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혁신, 때론 '마피아'처럼!

[주간 프레시안 뷰] "새정치, 안철수·박원순·김부겸을 지켜라"

"우리의 혁신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우리는 남들이 주목하지 못한 새로운 가치를 통해 힘을 키워야 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만큼 주목하지 못하는 그 새로운 가치는 바로 당원입니다. 당의 힘은 당원에 있습니다. 국회의원의 숫자는 정당이 가진 힘의 결과이지 정당이 가진 힘의 원인은 아닙니다. 건국 이래 두 번째 규모인 130석을 가지고도 무능을 반복하는 저 제1야당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총선전략 역시 기본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당을 먼저 강화해야 합니다. 우리 당을 대표해서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제1의 총선전략이어야 합니다."

정의당 당 대표 선거에 나선 조성주의 출마선언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에서 나오기를 기대했던 메시지가 정의당의 한 청년에게서 나온 이 상황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조성주의 출마선언은 한국정치에서 보기 드문 명문입니다. 담백하면서도 담대하고 공감 가득한 미래 메시지로 감동을 줍니다. 안병진 교수는 조성주에게서 희망을 본다고 했고,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으로 참여한 조국 교수도 이 글을 페이스북에 링크하며 "조성주라는 청년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출마의 변, 감동적이다. 이런 청년층의 도전, 각 야당에서 많이 일어나면 좋겠다"는 멘트를 달았습니다.

"이게 정부입니까"

세월호 참사에서 메르스 사태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참혹합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연일 헛발질을 해대고 있습니다.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세계가 메르스 초기대응 실패를 질타해도 제대로 된 반성이나 사과조차 하지 않습니다. 확진 환자를 번호로 부르는 나라, 24명의 사망자에 대한, 그 억울한 죽음에 대한 연민조차 찾아보기 힙듭니다. "이게 정부입니까, 이게 나라입니까"라는 절규가 어찌 이철희 소장만의 마음이겠습니까.

또한 세월호 참사 때도 그렇고 이번 메르스 사태를 맞이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반응성은 새누리당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함을 상쇄할 당 차원의 대책은 거의 없었습니다. 메르스 정중앙에서 이른바 워크숍을 간 의원들은 '농담 따먹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구원이 필요한 이 절박한 시대 앞에서 그들은 여전히 기득권 나눠먹기를 위한 계파 갈등에 휩싸여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정부를 보면서도 좀처럼 '새정치민주연합이 집권했으면 나았을 것'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 까닭입니다. 간간이 전임 대통령의 이름이 언급될 뿐입니다. 국민들은 어쩌라는 말입니까.

메르스 사태도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한 달 간 트위터, 블로그 등에서 중동호흡기 증후군, 즉 메르스를 언급한 글만 무려 344만5059건이 검색됐습니다. 하루 평균 10만 건이 넘는 초대형 언급량인데요, 이 같은 수치는 빅데이터 관측사상 최대치였던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 한 달 언급량인 428만6518건 이후 가장 많습니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메르스를 거치면서 정신적, 물질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정부가 초동대응에 실패하면서 사태가 장기화됐고, 메르스 사태 장기화는 관광산업을 비롯한 거의 모든 경제부문에 큰 타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166명을 감염시킨 한 달간 박근혜 정부는 부실·뒷북 대응을 반복하며 '세계 2위 메르스 감염국'에 오르는 치명적 무능함을 드러냈습니다. 80명이 넘는 확진자가 쏟아져 나온 삼성서울병원도 허술한 관리와 늑장 정보 공개로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키웠습니다. 메르스 사태 앞에 직면한 국민들에게 정부는 없었습니다. 국민들은 컨트롤타워 없이 각자도생하며 불안을 키웠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19일) 현재 메르스 사망자는 24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장례조차 제대로 치를 수 없는 '메르스 이산가족'의 아픔을 어찌 말로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박근혜 지지율 취임 후 최저

19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6월 셋째주 정례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9%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부정평가는 61%로 올라 긍정 평가의 두 배를 넘었습니다. 메르스발 경제위기를 느끼고 있는 40대 이반 현상이 뚜렸했습니다. 40대의 긍부정 평가는 16% 대 71%로 나타났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지지기반 가운데 하나였던 50대마저도 긍정 40% 대 부정 49%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충청권 민심도 크게 요동쳤고,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대구경북의 여론도 긍정 41% 대 부정 51%로 나타났습니다. 메르스 사태에 대한 무능하고 부실한 대응이 낳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민심이반이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수렴되지 않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40%를 지키고 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소폭 상승한 25%를 기록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능동적인 대응과 혁신위에 조국 교수를 영입한 효과가 반짝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경협 의원의 '세작 발언 파동'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오른 것은 야당 입장에선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 할 것입니다.

<매드맥스> "미친 놈만 살아 남는다"

메르스 여파로 극장은 한산했습니다. 저는 청개구리처럼 근 3달 만에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제가 본 영화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였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울었습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미친 놈이 되지 않고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는 아주 자극적인 걸작이었습니다. 조지 밀러 할아버지의 연출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사막 위를 질주하는 영화적 혁신이었습니다. 푸른 초원이 있는 어머니의 땅을 찾아 탈출한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가 숨 막히는 공격을 뚫고 그곳에 당도했을 때 거기도 폐허가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저는 사막 한복판에 무릎을 꿇고 절규하는 퓨리오사를 보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혁신은 결코 좋은 사람들의 사랑방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김상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는 마치 그림자 내각을 보는 듯했습니다. 혁신을 하는데 지역안배를 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탕평과 혁신'의 동시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를 만큼 순진하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혁신은 좋은 사람들의 사랑방에서 나오지 않고, 결사항전을 다짐한 광신도에게서 나옵니다.

하물며 기업도 그렇습니다.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의 표현을 빌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부족원이 되어 미션을 향해 맹렬히 헌신"해야 창업이든 혁신이든 할 수 있습니다.

'160일을 걸어가도 있을지 모를 신기루를 좇는' 장밋빛 미래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위험을 뚫고 목숨을 걸고 물이 있는 바로 그곳인 시타델로 돌아가기를 결심하는 '매드 맥스'의 결단이 없이는 구원은커녕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국민행복시대' 공약집을 보십시오. 적어도 말로 미래를 약속하는 것은 혁신이 아닙니다. 문재인 대표가 '유능한 경제정당론'을 말하며 삼성경제연구소 특강을 듣는다고 국민들이 '유능한 경제정당이야'라고 맞장구를 쳐줄리 없지 않습니까. 적어도 관심이 있는 곳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당은 지금이라도 메르스 총력 대응에서 유능함을 보여줘야 합니다.

안철수를 지켜라

지난 13일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세계보건기구(WHO)의 메르스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하려다 보건복지부의 제지로 문전박대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치욕적인 일입니다. 그것은 안철수 의원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개 복지부 장관이 제1 야당의 전임 대표를 능멸한 사건입니다. 아무리 계파로 나뉘어 싸움을 한다고 해도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일사불란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줘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안철수 의원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선 정치정당으로서의 존엄에 관계된 일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이라도 안철수 의원, 안철수 전 당 대표를 지켜야 합니다. 메르스 대응을 엉망으로 하고 그것도 모자라 야당의 전임대표를 능멸한 보건복지부 장관을 반드시 끌어내려야 합니다.
혁신은 때로 마피아 같은 방식으로 발화됩니다. 당의 단합은 매일 계파청산을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계파의 이해관계를 떠나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동지를 격렬하게 지키는 데서 시작됩니다.

마찬가지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경찰 조사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맞서야 합니다. 희망스크럼 같은 낭만적인 발상도 필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메르스 전선에서 "부실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는 한마디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같은 당의 정치지도자를 보호하는 것은 모든 혁신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더 싸울 일이 있습니다. 대구 한복판에서 정치생명을 건 싸움을 하고 있는 김부겸 전 의원을 지키고 응원하는 일입니다. 새누리당 김문수 혁신위원장이 김부겸을 제물로 대권행보를 하려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의 예산과 인력의 10%를 상징적으로라도 김부겸을 위해 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킬 것은 동지이고 버릴 것은 기득권입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동지를 외면하는 정당은 그저 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혁신을 위해서라면 당 대표를 밟고 가도 좋다"고 주문했습니다. 좋은 메시지입니다.

안철수, 박원순, 김부겸 등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소중한 당원입니다. 조성주 후보는 당원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서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도 이 청년의 메시지를 잘 새겨들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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