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테러, 지도에 답이 있다!"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⑤]

출판업계가 불황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겠지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 월 0.76권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즐길 거리가 점차 많아지는 데다, 책을 읽을 삶의 여유가 없다는 점이 원인일 겁니다.

그러나 위기에도 기회는 오기 마련입니다. 언제나 불황을 이긴 베스트셀러는 나옵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의 출판사에서 좋은 글을 가진 작가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편집자, 색다른 시도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디자이너들이 독자에게 멋진 책 한 권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은 이 불황의 시대에 독자의 마음을 훔친 베스트셀러를 이모저모 뜯어보고, 그 성공 원인을 분석하는 새로운 월간 기획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소개합니다.

출판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 두 분을 모셨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전 민음사 대표)와 이홍 출판기획자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민음사, 황금가지, 리더스북 등의 출판사에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직접 만든 출판계의 신화입니다.

이들이 때로는 신랄한 비평가이자 때로는 친절한 컨설턴트로 변신합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이들이 직접 베스트셀러를 선정해 책의 성공 원인과 이후 과제를 짚어봅니다. 현장에서 그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출판사의 편집자, 기획자의 이야기도 직접 들어봅니다. 교보문고가 전국의 판매 데이터를 제공해 분석의 신뢰를 더욱더 높였습니다.

다섯 번째 책은 지도를 통해 세계 정치를 읽는 <왜 지금 지리학인가>(하름 데 블레이 지음, 유나영 옮김, 사회평론 펴냄)입니다. 지난 2007년 나온 <분노의 지리학>의 개정판입니다. 지은이 하름 데 블레이는 미국의 저명한 지리학자로, 지난해 사망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셈이죠.

이 책은 전반부에서 지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지도의 발전 과정 이야기 등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 지식을 토대로 지도를 통해 기후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슬람을 믿는 여러 나라에서 왜 테러 조직이 자꾸 발생하는지를 설명하는 놀라운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중국과 유럽, 러시아, 아프리카 대륙의 미래상도 지도를 토대로 흥미진진하게 그립니다.

앞부분의 설명만 보셔도 짐작이 갈 것입니다. 이 책은 세계를 '운영'하려는 미국 정치가들에게 세계를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가를 설명해주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지리학 개론서이자, 미국인을 위한 지리 읽기서인 셈입니다.

탁월한 통찰이 들었기 때문일까요, 이 책은 나온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각 도서관 구매 대기 목록에 빠른 속도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만큼 한 번 읽어보려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다섯 번째 대담에서 대담자들은 이 책의 가치를 드높이는 한편, 개정판이 꾸준히 나와야 하는 이유에 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17일 오후 4시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간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 이번 대담 시간에는 지리학을 통해 국제 정치를 바라보는 <왜 지금 지리학인가>를 다뤘다. ⓒ프레시안(최형락)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지정학 도서


이홍 : 다섯 번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다룰 책은 <왜 지금 지리학인가>입니다. 일단 책을 읽은 소감부터 이야기해보죠.

처음 이 책을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책의 분류 형태였습니다. '이 책이 정말 지리학책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죠.

본문을 읽기 전, 목차를 보면 정치·사회 개론서의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보도 자료와 서점 카피를 보니 바이러스의 확산이나 문화 변혁 등을 말하더군요. 그렇다면 인류학의 풍모가 강하게 느껴져요. 저자는 분명 지리학자인데, 책 전반부를 빼면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지리학자의 책이라는 느낌이 오지 않았죠. '지리학'이라는 게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영역에 관한 것이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잡다한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출판사에서 고민 많이 했겠구나'하는 생각이 든 이유입니다. 서점에서는 이 책을 인문학으로 분류했던데, 그러기에는 이 책의 모든 것을 담기 부족해 보였습니다. 넓은 차원에서의 통찰을 담고 있다고 할까요. 출판사에서도 비교 대상에 넣으셨습니다만, 곧바로 명저인 <문명의 충돌>(새뮤얼 헌팅턴 지음, 이희재 옮김, 김영사 펴냄)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이 책과 비교가 적절한지는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요. 아무튼 이 책은 그 내용과는 별개로, 뜻밖에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 달의 책으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곁가지입니다만, 우리가 책을 읽는 도중에 파리에서 비극적인 이슬람국가(IS) 테러 사건이 발생했어요. 이 책이 현지에서는 2012년에 나와서 IS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진 않았지만, 바로 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느냐에 대한 지리학적 대답을 담고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매우 적절한 선정이 되었고 그만큼 중요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은수 : 이 책에서 정치·사회적인 내용을 읽고 싶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쟁점이 바로 정치잖아요? 정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정치를 어떤 식으로 다룰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필요한 때입니다. 편집자로서 독자가 정치 영역의 책을 어떤 기준으로 고르느냐도 궁금했고요. 이 책이 어떤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말해 '너무나 미국적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미국인을 위해 기술되었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 책이 제시하는 통찰력 있는 시야가 우리 독자한테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편집자로서 부끄럽지만, 이런 시야를 남의 눈으로 쓴 책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지리학자 책이든, 정치학자 책이든, 이 책처럼 거시적으로 세계를 읽는 시야를 제공하는 국내 서적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나오지 않았다면 이제라도 편집해서 만들 작정입니다. (웃음)

저자도 본문에서 토로합니다만, 지리라는 학문이 전 세계적으로 그 위세가 약해졌습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서 지리가 매우 중요한 시대인데, 역설적으로 아무에게도 중요하지 않게 되어 버렸죠. 그런데 지리를 버리면 결국 시야가 좁아지고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행은 많이 가죠. 하지만 그 지역을 실제로 알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듯합니다. 여행 가서 눈으로 볼 뿐이죠. 여행지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즉각적인 감각, 말초적 감각으로 소비하는 대상으로만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무척 시의적절했습니다.

세상을 크게, 넓게 보는 경험을 독자에게 줍니다. 덕분에 읽으면서 매우 즐거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잡독파'에 속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책에서 얻은 지식이 하나로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시야가 넓어진 거죠.

이홍 : 이 책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결국 '지도와 지리학으로 세계와 문명과 나라와 사람을 들여다보자'는 거예요. 정치, 문화, 사회, 경제 등등을 '지리'라는 프레임에 맞춰 따져보자는 거죠.

지리 분야의 권위자인 만큼 저자의 의도는 적절했고 완성도 높게 구현된 것은 사실입니다. 당연히 굉장히 재미있는 시도였음이 틀림없습니다. 정치를 지도라는 공간을 통해 이해시켜줍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지도로 '어! 이것을 이렇게 볼 수 있구나' 하는 특별한 경험을 줍니다. 그러나 앞에서 장은수 대표께서도 이야기하셨듯, 너무 '메이드 인 USA' 프리즘이 강합니다. 이건 대단히 안타깝고 실망스럽습니다. 저자는 좀 더 객관적인 지대로 몸과 마음을 옮길 의도가 없어 보였습니다. 이 넓은 지구의 지도를 미국적 시각과 사고의 틀에서 봐야 한다는 건 몹시 짜증 나는 일이지요.

어떤 부분에서는 좀 색다른 설명을 위해 지리학을 의도적으로 이용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책의 각 부분이 절묘하게 얽혀 화학적으로 융합되었다는 느낌도 받기 어려웠습니다. 출판사가 비교, 혹은 경쟁 대상으로 지목한 <총, 균, 쇠>(제러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사상사 펴냄)보다 읽는 재미는 훨씬 좋습니다만, 개별 챕터 내용의 융합도에서는 <총, 균, 쇠>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장은수 : 이홍 선생께서 아쉬움을 이야기하셨으니, 저는 이 책에서 한국의 편집자들이 배울 만한 점을 본격적으로 짚어 보죠. 두 가지 차원의 이야기가 될 텐데요.

일단 서술 태도에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자기 독자를 정하고, 철저히 그들에게 복무한다는 의식이 투철합니다.

한국 편집 문화에서는 드문 일이죠. 우리 역시 '누구를 위한 책'이라는 말을 하지만, 개념적인 이야기로만 여길 뿐 실제로 편집할 때는 '더 많은 사람이 읽도록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과연 그런 게 좋은 편집이냐는 질문을 깊이 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이 책은 철저하게 미국 정치계, 미국 학계, 미국 지식인층을 대상으로 합니다. 물론 저자가 '전 세계가 이 시선에 동의할 것'이라는 제국주의적 입장을 가졌을 수 있습니다만, 편집자가 그걸 완화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기 목표 독자의 욕구에 충실한 것이죠. 이런 시각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이런 태도는 우리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이 집중해서 다루는 주제 중 '인구 증가와 인구 이동이 앞으로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결국 미국의 이민 정책과 기밀하게 연결됩니다. 기후 변화를 지리학적으로 푼 내용 역시 석유의 나라 미국에 중요한 문제죠. 특히,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이슬람 테러 문제 역시 IS 같은 단체가 미국의 대표적인 위협 세력이기 때문에 다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 유럽도 미국의 경쟁자죠. 아프리카는 미국의 잠재적 시장입니다. 책의 두께에 비해 다루는 주제는 많지 않지만, 이들 주제는 모두 최근 십수 년간 미국 언론의 최상급 이슈입니다. 이 책은 이런 문제들을 미국의 입장에서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아주 명료하게 답합니다. 미국인으로서는 무릎을 탁 칠 법한 책이에요.

따지고 보면 일본 책도 그렇죠. <남성표류>(오쿠다 쇼코 지음, 서라미 옮김, 메디치미디어 펴냄)나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모타니 고스케·NHK히로시마 취재팀 지음, 김영주 옮김, 동아시아 펴냄)와 같은 책은 일본 독자에게 호소하는 방식으로 만듭니다. 다른 나라 독자가 읽기에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국의 독자들한테 명확한 시사점을 주죠.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쏭챵·짱창창·챠오벤·꾸칭셩·탕쩡위 지음, 강식진 옮김, 동방미디어 펴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시하라 신타로 지음, 김용운 옮김, 한국능률협회 펴냄)이 나온 지 20년이 지났는데, 우리도 우리에게 맞는 국제 정치적 위상을 이야기하는 책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합니다.

둘째, 학술서를 이 정도로 잘 읽히도록 써낸 건 정말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솔직히 대중서라고 이야기하긴 어렵습니다만, 대학교에서 지리학 공부에 막 들어가려는 학생에게 지리의 중요성을 가르쳐주는 책으로서는 최고가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인문 교양서라면 지리의 눈으로 세계를 봐도, 역사의 눈으로 세계를 봐도, 문학의 눈으로 세계를 봐도 세계 전체가 다 보이는 듯한 경험을 줍니다. 그게 개론서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개론서로서 최고의 미덕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책이 뜻밖에 드뭅니다. 적어도 지리학을 전공하거나, 국제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책은 필독서가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홍 : 장은수 대표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그런 핵심 목적에만 집중했다면 더 좋았으리라는 점이죠. 독자가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부분은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리학자가 굳이 이런 시각(미국을 위한 정치적 시각)을 갖고 이 부분을 서술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대목이 제법 많이 눈에 띕니다.

장은수 : 맞아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성격이 지리학의 본질일지도 모르죠. 지리학이 탄생한 본질(이 정치적 목적과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인 거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지정학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 세계 무슬림 인구 비중을 나타낸 지도. 지리학 전문가는 이 지도에서 테러의 미래를 본다!? ⓒwikipedia.org

IS 문제, 지도에 답 있다

이홍 : 네. 지도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이해하는 건 독자의 몫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이와 같은 주제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저자의 노력에 대해서는 저도 부러움과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모든 출판사의 기획자가 탐낼만한 주제와 콘셉트인데, 국내에서 필자를 찾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파리 테러 사태가 있어서 그런지, 이 책의 정치적 부분, 그러니까 이슬람권역의 지도를 다룬 부분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IS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습니다만, 정말 독보적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이 아주 좁은 회랑으로 중국과 연결되어 있고, 이로 인해 최근의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중국과 미국의 이야기로 넘어간다는 대목에서는 짜릿함을 얻었지요.

논란이 되는 이슬람 무장 단체의 테러 문제로 가볼까요. 이 책은 테러 이야기를 하면서 지엽적 측면을 설명합니다. 왜 특정 지역에서 테러 단체가 준동하는가, 그들이 왜 어떤 지역에 테러를 일으키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답을 제시합니다. 비록 미국적 시각이라 해도 그 이해의 수준이 놀랍도록 날카롭습니다.

이 책의 내용만으로도 출판사가 테러 루트에 대한 지도를 따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리 테러가 터진 후 현재 가장 주목받는 지역의 하나가 벨기에입니다. 보통 우리는 '왜 벨기에지?'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죠. 이 책을 보면 생각지도 않은 사고와 연결고리들이 사실은 지도 속에 숨겨져 있음을 알게 합니다. 이런 식으로 판단을 응용한다면 테러에 관련된 지도를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 내용 중 6, 7장의 내용만 정리해도 하나의 새로운 지도가 되지 않을까요?

제가 최근 독일 뮌헨에 다녀왔는데요, 그곳이 독일에서 가장 골치 아픈 도시가 됐습니다. 난민을 가장 많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뮌헨이 독일 남부에 있는데, 지리학적으로 보면 외부에서 독일로 들어오는 첫 관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장은수 : 이 책은 현실적인 통찰을 제공합니다. 러시아는 왜 체첸에서 고전하는가, 왜 유럽은 흔들리는가 하는 질문에 지리학적으로 답하는 부분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목표 독자에게 맞춤해서 홍보한다면 책 자체 힘만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 외에도 재미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신문사 지도로 더는 메르카토르 도법 지도를 쓰면 안 된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칼럼 등으로 기고하거나 페이스북, 네이버포스트 등 소셜미디어에 공유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은 호응을 얻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으면 눈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좋은 책은 별로 없어요.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아무리 인터넷 검색을 해도 안 나옵니다. 이런 '와우 팩터'가 있다면 '왜 지금 경제학인가', '왜 지금 사회학인가'와 같은 제목의 시리즈 책을 내도 좋은 반응이 나올 것 같네요.

전문가 마케팅이 필요한 책도 있다

이홍 : 우리가 책 칭찬만 하다 오늘 자리가 끝날 것 같은데요. (웃음) 홍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제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이야기해보죠.

IS 테러 문제를 고려하면, 바로 '턱' 하니 걸리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이 책이 8월에 국내에 나왔는데요, 출판사에서는 메르스 사태를 홍보의 키워드로 던지셨어요. 당시는 물론 메르스 공포가 컸습니다만, 아무리 봐도 이 책을 홍보하려면 IS 문제를 거론하는 게 좋다고 보이거든요. 왜 그러셨나요?

사회평론 : 이 책을 편집할 때 우연히 메르스 사태가 커졌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조금 더 부각해서 알리고자 했습니다. 이슬람과 IS 문제는 예전부터 주목하고 있었고, 이런 문제를 통찰력 있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는 책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메르스 사태를 의식했다고 하셨습니다만, 책 제목이나 카피 어디에도 전염병과 관련된 이야기는 주목받지 않네요. '슈퍼 바이러스' 정도의 홍보 문구가 있습니다만, 본문에서 주로 다루는 주제는 아닙니다.

단기적으로 메르스 사태가 우리나라에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만, 책의 주제에도 걸맞고 세계 정세에도 가장 큰 문제인 이슬람과 IS를 더 부각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회평론 : 저희는 이 책을 한두 가지 사건에 맞춰 출간할 필요는 없다고 봤습니다. 조금 더 장기적으로 사람들의 손이 가는 책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문명의 충돌>과 같은 책이 그렇죠. 그렇기에 당장 논란이 되는 문제를 부각하려 했을 뿐입니다.
장은수 : 이 책은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살려 홍보했어야 하는데, 조금 부족했다는 느낌이에요. 흔히 편집자들이 책의 포지셔닝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특정 욕구를 가진 독자는 계속 그 분야의 책을 삽니다. 출판 이후 홍보 과정을 보면, 출판사에서 특정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초기 독자의 응집력이 생기지 않죠. 초기 반응이 '붐업'으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도서 정가제 환경에서 독자의 입소문은 최고의 홍보 수단인데, 이를 증폭시키는 편집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를 의식하지 못한 건 아닌가 합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데이터를 보면, 이 책이 처음 나온 8월에 집중적으로 팔렸습니다만, 다음 달부터 바로 판매량이 뚝 떨어집니다. 9월에는 전월 대비 20.9% 떨어졌군요. 판매가 확산되지 못한 거죠.

▲ <왜 지금 지리학인가>는 초기 판매 효과로 8월에는 높은 신장률을 보였으나, 그 다음 곧바로 전월 대비 판매 실적이 떨어졌다. 정치사회 분야 서적이 9월 높은 신장률을 보인 것과 비교된다. ⓒ프레시안

책의 초기 핵심 독자가 누구인지 아는 건 중요합니다. 앞서 이 책이 미국인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만, 특정 부분에서는 미국이 한국을 어떻게 보는지도 나옵니다. 당장 동해 표기 문제가 책에 나오죠.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을 읽으면 미국 최상급 지식인이, 특히 국제 문제 전문가들이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어요. 따라서 이 책은 친미 교과서이자 반미 교과서이기도 합니다. (웃음) 이런 부분을 고려하면 핵심 독자가 누구인지 나오죠.

이 책은 지리학 서적입니다만, 진정한 핵심 독자는 국제 정세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사람입니다. 대중은 아니죠. 오피니언 리더입니다. 그들과 충분히 소통할 필요가 있어요. <프레시안>의 주요 필진이 이 책을 읽었느냐.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과 같은 사람이 이 책을 읽었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제가 책을 읽은 독자들의 리뷰를 살펴봤습니다만, 독자 중에도 지금 이슈와 이 책을 비교하는 리뷰를 쓴 분은 많지 않더군요. 이전까지 이 책이 세상을 조금 더 크게 알고 싶다는, 간단히 말해 추상적 욕구가 있는 사람과만 만난 것 같아요. 그분들만으로는 이 책의 진가를 100% 알리기 어렵습니다. 출판사에서 이야기의 씨앗을 공급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또 하나 아쉬웠던 부분이 있습니다. 비단 한국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 책이 다룬 내용과 관련한 뉴스는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당장 전 세계가 IS 공포에 떨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중요한 책이 배경 지식 등 그 이슈에 발맞춰서 적절하게 이야기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해당 이슈에 대한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지 않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홍 : 홍보를 요령 있게 못 하는 게 특히 인문·사회과학 출판사의 공통적 특징인 것 같습니다. (웃음) 인위적으로 이슈를 생산하거나, 이슈 파이팅을 펼치는 힘이 좀 떨어지죠. 기존 저자의 힘이나 언론 보도를 활용하는 정도지, 스스로 이슈를 만들고 확대하는 부분이 조금 부족해요.

앞서 우리가 "저자가 누구에게 복무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더구나 이 책은 번역서이니만큼 출판사가 이 책의 포지셔닝과 핵심 독자를 더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메르스 이야기를 자꾸 꺼내게 되는데요. 출판사의 사전 답변지 중 "메르스를 고려했다"는 대목에 놀랐기 때문입니다. 메르스 사태는 누가 봐도 일시적이지만, 이슬람과 IS 사태는 장기적이거든요. 굳이 책의 홍보 포인트를 잡자면 거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장은수 : 중요한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출판은 누가 읽느냐, 그리고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에 답해야 합니다. 제가 앞서 언급한 이 책의 핵심 독자에는 아마도 언론사 국제부 기자를 포함해 외교부 관리, 상사 직원, 다국적 기업의 비즈니스맨 등이 포함될 겁니다.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학생, 지리학 전공자 등도 있겠죠.

이들에게 맞추어 어떻게 홍보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싶네요. 이 기사를 읽으시는 분 중 위에 해당하는 분께서는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웃음) 이 책은 잠재력이 아직 상당히 크고, 노력하면 확산될 기미가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국제 문제 전문가의 책상에 이 책을 올려라"

▲ <왜 지금 지리학인가>는 지식 욕구가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프레시안(최형락)
이홍 :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책'이에요. 너무 어렵지는 않은데, 한 권만으로 지적인 영역을 확장할 수 있어요. 지적 탐구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고 싶어 할 겁니다.

저는 요즘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생각 안 해요. 전통적인 책의 형태를 안 볼 뿐이지, 여러 가지 형태로 텍스트를 읽고 있어요. 조금 더 편리한 방법으로 보기 좋아할 뿐이죠. 이 책은 그런 사람까지도 끌어들일 충분한 요인을 갖고 있어요.

그렇다면 왜 확산되지 않았을까요? 건성으로 읽어서 그래요. 저자는 지도를 동원해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데, 지리학의 재미난 요소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힘이 빠지거든요.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 "아, 책 좋다"고 하지만 '강추' 하진 않는달까요.

이 책이 절대 어려운 책은 아닙니다만, 메시지의 목표는 분명 지식 최상위층이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대중서로 마케팅해서는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그런 시도가 눈에 띕니다. 책의 하단부 홍보 문구를 보면 '미 국무부 추천 외교관 필독서'라고 되어 있고 '<문명의 충돌>, <총, 균, 쇠>에 이어 현대 국제질서의 본질을 날카롭게 파헤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미 일가를 이룬 책의 반열에 이 책을 올리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앞선 책의 독자가 여기에 바로 흡수되긴 쉽지 않습니다. 책을 열심히 읽는 분이라고 유사한 형태의 책을 모조리 섭렵하진 않거든요. 한 책이 자기 독자성을 가지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장은수 : 굳이 <문명의 충돌>이나 <총, 균, 쇠>와 비교할 필요는 없어 보여요. 이 책 자체만으로 충분히 훌륭하니까요.

앞서 목표 독자에 맞는 홍보를 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조금 구체적으로 아이디어를 내 보죠.

대학생에 맞춘다면, 지리학과에서 교재로 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보통 12월에는 다음 학기 커리큘럼을 정하니, 이 책의 홍보가 10월에는 각 대학 지리학과 교수들에게 들어가야 합니다. 가을학기가 목표라면 5, 6월에 책이 나와야 하겠죠.

전문가들에게는 이메일 마케팅이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미국은 이메일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씁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통찰력 있는 부분 중 일부를 발췌·편집해서 각 신문사 논설위원들에게 메일로 보내는 건 어떨까요? 그들이 글을 쓸 때 "<왜 지금 지리학인가>에 따르면..."하고 설명하면서 IS 테러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말이죠. 이 책을 이슈에 맞추려 할 때, 책 내용 일부를 요약해서 기사형 보도자료로 활용할 여지가 많습니다. 이 정도의 책이라면 각 언론사 논설위원 책상에는 전부 올라가야 합니다.

사회평론 : 교수 등 전문가들에게는 책을 현재 보내고 있습니다.
책을 그냥 보내면 안 봐요. (웃음) 요약한 자료를 보죠. 자료를 보신 분이 책 보내달라고 하면 그때 보내면 되죠.

이홍 : 전략적으로 책의 콘셉트를 다시 포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후에 다룰 주제입니다만, 자체 개정판도 고려해봄 직합니다. 불행히도 파리에서 끔찍한 사고가 났습니다만, 지금 이 사건을 이 책이 이야기해줄 수 있거든요. 최소한 언론에라도 정리된 이슈형 보도자료를 다시 보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봐요.

장은수 : 지금은 예전과 달리 한 출판사가 베스트셀러가 될 기회를 잡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기회가 오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적극적으로 그 시기를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충분히 판매되지 않습니다. 이건 제 경험담이기도 합니다.

제가 예전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샤론 레흐트 지음, 형선호 옮김, 민음인 펴냄) 시리즈를 낼 때, 미국 담당자가 "보도자료 몇 번 뿌리느냐"고 저한테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왜 '몇 번' 뿌리냐고 묻느냐"고 반문했죠. 한 번 뿌리면 끝이라는 생각을 한 겁니다. 그들은 일 년에 그 책과 관련한 보도자료만 500번 넘게 각종 언론사에 보낸다고 하더군요. 물론 모든 언론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절하게 분류된 기자 목록을 가지고 있고, 그들에게 필요해 보이는 정보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노출 기회가 늘어나면서 판매도 늘어납니다.

한국 출판사들은 책을 알릴 때 공중전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언론사 마케팅은 매우 디테일합니다. 우리도 꼼꼼한 홍보 작업이 필요합니다.

개정판의 의무, 목적

이홍 : 우리가 여태 말을 안 하고 지나갔습니다만, 이 책이 <분노의 지리학> 2012년 개정판입니다. 어떤 부분이 달라졌기에 개정판을 내기로 하셨나요?

사회평론 : 개정판 계약은 지난해 했습니다만, 오랫동안 출판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주로 학술서와 고미술 분야 서적에 집중하다 새로 단행본 분야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이 책을 보다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겠다고 판단해 개정판 출판을 결정했습니다. 계약 당시는 예전처럼 학술서로서 이 책 계약을 결정했습니다만, 실제로는 대중서로서 이 책을 바라봤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한 대답으로는 아쉬운 점이 있네요. (웃음)


장은수 : 책의 시기상 조금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이 책은 2012년도 이야기를 하는데, 지금은 2015년이잖아요? 그래서 이 책에는 사실 명확히 IS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이슬람권의 테러 집단 문제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은 줍니다만…. 이런 부분을 편집자 주로 붙여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어쩌다 보니 편집자에 대한 아쉬운 소리를 많이 했습니다만, (웃음) 특별히 감탄한 부분이 있습니다. 지도 편집이 매우 좋았습니다. 정말 꼼꼼하게 잘 만드셨습니다. 지도 편집은 독자 눈에는 단순한 작업인 것처럼 보여도, 사실 편집자에게 정말 까다롭고 어려운 작업이거든요. 사회평론이 그간 미술책을 만든 경험을 축적했기에 이 작업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한국 독자를 고려했다는 생각이 깊이 들었습니다.

사회평론 : 네, 그렇습니다. 편집 시 지도에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아무래도 지리학 책이다 보니 지도 그래픽이 중요한데, 워낙 지명이 낯설잖아요. 이런 부분을 편집자 주로 설명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지도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로바로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홍 : 이 책이 개정판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이야기할 내용이 있습니다. 출판사들이 개정판을 열심히 내기는 하는데, 독자에 대한 배려는 조금 부족합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려주지 않으니까요. 물론 이게 출판사 책임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개정된 책을 계약했으니까요. 그러나 한 책이 가진 생명력, 저자의 힘 관리 차원에서 보자면 마지막 개정판을 내는 출판사는 앞서 나온 책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하지 않나 싶어요.

<왜 지금 지리학인가>의 경우, 뭐가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대해 2007년 판과의 변별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 책의 시작과 변화에 대한 역사가 끊어집니다. 개정판은 책의 변화까지도 전달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 최근 들어 국내에도 개정판 서적이 활발히 나오고 있다. '리셀링'이라는 최근 출판계의 마케팅 트렌드가 반영됐다. ⓒ프레시안(최형락)
장은수 :
이제 책을 두 번 파는, 업데이트 시대입니다. 피어슨과 같은 세계적 학술 출판사의 전략 중 하나는 한 책을 3~5년마다 다시 파는 '리셀링'입니다. 한 책의 수명이 길지 않은 시대에 나온 전략이죠. 한 책을 만들면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팔고, 그 후 개정판에 새로운 내용을 덧붙이고 그 내용을 새로운 가치로 내세워 다시 판매합니다.

최근에 이를 깨닫기 전에는 저도 미국 출판사는 왜 자꾸만 디자인판, 리에디션판과 같은 걸 계속 낼까 궁금했어요. 한국은 저자와 출판사가 계약하면 출판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사실상 영구적으로 계약이 계속되는 관행이 아직 남아 있지만, 미국은 무조건 5년마다 재계약합니다. 자동연장 같은 건 아주 드물죠. 따라서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이전에 나온 책의 디자인판이나 내용을 보충한 개정판을 내는 거죠. 상대적으로 낮은 개발비로 가치를 덧붙여 그 책을 살리는 겁니다. 이제 한국도 리에디션 전략을 더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우리가 <왜 지금 지리학인가>의 ‘개정판’을 두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이유입니다.

이홍 : 우리가 이 책의 개정판 문제를 이야기한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책의 저자가 지난해 돌아가셨는데, 기존 내용만으로 사람들이 이 책을 꾸준히 찾을 것이냐는 거죠. 가치 지속성이 개정판 없이 이어질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사실상 마지막 개정판이라 할 이 책에서도 새롭게 터진 IS와 같은 이슈를 쫓아가지 못하는 데 말이죠. 어찌 됐든 새로운 책은 계속 나오니, 그냥 둔다면 스테디셀러가 되기는 힘들 겁니다. 국내 출판사가 리에디션판을 다시 내는 등의 전략적 사고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평론 : 우리 회사가 아주 실용적인 책을 내는 출판사는 아니었습니다만, 새로 인문 팀을 만들면서 미개척지에서 자리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학술서를 많이 출간했는데, 앞으로는 더욱 상업과 학술이 만나는 책을 내려고 합니다. 말씀하신 전략적 사고의 강화를 위해 인력 재배치 등을 꾸준히 단행하고 있습니다.
대중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홍 : 사회평론은 대중적 서적 출판을 강화하기로 했고, 이 책이 그 결과물로 나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핵심 독자를 새로운 무게 중심에 함께 가져갈 연동 전략이 있나요? 아니면 아예 다른 층위의 시장으로 이동하시려는 겁니까?

사회평론 : 저희가 예전에도 학술서를 내면서 예술서, 지리학 관련 책은 계속 내왔습니다. 이 책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겁니다. 예전에 내던 책이 조금 더 전문 층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제는 기존에 해 오던 일을 더 많은 대중이 알 수 있도록 변화하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장은수 : 사회평론의 고고미술사학 분야 시장 점유율이 높은데, 그 시장은 작나요?

사회평론 : 넓진 않죠. 이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분야를 버린다는 건 아니고, 기존에 내던 성격의 책을 보다 대중적으로 만들어 잠재된 독자층을 끌어내려고 합니다.
독자 확장을 꾀하고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이때 어떤 독자를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요즘 한국의 인문·역사분야 독자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50대 독자가 계속 늘어난다는 거죠. 아래쪽으로는 좀처럼 확장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교보문고 제시 자료를 보면, 정치·사회 부문에서는 20대 독자의 점유율이 25%인데, 인문·역사부문은 10%대에 불과합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10월 현재 역사·문화 분야에서 20대 독자 점유율은 18.9%였으며, 정치·사회 분야 점유율은 24.9%였다. 반면 50대는 각각 18.0%, 16.6%를 기록했다. 연령별로 역사·문화 분야, 정치·사회 분야를 합한 점유율을 100으로 가정하고 각각의 비중을 비교해보면, 20대의 경우 정치·사회 분야 독서 비중이 6대 4로 역사·문화 분야 비중에 앞섰다. 50대는 5대 5였다. 20대 독자의 독서 경향이 일반적 인식과 달리 정치·사회 분야에 보다 치우쳤음을 뜻한다.
50대 시장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거죠. 20대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이 분야 출판사가 20대와 어떻게 대화할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이 얘기는 특별히 사회평론에 드리는 게 아닙니다. 요즘 한국의 인문·역사분야 대중서를 보면 대부분이 50대를 대상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전체 연령별 분야 도서 점유율 중 20대와 50대/역사문화와 정치사회 분야만 따로 떼어 연령별 비중을 다시 살펴봤다. 상대적으로 50대의 인문학 서적 독서 비중이 높고, 20대는 정치사회 서적을 더 많이 읽음을 알 수 있다. ⓒ프레시안

이홍 : 많은 출판사 관계자들이 흔히 "대중적으로 쉬운 책을 내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대중이 누구죠? 우리가 쉽게 '대중성'이라는 말을 하지만, 대중은 규정짓기 곤란합니다. 보통 출판사가 독자를 늘리려 할 때 이전까지 친밀하게 관계를 맺던 독자와 단절이 일어나곤 합니다.

기존 독자가 다른 책을 읽도록 유도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교재를 읽는 사람도 만화책도 보고, 통속 소설도 봅니다. 그런데 출판사 관계자들은 만화책을 낸다고 하면 다른 독자부터 생각하죠. 새로운 루트를 뚫는 것만 정답은 아닙니다.

사회평론과 같은 출판사에서 인문 팀을 새로 만들고, 이런 책을 낸다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어떤 사고를 거쳐 이 책을 내게 되었느냐'는 겁니다. 별 이유 없이 새 책을 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장은수 : 이제 정보가 사방에 널린 시대거든요. 종이책은 정보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상품에서 경험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상품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정보만으로는 독자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책이 독자에게 정보를 넘어서는 어떤 체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소리죠.

대중화는 구호일 뿐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히 소셜미디어 시대에 출판사는 대중을 만날 수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소셜 관계만 있습니다. 출판사가 고려해야 할 건 존재하지 않는 대중이 아니라, 소셜 관계입니다.

사회평론은 고고미술사학 시장 독자의 얼굴은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건 다른 영역을 발굴하는 게 아니라, 그 영역 안에서 어떻게 확산할 것인가가 아닐까요. 여기에서 확산이란 더 젊어지는 겁니다. 현재 책의 독자는 30대, 40대가 많지만, 20대를 독자로 만드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사회평론 : 그 고민은 저희가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대는 지금 상황 상 책에 지갑을 열기가 쉽지 않습니다.
콘텐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죠. 이들을 어떻게 감동시킬 것인가를 더 고민해야죠. 오늘날 독자의 얼굴을 모른다는 건 모든 출판사가 가진 문제입니다. 사회평론은 사정이 낫죠. 지금도 아동물에서 밀리언셀러를 계속 내고 있으니까요. 다른 출판사보다 마케팅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확인한 독자의 얼굴을 가지고 시작하는 게 정석이죠. 자기 자리를 잘 살피는 게 중요합니다.

▲ <왜 지금 지리학인가>(하름 데 블레이 지음, 유나영 옮김, 사회평론 펴냄). ⓒ사회평론
이제 마무리 시간이 다가오네요. 오늘 우리가 <왜 지금 지리학인가>의 독창성을 얘기한 반면, 이 책의 홍보가 잘 안 되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현상 하나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을 채택했더군요. 도서관의 구매 대기 목록에도 이 책이 벌써 올라 있습니다. 다른 책에 비해 굉장히 빠른 속도입니다. 이 책이 내용만큼 알려지진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죠. 사서들이 알아서 이 책을 구매 목록에 넣지는 않았으리라고 보고, 아마도 신청자들이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을 조금 더 거시적으로 보려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증거예요. 교보문고 자료를 보면, 50대 비중이 20.7% 예요. 50대 독자들이 도서관을 움직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만큼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받고 있다는 소리죠. 바꿔 말하면 여전히 잠재적 독자가 많다는 겁니다. 도서관에서 가장 먼저 그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일본 출판사라면 이런 현상이 보일 때 기민하게 좇아갈 겁니다. 이 책에서는 아직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마음에 걸리네요. 앞으로 출판사에서 조금 더 이 책을 알리는 데 노력해서, 많은 분이 이 책의 새로운 시각을 이해할 기회를 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이홍 : 무엇보다 새로운 시각과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분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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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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