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개정' 발끈한 박근혜, 속사정은…

[분석] 박근혜, 민영화 등 '험로' 땐 시행령 우회…"행정 독재"

"법률을 집행하기 위한 정부의 시행령을 국회가 좌지우지하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은 행정부의 고유한 시행령 제정권까지 제한하는 것으로 행정부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질 우려가 크다. 국회는 정치적 이익 챙기기에 앞서 삼권분립에 기초한 입법 기구인 만큼 국회법 개정안을 정부에 송부하기에 앞서 다시 한 번 면밀하게 검토하길 바란다"

청와대가 '발끈'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의 29일 반응은 신경질적이란 인상마저 준다. 상위법의 취지를 훼손하는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행정부에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 이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내놓기에는 어색하리만큼 '강렬'한 반응이다. 더욱이 관료 출신도 아닌 의원 출신인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정말로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부의 기능이 '마비' 상태가 될 거라고 믿는 걸까. 김성우 수석의, 또는 박근혜 대통령의 머릿속에 떠오른 '마비'될 행정부의 업무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이런 사례들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을까?

'숨겨진' 민영화 추진책…사회적 논란 일어도 행정입법으로 '뚝딱 뚝딱'

공교롭게도 '시행령' 논란과 민영화 논란은 '실과 바늘' 같은 관계다. 가스·철도 등 부문을 가리지 않고 공공기관 민영화 논란에선 어김없이 '시행령'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가 좌초되면,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시행령 개정이란 우회로를 노렸다. 여론과 언론의 감시로부터 다소 멀어질 수 있는 '비책'이기도 했다.
2013년 7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도시가스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이 시행령에는 자가소비용 천연가스 직수입자에 대한 저장시설 등록요건 완화 내용이 담겨있다. 도시가스공사가 아닌 민간 기업도 제 공장 등에 쓰려는 천연가스는 직접 수입해 저장해 둘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한 시행령이다.

이 시행령은 곧바로 '가스 민영화를 노린 포석'이란 반발에 부딪혔다. 그도 그럴 것이 문제의 시행령 내용을 뜯어보면, 그해 5월 발의됐다가 국회 통과가 불발된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의 '아류'작에 가깝다

새누리당 김한표 의원이 발의했던 문제의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은, 민간 업자가 직수입한 가스를 다른 기업이나 해외에 '재판매'할 수 있도록 처분 제한을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그전까지는 자가 소비할 물량만 들여올 수 있었던 데에서 더 나아가 민간 사이의 '거래'를 가능케 해주는 사실상의 민영화 법안이었다. (☞ 관련 기사 : 도시가스 소매 공급비 4배 인상 '폭탄' 코앞?)

동시에 이 개정안에는 천연가스 반출입업(트레이딩·매매) 조항이 신설돼 있었다. 민간 기업에 해외 반출 목적의 가스를 보세구역(관세 부과가 유보된 지역)에 저장해둘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이었다. 당시까진 반출 목적의 물량을 국내에 공급할 수는 없다는 원칙을 세워 놓았으나, 이것까지 허물어지면 가스 민영화는 '완성' 단계에 이른다.

법안은 우여곡절 끝에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발, 노동조합의 파업에 부딪히며 좌초됐다. 그러나 시행령은 손쉽게 국무회의를 통과해 '가스 민영화 피날레를 끊기 위한 한 단계를 또 진전했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 현대중공업 LNG 수송선. ⓒ연합뉴스

시행령 개정 움직임 보면 정부의 '다음 수' 보인다

철도 민영화 논란에서도 '시행령'이 등장했다. 2012년 대선이 끝난 후 권도엽 당시 국토해양부 장관이 '철도산업발전기본법 하위 법령 제정' 방안에 사인을 했다는 정부 관계자의 증언이 <프레시안>을 통해 알려진 것이 대표적이다. 권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토해양부 장관이다. (☞ 관련 기사 : MB 정부, 철도 민영화 다음 단계 강행했다)

당시 확인된 시행령 개정 내용에는 '관제권 환수'가 포함돼 있었다. 철도공사(코레일)에 일괄 맡겨져 있는 관제권을 국토해양부로 환수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철도 민영화의 물꼬를 트는 '관문'으로 해석된다. 향후 민간 사업자의 진입을 더욱 용이하게 해주기 위한 절차라는 설명이다. 국토해양부는 이 시행령 개정 시도에 앞서 이미 선로 배분권에 대한 환수 작업은 종지부를 지어놓았었다.

관제권 환수 시행령은 그러나 노동조합은 물론 코레일의 반발에 부딪치며 없던 일이 됐다. 정부는 대신 '수서발 KTX 자회사'란 제3의 방법을 찾았다. 민간 개방, 제2 철도공사 건립, 관제권 환수 등의 방식이 다 물 건너가자 모회사와 자회사를 경쟁시키는 희한한 민영화 방식을 밀어붙인 것이다.

"국회에서 안 되나요? 그렇다면 시행령!"

보험계의 '민영화' 시도란 비판을 받고 있는 산업재해보상법 개악 시도에서도 '시행령'이란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새누리당 최봉홍 의원의 발의 법안, 산재보험법 개정안은 애초에는 좋은 취지로 시작됐다. 보험설계사와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노동자 6개 직종 44만여 명에게 산재법 가입 '방해물'을 걷어주려는 취지다.

이들은 애초부터 산재법 '당연 가입' 대상이지만, '본인이 신청한 경우 적용 제외를 허용한다'는 독소조항 탓에 실제 가입률은 10%가 되지 않고 있다. 사용주(보험회사)들이 자신들의 민간 보험 가입을 보험설계사들에게 사실상 강요하며 '적용 신청서'를 쓰게끔 해왔다는 증언은 번번이 쏟아져 나왔다.

법안은 그러나 2014년 2월 발의 후 예기치 않은 반발에 부딪혔다. 새누리당 이완영, 김진태 의원 등은 단순히 이 법안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민간 보험 가입자의 경우 적용 제외를 허용한다'는 단서 조항을 추가하자고 애를 써 왔다. 법안의 '자구 체계 심사'를 본래 목적으로 하는 법사위에서까지 김 의원은 법안의 내용 자체를 바꾸려고 끊임없이 시도해 '법사위 월권' 논란에도 불을 댕겼다.

이들의 이 같은 개악 노력은 삼성생명 등 민간 보험회사들의 이익과 정확히 일치한다. 보험설계사만 30만 명에 가까우니 민간 보험 회사들로선 놓치기 아까운 꽤나 큰 보험 시장이다. 입법 관계자들은 물론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사실상의 산재보험 민영화 시도'란 말들이 나돌 정도였다.

문제는 1년을 훌쩍 넘는 논란 끝에 이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는 국면에서, 정부가 같은 내용의 시행령을 검토했다고 알려진 점이다. 민현주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최근 기자들을 만나 "산재보험법은 조만간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라고 알렸다. 법안이 일단 '적용제외 제한'을 없애는 내용으로 국회 문턱을 넘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최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얼마 전에 고용노동부가 '산재보험에 준하는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은 예외 조항을 두겠다'는 시행령을 의원실에 가져와서 의견을 물었다"고 말했다. 법안 개악이 어려워지니 시행령으로 돌파하겠다는 속셈이다. 당장은 시행령 카드가 가시화되지 않았으나, 언제건 시도될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입법권 훼손하는 시행령…국회 무시 행정 독재"

민영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가깝게는 '누리과정 예산' 논란에서도 시행령이 문제가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3~5세 무상보육 정책인 누리과정 예산은 엄밀히 말해 교육 예산으로 분류될 수 없다. '교육'보다는 '보육 복지'에 가까운 사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리과정 예산에 교육청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지방교육재정보조금을 '교육' 사업에 쓰도록 규정한 관련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를 '보육'에 쓰도록 한 시행령 또한 상위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함께 말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이번에 세월호 시행령만 부각됐는데 시행령과 관련해선 누적된 문제가 있다"면서 "누리과정만 해도 시행령을 통해 편법으로 예산을 전용해서 쓰고 있다. 누차 지적했던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숙고 끝에 만들어진 법안을 '뚝딱' 만들어진 시행령이 한 번에 뒤집는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입법 관계자들에게선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된 박근혜 정부에선 그 정도가 특히 심하다는 지적이다.

야당의 한 보좌관은 "심할 땐 '행정 독재'란 생각마저 든다"면서 "시행령은 발 빠르게 만들면 그만이지만, 시행령의 상위법 위반을 문제 삼으려면 법원으로 가져가서 대법원 판결까지 1년이고 2년이고 기다려야 한다.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후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은 어떤 면에선 이 같은 절차를 '간소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게다가 '상위법 위배'란 판단 자체도 여야가 합의로 내린다는 것이지 않나. 이를 '삼권분립' 위배라고 말할 수 없다. 입법부 권한을 훼손시키며 먼저 삼권분립을 위배한 쪽은 외려 박근혜 정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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