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사업, 두 바퀴가 함께?

[생협평론] 협동조합의 지형

<로치데일 선구자>(Rochdale Pioneers)라는 영화가 있다. 영국의 The Cooperatives Group의 전신이자 협동조합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인데, 이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 조합원들이 수레를 끄는 모습이 나온다. 흔히 협동조합은 운동의 바퀴와 사업의 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앞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하나만 돌면 같은 자리를 계속 빙빙 맴도는 일이 일어나니 이 비유는 협동조합을 표현하는데 꽤 적절하다.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한 수레바퀴를 미는 장면을 보고 협동조합의 이런 특징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연유도 그러하다. 영화의 법칙에는 '오프닝 5분을 잡아라'라는 말이 있는데 첫 장면에 주제를 담아 관객을 매혹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관점에서 많고 많은 명장면 중에 그 수레가 등장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하다보니 이르게 된 지점이었다. 실제 이 영화의 포스터에도 그 수레를 끄는 장면이 등장한다. 수레를 그렇게 꼭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라면, 그리고 이것이 협동조합의 뿌리를 다룬 영화라면 그 이유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그렇게 무익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Rochdale Pioneers

그렇다면 도대체 운동의 바퀴와 사업의 바퀴를 함께 굴린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아무도 알지 못하기에 그 길을 찾아 나선 이들을 개척자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개척자와 선구자는 영문으로 모두 Pioneer이다. 두 바퀴의 균형을 찾고자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찾아내려는 노력을 보면 협동조합 기업가들에게서 개척자의 모습이 겹쳐지곤 한다. 서부시대의 개척자(Pioneer)와 로치데일의 선구자(Pioneer)는 목표와 목적이 다르지만 그 체험만큼은 같았을 것이라는 게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협동조합 기업가들을 만나면서 든 생각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만큼 외로운 일은 없으니 말이다.

2013년 11월부터 매달 2~3개의 기업을 정기적으로 인터뷰하며 협동조합 기업가들을 만났다. 그러다 보니 일부는 협동조합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볼 수 있었고 일부에서는 협동조합의 전형을 발견하기도 했다. 무엇이 맞는지를 말하는 것은 나의 역할이 아니니 그대로 두기로 한다. 다만 이 귀중한 지면을 빌려서 말하고자 하는 글은 운동의 바퀴와 사업의 바퀴를 굴리고 있는, 미지의 땅을 새롭게 개척하고자 하는 한국 협동조합의 모습을 불러오는 일이다. 운동의 바퀴와 사업의 바퀴를 따로따로 굴리지 않고 함께 굴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균형점을 찾고 있는가. 그리고 왜 지금인가. 한국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협동조합의 개척자들을 지금부터 소개한다.

협동조합 간의 협동을 실현하는 해피브릿지

해피브릿지의 행보가 흥미롭다. 2015년 1월 해피브릿지는 행복중심생협과 협동조합간의 협동을 실현하기 위한 MOU를 체결하고 작년 2월에는 몬드라곤 대학과 MOU를 체결했다. 해피브릿지는 한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노동자협동조합의 연합회인 대안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에도 가입되어 있다.

"협동조합은 주식회사가 지불하지 않아도 될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단점이 있어요. 그럼 장점은 무엇이냐 이거죠. 저희는 그게 협동조합 간의 협동이라고 보는 겁니다."

해피브릿지의 송인창 이사장은 협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최소화 하고 사업적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협동조합 간 협동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주식회사는 돈이 되면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습니다. 돈이 안 되면 쓸모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신뢰가 있어야만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사업이 있어요."

해피브릿지는 그게 전산화 사업이라고 했다. 수익성의 부침에 따라 쉽게 얼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항시적인 관점에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희 가맹점이 이용하고 있는 전산화 시스템은 이미 과포화 단계가 되면서 2년 전부터 사업성 검토를 했어요. 그런데 전산부문을 외주하게 되면 처음에는 저렴한 비용에 이용할 수 있지만 정보가 쌓이면 자본기업들은 얼굴을 바꾸고 높은 비용을 요구하거든요."

해피브릿지는 그래서 직접 개발하고 관리하기위해 행복중심생협과의 협동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유통이라는 관점에서 공통분모가 있고 전산처럼 유지가 중요한 부분은 신뢰가 정말 큰 비용절감이 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협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사업으로 구현하는 방식을 찾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인 것이다. 해피브릿지는 행복중심생협 뿐만 아니라 외식사업의 다각화를 위해 와플대학 협동조합과도 새로운 협동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와플대학은 아이디어를, 저희는 시스템을 모아 시장의 경쟁력을 갖춰야죠."

협동조합간의 협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

협동조합은 7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것이냐는 개별 협동조합의 몫이다. 원칙이라는 말이 불러오는 완고함과 달리 협동조합 7원칙은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생물에 더 가깝다.

"한국처럼 외식사업 환경이 극단적으로 변하는 시장은 많지 않을 거예요. 외식시장의 규모는 점점 커져가지만 소비자들의 입맛이 빠른 유행을 타면서 사업 환경의 변수는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괜찮지만 다음은 장담할 수 없어요."

주식회사는 이때 사업다각화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지만 기업의 규모가 작은 협동조합은 다각화를 하기에는 꾸준한 투자, 인재 등 유무형의 자원 모두 부족하다. 설상가상 협동조합은 자본금 조달에도 결정적 단점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 협동조합을 얘기할 때 흔히 안정적인 일자리, 복리후생 이런 것들을 얘기해요. 그런데 그건 목적지 일뿐 과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시장이 변화하면 해피브릿지도 어려워 질 수밖에 없으니 사업다각화를 협동조합으로 할 수 있다면 그것이 협동조합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간의 협동이 해피브릿지 성장의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의 전환

해피브릿지는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사례로도 유명하다. 특히 직원이 140여명이나 되는데다 노동자들이 출자해 임노동이 아닌 주인노동을 한다는 점에서 이름뿐만 아니라 조직의 체질과 관성도 모두 전환해야하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저희는 그래서 전환했다가 아니라 전환중이라고 말해요. 임노동자가 하루아침에 주인으로 바뀌지는 않잖아요."

해피브릿지는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2년전 보다는 조합원들이 달라졌다고 했다.

"저희가 작년에 교육비로만 2억을 썼어요. 저희 사업규모로는 제법 큰 투자였습니다. 조합원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서도 지원하고 조합원 5명이 모여서 강좌를 개설하면 조직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그 노력의 결실이 차츰 빛을 발하고 있어 앞으로도 그 노력은 쭉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송인창 이사장은 언어도 중요하다고 했다.

"임노동을 극복하기 위해서 주식회사에서 쓰던 언어들은 안 쓰려고 노력합니다. 평가와 보상이라는 말 대신 좀 더 주체적인 '측정'과 '배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요. 주식회사에서는 인건비는 고정비로서 줄여야 할 대상이지만 협동조합에서 인건비는 조합원의 삶의 질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도 하거든요."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일에 자본사회에 물든 인간의 관점도 함께 이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76명의 조합원은 1000만 원 가량을 출자했고 이를 연봉수준까지 늘린다는 것이 해피브릿지의 계획이다. 관점은 여전히 '전환중'이다.

목표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아니라 기업가 정신의 발현

"해피브릿지의 목표는 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조합원들이 계속 새로운 사업을 열어야 해요. 해피브릿지가 하나의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되는 거죠."

임노동과 대비되는 말로 주인노동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과연 주인노동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출자금을 내고 출퇴근 시간을 잘 지키고 시키는 것을 책임지고 잘 하는 것으로 충분한 걸까?

"주인노동은 결국 조합원 모두가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계속 새로운 모험을 하면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가 목표로 하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만들어집니다."

선구자(pioneer)가 개척자(pioneer)로 보이는 까닭이다. 해피브릿지는 그런 목표의 일환으로 청년들에게도 해피브릿지의 시스템을 이용해 창업을 경험하고 실패도 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 계획을 준비 중에 있다. 일자리가 없다면 일자리를 만들거나 만들어진 일자리에 들어가야 하는데 당분간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 해피브릿지는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협동조합은 혼자 살 수 없다고 생각해요. 협동의 토양이 넓어지고 생태계가 꾸려지고 거기서 연대와 협동이 사업으로 작동해야 해피브릿지도 지속될 수 있습니다."

해피브릿지는 그래서 몬드라곤대학과 함께 한국에 고급과정의 협동조합 교육과정도 개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노동자협동조합의 선배격인 해피브릿지의 행보와 노력이 어떤 결실로 맺어질까. 확실한 점은 노동자협동조합의 성공 사례가 일천한 한국사회에서 많은 기대감을 불어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그 길은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이라는 점이다. 해피브릿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화제로 떠오른 학교협동조합

학교협동조합이 화제다. 교육청에서도 앞 다투어 학교협동조합을 추진하고 있는 모양새다. 2013년에는 경기도 교육청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학교매점협동조합 시범사업을 체결했고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2014년 GSEF 사회적경제와 교육세션에서 "학교협동조합의 형태로 교육영역에서 사회적 경제를 확장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런 바람에 힘입었을까. 서울시 고등학교에도 학교협동조합이 생겼다. 바로 독산고다. 서울 독산고와 성남의 복정고는 학교협동조합을 만들어 매점을 운영한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과 내용은 상이하다. 독산고가 학부모가 주축으로 만들어진 사례라면 복정고는 성남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등 다양한 자원이 모아져 시작된 사례다. 독산고가 스스로를 낳았다면 복정고는 낳아진 것이다. 서울시 조례개정, 협동조합 교과서 편찬 등 학교에도 협동조합이 필요하다는 당위에는 더 보탤 말이 없을 만큼 공감대가 이루어졌다. 기본법 제정 2년 후 사회적경제는 이제 학교로 스며들고 있다.

학교협동조합은 사업조직을 넘어 학생들의 자치 모델

"학교협동조합이니까 아이들에게서 매점이름을 공모 받았는데 한 아이가 ‘학수고대’라고 한 거예요. 학수고대. 매점가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린다는 뜻인데,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요. 아이들에게서 매점이 교실과 달리 특별한 의미가 있구나 하고요."

독산누리 사회적협동조합의 김현미 이사장의 말이다. 김현미 이사장은 먹을거리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관점에서만 매점을 바라봤지만 아이들이 매점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때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매점이 참 의미있는 공간이구나. 여기서 아이들과 새로운 일을 벌여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독산고등학교 학교매점협동조합 독산누리 사회적협동조합

성남시 복정고등학교의 강연수 교사도 학교협동조합은 단순히 매점만은 아니라고 했다.

"학교매점협동조합을 하면서 윤리적 소비를 경험하고 회의를 운영해보고 의사결정을 모아보는 일 자체가 특별한거죠. 학생들이 총회준비위원회도 꾸려서 참여해보는 경험 자체가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 전에는 학생자치가 학생회 밖에 없었는데 또 하나의 창구가 생겼으니까 경험이 쌓일 수 있는 방식이 하나 더 생긴거죠."

그럼에도 아직은 학교의 변화, 교실의 변화를 이야기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했다. "학교협동조합도 협동조합이에요. 빨리빨리가 되지 않는 곳이에요.(웃음)"

가장 큰 어려움은 학교라는 것

학교협동조합의 가장 큰 어려움은 학교라서 생긴다.

"아이들은 1학년에 들어오고 2학년 때 조금 배울만하면 3학년 입시 때 물러나 졸업하는거예요. 인적구성의 로테이션이 빠른거죠."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교사도 발령이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만큼 교사도 교체된다. 경험과 노하우가 사람이 아니라 조직문화와 시스템에 녹아들어야한다는 점은 일반 협동조합과는 사뭇 다른 지점의 고민이다. 복정고의 고민은 또 있다.

"교육도 쉽지가 않아요.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수업을 들었는데 협동조합 교육을 해야 한다고 또 강의를 들으라고 하면 아이들도 지쳐서 사실 효과도 안 좋아요. 아이들이 재밌게 참여할 수 있고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협동조합 교육이 필요해요."

학교협동조합의 교재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만큼 이런 고민을 잘 반영해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독산고의 고민은 매출이다. 아이들의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판매하는 물품의 마진을 높이지 못한다는 거다. 독산고는 조례제정 전에 최고가 입찰로 들어와 박한 마진은 고스란히 비용으로 전가된다.

"마진이 보통 70원 80원 많아도 100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매출과 달리 실제 수익은 높지 않죠."

서울시는 조례가 제정돼 수의계약이 가능해졌지만 서울시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매점협동조합이 여전히 최고가입찰제이다. 최고가입찰제일 경우 높은 입찰가는 그만큼 협동조합에 비용이 되는 만큼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학교협동조합도 필요의 결과

성남시 복정고는 경기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지역사회의 생협조직들,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지원을 받았지만 지원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복정고 학교 자체가 만들어진지 5년 밖에 안됐어요. 신설학교다보니 주변에 편의시설이 하나도 없이 자판기 하나밖에 없어서 학생들 불편함이 컸죠."

불편함은 필요가 되고 그 필요가 다양한 사회적자원과 결합해 협동조합이 됐다는 말이었다. 부모들이 중심이 된 구로 독산고의 필요는 복정고와는 조금 달랐다.

"처음에 학교운영위원으로 참여하다가 학교에 문제제기를 했어요. 아이들을 통해 번 수익을 다시 학교에서 써야하는데 그게 어디로 쓰이는지 투명하지가 않은 거죠. 그때 다른 학교협동조합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도 해보자, 하는 생각이 처음 든거죠. 이왕이면 안 좋은 거 팔아서 아이들 복지를 위해 쓰기보다 몸에 좋은 걸 팔아서 학생들을 위해 쓰자고 해서 생협의 물품도 취급하게 됐구요."

독산누리 사회적협동조합 매점에는 친환경식품, 첨가물의 위험성, GMO식품에 대한 내용을 담은 판넬들이 빼곡히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전자렌지를 돌리는 학생들에게 전자렌지에서 좀 떨어져 있으라는 이사장님의 잔소리도 매점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다양한 자원이 모여

협동조합의 도시를 캐치프레이즈로 한 서울시보다 성남시에서 학교 협동조합이 먼저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성남시의 이재명 시장과 경기도 교육청, 더군다나 성남에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도 있어 서울 못지않게 다양한 사회적 경제 자원이 흐르고 있다.

"성남시, 교육청, 진흥원에서도 계속 도와주시고 성남 인근 지역 생협에도 많이 도와주셨어요. 처음에는 너무 도움만 받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민이 많았는데 그 관심과 격려가 이젠 정말 큰 힘이죠."

학교협동조합은 학교라는 공간의 특성상 배움과 분리불가능하다. 만약 아이들이 국영수와 함께 협동과 민주주의도 배운다면, 이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기성세대가 된다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까? 그 변화의 가능성을 고려하면 다양한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학교협동조합을 지원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일반 성인들도 익숙하지 않은 정관과 규약, 총회운영방식 등 성인에게 맞춰진 협동조합 시스템을 고려하면 이런 지원이야말로 학교협동조합이 목말라 하는 부분 중 하나이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독산고 매점은 꼬박 12시간동안 문을 열어둔다. 학교라는 사회가 교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12시간 문을 열고 있는 협동조합 사회는 학교에 새로운 경험을 불어넣고 있다. 실제로 복정고에서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학생은 이런 말을 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점이 제일 좋아요."

그 몰랐던 점이란 서로 의견을 모으고 차이를 하나로 합의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서로 의견이 달라서 다투지는 않느냐는 질문에는 '왜 그래야 하죠?' 라는 표정으로 각자의 의견은 합칠 수 있는 것은 합쳐서 추진한다고 답했다. 타협의 과정이 분리와 배제, 탈락이 아닌 결합과 수용, 공감을 기반으로 한다는 말이었다. 1인 1표의 민주적 의사결정이 다수결로만 그칠 경우 분리와 배제, 탈락의 방식이 오히려 자본기업의 1원 1표제보다 더 폭력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걸까? 학교협동조합을 경험한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어떤 모습이 될지 기대된다.

한국의 발달장애 협동조합

<위캔두댓>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는 이탈리아 논첼로(noncello) 사회적협동조합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제작됐는데, 주로 발달장애, 자폐를 앓고 있는 발달장애인의 자활을 담은 이야기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정신병원의 강제격리수용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해 정신장애인에게 약물과 격리가 아닌 일상과 노동을 통한 회복을 주장한바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논첼로가 태어났다. 한국에도 비슷한 협동조합이 있다. 산울베리 사회적협동조합과 연리지장애가족사회적협동조합이다.

그럼 현실도 영화와 같을까? 애석하게도 한국에 논첼로 협동조합이 등장하더라도 한국사회의 부박한 현실에서는 영화 같은 성공 스토리는 쉽지 않다는 게 그들의 이야기다. 한국의 산울베리 사회적협동조합과 연리지장애가족사회적협동조합을 찾아 영화와 현실을 넘나들며 장애인협동조합의 현실에 대해 물었다.

한국의 위캔두댓, 산울베리 사회적협동조합

"정신병동에 격리 수용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에요. 최고의 해결책은 일상에서 살아가면서 치유되는 거죠. 그래야 비장애인의 인식도 바뀝니다."

산울베리 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산울베리)에서 돌봄을 받고 있는 발달장애인 대부분은 폭력성이 많아 일반 시설에서도 퇴소당하거나 정신병원으로 가기 직전의 단계에 놓여있는 상태다. 담당 교사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어 3교대로 교사가 운영될 정도이다. 관리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산울베리의 유선미 팀장은 그럼에도 격리수용 보다는 일과 노동을 통해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지금처럼 정신병동의 격리와 배제는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감옥과 다르지 않습니다."

높은 관리비를 감내하면서도 이들을 돌보는 이유는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블루베리 농장에 일주일에 두 번씩 가면서 화분도 나르고 흙도 만지고 바람도 쐬니까 이제는 먼저 언제 가냐고 묻기도 해요.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부모님들도 통장에 월급을 찍히는 것을 보고 많이 놀라셨죠. 정신병원으로만 가야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산울베리는 블루베리 농장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돌봄서비스를 운영하는 모델로 사회적협동조합을 시작했다. 설립된 지는 이제 1년 6개월이 넘었다.

"오죽하면 부모가 나섰을까"

대전에 위치한 연리지장애가족사회적협동조합(이하 연리지)은 부모들이 모인 협동조합이다.

"우리끼리 이런 얘기도 해요. 오죽하면 부모가 나섰을까. 부모가 나서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발달장애를 가진 청소년, 성인들의 미래는 불안하거든요."

연리지는 발달장애 자녀들을 가진 부모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모임에서 시작됐다. 연리지의 최명진 이사장은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제정되면서 부모 스스로 학교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자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그전에는 학교에서 아이를 거부하면 왈칵 울면서 뒤돌아섰거든요. 이제는 당당히 요구하면서 부모들도 경험한 거죠. 하면 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학교를 졸업해도 장애인의 삶은 계속된다. 학교는 달라지고 있지만 지금 장애인 복지시스템에는 20대 이후의 삶은 부재하다.

"발달장애를 가진 20대의 삶이 제일 걱정이죠. 부모가 계속 함께 살수는 없는 거고 자립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회인식이 일자리의 문을 단단하게 잠그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연리지는 부모들이 모여 발달장애청소년이 졸업 후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세차사업을 시작했다. 세차는 분업이 가능한데다 집중시간이 짧기 때문에 발당장애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업종 중 하나라는 판단에서다.

"연말에 직원들에게 우리 잘했다. 2년 동안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했어요.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버티는 것만으로도 저희에겐 칭찬할만한 일 인거죠."

노동집약적인 업종임에도 비장애인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없다보니 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2년간을 '버틴' 이유는 매출에 대한 기대 때문만은 아니다. "장애인도 일할 수 있구나, 지역사회에서 평범하게 살 수 있구나, 이게 저희가 사업을 하는 이유에요."

협동조합의 이중고, 장애인에겐 삼중고

장애의 문제는 개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당사자들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이들의 사업의 성패가 일반 시민의 인식과 잇닿아 있는 만큼 사회적협동조합에 대해서만큼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지자체는 법인이 아니어서 지원을 못해준다고 하고 이제는 법인이 되니 담당 공무원이 바뀌었다며 다시 원점이에요. 다 알아서 하라고 한다면 부모나 활동가들이 희생하는 것밖엔 달리 도리가 없어요."

성공의 결실을 몇몇 사람이 아닌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사회 전체가 공기처럼 누릴 수 있다는 점도 이들이 주장하는 근거다.

"성공해야죠. 그래서 돈도 벌어야 하고 조합원 관리도 하는 것 외에 저희는 인식개선사업도 함께 해야 해요."

영화 <위캔두댓>에서는 서번트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조합원이 천재적인 예술적 재능을 발견해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다. 천재를 등장시키지 않고서는 논리적으로 영화의 성공스토리를 납득시킬 방법이 없었던 건 아닐까?

발달장애협동조합에 지원이 필요한 이유

정부의 관료적인 서비스제공방식보다 사회적경제에서 기업가 정신이 반영된 고객 중심적 서비스 제공은 예산의 집행과 효율 면에서 비용우위인 점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을 볼 때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협동조합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하기 어려운 일을 사회적경제와 분담해서 해야 한다면, 특히 지금처럼 당사자들이 절실히 나서서 하고자 하는 의지를 천명하다면 정부의 정책적 우산이 마냥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의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협동조합이 성장하기 위한 생태계 중 하나를 정부의 지원이라고 했다. 이탈리아는 전 세계에서 사회적협동조합 법률이 제일 먼저 생긴 나라이기도 하다. 20년간 장애인복지를 위해 일하고 있는 유선미 팀장은 협동조합이 현 복지제도에 시사점도 있다고 주장했다.

"협동조합이 복지체계에 불러올 변화 중 하나는 건강한 조직구조도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점이에요. 보조금을 부정수급한 장애인시설 등 장애인관련 보도를 봐도 초기의 창립정신과 달리 2세대, 3세대로 경영구조가 대물림되면서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잖아요."

지금의 구조에서는 터무니없는 행동을 자정할 수 있는 내부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소수에 의한 과두지배가 아닌 다수에 의한 관리, 특히 직접적 이해관계자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만큼 사회복지 분야의 협동조합을 도입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얘기이다.

영화 <위캔두댓>과 산울베리, 연리지 모두가 만들고 싶은 미래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일상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런데 단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두 협동조합은 힘겨운 하루를 다투고 있다. 이 힘든 하루를 견디는 이유는 이들이 특별해서는 아닐 거다.

"장애아동을 낳기 전에는 학교에서 발표도 잘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래요. 우리 아이가 저를 새로 태어나게 했다고."

최명진 이사장은 아이를 낳고 헌신적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이 뒤바뀌었다고 했다. 인권이라는 거창한 수사를 쓰지 않아도 장애인을 배제하고 격리한다면 비장애인에게도 과연 어떤 미래가 남을까? 잘 먹고 잘 살기가 아니라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사회적협동조합을 선택한 이들의 행보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까닭이다.

위에서 살펴본 협동조합 말고도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모여 만든 맑은손공동체노동자협동조합, 청년들이 모여 대안적인 주거를 만들고 있는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도 기대되는 협동조합 중 하나이다. 협동조합은 필요를 모아 사업을 한다는 점에서 실리적이고 그 필요가 공공의 이익과 무관하지 않기에 다분히 사회적이다. 부족한 주거, 치솟는 실업률, 지역사회의 붕괴, 불안한 먹거리를 문제의식으로 내건 협동조합의 활동만 봐도 이는 잘 드러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운동의 바퀴, 사업의 바퀴가 함께 잘 맞물려 움직여야 한다. 해피브릿지는 그 열쇠를 협동조합 간 협동을 통해서 찾으려 하고 복정고는 학생자치의 안정화, 연리지는 국가복지제도로의 연계라는 낱말들을 찾았다. 그럼에도 그것이 당사자의 문제이기에 여전히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들은 기꺼이 비용을 감수하고 시간을 들이며 인내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왜 협동조합은 실패하는가, 에 대한 힌트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협동조합은 구성원들을 함께 묶어주는 공통의 필요가 존재하며 그 필요는 사업의 방식으로 실현된다는 점에서 매한가지지만 그 과정은 협동조합의 부단한 고민과 대안탐색의 결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답이 없기에 그 과정을 찾아가는 일에 선구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이리라. 모든 협동조합에 건투를 빈다.

* 계간지 <생협평론>은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가 펴내는, 협동조합을 다루는 본격적인 전문잡지로서 협동경제·나눔·평화에 대한 의견들이 교환되는 공간입니다. 정보지이자 실천적 교육서로서 협동조합 활동가뿐 아니라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 협동조합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이슈를 다룹니다.(☞ 바로가기 :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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