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그렇다고 합니다.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권력의 양지만 좇는 철새 정치인'이라고 했고, 조응천 전 비서관에 대해선 '최악의 인재영입 케이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럼 탈당 이틀 만에 당적을 새누리당으로 옮긴 조경태는 뭐냐는 반문이 절로 튀어나옵니다만,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당사자들끼리의 공격거리는 될지언정 객관적 가치판단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점을 살펴보죠.
철새의 속성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는다는 데 있습니다.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우선시한다는 점입니다. 이 속성을 기준 삼아 진영을 옮긴 세 사람의 행적을 평가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들을 철새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조건을 확인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권의 힘이 빠져 단물이든 쓴물이든 뽑을 게 없어졌거나, 야권이 잘 나가 곁불이라도 쬘 여지가 있거나 하는 조건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어떨까요?
정반대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집권 4년 차에 접어들었는데도 레임덕 조짐을 보이기는커녕 더 기세등등해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야권은 지리멸렬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자칫하다간 권력의 '뒤끝작렬'의 제물이 되기에 십상입니다. 금배지 하나에 현혹되기엔 리스크가 매우 클 수 있는 '월담'입니다.
철새가 아니라면 이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들은 '난민'입니다. 정치적 난민입니다.
김종인의 '월담'은 경제민주화의 염원이 무너진 데 따른 실망감과 배신감 때문이었습니다. 조응천의 경우는 더 합니다. 문건 유출 범인이자 7인회의 수장으로 내몰린 데 따른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이상돈의 경우도 MBC 파업사태나 4대강 해법 약속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데 따른 실망감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뛰쳐나간 게 아니라 쫓겨나간 겁니다. 배신을 한 게 아니라 배신을 당한 겁니다.
박지만 씨가 그랬다죠? 조응천 전 비서관의 더민주 행 소식을 듣고 "오죽하면 그랬겠나, 인간적으로 이해한다"고요. 박 씨의 말 또한 같은 맥락의 얘기일 겁니다.
의리를 앞세우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라는 말을 앞세우며 이들을 욕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주군과 가신의 수직적 관계가 일반적이던 봉건시대의 정치, 의리를 넘어 충성을 요구하던 봉건시대의 정치에서도 자기 선택권은 있었습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선택할 권리가 있었고,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주군을 떠날 권리 또한 있었습니다. 하물며 '민주'라는 수식어를 동반하는 현대 정치에선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나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거나 나에게 칼날을 들이대는 사람에게 무슨 의리를 지키란 말입니까? 그건 조폭세계에서도 통하지 않는 맹목적 폭력입니다.
세 사람의 '월담'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 핵심부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의 더민주 행 소식을 들은 청와대 관계자가 말했다지 않습니까? 결국 청와대에서 불순한 의도로 일한 게 드러났다고요. 정권 핵심부는 인과관계까지 뒤집으면서 자기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습니다. 아니, 아마도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을 것입니다.
세 사람은 철새의 표본이 아닙니다. 오히려 철벽과 철판의 산증인입니다. 정권 핵심부의 자기중심적이고, 적반하장 식이며, 안하무인격인 면모를 세상에 알리는 고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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