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포·4포 아닌, 정의 세대

[민들레] '아이들'은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는가

세월호 참사, 1년 후

2014년 4월 16일 이후, 일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슬픔과 고통은 아직 치유되지 못했고, 오히려 상처가 더 곪아가고 있다. 많은 학자가 이것이 한국전쟁과 5.18 광주민주화운동만큼 큰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했지만,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을 실감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는 그 자체로 특별한 사건이지만, 그와 유사한 일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일본 핵발전소 붕괴가 그중 하나다. 일본 후쿠시마현에 진도 9.0의 지진으로 쓰나미가 일어났고, 그로 인해 '제트기가 부딪혀도 문제없다'던 원자력 발전소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렸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가장 안전한, 가장 위대한 기술은 지금 과연 어떤 쓸모가 있는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방사능에 노출되어야만 하는 일본 아이들은 이제 바깥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도 없다. 그들은 어른들을 향해 자신이 몇 살까지 살 수 있는지, 건강하게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처절하게 묻는다. 하지만 한 아이의 말처럼 "어른들은 우리 질문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 어른들의 관심사는 무엇이 붕괴한 핵발전소의 결정적 결함이었는지, 어떻게 하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에만 있을 뿐, 앞으로 그 땅에서 살아갈 아이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고민했다면, 비참한 역사의 순간에 때를 노리다 또다시 핵발전소를 가동시키는 비겁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은 심지어 핵발전 기술을 전 세계에 수출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 아니라면, 그 행보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는 오늘날 우리 세계에 팽배한 무감각, 무관심, 이기심, 그리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윤리적 가치관의 결여'라는 치명적인 위험의 단면이 아닐까.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잘사는 나라'에 가야만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목숨은 바다에 버려져도 그만이고, 정해진 날짜에 납품하기 위해 재봉틀을 돌려야 하는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은 무너져 내린 건물에 깔려도 그만이다. 이번 네팔 지진에서 목격하듯이 가난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는 대재앙이 된다. 이러한 세계에서 '아이들'은 과연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는가? 기성의 가치체계는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을 구해내지도, 지켜주지도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병든 현실의 뼈아픈 단면이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희망할 수 있는가?

ⓒ프레시안(최형락)

새로운 세대의 탄생


내가 활동하는 부산 '인디고 서원'은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으로, 지난 11년간 인문적 가치가 뿌리내리기 척박한 토양에서 청소년들이 정의로운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여러 시도들을 해왔다. 책 읽기를 통해 도덕적 품성, 비판적 지성, 예술적 감수성을 청소년들이 함께 익히고 이를 실천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인디고 서원의 대의이다. 서원에서는 매주 인문학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청소년들이 인문적 가치를 어떻게 쓸모 있게 삶으로 실천할 것인지 기획하고 있다.

쓸모 있는 인문주의를 실천하고자 노력하던 중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재앙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 지구적인 폭력과 비윤리적인 가치체계에 맞서, 윤리적이고 인간적인 가치에 힘을 부여하는 도덕적 다수가 탄생하는 것만이 이 비극을 끊어버릴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대로라면 우리는 희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무너져내리는 윤리적 기준 속에서 행복한 삶이 과연 가능할까?

그렇다면 그러한 새로운 윤리적 세대는 어떻게 탄생할 수 있는가? 뚜렷하고 완벽한 답을 할 수는 없고, 단정 지어 말해서도 안 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을 변화시킬지가 아니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것"이라는 미국의 사회운동가 프란시스 무어 라페(Frances Moore Lappé)의 말처럼 우리는 그 방법을 부단히 찾아 나서야 한다. 인디고 서원에서는 지난해 8월 '인디고 유스 북페어'를 진행한 것이 그 실천의 하나였다. 북페어(Book Fair)는 2008년부터 2년마다 개최하고 있는 인디고 서원의 국제 인문학 프로젝트다. 책을 매개로 한 인문·문화의 소통 및 교류 행사로 새로운 방식의 문화의 장을 창조하고자 만들어진 새로운 기획이다. 책 속의 가치에 참여한 모든 이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식(강의, 세미나, 토론회, 심포지엄, 인문 콘서트, 공연, 전시전 등)의 행사를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다.

인디고 유스 북페어는 해마다 주제가 있는데, 2014년 주제는 '새로운 세대의 탄생'으로 정했다. 전국에서 모인 참여자 1800명이 함께 새로운 도덕적·윤리적 다수로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경제적 이익보다는 생명의 가치를, 남을 짓밟는 경쟁이 아닌 더불어 함께하는 교육을,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군대가 없어져야 함을, 평화는 염원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음을 함께 뜨겁게 고민하고 토론해 우리가 지금 이 순간부터 새로운 세대로 탄생하기 위한 방법을 만들어내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특히 청소년들만 참여할 수 있는 토론 시간에는 '새로운 세대'의 덕목을 헌법 조항으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새로운 세대인 우리가 삶의 각 영역에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법칙과 가치관을 신중하게 고민하고 토론해 함께 정하는 시간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300여 명의 청소년들은 서로 처음 만났음에도 이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몰입했다. 1분 1초가 아깝다는 듯이, 아이들은 좋은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들이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와 그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해 열띠게 토론했다. 늘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 가야 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 남부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명령'에 시달리던 아이들은 이제 '좋은 사람'에 그치지 않고 '좋은 시민'이 되기를 서로에게 요청했다. 사적인 이익을 넘어 공적으로 이로운, 모두에게 이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토론 결과로 만들어낸 조항들이 당장 유효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바로 이렇게 공유한 느낌에서 온다. 여전히 진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선한 의지가 가득하다는 것을 느꼈다면, 그 희망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책임진다는 것은 응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에서 윤리적 선택이란, 책임 있는 응답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일본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후쿠시마 원전이 쓰나미로 붕괴한 후, '3.11 이후'를 논하기는커녕 3.11 이전과 이후가 별로 다르지 않은 사회의 모습을 깨닫고, 완전히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책임(Responsibility)을 진다는 것이 응답(Respondability)하는 것'이라는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우리는 이 참사에 어떻게 응답하며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응답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고, 어느 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지금 당장 알기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순간, 기업들이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완화된 규제를 스스로 재정비하는 사회가 된다면 어떨까. 핵발전소 역시 우리가 책임질 수 없는 일임을 인정하고 모두 가동 중지를 선언하는 하는 것이 유일하게 책임질 방법임을 정부와 국민이 합의하고 대책 마련을 시급하게 준비하는 것이 당연지사여야 하지 않을까. 또한 세월호 참사처럼 우리 사회에서 '말할 수 없는 자들'이었기에 손도 써보지 못하고 수장당했던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돌이켜보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용산에서 황망히 죽어간 이들을, 해직되어 생을 포기한 노동자들을, 으스러져 간 모든 이들의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이는 그런 사회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애도이자 응답이 아닐까?

ⓒ연합뉴스

가슴을 울리는 시 한 편이,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영화 한 편이,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연설 하나가, 절박한 울음을 담은 하나의 죽음이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상식적이지만 영적인 순간이 우리 사회에 도래하는 모습을 꿈꾼다. 축구선수 디디에 드록바는 2006년 월드컵에서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조국을 향해 축구경기가 있는 단 일주일만이라도 전쟁을 멈춰 달라 호소했다. 그의 메시지에 거짓말처럼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이 멈췄다. 우리 사회가 그러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드록바가 있기를 바란다기보다, 그의 메시지를 듣고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사회이길 말이다.

끝까지 정의의 편에 서는 사람

분명 새로운 세대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왔다. 점점 더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에 맞추어 세대 변화는 그 주기가 더 짧아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을 인간답다고 여기는지, 그 인간다움을 실천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사회적 제도가 만들어져 있는지를 고찰할 수 있는 윤리적 인간은 시대를 막론하고 반드시 필요하다.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성찰하고, 그 성찰의 결과에 따라 행동하려 애쓰는 것"(피터 싱어)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윤리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 죽음을 향하고 있지만 살아가고 있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특성이다. 희망이 살아 있는 자의 과제이고 의무인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을 것이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스파이 누명을 쓰고 추방당한 드레퓌스 대위가 진범이 아님이 밝혀졌음에도 그저 잊기를 원하던 프랑스 정부와 군부, 그리고 시민들에게 소설가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를 외치며 망각을 멈추고 진실을 기억하라 외쳤다. 그는 언론, 시민, 정부, 군대로 하여금 결국 진실을 바라보게 하였고, 그 기억은 프랑스 시민들에게 스스로에 대한 '명예와 저력'을 가져다주었다. 프랑스가 질서보다 무질서를 바라게 될 때도, 진보보다 보수적 입장을 취하고자 할 때도, 그들이 다시 상기하는 것은 바로 그때의 '진실의 성취'라 한다. 우리에겐 그런 기억이 필요하다. "한 국가의 역사가 지닌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항상 그 국민의 무력함이 아니라 '명예와 저력'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역사 인식,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능력,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용기는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위로와 격려를 넘어, 인간으로서 당당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요구해야 한다. 인디고 유스 북페어에 참여한 연세대학교 정치학과 박명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란 현재의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거시적인 결과물입니다. 즉, 지금의 결심과 마음의 상태, 선택들이 집적되어 미래는 결정되지요. 지금 한 사람의 선택과 한 사회의 선택이 비록 미미해 보일지라도, 결국 그것에 따라 미래는 결정됩니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공동체에 속하는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실천을 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바로 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용기입니다. 용기란 영혼이 하는 일입니다. 당장의 물질적 풍요와 안위를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의지가 바로 용기인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 또 무엇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이 세계는 달리 구성된다. 이 절망의 세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사회정의와 희망에 대해 끊임없이 공론의 장에서 말하는 것이 새로운 세대가 가장 성실하게 해야 할 작업일 것이다.

기성의 언어로는 규정지을 수 없는 창조적인 세대, 누군가에 의해서 이름 붙여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름을 만들어갈 수 있는 세대. 우리는 그러한 새로운 세대를 탄생시켜야 하며, 그 세대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어야 한다. 흔히 지금 젊은 세대를(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삼포, 사포세대라 부르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가장 윤리적일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최초의 세대이기도 하다. 역사상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세대이며, 가장 다양한 문화에 열려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하는 행위가 지구 반대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윤리적인 사고를 전 세계적인 규모로 할 수 있는 참으로 어마어마한 세대가 아니겠는가.

새로운 세대에게 어떤 새로운 이름이 붙을 것인가. 적어도 누군가에게 패배와 좌절을 점철당한 이름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이 젊은 세대가 "끝까지 정의의 편에 서는 세대"가 되길 바란다. 그 과정에 고난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이 세계에는 정의와 진실을 향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 끝끝내 진실을 추구한 자가 국가의 명예를 되찾듯, 끝끝내 정의의 편에 서는 이 세대가 이 사회와 나아가 인류의 명예까지도 되찾아줄 것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 <민들레>)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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