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사표' 없애려면…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중앙선관위 제안에 대한 비판적 검토

지난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역주의 완화, 유권자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는 선거제도 개선, 정당정치 활성화 방안'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제시하였다. 이후 이와 관련한 찬반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여기서는 몇 가지 쟁점들을 중심으로 필자의 대안과 함께 그 근거에 대해 살펴보겠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환영과 그 문제점

중앙선관위의 이번 제안은 대단히 파격적인 것이다. 그 내용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항목에 있는데, 6개 권역별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2:1로 배분한다는 내용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 그래서 언론의 관심이 주로 지역구 감소와 비례대표의 확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지만, 실제 훨씬 더 중요한 점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병용제로 명명하고 초과의석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염두에 둔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제안은 독일식 선거제도의 핵심부분을 차용한 것으로 기존 우리의 선거제도와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우리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구분하여 별도로 집계하지만, 독일은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로 의석수를 결정하고, 이를 다시 권역별로 지역구와 비례대표로 배분하여 당선자를 결정한다. 따라서 이번 제안은 기존 소선거구제 단순다수제에 따른 유권자들의 사표발생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으로 혁신적인 변화이다. 그런데 언론의 관련기사들을 살펴보면, 선관위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인지 또는 이를 간과한 것인지 이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것 같다.

다만 선관위의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권역 설정의 문제이다.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눈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하는지 설명이 없다. 예를 들어 인천·경기·강원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또는 어떠한 공통점을 가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 또 부산·울산·경남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더라도 3개 지역 가운데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지역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이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권역의 설정은 16개 광역시·도(세종시 제외)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래야 비례대표의 지역 대표성을 확실하게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6개 권역이 너무 많아 굳이 이를 축소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광역시·도를 먼저 통합한 후에 조정하면 된다. 독일처럼 권역을 시·도의 행정구역과 일치시키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유용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지적할 점은 선관위가 제시한 '전국 득표율 기준 3% 이상 또는 지역구 5석 이상'의 정당에게 의석을 배분한다는 봉쇄조항의 문제이다. 3% 기준일 경우, 지나치게 많은 정당들이 국회에 진입하게 되어 의견조율에 어려움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당장은 괜찮을지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독일에서는 '5% 이상 또는 지역구 3석 이상'의 정당에게 의석을 배분하고 있다.

바람직한 비례대표 확대와 지구당 부활

국회의원의 지역과 비례의석 비율을 2:1로 조정하여 지역구를 200석,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변경하는 안은 현역 지역구 의원들에게는 큰 불만이겠지만 현 상황에서 올바른 선택이며, 이는 필자가 이미 제시하였던 개정안과도 일치한다(☞관련 기사 : 지역구 국회의원, 오히려 줄어야 한다...왜?). 이 제안은 지역구를 인구 25만 명에 1석, 비례대표를 인구 50만 명에 1석으로 조정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람직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현재 많은 지역구의 인구수가 25만 명에 근접하고 있어서 선거구 조정이 현실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국회의원 지역구 의석, 이렇게 줄이자). 이는 또한 헌재의 결정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2004년 폐지되었던 시·군·구 지구당을 부활시켜 그곳에서 당원과 당비의 관리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제안도 훌륭하다. 공천권을 당원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는 당원들이 모이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중앙당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지구당 부활은 이에 대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정당들이 지역위원회를 부활하여 활성화하고, 또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게 될 시도위원회를 강화한다면 중앙당의 역할이나 권한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부조직이 부실해진 우리의 정당을 활성화하는 첫걸음은 바로 지구당을 되살리는 것이다(☞관련 기사 : 국민이 원하는 새정치, 평당원에 권한 부여해야 / 친노·비노가 당권에 목숨거는 이유는).

의미 없는 '석패율제' 도입

선관위는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 입후보를 허용함으로써 지역구에서 낙선한 후보자 가운데 일정 조건을 갖추고 상대득표율이 가장 높은 사람을 비례대표로 당선시키는 제도(석패율제)의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사족이다. 이미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결정하기로 했는데, 굳이 이 복잡한 제도를 도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역구 후보자가 동시에 시도별 비례대표 후보가 되는 것을 허용하면 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지역구든 비례대표든 '어설픈 공심위'에게 공천권을 줄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구 및 시도위원회 당원들에게 그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주의가 강하여 특정 정당은 지역구 당선이 어려운 곳에서 어떤 후보를 선출한 당원들이, 만약 그 후보를 반드시 국회로 보내야겠다고 판단한다면 비례대표 후보선출에서도 그를 다시 뽑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와 같은 동시 입후보를 허용하고 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까닭은 모든 공직 후보들을 당원들의 비밀투표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지구당 부활에 역행하는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선관위는 공직 후보 선출에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정당 후보자 추천에서 국민경선(오픈프라이머리)의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길고도 까다로운 방안을 마련하여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당의 생활정치 활성화를 위해 지구당을 허용하는 방안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지구당을 부활하여 정당정치의 활성화를 모색하면서, 정작 정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의 하나인 공직 후보 선출문제를 정당과 당원들에게 맡기지 않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국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후보선출과 관련하여 현실적으로 당 대표나 특정 계파의 전횡이 우려된다면, 독일처럼 이를 당원들의 비밀투표로 선출하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 지구당의 부활과 더불어 보다 많은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어쩌면 당원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냄으로써 정당정치가 이른 시간에 활성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공천권은 정당의 당원에게, 국민에게는 선거권을 돌려주는 것이 옳다.

그 밖에도 '선거일 11일 전부터 후보사퇴금지' 또는 '선거 임박한 깜짝 단일화 금지' 등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런 일들은 모두 소선거구 단순다수제의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제3당이 설 자리가 없었던 기존 선거제도에서는 반드시 선거 전에 연대를 통해 후보를 조정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선관위가 제안한대로 '독일식 비례대표제'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한다면, 어떤 정당도 중간에 사퇴할 이유가 없다. 끝까지 완주하여 정당득표율을 높이는 것이 곧 승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정당득표율로 의석수를 결정하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이에 따른 비례대표 의석의 확대, 그리고 지구당의 부활허용은 정치혁신을 위해 두 손을 들어 환영할 만한 훌륭한 제안들이다. 반면에 석패율제와 오픈프라이머리 제도의 도입은 앞의 제안들과 모순되거나 역행하는 발상이다. 향후 정치권의 논의에서는 이러한 점들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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