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은 정말 인민해방군을 장악하고 있나?

[김태호의 중국 군사 세계] 중국 당-군 관계의 핵심 본질

"권력(政權)은 총구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우리의 원칙은 당이 군을 지휘하는 것이지, 절대로 군이 당을 지휘하도록 하면 안 된다."

이는 1929년 푸젠 성 구톈(古田)에서 발표된 마오쩌둥의 유명한 지침으로, 이후 수없이 인용되었고 중국인이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다. 국내에서는 첫 번째 문장이 주로 인용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두 번째 문장이 더 중요하다.

2017년이면 창군 90년을 맞는 중국군은 국내외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렀고, 중국 정치, 사회, 경제, 외교 등 비(非)군사 분야에서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중국은 '당의 무장 혁명'을 통해 세워진 국가로 군의 위상이 타국에 비해 높다. 또 중국군의 정체성은 국가의 군(國軍)이 아니라 '당의 군'(黨軍)이다.

중국 당-군 관계의 핵심 본질

중국 당-군 관계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당과 군의 관계가 1대1 관계, 혹은 제도/조직 간의 관계가 아니라 최고 지도자(paramount leader)와 군 간의 관계라는 점이다. 1949년 이후 중국에는 5명의 최고 지도자가 있었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그리고 시진핑이다. 그중 마오와 덩은 혁명 지도자이고,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은 후(後) 혁명 지도자들이다.

마오(1893년생)는 창당에 참여했고, 군을 창시했으며, 국가 수립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덩(1904년생)을 마오와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방년 27세인 1931년 중국군 총정치부 부주임(주임 : 마오)에 임명된 군 원로이다. 이런 혁명 원로의 집권기에는 당에 대한 군의 영향력이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마오가 1950년 6.25 전쟁에 군 장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전을 결정한 사실, 그리고 덩이 1989년 천안문 사태 시 일부 장성의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무력 진압을 명령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문제는 후 혁명 지도자들이 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군사 업무를 해본 적도 없고, 군과의 유대도 거의 없다. 장쩌민(1926년생)과 후진타오의 경우가 이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군은 국방과 군사 문제 등의 고유 업무에 대해 보다 높은 자율성을 갖게 되었고, 당도 군의 요구에 보다 우호적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나와 외국의 주요 중국군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인물이 시진핑(1953년생)이다. 그는 장교로 3년간 군에 복무했을 뿐 아니라, 부친인 시중쉰(習仲勛)이 정치국 위원(당), 부총리(정부)를 역임하고 군에서 잔뼈가 굵은 군 원로였다. 또 중국이 개혁 개방을 시작하던 시기인 1980년에는 광둥 성 성장으로 경제 특구의 성공을 이끈 개혁파이기도 했다. 게다가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은 문직이긴 하지만 '소장급'으로 군 총정치부 문예공연단 단장을 지냈다.

시진핑은 전임자인 후진타오와는 달리 당 총서기직과 당 중앙군위 주석직을 동시에 물려받는 행운도 뒤따랐다. 그리고 개혁 개방의 경제적 성공과 더불어 지난 30여 년간 증폭되어온 수많은 경제 사회적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책무도 떠맡았다. 2012년 11월 18차 당대회에서 당 총서기와 중앙군위 주석에 선출된 이후 불과 3년 만에 사회 전반에 걸친 반부패 운동, 제도 개혁, 대외적 행보와 위상 제고 등을 전개한 이면에는 이와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인민해방군은 '한 사람'의 말만 듣는다

중국 당-군 관계의 또 다른 핵심은 중국에서 당과 군 관계의 변화는 군 내부가 아닌 당 내부의 변화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환언하면, 일부 연구자 혹은 언론의 주장 및 인식과 달리, 중국군은 정치에 '개입'한 것이 아니라 당 혹은 정치 지도자의 결정에 의해 '연루'되어 왔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다.

중국의 3대 권력 중심을 당, 국가(정부) 그리고 군이라고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당권과 군권이다. 그래서 당권과 군권은 단 1명의 최고 지도자가 갖고 있어야 하고, 이는 후 혁명 지도자 모두에 해당하는 불문율이다. 당권과 군권이 분리된 상황에서 톈안먼 사태와 같은 대규모 소요가 발생하고 지도부가 분열될 경우 중국의 당-국가 체제는 마비된다. 정치 지도부가 분열되었을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군의 충성은 단 1명에 집중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국가 및 중앙군위)의 당과 군의 최고 지도자로서의 재임 기간은 2022년까지이다. 향후 7년간 더욱 '심화'된 개혁과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군에 대한 당의 절대영도 원칙이다. 지난 9.3 열병식에서 '미녀 의장대'의 행진 옆에 자리한 대형 간판에는 소위 시진핑 주석의 12자 방침이 인민해방군의 정체를 조용히 암시하고 있었다.


"聽黨指揮、能打勝仗、作風優良"

"당의 지휘를 잘 따르고, 싸워서 이길 수 있으며, 업무 태도가 좋은 군을 건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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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현대중국연구소장 겸 한림대만연구소장을 맡고 있고, 국방부와 해군의 자문위원이다. SSCI 등재지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의 3事(人事, 外事, 軍事)이다. "Sino-ROK Relations at a Crossroads" "China's Anti-Access Strategy and Regional Contingencies" 등 150여 편의 논문이 있고,<동아시아 주요 해양 분쟁과 중국의 군사력>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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