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乙未)적거리다 병신(丙申) 되면 못 가리!"

[김성훈 칼럼] 民惟邦本 本固邦寧

대통합 "국민 행복" 시대를 표방하며 희망차게 출범했던 우리나라 최초 여성 대통령 박근혜 정부가 지난 8월 25일로 임기 5년의 반환점을 돌았다.

"갑오세(甲午歲) 가보세,
을미적(乙未賊) 을미적 거리다가는
병신(丙申)이 되면 못 가리."

이는 1894년 갑오 동학 농민 혁명 때 백성들 사이에 불리던 세상을 경고하는 민요이다. 민 씨 정권의 외교 및 내치의 무능과 부패를 탄핵하며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나라가 절단되어 망할지 모른다는 경고이었다. 그러나 통탄스럽게도 역사 사실(史實)은 말이 씨가 되어 그대로 이루어졌다.

을미년 다음 병신년엔? 그 다음엔?

세월은 흘러 다시 2014년 갑오년 벽두에는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의 천정이 무너져 내려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 중이던 100여 명의 대학생 사상자를 낸데 이어, 4월 16일엔 304명의 꽃망울을 채 피워보지 못한 꽃다운 청춘들이 차디찬 바다 속에 수장되었다. 그리고 2015년 을미년엔 메르스 사태로 전 국민을 전전긍긍 옭아매다가 9월 1일 현재 지난 두 달 동안 확진 환자 186명, 사망자 36명을 기록하며 종식되는 듯하다.

이런 끔찍한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들은 "일반 백성에게 국가(정부)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되었다. "국민 대통합"은 무엇이며 희망찬 "국민 행복 시대"는 어떻게 오는가도 묻는다. 세 사태의 공통점은 초거대 자본과 국가 정부가 유착 또는 결탁한 무위무능 부패 행정의 결과라는 점이었다. 이른바 기업 자본이 국가와 국민을 지배하는 코포라토크라시(Coporatocracy)의 결과이다. 백성이 주인인 데모크라시(Democracy)의 몰락 결과 민생 민권 민주가 실종된 것이다.

2016년 병신년엔 또 무슨 사건 사태가 일어날지 걱정되기에 이르렀다. 그 다음엔? 청년 일자리 절벽 시대, 3포 5포 7포 다포 세대, 이러한 우려는 대통령의 담화에도 인용될 정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 가운데 출생률이 가장 낮고 자살률, 특히 노인 자살률이 제일 높은 나라의 코포라토크라시 국가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지 걱정만 앞선다.

천인공노할 암호명 "여우 사냥" 데자뷔(旣視感)

이런 와중에 지난 31일 일본의 극우 보수 <산케이신문>은 정치전문위원 노구치 히로유키(野口裕之)로 하여금 9월 2일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가 사실을 비난하며 "미중(美中) 양다리 (외교),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이 씨 조선에는 박 대통령과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명성황후를 거론하였다. 그것도 조선 시대를 "이 씨 조선", 명성황후를 "민비"라고 비하했다.

1895년 을미년에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만에 "민비가 암살되었다"고 그 글은 적고 있다. 암살 범인들이 바로 자기 자신의 선조들 일본인이었음은 거론도 하지 않았다. 대명천지에 한 나라의 엄연한 대통령의 외교 행위를 그 부친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사건까지 거론하며 비하 비방 멸시하는 비열한 글을 게재한 것이다. 참으로 저질스럽고 뻔뻔하고 비열한 짓이다. <산케이신문>은 아베 정권의 첨병 노릇을 자임하는 듯 언론의 공기(公器)기능을 포기한 철면피이다.

신봉승 교수(작가)가 극본을 집필한 <찬란한 여명>에 의하면 19세기 말~20세기 초 제국주의 일본을 다스리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명성황후의 당당한 외교 행위를 구한말 조선 침탈의 걸림돌로 판단한다. 그리하여 초기에는 초대 일본공사 하나부사 요시타다 경에게 "옛말에 암탉이 울면 집안과 나라가 망한다"라는 말을 거론하며 조선 정부로 하여금 암탉이 울게 만들자고 제안한다.

청일 전쟁 후에도 의연하게 다시 친러시아로 전향한 조선 정부의 외교 전략에 분개하여 당시 일본 공사 이노우에 가오루에게 암호명 "여우 사냥"을 발한다. 그것은 그 후임 육군중장 출신인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공사로 하여금 50여 명의 사무라이 낭인들을 동원, 범궐하고 황후를 시해하고 시신을 욕보인 후 불태운 다음 나머지 찌꺼기는 연못에 버리는 등 목불인견 천인공노할 야만 행위를 일본 공권력이 자행한 것이다. 그 암호명이 "여우 사냥"이었다. 지금 <산케이신문>은 그 여우 사냥의 후예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친미·반미를 떠나 지미(知美)해야

어느 나라나 국제 외교의 기본은 자국의 이익, 즉 'National Interest'이다. 정(情)과 은원(恩怨)에 기반을 둔 보통 인간 사이의 친교 관계와는 달리 국가 외교란 어디까지나 "나라 이익"이 먼저이다. 개인 이익과 자기 정파의 이익을 떠나 국가 이익이 최우선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라 사이의 외교는 냉엄하다. 과거의 관계에 연연한 무조건적인 친미, 반미 또는 친일, 반일이란 있을 수 없다. 한중 관계, 남북한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와 미래의 국가 이익이 첫째이다. 현재와 미래의 국민 대다수의 이익이 바로 국익(國益)이다.

따지고 보면,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 배경이라든지 광복(해방) 후 남북한 분단 사태, 남북 간 피비린내 나는 내전,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와 동아시아 제국을 위협하고 있는 아베 정권의 호전적인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과 무장화 강화는 다분히 미국에 그 책임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국력이 약하고 정치 외교력이 무위 무능한데서 그 원인의 일단을 찾을 수 있으나 그것은 기본적인 반성 사안임이 분명하다. 그중 1905년 7월 일본 가쓰라 다로 총리와 미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사이의 밀약의 결과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점유를 인정하는 대신, 미국은 일본의 한국 병탐을 인정함으로써 을사늑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이 치열한 막바지를 달릴 무렵 소련의 대일 전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미끼로 미국은 1945년 2월 소련의 얄타에서 미-영-소 정상 회담을 열어 전후 한반도를 38선 이남, 이북을 미국과 소련이 분할 통치하기로 합의하였다. 그 결과 일본의 패망 즉 광복과 동시에 비극적으로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할되었다.

그뿐만 아니다. 미국의 주도로 이루어진 1952년 샌프란시스코 미일 강화조약에서 미국의 국방이익을 고려 독도를 한반도의 영토에서 제외한 결과, 오늘날 한-일 간에 격렬한 독도 쟁탈 외교전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의 대중(對中) 대치의 전략상 일본의 재무장화가 절실한 미국의 이익에 따라 아베-케리 두 국가 지도자를 내세워 일본 평화헌법 제9조 개정과 재무장 해외 진출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경제적 이익을 고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참가 일정에 미국이 싫은 기색을 감추지 않는 눈치를 알아 챈 아베 극우 정권의 나팔수 <산케이신문>이 파렴무치한 칼럼을 게재하게 되었다고 해석된다.

民惟邦本 本固邦寧 食爲民天

우리나라 국민성이 워낙 평화를 사랑하고 은혜를 잊지 못하는 착한 민족이다 보니 한국 전쟁 때의 은고를 지나치게 고착시켜 친미-반미의 이분법적(二分法的) 대립이 격렬하였다. 우루과이라운드, 세계무역기구(WTO),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한국의 농업은 몰락 직전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국가 간의 외교는 어디까지나 그 시대, 그 사회의 국민 대다수의 이익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국민 여론을 누가 좌지우지하느냐이다. 민주주의(Democracy)는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므로 주인이 되는 국민들이 국론을 결정하는 체제이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면서 거기에 세계화(Globalization)가 진행되면서 대기업자본(Corporation=Capital)이 정치, 언론, 종교, 학문 권력에 침투하면서 종종 대자본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으로 둔갑하는 대기업 자본주의(Corporatocracy)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기득권 세력이 돈(자본)의 위력으로 국가 외교와 정치, 사회, 언론, 문화, 종교를 풍미할 때 민생(民生), 민권(民權), 민주(民主)가 쇠퇴해진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백성이 오직 나라의 근본이며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하다(民惟邦本 本固邦寧)"라 했는데 오늘날 이명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지난 7년 반 동안 이 대목에 이르러 수긍하기 어려운 일들이 우리 사회 조직 곳곳에 일어나고 있다.

특히 세종대왕께서 일찍이 실천해 보이신 食爲民天(밥이 백성들의 하늘이다) 사상과 정치는 이제 우리나라에 거의 사라지고 있다. 절대량 면에서 식량 자급률이 20% 초반 이하에 머무른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한 가운데 그 안전성(安全性, safety) 면에서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병들기 위해서" 먹는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마지막 남은 주곡 채소 과실 식량 가공식품 등이 농약, 화학 농법으로 범벅이 되고 유전자조작(GMO) 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백성이 나라의 기본이고 밥(먹거리)이 백성의 하늘"이라 했는데 아아 불쌍하다. 오고 또 올 이 땅의 우리 후손들이여!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이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5년 9월 4일자 농훈칼럼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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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농업 및 환경문제 전문가로 김대중 정부에서 농림부 장관을 역임하였으며 <프레시안> 고문을 맡고 있다. 대학과 시민단체, 관직을 두루 거치며 농업과 농촌 살리기에 앞장 서 온 원로 지식인이다. 프레시안에서 <김성훈 칼럼>을 통해 환경과 농업, 협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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