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 사냥, 남의 일이 아니다

[김윤태 칼럼] 영국의 '차브' 현상, 무엇이 문제인가?

2011년 출간된 오언 존스의 <차브(Chav)>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최고의 논픽션(nonfiction·실화), 영국 <가디언>이 올해의 책으로 추천한 책이다. 이 책은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고, 지난해 이세영 <한겨레> 기자 등의 번역을 통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어떻게 '차브'라고 불리는 하층 계급이 혐오의 대상이 되었는지 원인과 결과를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또 하층 계급 혐오 현상이 어떻게 복지 삭감에 정치적으로 이용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차브'는 누구인가?

차브는 원래 집시들의 말로 '어린 아이'라는 뜻이다. 영국에서 차브는 가난한 하층민인 동시에, 술에 취하고 마약에 중독되고 조잡하고 거친 언행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또한 소비 성향이 강하고 사치품 진품 또는 모조품을 입고 다니는데, '버버리(Burberry)'가 인기 브랜드이다.

지난 10년간 차브 혐오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차브 죽이기(Kill Chav)를 검색하면 수십만 개의 자료가 나오고, 심지어 '차브 헌터(Chav Hunter)'라는 인터넷 게임도 있다. 이러한 문화 현상은 하층민이 바보 같다는 조롱뿐 아니라 아무 일도 안 하고 미혼모나 실업자로 복지 수당만 의존하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편견을 조장한다. 이러한 비난을 통해 복지 삭감을 지지하는 정치적 여론을 만들어낸다.

존스의 책에서도 '리틀 브리튼(Little Britain)'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차브를 조롱하는 문화 현상을 소개한다. 리틀 브리튼의 주인공 비키 폴라드는 "노동 계급의 4차원 10대 싱글맘"인데, 성적으로 문란하고 올바른 문장을 말하지 못하고 태도가 불량하다. 그런데 시트콤에 출현하는 두 주인공과 작가는 고액의 사립 학교를 졸업한 중간 계급 출신이다.

차브는 사회 문제의 희생자인가 원인 제공자인가?

2010년 캐머런 총리의 보수당은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대대적인 긴축 정책을 추진했다. 복지 수당 축소, 대학생 등록금 인상, 아동 수당 감소 등 대대적 복지 삭감을 통해 하층민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 캐머런 총리는 복지수당에 의존하는 하층민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차브를 비난하는 현상은 빈곤층이 실업의 증가 등 사회 문제의 희생자가 아니라 사회 문제의 행위자라고 왜곡하는 것이다. 이는 정당하지 못한 계급 혐오이며, 하층민을 지원하는 복지를 삭감하려는 정치적 공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복지에 의존하는 하층민이 증가하는 현상에는 1980년대 대처 총리의 보수당 정부가 추진한 정책에 책임이 있다. 국영 기업 민영화, 부유층 조세 감면, 금융 탈규제, 제조업 포기 정책으로 인해 숙련 노동자가 몰락했다. 반면에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만 증가했다. 노동 유연화로 비정규직, 계약직, 파견 노동자가 증가하고 소득 격차는 더욱 커졌다. 다른 한편, 노동 조직률이 낮아지고 단체 교섭력이 약화하면서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정체되었다.

존스의 <차브>에서 잘 설명됐듯이, 1980년대 탈산업화와 노동 유연화는 대처 정부의 정치적 결정의 결과이다. 탈산업화가 불가피한 기술 변화의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 지금도 독일과 스웨덴은 제조업의 고부가 가치 산업의 경쟁력은 여전히 잘 유지하고 있다. 높은 복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숙련 노동자의 생산성이 높아서 경제적 경쟁력과 사회 형평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차브 현상은 사회 불평등의 결과

차브 현상은 극심한 빈부 격차의 결과이다. 불평등이 커질수록 부자의 오만과 가난한 자의 열등감이 커진다. 이런 문제는 전 세계적 문제이다. 지난 30년간 유럽과 미국 각국 정부에서 부유층의 조세 감면, 공기업 민영화, 무역 자유화로 노동 시장 유연화가 추진되었다. 이러한 정책을 정부 역할을 줄이고 자유시장에 맡기자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이끌었다. 그 결과는 빈부 격차의 심화이다. 미국, 영국, 한국에서 상위 10퍼센트의 부자가 40퍼센트에 가까운 부를 소유한다.


많은 정부가 목소리를 높이는 중산층(middle class)을 늘리자는 공약은 하층민의 사회 이동의 기회를 증가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수많은 하층민에게는 중간 계급으로 이동할 기회가 차단되어 있다. 오히려 부모 세대보다 더 하락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영국 정부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자 40퍼센트가 아버지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아졌다고 응답한 반면,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고 말한 사람은 고작 29퍼센트에 불과하다.

중간 계급이 선호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도 문제다. 순수한 능력주의는 부모의 경제적 배경에 따라 다른 인생기회를 부여받는 현실을 외면한다. 저소득층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출발선부터 불평등하게 시작한다. 결국 빈곤은 대물림되고 불평등은 더욱 심화한다. 이렇게 증가하는 불평등은 사회적 결속을 약화할 뿐 아니라 개인의 자존감과 삶의 만족감을 떨어뜨린다. 불평등이 심한 나라일수록 범죄, 살인, 강도가 많은 반면, 우울증, 정신 질환, 자살이 많다. 반면에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처럼 평등한 사회에서 사회적 갈등이 적고 행복감이 높다.

차브 현상을 막는 정치의 중요성

한국도 영국과 유사한 구조 조정의 경험이 있다. 한국도 1998년 외환 위기 이후 정부의 경제 장관은 마거릿 대처를 공공연하게 칭찬했다. 대처주의와 같은 민영화, 구조조정, 무역 자유화, 노동 유연화가 한국에서도 그대로 수입되었다. 결과는 비정규직이 증가와 노동 시장의 소득 불평등이다. 빈부 격차가 심화하면서 가난한 사람에 대한 멸시도 심각해지고 있다. 백화점에서 직원에게 막말하는 진상 고객, 직장에서 폭언을 퍼붓는 상사, 여객기에서 승무원에게 고함을 치는 재벌 2세가 대표적 사례이다. 차브 현상은 한국에서도 매일 일어나고 있다.

빈곤층을 멸시하는 차브 현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하층민을 위한 교육, 의료, 주거 등 사회 정책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부자에 대한 증세와 복지 확대가 필요하다. 특히 공교육이 중요하다.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를 지원하는 교육과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빈곤이 개인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빈곤과 불평등은 사회의 문제이다. 존스의 <차브>는 영국 사회를 다루고 있지만, 한국의 정치인과 독자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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