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오바마 TPP', 한국만 호들갑?

[박영철-전희경의 국제 경제 읽기] TPP, 美 의회 비준은 2017년?

지난 10월 5일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TPP : Trans-Pacific Partnership) 협정이 7년여의 긴 진통 끝에 마침내 협상 타결되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12개국을 포함하는 세계 최대 무역 협정인 TPP 타결은 미국이 쓰는 세계 경제 질서와 무역 규정의 승리"라고 선언하며 대환영의 뜻을 표하고, 다음 날 아침 <워싱턴 포스트>는 "TPP 협정의 타결을 축하한다"는 사설을 실었다. 그러나 TPP 협정 타결이 발표된 그 날부터 미국 언론의 다수는 TPP 협정의 앞날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기 시작했다.

10월 8일 드디어 TPP의 장래에 관한 폭탄급 뉴스가 터졌다. 최근까지 TPP 협정에 애매한 태도를 보이던 민주당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TPP 협정에 반대한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미국 '정치 혁명'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유세 중인 또 다른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후보도 "나는 처음부터 TPP 저지 운동을 하고 있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역시 공개적으로TPP를 반대하고 있다. 지난 여름 TPP 협상에 절대로 필요한 대통령의 '무역 협상 촉진 권한(TPA : Trade Promotion Authority)'의 의회 통과를 성공시킨 공화당 의원도 '비밀주의의 베일' 속에 타결된 TPP 합의문에 대한 의혹이 커지면서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 TPP에 반대해온 미국 노동조합과 민주당 진보 진영, 그리고 환경 단체 등이 최근 더 강력한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의회가 대통령 선거가 있는 2016년에 이번에 합의된 TPP 협정을 비준할지 매우 불투명하다. 일부 언론은 심지어 2017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본다.

엄청난 미국의 자존심과 오바마의 개인 욕망이 걸려있는데 이 같은 정치 파란이 과연 발생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다음 사항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1) TPP 협정을 통해 미국이 추구하는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2) TPP 협정 타결에 대한 미 정가와 재계의 반응은?
3) TPP 협정의 미 의회 인준은 언제일까?
4) TPP 협정 타결은 한국에 무엇인가?

위와 같은 문제들을 파악하기 위하여 박영철 전 원광대학교 교수와 이메일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인터뷰는 10월 13일부터 10월 20일까지 이루어졌다.

박영철 전 교수는 벨기에 루뱅 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경제 분석가(Country Economist and Project Analyst)로 15년(1974~1988년)간 근무했다. 그 이후 원광대학교 교수(경제학부 국제경제학)를 역임했고, 2010년 은퇴 후 미국에 거주하며 개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전희경 : 며칠 전 한국 언론이 미국 오바마가 한국의 TPP 협정 추가 가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뉴스를 대대적으로 전하더군요. 한국의 독자를 위해 TPP 협정을 간략히 설명해주십시오.

박영철 : 잘 아는 미국 경제학 교수가 이런 농담을 하더군요. "TPP 협정에 당사자인 미국보다 한국이 더 관심이 많고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수출에 목매는 한국 경제의 취약점과 몇 년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때 발생한 '쇠고기 수입 파동'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TPP 협정이 발효하면 세계 최대 자유 무역 지대가 탄생합니다. 네 대륙의 열두 나라를 회원으로 묶는 TPP는 세계 총 GDP의 36%, 세계 총무역의 26%, 그리고 약 8억의 소비자를 가지게 됩니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TTIP : 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미국의 시각은 이 두 개의 FTA를 '동반 협정(Companion Agreement)'으로 취급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일본이 미국과 더불어 이 TPP 협정을 주도한 2대 경제국인데 반해, 한국과 중국은 TPP 협정의 회원국이 아닙니다.

전희경 : 미국이 이 거대한 TPP 협정을 통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요? 일부 학자들은 미국 시각에서 본 TPP 협정은 지금까지의 순수한 '전통적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박영철 : 아주 적절한 질문입니다. 미국이 선언한 TPP의 세 가지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두 개는 지경학적(Geo-Economic) 목적이고 하나는 지정학적(Geo-Politic) 목적입니다.

1) 단기적인 관점에서 광범위한 시장 개척과 투자를 통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수출을 확대하여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개선하며, 무역 수지의 경제 성장률에 대한 40여 년간의 마이너스 기여도를 플러스로 전환한다는 것입니다.

2) 장기적인 측면에서 세계 경제의 전통적인 관세 철폐 중심의 자유무역협정 패턴을 미국 경제 구조의 '비교 우위'를 극대화할 수 있는 '21세기형'의 포괄적이며, 미국의 가치와 무역 규범을 반영한 다국적 자유무역체제로 전환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목적은 지지부진한 세계무역기구(WTO)가 주도하는 글로벌 협상 패턴을 대체하려는 미국의 야망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3) 지정학적 목적은 동아시아에서 급성장하는 중국의 경제 및 군사 주도권을 미일 군사 동맹의 강화를 통해 강력히 견제한다는 것입니다. 회원국도 아닌 중국의 경제 및 군사 주도권이 동아시아 지역에 급속도로 번지는 상황을 견제하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목적은 오히려 동남아 지역의 군사적 갈등을 유발하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순수한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중국을 빼고 시작하는 TPP는 필연적으로 TPP 회원국의 잠재적 총이익을 감소시킬 것으로 봅니다.

전희경 : TPP 협상이 미국 경제 성장 전략의 중심으로 올라온 기분이 듭니다. 사실인가요?

박영철 : 그렇게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지난 20여 년 세계 경제를 휩쓰는 '세계화' 현상은 두 개의 큰 물결로 이루어집니다.

세계 경제의 '금융화(Financialization)'와 '무역 확충(Trade Widening)' 현상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사항은 최대 경제국인 미국의 소위 '양극화' 현상입니다. 즉 미국은 세계 금융 시장을 거의 완전히 지배하지만, 세계의 무역 확충 물결에서는 거의 소외 되고 있습니다.

전희경 : 2014년의 미국 해외 교역액이(10.7%)로 세계에서 두 번째입니다. 그런데도 미국 경제가 '무역 확충' 현상에서 소외된다는 분석이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박영철 : 오랜 기간 미국은 세계에서 강력한 '경제 자립국'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국내 소비가 GDP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반면에 GDP의 15% 안팎에 머무는 해외 교역(수출과 수입)은 1975년부터 만성 적자를 기록하며 GDP 성장률에 마이너스 기여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TPP 협정을 통해 미국의 해외 교역이 2025년까지 매해 0.2%포인트씩 미국 GDP 성장률에 기여한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겨우 0.2%포인트냐고요? 2025년까지 미국의 GDP 성장률은 연 2.0~2.5%로 추정됩니다. 그런 경우 0.2%포인트 기여도는 GDP 성장률의 거의 10%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치입니다. 40여 년 만성 무역 적자를 끝내는 셈입니다.

전희경 : 교수님은 경제 전망치를 별로 믿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번 경우에는 다른가요?

박영철 : 이 같은 추정치는 맞을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미국의 경제 성장 전략이 내수 위주에서 해외 부분으로 미세하지만 바뀌고 있다는 사실과 그 목적을 TPP 같은 미국의 가치와 규범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FTA(현재 협상 진행 중인 EU와의 TTIP도 포함하여)를 통해 성취한다는 점입니다. 많은 경제학자가 당연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매우 중대한 미국 경제 성장 전략의 변화로 봅니다.

전희경 : 미국이 추구하는 TPP의 목적이 다양하고 거창하다는 설명을 잘 들었습니다. 따라서 5년여의 긴 산고 끝에 이루어진 TPP 타결 소식이 미국 정가와 재계를 흔드는 사실도 쉽게 이해가 갑니다. 주로 어떤 반응이었지요?

박영철 : TPP 협상의 주요 당사자들의 반응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미국 재계의 반응: 다국적 기업은 소수의 예외를 빼면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2) 미국 정계의 반응 : 오바마 행정부는 적극적인 지지를 보이고, 공화당은 유보적인 자세를, 그리고 민주당과 노조, 진보 시민 단체는 강한 반대를 선언합니다.

전희경 : 미국 재계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타결 직전까지 쟁점이 됐던 부문이 주로 다국적 기업과 관련된 사항이었으니까요. 어떻게 정리가 되었는지요?

▲ [표 1] 미국 기업인과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는 TPP 이익 산업과 손해 산업. ⓒ전희경

박영철 : [표 1]은 <월스트리트저널>이 요약한 TPP 협정의 승자와 패자를 보여줍니다.

승자 대열에는 농업 분야, 제조업, 정보기술 산업 등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은 농업 분야의 카길(Cargill), 우주항공 사업의 보잉(Boeing), 인텔(Intel) 같은 정보기술 회사 등입니다. 반대로 패자의 대표적 기업은 제약사(Pharma), 담배 회사(Philip Morris), 자동차 (Ford) 회사입니다. 제약사를 패자로 보는 관점이 새롭습니다.

특히 유의할 점은 TPP 협정의 수혜가 장기적이며 산업 전반에 미친다는 점과 특히 미국 경제 구조의 '비교 우위'에 철저히 부합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협정의 '상생 원칙'에 따라 다른 회원국들의 수혜도 크지만, 미국의 경우처럼 경제 구조의 비교 우위를 강화하는 장기적 혜택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전희경 : 미국 정가의 TPP 협상 타결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이번 TPP 협상 타결을 끌어낸 오바마 대통령은 타결이 발표된 그 날 "미국의 가치와 무역 규범의 승리"라고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언론의 다수는 TPP 협정의 발효에 필요한 미 의회의 조속한 인준은 그리 녹록치 않을 것으로 봅니다. 교수님 전망은 어떤가요?

박영철 : TPP 협정은 국제 조약과는 달리 의회의 과반 찬성으로 비준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미 의회가 TPP 협정을 빠른 시일 안에 비준할 것 같지 않습니다.

우선 전통적으로 FTA에 찬성하는 친재벌 공화당에 '이상 기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말 미 상원에서 TPP 협상 타결에 없어서는 안 되는 대통령의 무역 촉진 권한(TPA)의 통과를 가까스로 이루어낸 일등 공신인 오린 해치 상원 의원이 "협의문의 구체적인 정보가 없는 상황이지만, 최근 들리는 합의 사항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합의문을 꼼꼼히 읽고 결정하겠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선언했습니다.

미국 상원 의장인 도널드 맥도넬의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지난 6월 대통령의 무역 촉진 권한 통과에 앞장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무역촉진권한은 오바마 대통령뿐만 아니라 차기 대통령에게도 해당한다." TPP 비준이 반드시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에 이루어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읽히는 부문입니다.

더구나 며칠 전 맥도넬은 "TPP 비준 문제는 내년 11월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임기 말 의회에서나 논의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여론 조사에서 놀랍게도 선두를 지속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도 "이 협상은 참사다"라며 극구 반대하고 있습니다.

전희경 : 지난 7월 대통령 무역 촉진 권한의 의회 통과를 막는데 실패한 민주당은 이번에는 TPP 협정의 의회 비준을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박영철 : 민주당 빌 클린턴이 발효한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민주당 진보 진영과 노조 그리고 소비자와 환경 단체 등 시민 사회는 처음부터 TPP를 '다국적 기업과 억만장자'만을 위한 협정으로 규정하고 날로 악화하는 미국 불평등의 주범이라고 주장하며 극구 반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TPP 반대 진영이 강력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TPP 반대 선언'을 얻어 냈습니다. 힐러리의 이 같은 지원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실패한 FTA의 상징인 NAFTA 협정을 체결한 대통령이 바로 남편 빌 클린턴입니다. 그리고 오바마 1기 재임 중 국무장관을 지낼 당시 소위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외교 전략의 핵심으로 TPP 협정을 추진한 장본입니다. "TPP는 자유무역협정의 황금 표준(Gold Standard)"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경제학에서 'Gold Standard'란 용어는 특별한 뉘앙스를 가집니다. 환율 제도의 일종인 '금본위 제도'는 국제 금융 시장 안정성의 상징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 의견을 말씀 드리면 TPP 비준은 내년보다는 내후년에나 미 의회를 통과할 것 같습니다.

전희경 : 오늘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한국이 TPP 협정에 가입하려고 하는 듯 한데요. 한국 정부에 조언을 하신다면요?

박영철 : 제 대답은 미국 시각에서도 '경사진' 운동장일 수 있습니다. 한국의 TPP 가입을 미국이 권유할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TPP 가입은 다양한 측면에서 무조건 미국에 이익입니다. 일본도 한국의 TPP 가입을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단 한 가지 고려해야 할 변수는 중국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둘 필요가 전혀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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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경

조지아서던 대학교 겸임교수로 보건 정책, 역학을 연구 중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경제 분석 및 산업 안전 보건, 노동 환경 정책 연구원으로 일했다. 보스톤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교에서 노동 환경 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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