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담배 끊어봤자…아토피와 쪼그라든 폐!

[죽음의 먼지, 대한민국을 덮치다 ③]

(☞관련 기사 : ① 미세 먼지, '괴물'이 실체를 드러내다, ② 오늘 1명이 또 '괴물'에게 먹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5년 초, 묵시록 같은 제목을 단 책 한 권이 나왔다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미세 먼지 PM10에 덮힌 한국의 미래"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의 제목은 '아픈 아이들의 세대'. 저자는 나중에 '88만 원 세대'로 유명해진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입니다.

지금도 책이 나오자마자 한 토론회 장에서 발표하던 우석훈 박사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는 서울이 "아이를 낳을 수도, 건강하게 기를 수도 없는 지옥"이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이다, 결국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습니다. 아토피 피부염 아이를 둔 엄마의 사연을 얘기하다 울음을 터뜨린 것이죠.

우석훈 박사가 지목한 서울을 지옥으로 만드는 주범은 바로 미세 먼지입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죠.

"진물에 피가 섞여 나오는 데도 아이는 긁는 것을 멈추지 못해요. 우는 아이를 앞에 두고도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바로 그 아토피 피부염이 바로 미세 먼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금 아토피 피부염이 급격히 늘어나는 이유가 미세 먼지라고 확신합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의 이런 주장은 거의 반향을 얻지 못했습니다.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통 받는 10대 이하의 '아픈 아이'가 약 50만 명. 특히 0~4세의 어린아이가 약 32만 명이나 되는 현실을 염두에 두면 기이한 일이었죠. 그런데 그로부터 거의 8년이 지난 2013년 10월 24일 환경부가 보도 자료를 하나 발표했습니다.

"대기 오염 물질, 아토피 피부염에 영향 끼쳐."

ⓒ프레시안(최형락)

아토피의 저주

아기를 키웠던 엄마, 아빠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아토피 피부염 걱정을 합니다. 저도 돌이 지나기 전까지 아기 몸에 작은 발진만 나도 혹시 아토피 피부염 증상은 아닌지 노심초사했습니다. 조산 위험 때문에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홍역을 치렀던 터라서 더욱더 그랬죠.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그 고통을 모르는 '조산'의 끔찍한 기억도 언제 기회가 있으면 공유하겠습니다.)

아토피 피부염은 우리 몸의 면역계에 문제가 생겨서 일어나는 알레르기 질환입니다. 아기 때부터 10대까지는 심한 피부 질환을 앓죠. 어른이 되면 피부 질환은 나아지지만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옵니다. 천식, 알레르기 비염 등 각종 알레르기 질환으로 고생하게 되죠. 정말로 '아픈 아이'에서 '아픈 어른'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아토피 피부염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병이 그렇듯이 아토피 피부염도 유전됩니다. 아빠, 엄마가 아토피 피부염을 앓았거나 천식이나 알레르기 비염 같은 질환을 가진 경우에 아이가 아토피 피부염에 걸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입니다. 도대체 아토피 피부염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과학자는 청결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몸이 다양한 이물질에 감염될 기회가 적어지면서 나타난 이상 반응이 아토피 피부염이라고 지적합니다. 형제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외부 감염의 가능성이 큰 아이일수록 아토피 피부염이 적다든가, 도시보다 농촌에서 자란 아이들이 아토피 피부염이 적다든가 하는 연구가 이런 주장을 지지하죠.

다른 쪽에서는 우리 몸을 둘러싼 다양한 유해 물질이야말로 아토피 피부염의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 먹고 마시고 숨 쉬는 모든 것들이 너무 빨리 변했죠. 불과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우리 몸이 그런 물질에 적응하는 것은 불가능했고요. 그런 물질이 끊임없이 우리 몸을 공격해대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질환이 아토피 피부염이라는 것이죠.

아토피 피부염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위에서 언급한 여러 요인이 한꺼번에 상호 작용하면서 나타난 결과로 봐야겠죠.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미세 먼지 역시 그런 요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환경부의 발표가 바로 그 증거죠.

ⓒ프레시안(손문상)

미세 먼지와 아토피의 관계를 밝혀라!

2009년 7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삼성서울병원 아토피환경보건센터는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22명의 어린아이를 추적 관찰했습니다. 매일 매일 일지를 써가면서 아이의 아토피 피부염 증상을 자세히 기록했죠. 그리고 이 기록을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측정한 미세 먼지를 비롯한 대기오염 물질의 일일 농도 변화와 비교를 해봤습니다.

사실 대기오염 물질이 아토피 피부염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특히 '새집 증후군'을 유발하는 벤젠, 톨루엔 등의 휘발성 유기 화합물과 아토피 피부염이나 천식과 같은 알레르기 질환과의 관계는 주목을 받았죠. 그러니 이번 연구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미세 먼지와 아토피 피부염 사이의 관계입니다.

초미세 먼지(PM2.5)가 1세제곱미터당 불과 1마이크로그램만 증가해도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0.67% 악화되었습니다. 특히 겨울에 초미세 먼지 농도가 높을수록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크게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죠. 미세 먼지(PM10)도 비슷해서 1세제곱미터당 1마이크로그램이 증가하면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0.4% 증가했죠.

이 연구 결과대로라면, 미세 먼지가 아토피 피부염을 낳는 원인은 아닐지라도 증상을 악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임은 틀림없습니다. 미세 먼지와 아토피 피부염이나 천식 같은 알레르기 질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앞으로 더 진행된다면, 이 괴물의 정체를 더 자세히 알게 되겠죠.

ⓒ프레시안(최형락)

임신 중 담배를 끊어봤자…

사실 아토피 피부염뿐만이 아닙니다. 미세 먼지를 비롯한 대기오염 때문에 우리 아이의 폐도 망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2004년 발표된 연구 결과가 충격적입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10세 정도 되는 학생 1759명을 모아서 8년간 폐 기능을 추적 검사했습니다. 당연히 초미세 먼지(PM2.5)를 비롯한 대기오염 물질도 측정해서 양자 간의 관계를 살폈죠. 결론은 어땠을까요? 초미세 먼지에 많이 노출된 아이가 적게 노출된 아이에 비해서 폐의 호흡 기능이 정상 상태의 80%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4.9배나 높았습니다.

이렇게 아이의 폐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임신 중에 담배를 피운 것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초미세 먼지 농도가 높은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임신 중에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죠. 그렇게 폐 기능이 떨어진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은 어떨까요?

(여기까지 연재를 읽으신 분들은 당장 이런 반문이 나올 법합니다. '미세 먼지가 나쁜 건 이제 알겠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이제 그 질문에 답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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