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시도 3명…이들은 '살아가야' 한다"

[현장] 세월호 기억순례 '기억과 약속의 길'을 걷다

'영원히 고교 2학년'인 아이들은 '명예 3학년'이 되었다. 교실 안 달력은 아직도 2014년 4월인데, 시간은 흐르고 해는 바뀌어 교실 문패 역시 '명예 3-1', '명예 3-2'로 변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1년 3개월의 시간 만큼, 하늘로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을 잊지 않으려는 흔적들도 차곡차곡 교실에 쌓였다. 세월호 침몰 며칠 뒤 붙은 "꼭 살아 돌아와"라는 쪽지부터, "만지고 싶은 내 딸, 엄마한테 빨리 와야지"라고 쓴 절망의 편지. "엄마는 니가 매일 그립고 그리워서 미칠 것 같아." 참사 이후 100일, 200일, 300일, 400일…그리고 점점 더 진해지는 그리움의 기록들. 책상 위 사진 속 주인공의 밝은 표정만 그대로였다. 4일 '기억과 약속의 길' 가운데 만난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풍경이다.

▲'명예 3학년'으로 문패가 바뀐 단원고 2학년 교실들. ⓒ프레시안(선명수)

'기억과 약속의 길'은 세월호 참사 관련 기록을 수집하는 안산 416기억저장소가 마련한 기억 순례길이다. 단원고 인근의 416기억전시관에서 출발해, 단원고등학교 교실과 합동분향소를 도보로 둘러보는 여정이다. '잊지 않겠다'는 말, 그 말에 힘을 싣고 아이들의 흔적이 묻어 있는 안산 고잔동의 길을 걸으며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걸어온 지난 1년의 길과 만나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메르스로 잠시 중단됐다가 이날 재개된 이 순례길에 기자가 동행했다. 이날 순례길엔 '세월호를 기억하는 연세인 모임 매듭' 학생 20여 명이 참가했다.


기억의 길


"이곳 안산엔 단원고 희생자 부모 500여 명과 형제자매 300여 명, 그리고 75명의 생존 학생과 선생님들, 그 가족들이 참사의 고통 속에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그 고통의 실존자 1000여 명과 함께 우리는 이 자발적 복종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 함께 길을 걸으면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오후 2시, 안산 고잔동의 '416 기억전시관'에서 순례길의 안내자인 김종천 기억저장소 사무국장이 운을 뗐다.


▲안산 고잔동 '416기억전시관'에서 순례길 설명을 듣고 있는 연세대 참가자들. ⓒ프레시안(선명수)


지난 4월 개관전으로 '아이들의 빈 방' 전시회가 열렸던 이 곳엔 이날부터 두 번째 기획전, '내가 이웃이 될 때'가 시작됐다. 희생자 가족들과 그 이웃들이 함께 만든 점토 공예품, 염색 옷 등이 전시장에 걸렸다.

천장엔 지난달 20일 설치가 마무리 된 304개의 '기억함'이 빛나고 있다. 희생자 304명의 이름이 붙은 기억함에는 고인이 생전에 아꼈던 물건, 편지, 사진 등이 담겼다. 기억저장소와 안산 사람들은 이 기억함을 '별'이라고 부른다.

▲기억전시관 천장에 달린 '기억함'. 희생자들의 이름이 붙은 304개의 기억함엔 고인이 아끼던 물건이나 편지, 사진과 같은 물건이 담겼다. ⓒ프레시안(최형락)

약속의 길

전시관에서 순례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은 뒤 도착한 곳은 안산 단원고등학교. 2층과 3층에 위치한 옛 2학년 교실에 들어서기도 전에, 순례에 참가한 이들이 저마다 눈물을 훔쳤다.

"1반입니다. 총 36명이 수학여행을 떠나 19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돌아왔습니다. 비교적 생존자가 많은 반입니다. 아…은화(미수습자 조은화 학생)도 이 반이네요."

당장이라도 바꿔 신고 뛰어다닐 것 같은 책상 밑의 삼선 슬리퍼, 의자 위에 걸린 교복 자켓, 여느 고등학교 교실과 마찬가지로 대학 입시 요강 등이 붙은 게시판. 당장이라도 종이 치면 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 것만 같은 복도는, 온통 노란 추모 리본과 추모 메시지로 덮여 있었다. 그렇게 교실 하나하나를 둘러볼 때마다, 참가자들의 눈이 더 빨개졌다.

▲단원고 교실을 둘러보는 '기억과 약속의 길' 순례 참가자들. ⓒ프레시안(선명수)

"7반입니다. 7반은 한 명만 살아 돌아왔습니다."

김 사무국장의 설명에, 참가자 몇 명이 짧게 탄식했다. 7반 교실의 텔레비전엔 벚꽃이 만개한 교정을 배경으로 담임인 고(故) 이지혜 선생님과 학생들이 찍은 단체 사진이 걸려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들 중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학생은 1명 뿐이다.

단체 사진 속 얼굴들은 각각 프린트돼 교탁과 책상 위에 액자로 놓였다. 학생들의 사진은 교탁을 향해, 교탁 위의 사진은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교실은 비어있지만, 여전히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수업하는 모습이다.

▲2학년 7반 교실. ⓒ프레시안(최형락)

▲단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2학년 7반 교실엔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의 사진이 마치 수업하듯 마주보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3층 복도의 반대편엔 생존 학생들의 3학년 교실 4개가 마련돼 있다. 다른 고등학교 교실에 비해 책상과 의자 수가 눈에 띄게 적은 것을 제외하고는, 평범한 고3 수험생들의 교실과 다를 게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김 사무국장은 4월16일 이후 늘 아슬아슬하게 고통과 마주하고 있는 생존 학생들을 걱정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 생존자 중 고등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이 학생이 몇 년 후 군대에 갔는데, 화생방 훈련을 할 때 첫 번째 쇼크가 왔다고 합니다. 참사 당시의 트라우마가 고개를 든 거죠. 그 이후 몇 번의 쇼크가 더 왔고, 이후 병원에 갔더니 치료 시기를 놓쳤다는 의사의 판정을 들었다고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된 거죠.

세월호 생존 학생들도 적게는 3개, 많으면 5개의 질병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까지 3명이 자살 시도를 했고, 많은 학생들이 유서를 써서 갖고 있다고 합니다. 부모들이 그 유서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 일도 많다고 해요. 세월호 시행령에 따르면 생존자들에 대한 심리 치료는 5년까지만 가능합니다.

얼마 전에 한 희생 학생 엄마 아빠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해요. 우리 애가 만약 살았으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 '살아낼' 수는 있어도, '살아가긴' 힘들거라고."

두 길이 만나다

오후 4시30분. 단원고에서 20여 분을 걸어, 순례길의 마지막 코스인 합동분향소에 도착했다. 기억저장소라는 '기억'의 공간과 261명 희생자들과 만나는 '약속'의 공간(단원고)을 거쳐 순례길의 끝에는, 희생자 가족들과의 만남이 예정돼 있다.

"지난 1년 유족들이 걸어온 길과, 참가자들이 걸어온 '나의 길'이 만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김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분향소 옆 컨테이너에 마련된 유족 대기실에서 노란 리본 제작에 한창이었던 '6반 엄마들'이 학생들을 맞았다. 6반 고(故) 이영만 학생 어머니 이미경 씨는 "지난 1년 목숨은 붙어 있지만 삶은 죽어있는 상태였다"면서 "학생들을 보니까 힘이 불끈 솟는다"며 아침부터 만들었다는 노란 리본을 한 움큼씩 학생들의 손에 쥐어줬다. 삭발한 짧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고(故) 권순범 학생의 어머니 최지영 씨도 "이렇게 찾아와 함께해주는 여러분이 있어서 힘이 난다"며 "(머리는) 어디 한풀이 할 데가 없어서 노랗게 염색했다"고 웃어 보였다.

그리고, '별 헤는 밤'

"세월호에 탄 것이 나일 수도, 나의 가족일 수도 있었는데 운 좋게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나의 일일 수도 있는 그 싸움을, (유족들이) 대신 해주고 계시는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연세대 학생 권유나 씨)

모든 일정이 끝나고 기억전시관 '304개의 별' 아래 둘러 앉은 밤. 세월호 유족들과 연세대 참가자들의 만남인 '별 헤는 밤'이 열렸다. 희생자 304명의 이야기가 담긴 304개의 기억함 아래에서, '나의 세월호'와 '모두의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자리다.

'별 헤는 밤'은 304개의 별을 바라보는 묵념으로 시작해 연세대 학생들이 준비한 노래와 세월호 유족의 답가, 그리고 긴 대화로 진행됐다.

약속해요 이 순간이 다 지나고
다시 보게 되는 그날
모든 걸 버리고 그대 곁에 서서
남은 길을 가리란 걸

인연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인 걸
이 사랑이 녹슬지 않도록 늘 닦아 비출게요

취한 듯 만남은 짧았지만 빗장 열어
자리했죠 맺지 못한데도
후회하진 않죠 영원한건 없으니까

운명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하고픈 말 많지만 당신은 아실테죠
먼 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다신 놓지 말아요

이 생에 못다한 사랑 이 생에 못한 인연
먼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말아요

흔한 사랑 이야기인줄 알았던 노랫말이, 다르게 들렸다. 1반 고(故) 문지성 학생의 어머니가 학생들의 노래에 대한 '답가'로 이선희의 <인연>을 불렀다. "광화문에서 농성 중일 때 누가 들려줬던 노래였는데, 가사가 내 마음이랑 똑같았다"고 했다. 듣고 있던 학생들이 말없이 눈물을 훔쳤다.

▲304개의 '별' 아래서 진행된 '별 헤는 밤'. 가운데 마이크를 잡은 이가 <인연>을 부르고 있는 지성이 어머니다. ⓒ프레시안(선명수)

시작은 눈물이었지만, 끝은 웃음과 다짐이었다. 3반 고(故) 유예은 학생의 어머니 박은희 씨는 "많은 사람들이 지난 1년간 도대체 변한 것이 뭐가 있냐고 하는데, 분명하게 하나 말할 수 있다"며 "부모들이 변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가족 밖에 모르고 살던 부모들이 이제 이 나라의 현실을 알아버린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살아있는 동안 우리 부모들이 4.16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어떻게든 몸부림칠 것"이라며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싸울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배 타고 가다가 죽은 아이로 결코 남겨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6반 고(故)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 씨는 "생각도 마음도 예쁜 학생들이 와 주고 울어주고 기억해줘서 고맙다"면서 "내 자식 있을 때는 내 자식만 예쁜 줄 알았는데, 내 자식 가고 나니까 또래만 보면 다 예쁘다. 특히 우리 애 또래 아들들만 보면 만지고 싶고 안고 싶다. 변태 아줌마가 된 것처럼 그런다"고 웃었다. 이날 학생들은 304개의 별 아래서, '세월호 엄마들'이 만들어준 비빔밥을 먹으며 밤을 지샜다.

**416 기억순례 '기억과 약속의 길'은 매주 토요일 안산 고잔동에 위치한 416기억전시관에서 시작된다. 기억전시관부터 시작해 단원고, 합동분향소까지 둘러보는 도보 순례로, 3~4시간 정도 소요된다. 중고교 방학 기간엔 평일에도 진행할 예정이다. 문의 및 참가신청은 416기억저장소에 하면 된다. (☞기억저장소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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