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 첫 방한

응우옌떤런·응우옌티탄 씨, 평화박물관 행사 참여 차 4월 초 입국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대표 이해동, 이하 평화박물관)는 당시 학살 피해자인 응우옌떤런·응우옌티탄 씨가 4월 초 한국을 찾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평화박물관에서 여는 이재갑 사진전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기간 : 4월 7일∼5월 7일, 장소 : Space99)에 맞춰 방한한다.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은 베트남전 종전 40주년이자 광복 70주년을 맞아 열리는 행사다. 이재갑 사진작가는 7년간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남긴 흔적과 현지 주민의 삶을 기록해왔다.

응우옌떤런 씨는 전쟁 당시 맹호부대 주둔지였던 베트남 따이빈사 안빈마을, 응우옌티탄 씨는 청룡부대 주둔지였던 퐁니마을 출신이다. 응우옌떤런 씨는 1966년 1004명이 목숨을 잃은 빈안 학살을, 응우옌티탄 씨는 1968년 74명이 죽임을 당한 퐁니퐁넛 학살을 겪었다.

두 사람 모두 이 과정에서 가족을 잃었다. 또한 학살 당시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크게 다쳤다. 평화박물관은 "두 분 모두 학살 당시 수류탄 파편으로 인한 상처와 총상을 입었으며, 현재까지 그날의 기억과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다.

ⓒ평화박물관


응우옌떤런·응우옌티탄 씨는 4월 4일 입국해 나눔의 집(경기도 광주) '위안부' 역사관 방문을 시작으로 일주일 동안 서울, 부산, 대구 등에서 열리는 초청 간담회에 참석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과 함께 방한하는 후인응옥번 호치민시 전쟁증적박물관장이 베트남전쟁과 베트남 사회의 오늘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 자리도 국회에서 마련될 예정이다.

평화박물관은 "이번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첫 한국 방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첫 번째 일본 방문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첫 일본 방문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용기 있게 '위안부' 피해를 증언(1991년 8월 14일)한 다음 해인 1992년에 이뤄졌다.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은 한국 사회에서 민감한 문제이지만, 역사의 아픈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고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이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1980년 5.18 당시 광주에서 군인이 시민을 학살하는 비극을 예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새겨들을 때다. (관련 기사 : 박정희 세력은 왜 합동 묘지를 파헤쳐야 했나)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이 한국 사회에 알려지기까지

베트남전에 한국이 첫발을 디딘 건 1964년이다. 이해 한국은 의료 인력과 태권도 교관 파견을 결정했다. 그 이듬해인 1965년 한국은 전투 부대를 파병하며 본격적으로 베트남전에 개입했다. 1973년까지 연인원 32만 명의 한국군이 베트남에 주둔했다.

'베트남 특수'라는 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베트남 파병은 한국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됐다. 한국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반공 성전', '국위 선양의 장'으로만 베트남 파병을 기억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행해진 전국 규모의 대규모 해외 연수"라는 표현까지 쓰며 베트남 파병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를 한국 사회에 널리 알린 것은 <한겨레21> 보도였다. <한겨레21>은 한국전쟁 등에서 민간인 학살 피해를 겪은 한국인들이 베트남에서는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1999년부터 연속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렸다. 이 보도는 많은 국민에게 충격을 줬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반발도 불렀다. '한국군의 명예를 더럽힌 보도'라는 반응이었다. 2000년 '고엽제 전우회' 회원들이 보도에 반발해 <한겨레>를 습격하는 일이 벌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진실이 알려진 후 반발이 만만찮았지만, 베트남전 당시 학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자는 국민적 흐름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문명금·김옥주 할머니가 "더 이상 우리 같은 전쟁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며 성금을 냈고, 이를 종잣돈으로 삼아 평화박물관 건립이 추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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