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의 '뒤집기' 한판…여야 협상 막전막후

'선방'한 이종걸…청와대 '계산서' 앞둔 유승민

공무원연금 개정안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개정을 겨냥한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하기까지, 여야 지도부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당내 일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여야 합의안을 밀어붙이기로 하면서 물꼬가 터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첫 시험대를 무사히 통과했다.

29일 새벽에 처리된 공무원연금 개정안의 경우, 여야 원내지도부가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한 지 약 17시간 만의 결실이었다.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논의한 지는 약 7개월 만에 낸 성과다. 표결 결과는 246명 참석, 찬성 233명, 반대 0명, 기권 13명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제 신념으로 볼 때 공무원연금 개혁을 제기한 방법과 취지가 적절치 않았다"며 여야 협상을 이끌었음에도 표결에서는 기권했다.

사실 이날의 '주인공'은 공무원연금법보다는 국회법이었다. 공무원연금법은 이미 여야 간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시행령이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그 때문일까? 17시간의 여야 협상 과정에서 '청와대 의중'이라는 유령은 계속해서 국회 주위를 맴돌았다.

29일 새벽 처리한 국회법 개정안은 시행령 등 정부의 행정입법이 국회가 만든 법률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게 한 법이다. 행정기관은 이를 지체 없이 처리하고 소관 상임위에 보고해야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특보인 김재원 의원 등 친박계는 이를 "3권분립을 훼손할 수 있는 위헌적인 법"이라고 주장했으나, 막판에 유 원내대표가 이를 돌파해냈다. 그러나 이것이 당·청 갈등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오전엔 "국회법 개정안, 논리적으로는 무리가 없다"

28일 오전까지만 해도 유승민 원내대표의 입장은 "청와대, (세월호 특별법 관련 주요 상임위인) 농해수위 위원들 설득해보겠으나 약속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유 원내대표는 그럼에도 "국회가 정한 법률이 정한 취지를 훼손하거나 배치되는 시행령을 정부가 만들면 국회가 시정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은 논리적으로 큰 무리가 없다고 본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야당이 원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사무처에 속해 있는 진상규명국의 조사1과장을,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검찰 서기관으로 되어있는 것을 별정직 4급으로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그것 하나만 개정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월호 진상조사규명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가 나서서 시행령 수정을 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것은, 그래서 야당에게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다.

특별법상 업무를 보면, 조사1과장에게는 세월호 특조위 기본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업무가 주어진다. 다른 과에서는 언론 보도 공정성, 인터넷상 게시물 문제 등을 다루게 돼 있다. 조사1과장이 핵심 보직일 수밖에 없다.

이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의 양보가 없다고 하면 이미 합의된 공무원연금 부분과 법사위를 통과한 54개 법안의 처리도 안 될 것"이라는 입장을 협상 내내 견지했다.

오전 10시 30분경 여야 원내수석부대표의 1차 협상이 시작됐다. 약 40분간의 회동 결과는 결렬이었다. 새누리당 측은 "공무원연금 개정안과 세월호 특별법이 무슨 관계냐"고 반발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갑자기 들고나온 것도 아니고,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논의가 계속 있었던 것 아니냐"고 했다.

오후 들어 급선회 "청와대 입장이 아주 단호하다"

오후 들어 '청와대'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점심을 지나면서 새누리당의 입장이 강경해진 것이다. 유 원내대표는 오후 1시 30분, 의원총회에서 "시시비비를 떠나서 이건 행정부 소관인 시행령 문제라 국회가 약속할 수 없다. 제가 이 문제 가지고 청와대 관계분들 또 유기준 장관하고 여러 차례 얘기했습니다만 정부 청와대 입장은 아주 단호했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는 "청와대나 정부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걸 받아들이면 청와대, 정부, 저희 당 안에 이거(신뢰관계) 완전히 다 무너진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못 받아들인다"고 했다.

새누리당 원내관계자는 "청와대 입장을 고려할 때 더 물러나기 어렵다. 야당은 조사1과장을 (공무원이 아니라 민간인으로) 내놓으라는 것인데, 조사1과장이 '증인을 누구를 부를 거냐' 정해서 통보할 권한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지난해 국정조사에서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이니 하면서 청와대 누구를 부른다, 그렇게 하지 않겠느냐"고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새누리당 역시 조사1과장이 핵심 보직임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 변수'가 떠오르자 새정치연합도 더욱 강경해졌다.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특별법 통과 때 국민적 기대를 반영했다. 당시 대통령 비롯한 무엇이든지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다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시간이 지나서 국민적인 열기가 떨어지니 이젠 진상조사를 하지 않고 넘어가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오후 2시 35분경 의원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의원님들께 중간보고 드립니다]
시행령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조사업무의 모든 권한에 집중되는 조사1과장에 4급 상당 별정직이 아닌 검찰 서기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의지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저녁 무렵, 협상 '급물살'에 여야 합의안 도출에 성공

오후 4시 여야 원내대표는 당내 여론 수렴을 마치고 본격 협상에 돌입했다. 협상은 약 2시간 30분간 진행됐다. 그리고 합의문을 도출해 냈다. 당초 합의사항 초안은 다음과 같았다.

합 의 사 항(초안)

1. 5월 28일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 및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안'을 처리한다.

2. 5월 28일 본회의에서 이미 본회의에 부의되어 있는 57건의 법률안을 처리하고 상임위원장을 선출한다.

3-1. 5월 28일 본회의에서,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하고, 수정·변경 요구를 받은 행정기관을 이를 지체 없이 처리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한다.

3-2.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의 경우에는 농해수위에 여야 각 3인으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점검 소위'를 구성하여 법률의 취지와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는 사항을 점검하고, 개정요구안을 마련한 뒤 이를 6월 임시회 중 상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결한다.

3-3. '세월호 특별법'의 시행일과 특조위 위원들의 임기 및 위원회 활동 기간의 불일치 부분에 대한 정비를 통하여 특조위의 활동 기간을 보장하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6월 임시회 내에 처리한다.

4. '공적연금 강화 합의문'을 폄하하고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불신을 초래한 데 대하여 정부의 책임 있는 당사자로 하여금 6월 임시회 중 첫 번째 개의하는 상임위원회 또는 공적연금강화특위에서 유감을 표명하고, 향후 '공적연금 강화 사회적 기구'의 논의에서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표명한다.
여야 모두 의원총회 추인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새정치연합 이춘석 수석부대표는 "새누리당 협조를 안 하면 실제로 그것을(국회법 개정안 처리) 할 수 있겠느냐는데 우려하시는 분들이 있다. 3-1과 3-3은 현금적 측면이 있고 3-2는 어음적 측면이 있는 것"이라며 "농해수위 위원들이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조사1과장을 민간으로 임명토록 여야 합의에 명시하자는 입장에서는 한 발 뒤로 물러선 셈이다.

즉 국회법 개정안이 3-1의 내용대로 통과돼 시행령 개정 요구의 근거가 마련되더라도 새누리당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은 문제없다"며 소관 상임위인 농해수위에서 반대하면 실질적 개정이 어렵다.

그럼에도 조사1과장을 민간 인사로 교체하기 위한 근거법의 물꼬를 열게 됐다는 측면에서, 새정치연합은 "나쁘지 않은 협상안이다"라며 먼저 치고 나갔다. 의원총회를 열어 오후 8시 45분경 만장일치로 여야 원내 지도부의 합의문을 추인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오후 9시 20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는 데 실패했다. 일부 의원이 국회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기 때문이다. 주로 법률가 출신, 친박계 의원이 이를 반대했다. 청와대의 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세월호 시행령 자체의 문제보다 국회법 개정안으로 여당 내 쟁점이 옮겨갔다. 3-1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였다. 3-1이 무산되면 합의문 3항의 모든 문구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의총이 끝난 후 "3-1은 문구 조정이 필요하다. 원내대표에게 일임하기로 했고, 야당 (이종걸) 원내대표를 다시 만나 문구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로써 3차 협상에 돌입하게 된다.

새누리 강경파, 유승민 합의안에 '불신임'새정치연합 "한 자도 고칠 수 없다"

친박계를 중심으로 위헌 소지가 제기된 3-1을 법사위에서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같은 입장이 야권에 전달되자 새정치연합 소속인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한 자도 못 고친다"고 버텼다. 같은 당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3-1은 가장 핵심이고 상징적인 건데 이를 빼고 추인하는 것은 오늘 합의를 깨자고 하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의 의총 중간중간 나오는 의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나섰다. "합의 정신은 존중하되 법사위에서 전문가들로 하여금 위헌 소지 있는 부분을 자구 수정하도록 하자고 우리는 너무 당연한 얘기를 했다"라며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아무리 중요하고 급하지만 그것을 통과시키기 위해 위헌 소지가 있는 법을 우리가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김 대표가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반박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끝내 청와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입법부를 청와대의 수하 기관으로 여기는 그 오만과 횡포에 새누리당이 굴복했다"며 "그간 쌓아왔던 여야 간 신뢰도 무너졌다. 지금이라도 새누리당은 국민과 법치로 돌아와야 한다"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은 "유승민 원내대표가 오늘 합의했음에도 새누리당 의총을 빌려서 사실상 청와대가 합의를 파기한 것이다. 이는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불신임이다. 유 원내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를 내걸고 강경하게 나갔다. 즉, 당초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사항을 고쳐야 한다면, 공무원연금 처리까지 무기한 연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셈이다.

회기 종료 시각인 자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본회의는 계속 미뤄졌다. 물리적으로 28일 안에 본회의를 열고 처리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결국 여야는 이 사안을 다음날로 넘길 수밖에 없다는 데 공감대를 가졌다. 이때만 해도 무산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다음날부터 여야 사이에 한랭전선이 드리워질 것으로 보였다.

막판 유승민의 과감한 결단당·청 갈등 불씨 될까?

자정을 3분 앞둔 오후 11시 57분, 가까스로 여야는 회기 연장에 합의했다. 29일 중에 처리키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자들도 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반전이 벌어졌다. 자정이 지난 후 유승민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10분 후에 이종걸 원내대표를 만난다. 가능하면 오늘 새벽에도 본회의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에서 원안대로 해준다고 연락이 와서 사인하러 간다. 국회 일정은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막판에 유 원내대표가 원안을 밀어붙이기로 한 것이다. 친박계를 중심으로 한 새누리당의 일부 의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내린 결단이었다.

새벽 1시경, 양당 원내대변인이 합의문 발표를 위해 국회 정론관에 섰다. 극적 합의였다. 다음은 여야가 진통 끝에 서명한 합의문이다.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원내수석부대표 합의안

1. 5월 29일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 및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안을 처리한다.

2. 5월 29일 본회의에서 이미 본회의에 부의돼 있는 57건의 법률안을 처리한다.

3-1. 5월 29일 본회의에서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회가 수정. 변경을 요구하고 수정. 변경을 요구받은 행정기관은 이를 지체 없이 처리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한다.

3-2.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의 경우, 농해수위에 여야 각 3인으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점검 소위를 구성하여 법률의 취지와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는 사항 등을 점검하고 개정요구안을 마련한 뒤 이를 6월 임시회 중 상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결한다.

3-3. 세월호특별법의 시행일과 특조위 위원들의 임기 및 위원회 활동 기간의 불일치 부분에 대한 정비를 통하여 특조위의 활동 기간을 보장하는 세월호특별법 개정안을 6월 임시회 내에 처리한다.

4. 공적연금 강화 합의문을 폄하하고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불신을 초래한 데 대하여 정부의 책임있는 당사자로 하여금 6월 임시회 중 첫 번째 개의하는 상임위원회 또는 공적연금강화 특위에서 유감의 표명과 함께 향후 공적연금 강화 사회적 기구의 논의에서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표명하도록 한다.

우여곡절 끝에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개정을 위한 국회법 개정안이 이날 새벽 4시경에 처리됐다.

불씨는 남아 있다. 국회법 개정안을 통해 정부 시행령을 고칠 수 있도록 한 근거를 만든 것에 대해 청와대와 친박계가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유 원내대표의 막판 결단이 당·청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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