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권역별 비례제 도입하고 의원 정수 논의하자"

8월 내 당론 확정 요구…"정수 증대할 때 비용은 동결해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위원장 김상곤)는 26일 권역별 비례 대표제 도입과 의원 정수 확대 논의 촉구를 골자로 하는 5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고착화하는 낡은 소선거구 1위 대표제(단순 다수 대표제)를 타파하고 민의 왜곡, 즉 사표가 덜 발생하는 선거 제도를 새정치민주연합이 앞장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위는 이 두 가지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론'을 8월 중에 만들어야 한다며 논의 '시한'도 못 박았다.

권역별 비례 대표제는 호남의 새정치민주연합 독과점 체제의 균열을 내는 만큼 당내 비노계의 반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또 비례 대표제의 확대는 새정치민주연합보다는 군소 정당의 부상을 돕는 터라, '남 좋은 일 시킨다'는 볼멘소리도 당 내부로부터 나올 가능성이 작지 않다.

무엇보다 '의원 정수 증대'는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비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의원 1인당 국민 수가 많은 편이지만, '반(反) 정치' 정서가 강한 까닭에 의원 정수 확대 주장은 번번이 '이권 키우기'란 비난에 부딪혀 왔다.

김상곤 "현행 선거구제, 지역주의 극복에 한계…비례 강화해야"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 등 혁신위원들은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이런 내용의 5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들은 우선 "최근 유권자들은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정당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사이의 비례성이 현저히 낮은 현 선거 제도 아래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현행 소선거구 중심 선거 제도에서는 한 지역 유권자의 30% 지지만으로도 1등만 차지한다면, 그 아래 28%의 지지를 얻은 이를 배제하고 지역의 대표성과 입법권 그리고 기득권을 독식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새누리당에는 물론 새정치민주연합에도 굉장히 유리한 선거 제도다.

김 혁신위원장 등은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전국 43.3% 득표로 전체 의석수의 51.6%에 해당하는 127석을 얻었고 민주통합당은 37.9%의 득표로 43.1%에 해당하는 106석을 얻었다"면서 "특히 민주통합당은 호남 지역에서 53.1% 득표로 25석, 전체 호남 의석수의 83.3%를 얻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당시 "호남에서 통합진보당은 16.2%를 득표했지만 호남 의석수의 10%에 불과한 3석을 얻었고, 특히 5.4%를 득표한 새누리당은 한 석도 얻지 못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런 현상은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에서도 물론 일어나고 있다. 새누리당은 영남 지역에서 54.7%의 득표를 얻고도 무려 94%의 영남 의석수를 차지했다. 민주통합당은 당시 20.1%의 득표율을 거두었으나 겨우 4.5%의 의석을 얻었다.

이는 엄연한 '민의 왜곡'이라는 게 혁신위원회의 지적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혁신위는 '비례성 강화'를 들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월 같은 이유로 '권역별 소선거구-비례 대표 연동제'를 제시한 것과 발을 맞춘 셈이다.

선관위는 당시 지역구 의석수와 비례 대표 의석수의 비율을 2대 1로 재조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러한 안을 2012년 총선에 적용하면 "유력 정당이 여럿 부상해 어느 당도 국회의 단독 과반을 차지하기 어려웠다"는 게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의 분석 결과다.

혁신위는 "새정치민주연합은 선관위 개혁안을 기본 당론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득표-의석 간 비례성이 보장되면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대의 민주제로의 전환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짚었다.

"권역별 비례 도입과 의원 정수 문제, 8월 내 당론으로 확정해야"

이처럼 비례 대표제 의석수를 늘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현재 전체 의석수 300개를 유지하면서 지역구 대 비례 대표의 비율을 2대 1로 조정하는 방법. 이 경우 지역구 의석 수는 46개가 줄어 200석이 되고 비례 대표는 100석이 된다.

다른 한 방법은 지역구 의석 수 246개를 유지하며 비례 대표제를 123석으로 늘리는 방법. 이렇게 하면 국회의원 정수는 369석으로 현재보다 69석이 늘어난다. 이는 비례성 강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현재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을 낮추는 효과와 동시에, 실제로 부족하단 지적이 계속돼 왔던 의석 수를 늘리는 효과가 있다.

혁신위는 이날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한쪽에 명백하게 힘을 싣지는 않았다.

혁신위는 그저 새정치민주연합에 "의원 정수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촉구한다"면서 "권역별 비례 대표제 도입과 의원 정수 증대 문제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활동 시한을 고려해 8월 내의 당론으로 확정해야 한다"고만 밝혔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의 2015년 기준 선거 제도와 의원 정수를 혁신안에 별도로 첨부함으로써 의원 정수 증대가 더 바람직하다는 뜻을 시사했고, 의원 정수를 증대할 시 "국회 총예산은 동결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혁신위가 이날 첨부한 'OECD 34개국' 자료를 보면, 한국의 의원 1인당 인구수는 16만7400명으로 상위 31위이다. 우리와 비슷한 인구 규모를 갖춘 영국(인구 6300만 명)은 의원 1인당 9만6264명을 대표하고 있고 이탈리아(인구 6066만만 명)는 의원 1인이 9만6298명을 대표한다.

한편, 한국은 비례 대표 비율은 18%에 불과했다. 권역별 비례 대표 제도의 예시 국으로 늘 거론되는 독일의 경우, 비례 대표 비율이 50%(299석)에 이른다.

기득권 포기하며 욕도 먹는 개혁안…새정치민주연합, 어떻게 풀까

권역별 비례 대표제 도입을 통한 비례 강화와 의원 정수 증대는,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늘 '계륵'처럼 다루어져 왔다.

이런 선거 제도 혁신안이 현재의 왜곡된 제도를 개선할 방안이란 점에 당내 일각에선 공감대가 형성돼 있음에도, 당내 기득권 세력의 반발과 국민적인 반(反) 정치 정서를 풀어나갈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았던 터다.

이를 잘 보여줬던 사건이 지난 4월 문재인 대표의 '국회의원 수 400명으로 확대해야' 발언이다. 문 대표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2015 다함께 정책 엑스포'를 둘러보던 중 (사)한국청년유권자연뱅 부스를 들렀다가 비례 강화를 위해선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후 파장이 커지자 새정치민주연합은 부랴부랴 문 대표의 발언은 '가볍게 한 농담'이라며 수습하려 했고, 이는 더 큰 논란으로 번졌다.

참여연대나 심상정 의원 등 정의당이 다당제 확립을 위해 오래전부터 '비례 확대'와 '의석 증대'를 주장해 왔음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이 선뜻 손을 내밀지 않았던 데에서도 그 같은 소극적 자세가 잘 드러난다.

이런 가운데, 혁신위가 두 사안을 '당론'으로 8월 중에 정할 것으로 제시한 만큼 향후 당내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24일 문 대표는 얼마 전 새로 선출된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만나 "지난 대선 때 제가 심 대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결선 투표제 도입을 합의했는데 그 합의는 지금도 유효하다"면서 "마침 중앙선관위가 개혁안을 낸 만큼 이번 기회에 실현되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심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선거법 개정 관련 당론을 정해주시고 야권 단일안을 만들면 좋겠다"면서 "서둘러 야권 단일안을 만들어 정치 개혁에 소극적인 여당에 맞서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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