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들에게 '왜?'라고 묻는다. "왜 잘 다니던 대학을 때려치웠니?", "대체 왜 수능을 보지 않니?". 대학 거부자, 대학 입시 거부자들에게 쏟아지는 많은 질문 속에는 다음과 같은 괄호가 숨어있다. (너 미쳤니?, 제정신이니?)
대학 입학을 당연한 목표로 여기고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대학‧입시 거부자들이란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신인류'와 같다. 그러나 이 신인류는 말한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대학 거부를 거부하는 현실에 이질감을 느낄 것'이라고. 이들은 자기 이야기들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오월의봄 펴냄).
공동 저자이자 대학‧입시 거부자 모임인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투명가방끈)' 활동가들은 책 제목의 주어가 '우리'인 점에 주목해달라고 했다. 대학 입시는 개인 선택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구조적 문제이고, 따라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선 개인이 아닌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다섯 명의 대학‧입시 거부자들이 다시 한 번 공동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민중의집'에서 모였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덤덤하게 자신의 생각과 고민들을 풀어냈다. 편집자
"왜 대학에 가야만 하는가"
대학‧입시 거부자들이 처음 꺼낸 이야기는, 세상이 그들에게 던지는 질문, "왜 대학을 가지 않느냐"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들은 "나답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관련 기사 : "오늘, 우리는 수능을 거부합니다")
대학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자퇴한 뒤 힙합 음악을 하는 '시원한 형'은 "대학을 졸업하면 좀 더 조건에서 일할 수도 있지만 단 1년이라도 내가 아닌 나로 살기 싫었다"며 "대학뿐 아니라 임금 노동 역시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만뒀다"고 했다.
고등학교 자퇴 후 인권 강연을 하고 있는 '난다'는 "학교에 가면 대부분이 공부하는 시간이고 집에 와서도 계속 시험 준비를 해야 했는데, 시험 준비가 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싫었다"며 "대학에 가서도 내 인생이 시험이라는 틀 안에 갇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자퇴 후 생산직 노동자로 일해온 '공기'는 "중학교 때부터 학교를 계속 다니는 게 맞는 건지 고민했다"며 "강요에 의해 고등학교에 갔지만 내가 대학에 갈 생각이 없는데, 졸업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어 그만뒀다"고 했다.
"대학 '거부'가 아니라 '입학'이 후회스럽다"
이들이 투명가방끈 모임을 통해 각자 '대학입시 거부' 선언을 한 지도 벌써 3~4년의 시간이 흘렀다. 거부 선언 초반에는 "왜 대학을 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주로 받았다면, 이제는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2011년 서울대학교 재학 중 자퇴를 선언한 '공현'은 "대학 거부한다더니 결국 그 타이틀 팔아먹고 있다는 욕을 들었다"며 "대학 꼬리표가 정말 떨어지지 않는 걸 보면 '거부'를 후회할 게 아니라 '입학'이 후회할 일인 것 같다"고 했다. (☞관련 기사 : "학벌 기득권 정점, 서울대를 떠납니다", "나는 '서울대 자퇴생'이 아니라 '고졸'일 뿐")
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교사라는 꿈을 강요받았다는 '아리데'는 "입시를 거부하면서 아버지와 마찰이 생겨 가출을 해 금전적으로는 후회되지만, 입시를 거부한 것 자체가 후회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 만나면 대학 안 나오면 뭐 먹고살 거냐고 하지만, 그게 대학 간다고 해결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오히려 주변에서 마치 후회하라고 강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력서 '학력란' 비웠다고 채용 거절당해"
이들은 학력 위계질서가 공고한 이 사회에서 차별을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라고 했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받았던 학력 차별에 대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회사에서 사무직 지원을 한 명 더 뽑아야 하는 상황이 왔어요. 저랑 같이 생산직에 있던 언니들은 컴퓨터를 잘 다루는 저를 추천했는데, 회사에서는 대졸 이상을 뽑는다고, 제가 가는 건 곤란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차별을 처음 느낀 건 아니지만 이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어요. '이러니까 대학 가라고 하는구나' 하고 느꼈어요."(공기)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입사지원서에 학력란이 있는 건 차별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저는 강연 지원할 때, 학력란이 보여도 비워뒀어요. 어차피 경력란이 있으니 거기에 제가 인권 강사로서 어떤 걸 했는지 적으면 되니까요. 그런데 어떤 기관에서는 계속 학력을 기재하라 하더라고요. '학교가 부담스러우면 전공이라도 써달라'고요. 혼자 '문과'라고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빈칸 그대로 냈어요. 그랬더니 강연 당일 아침에 거절한다고 통보 전화가 왔어요. 황당하게도, 한 달 동안 준비한 교육이 그렇게 물 건너 갔어요."(난다)
"음악 계통에서도 대학 선후배 챙기는 문화가 있어요. 그래서 공연 끝나고 뒤풀이 하면 호형호제하면서 친해지니까 저는 소외될 수밖에 없죠. 또 어떤 사람들은 학력이 높다는 이유로도 음악적 인기를 얻기도 하고요."(시원한 형)
'우리'라는 주어가 중요한 이유
이들이 대학을 거부한 뒤 몸소 경험한 학력 위계질서의 폐해는 심각했다. 그러면서 대학 거부 운동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대학 자퇴'나 '입시 거부'가 단순히 개인의 선택으로만 끝나선 안 된다고 했다. '대학 거부' 구호가 집단화된 목소리로서 힘을 가져야만 구조를 흔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공현'은 과거 고려대학교 자퇴로 화제를 모았던 김예슬의 '선언'을 책에서 비판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도 고대생이기 때문에 잡아볼 수 있는 폼이라는 생각이 들어버려서, 나는 영 삼키기가 어려운 글이었다. 이런 식의 '선언'은 개인에게서가 아니라 집단에게서, 하나의 지속적인 사회 운동의 과정에서 제출되어야 어울리는 것 아닐까. 나 개인의 결단은 좀 더 장식 없이 질박한 이야기여야 하지 않을까."(154쪽)
'공현'은 책 제목 가운데 '우리'라는 단어를 쓴 점 또한 '운동'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는, 대학을 가지 않고 각자 열심히 살아가는 고졸 청년들의 수기를 담은 기존 책들과 비교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였지만, 반문이 따르기도 한다. '포기자'와 '거부자'가 과연 '대학‧입시 거부자'라는 한울타리 안에 있을 수 있을까. 이날 북콘서트가 끝날 무렵, 객석에서 이같은 취지의 질문이 나왔다.
'아리데'는 "저 또한 '거부'라고 하기보단 물 흐르듯 대학을 가지 않게 된 경우인데, 저와 같은 이유든 다른 이유든 대학이 선택지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며 "큰 틀에서 다같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공현' 역시 "낙오나 포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거부라는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도록 전달하는 게 우리 운동의 관건"이라며 "계속 만나는 장을 넓힐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투명가방끈이 밝힌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필독 추천 대상
- 교육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해왔거나, 한국의 입시 제도에 불만이 많은 사람
- 체제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거나, 그런 고민 때문에 고독한 사람
-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유'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 옮겨갈 의지가 있는 자유인'
- 입시를 앞두고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수험생
- 경쟁이 몸에 맞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
- 낙오가 두려운 직장인과 취업 준비생
- 대학거부와 대학입시거부가 아니꼬웠던 사람
- 위계, 차별, 배제, 순위, 일반화가 불편한 사람
- 평화, 생태, 노동해방, 아나키즘, 저항, 반전, 탈핵, 여성주의 등의 단어가 익숙하게 느껴지며,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
- 학교 가는 길에 다른 길로 새본 사람
- 한 번도 새보지 않아서 후회가 되는 사람
- 대학생 운동의 한계에 직면한 사람
- 대학을 그만두고 싶은데 망설이고 있는 사람
- 대학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
- 대학거부, 대학입시거부에 대해 궁금한 사람
- 예비 대학거부자와 예비 입시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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