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 국정원장 내정자 "용산참사는 폭동"

이병호 내정자, 과거 언론 기고 보니 '보수본색'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국가정보원장에 이병호 울산대 초빙교수를 내정했다. 이 내정자는 1940년생(75세)으로 육사 19기 출신이며, 국정원의 전신인 구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제2차장, 국제국장을 지냈다.

대북 및 해외 정보를 총괄하게 될 이 내정자에 대해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26년 간 국정원에서 요직을 두루 거쳐 관련 경험과 전문성이 풍부하고 주미공사, 주말레이시아 대사 등을 역임해 국제 관계에도 정통한 분"이라며 "강직하고 국가관이 투철하며 조직 내에 신망이 두터워 국가정보원을 이끌 적임으로 (박 대통령이) 판단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과거 이 내정자가 언론 기고와 인터뷰 등을 통해 밝힌 생각을 보면, 냉전 시대의 대결주의적 대북관이 생각의 기저에 깔려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 내정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1년 7월 <문화일보>에 '대화가 평화 보장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글(☞바로보기)을 기고했다. 당시는 북한이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등과의 비밀 접촉을 했다고 폭로(☞관련기사 : 北 "南, 돈봉투 내놓고 남북 정상회담 구걸")한 직후다.

기고에서 이 내정자는 "북한이 남북 비밀협상 내용을 까발리면서 이명박 정부를 모욕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라며 "이런 판국인데도 최근 다시 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비판적으로 언급했다.

이어 그는 "남북대화가 그렇게 절실한 것인가? 이를 위해 국가적 존엄마저 포기하고 북한의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라며 "남북대화가 반드시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 비법은 아니다. 대화가 좋다는 명분론에만 집착, 모양만 갖추는 데 급급해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은 항상 대한민국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한번도 한국을 공존공영의 대상으로 여긴 적이 없다. (…) 남조선에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기필코 달성하겠다는 것이 북한 혁명의 최종 목표"라며 "현실의 냉철한 성찰없이 근거없는 희망만 가지고 남북대화를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 햇볕정책이 준 교훈이 바로 이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봄부터 가을에 걸쳐 <신동아> 등 언론 보도에 의해 조작 의혹이 제기된 '원정화 사건'과 관련, 이 내정자는 2009년 9월 <동아일보> 기고 '방심을 먹고 자란 여간첩'(☞바로보기)에서 "햇볕정책은 북한이 더는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환상을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퍼뜨렸다. 여간첩 사건은 이런 환상에 일대 경종을 울린다"고 주장했다.

그는 "왜 북한은 이토록 어려운 (간첩 남파) 사업에 끊임없이 매달리는가? 답은 명백하다. 남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통한 적화의 꿈 때문"이라며 "원정화 사건은 김정일이 아직도 이 끈을 붙잡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했다.

특히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사건은 재차 꼬이는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재조명하고 위험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북핵 문제와 여간첩 사건이 별개처럼 보이지만 실은 대남 적화라는 뿌리에서 파생돼 연계된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명박 정부 시절의 북핵문제-남북관계 연계론을 극복하고 병행 발전을 추구한다는 것이 골자 중 하나다. 이 내정자의 국정원장 인선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정책 기조와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 물음표가 찍히는 이유다. 또 이 내정자가 국정원장이 됐을 때 정상회담 등 남북대화 추진 가능성도 의문시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치·사회적 시각도 편향 우려…"공안 재구축", "안보가 제1가치", "용산참사와 유사한 폭동"

이 내정자가 국정원 개혁의 적임자인지도 검증 대상이 될 전망이다. 특히 최근 원세훈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판결로 국정원 등 이명박 정부 국가기관의 조직적 대선개입 문제가 재부각되며 국정원 개혁의 필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내정자는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를 도청했다가 들킨 사건 후, <문화일보> 기고(☞바로보기)에서 국정원을 적극 감쌌다. 그는 "일부 국정원 직원의 실수 사례로 필수적 국가 정보 기능을 위축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며 "공개적 질책도 중요하지만 국정원이 심기일전해 보다 유능한 프로 정보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차분한 이해와 성원도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당시 비등하던 비판 여론을 향해 "국정원 전체 직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지나치게 주눅들게 하는 과도한 반응은 이 정도에서 자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쏘아붙이며 "더 이상의 실수가 없도록 정보 전문성을 높이는 계기가 조성된다면 이번 실패 사례는 오히려 국정원 발전에 보약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북정책이나 국정원 개혁 등 업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분야 뿐 아니라, 국내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한 이 내정자의 생각도 청문회 과정에서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 내정자는 위 <동아일보> 기고에서 "원정화 사건을 국가 안보를 우리 사회 제1의 가치로 복원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2012년 6월 <문화일보> 기고 '국가 공안기능 재구축 시급하다'(☞바로보기)에서는 "한국 사회는 북한 정보기관이 마음대로 휘젓고 활동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돼 있다"며 "특히 자생적 주사파(主思派)의 존재는 북한 정보기관엔 황금어장 여건이다. 이번에 국회까지 진출한 종북(從北) 세력의 정치적 득세는 남북 정보전에서 북한 정보 당국의 우세를 단적으로 상징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대선을 6개월 앞둔 시점인데도 "최근 야당 대선 예비주자들은 저마다 모두 한반도 평화를 위해 새로운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며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그럴 듯하게 보이는 대북정책 수사가 아니다"라고 '야당 대선주자'들만을 비판했다. "내부에 북한을 추종하고 돕는 세력을 방치한 채 대북정책을 거론하는 것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했다.

같은 글에서 그는 "국가보안법은 냉전 상황에서 나라를 지키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라며 "국가 정보요원과 대공수사관들은 냉전 전사다. 천신만고 끝에 검거한 간첩이 몇 년 뒤 국회의원이 돼 국가보안법을 조롱하고 담당 정보요원과 수사관들을 허탈케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재발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시선은 '재발'에 꽂힌다. 이미 국회의원이 된 '간첩'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

그는 또 이 글에서 "강력한 공안 기능이 올바른 대북정책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유난히 눈에 띄는 특징이 공안 사건이 많아졌다는 것이었고, 야권에서는 이에 대해 '공안 정국'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박근혜 '공안 정치', 통치술인가, 무능인가?)

2009년 9월 <동아일보> 기고(☞바로보기)를 통해서는 용산 참사를 폭동에 비기기도 했다. 그는 "용산 사건과 유사한 폭동이 만에 하나 뉴욕이나 파리, 런던 등 다른 선진국 도심에서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당국의 대응 방식은 우리보다 더 엄정했으면 엄정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화염병, 시너병, 새총 등 흉기로 무장해서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이라면 책임 있는 정부는 결코 진압을 미루는 여유를 가질 수 없다"고 경찰 대응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는 용산 참사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 "과잉진압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는 정당한 비판이 아니다"라며 "(용산 참사는)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 화염병과 시너로 격렬히 저항한 공무집행 방해 케이스"라고 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경찰이 흔들리고 공권력이 더욱 주눅 들어서는 안 된다"면서 이렇게 주장하기도 했다.

"경찰이 즉각적인 진압에 나서지 않았다면 식량까지 준비한 점으로 보아 사태가 장기화됐을 것이다. 많은 선량한 국민이 다칠 수 있고 촛불시위 때처럼 장사도 못하는 피해를 보았을 가능성도 크다. 그 이후의 진압 과정에서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 경찰특공대가 잘못했다고 경찰 총수를 몰아붙이고 사퇴를 위한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일은 온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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