. 특정 연령 집단의 투표율이 높거나 낮은 것은 수많은 변수가 복잡하게 연관되어 나타난 결과물이다. 한 달 동안 24시간 내내 투표 독려만 한들 질적으로 달라질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 자체가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 행위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이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투표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선언으로는 효과도 감동도 없다.

혹자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 받지 못 한다'는 격언까지 인용하며 투표하지 않는 '게으르고 무책임한 청년'들을 꾸짖는다. 청년들이 투표하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이니 자업자득이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언설도 있다. '20대 개새끼론'과 같은 논리구조다. 그러나 권리는 참여의 대가 혹은 참전의 전리품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 투표하든 안 하든, 인간다운 삶의 권리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또 누군가는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기성 체제·기성 정치·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를 조직하여 투표율을 '혁명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젊은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혐오'다. 박권일 칼럼니스트의 지적처럼 분노는 변화로 향하지만, 혐오는 '탈조선' 혹은 '공멸'로 이어진다. 반정치주의에 근거를 두고 정치 참여를 호소한다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모순이다. 헬조선이라는 말의 함정에 빠지면, 돌아오는 것은 참여가 아니라 냉소일 뿐이다. '헬조선'은 대안을 만드는 언어가 아니다.

유권자 운동은 선거 과정에서 정치 참여를 수단으로 벌어지는 대중 운동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선거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싸움에 최대한 개입하는 것이다. 선거의 장에서는 현실 정세를 조건으로 '선택의 기준'이 어떻게 설정될 것인가를 두고 다양한 정치적 힘들이 경합한다. 예컨대 야당은 총선을 '집권 세력을 심판하는 선거'로 규정하고자 할 것이고, 또 다른 집단들은 각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경제 민주화를 위한', '소수자 혐오에 맞서는', '반칙과 특권을 없애는' 선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힘겨루기는 언제나 전선의 형성을 두고 벌어지는 헤게모니 투쟁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청년 유권자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청년이 제시하는 '정치적·사회적·윤리적 가치'를 모든 유권자의 기준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절대 청년층 투표율 높이기 정도에서 멈춰선 안 된다. 청년이 청년에게 말 거는 것에서 그만둬서도 안 된다.

그것은 좋은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세대 연대와 사회 연대의 큰 그림, 그리고 다른 세대와 집단에까지 공명하는 메시지가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구체적인 청년 정책에서 출발하더라도 그다음에는 '청년을 위한 것'이라는 상징을 통해 모두를 위한 것을 구성하는 정치적 실력이 필요하다. '모든 세대가 함께 고민하는 지속가능한 다음 사회'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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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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