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서울-판문점-평양만 바빴을까. 미국 발 뉴스는 워싱턴도 덩달아 몹시 바빴음을 알려준다. 물론 워싱턴이 동맹국 남한을 지원하기 위해서만 바빴던 건 아닌 것 같다.
"확실히 그들(북한)은 하와이나 태평양의 미국 시설물에 도달할 수 있는 미사일(a missile)을 갖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걱정하는 바다."
마크 웰시 미국 공군참모총장이 미국 공군 주간지 <에어 포스 타임즈 Air Force Times>에 말한 내용이다. 기사에서 웰시 총장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 능력을 걱정하는데, 물론 남한이 아닌 미국 본토에 대한 타격 능력이다.
인터넷 기사가 올라간 시간은 워싱턴 시각으로 8월 24일(월요일) 저녁 9시 16분, 서울 시각 8월 25일(화요일) 아침 10시16분이었다. 9시간 전인 한국 시간 25일(화요일) 새벽 0시 55분, 워싱턴 시간 8월 24일(월요일) 오전 11시 55분에 판문점 합의가 이뤄졌다.
물론 미국 군부의 걱정은 남북 합의로 상황이 종료된 이후 아홉 시간 동안 이뤄진 것이 아니라, 지난주부터 이어진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 상태, 특히 예상을 뛰어넘는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을 인공위성과 첩보망을 통해 확인하면서 생긴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매체 <CNN>의 펜타곤 (미국 국방부) 담당기자 바바라 스타의 기사도 흥미롭다. 기사는 북한의 군사력 증강과 부분적인 병력 동원이 펜타곤을 깜짝 놀라게 했고, 그 결과 미국의 고위 지휘관들은 북한의 전쟁 개시 징후가 있을 경우 남한 방어를 위한 미국의 전쟁 계획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전했다.
기존 전쟁 계획을 재검토한다는 말은 새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갖고 있는 계획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새 것을 만들려는 욕구가 생긴다. 8월 25일 새벽 1시에 이뤄진 판문점 합의 전에 미국 국방부가 이미 한반도 전쟁 계획 재검토에 나선 것은 전시 작전 지휘권을 청와대가 아닌 백악관이 보유하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판문점 합의 직후인 홍콩 시간 8월 25일 02시 46분(한국 시간 03시 46분)에 보강된 바바라 스타의 <CNN> 기사에 따르면, 미국 당국자들은 북한의 군사력 증강을 심각하게 보고 있으며 김정은이 남한의 선전용(propaganda) 확성기 중단의 최종 시한을 정한 이후 북한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졌다고 밝혔다.
북한의 예상치 못한 방식의 군사력 증강에 놀란 미국 군부는 자신들끼리 긴급 논의를 연이어 진행했으며, 남한 군부와도 전쟁 계획을 상의했다. 또한 남한 정부를 향해 위기를 고조시키지 말고 상황을 진정시키라고 요구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 미사일의 타격 능력과 더불어 미국을 특히 놀라게 한 것은 북한 해군 함정과 잠수함의 움직임이었다. 미국 국방부의 한 관리는 "전례가 없다는 단어를 쓰고 싶진 않지만, 이것은 그들(북한) 해군에게서 지금껏 본적이 없는 것이었다"고 <CNN>에 말했다.
미국 군부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B-52 폭격기를 출격시키려던 계획을 취소했는데, 그 이유는 미국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킨다는 신호를 평양에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시적"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8.25 합의 이전에 한미연합훈련은 이미 중단됐던 것이다.
22일부터 25일까지 43시간 동안 진행된 남북 회담의 주인공이 김관진-홍용표 팀을 지휘한 박근혜 대통령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외신이 들려주는 펜타곤의 급박한 움직임은 또 다른 주인공, 즉 오바마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미국 백악관의 국가안전보장회의가 8.25 판문점 합의의 실질적 배후였음을 암시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남한 정부, 그리고 서청원 의원 등 새누리당의 친박 핵심들이 북한이 표명한 유감을 사과로 받아들인다면서 재발방지 문구가 없는 데도 '전례 없이' 유연하게 대처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음 달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또한 유엔 창립 70주년이자 2차 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9월 28일 오마바 미국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유엔총회에서 연설한다. 이들이 논의할 '신형대국 관계'에 한반도 정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한 장기판에서 8.25 판문점 합의를 전후한 한반도 정세는 어떤 의미를 차지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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