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에 드러난 미군과 한인 여성의 삶

[문학예술 속의 반미] 1960년대 문학예술 속의 추한 미국

III. 1960년대 문학예술 속의 추한 미국

3. 소설 속의 미국

1961년 처음 출판된 최인훈의 <광장>은 가장 먼저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를 깨뜨린 소설 가운데 하나다. 한국전쟁이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와 소련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사이의 이념 갈등으로 일어났는데, 한반도는 두 초강대국 사이에 벌어진 무력 충돌의 희생자라고 묘사한 것이다.

이 중편소설에서 최인훈은 한국전쟁 중 미군 부대가 지나간 뒤 한 여인이 산 위 나뭇가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등 미국에 대해 그리고 미국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나아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둘 다 거부한다. 널리 알려진 이 소설은 1970년대 중반까지 네 번이나 다시 쓰였고 1980년대까지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켰다.

신일철은 1961년 <들어라 양키들아 : 쿠바의 소리>를 번역 출판했다. 원작은 라이트 밀즈 (Wright Mills)가 1960년 발표한 <Listen, Yankee : The Revolution in Cuba>. 미국이 왜 쿠바에서 독재를 지지하며 민족해방운동을 방해하는지 설명하며 미국의 쿠바개입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시인 김수영은 이 책에 대해 "양키들에 대한 분노의 절규와 해방의 희열과 불퇴전의 집념"을 잘 그리고 있다고 논평했다. 밀즈의 책은 1985년 다른 사람에 의해 다시 번역 출판되어 1980년대 한국사회의 반미주의를 확신시킨 지침서가 되기도 했다.

전광용은 1962년 발표한 <꺼삐딴 리>에서 미국을 비롯한 외세에 아첨하며 명예와 부를 즐기는 의사를 그리면서 반외세 민족주의를 고취시킨다. 주인공이 일제하에서는 잠꼬대도 일본어로 할 정도로 완벽한 황국신민으로 살다가, 소련군이 진주한 뒤엔 북쪽에서 잠시 감옥생활을 하지만 풀려나 친소파로 돌변해 영화를 누리고, 남쪽에 내려와서는 미국인들에게 아부하며 친미주의자가 되는데, 그러면서도 딸이 미국인과 결혼한다는 생각엔 몸서리치는 내용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1960년대에 미국이 등장하는 많은 소설은 한국과 미국 사이의 문화적 차이점에 초점을 맞추며 한국에 대한 미국 문화의 영향력을 은근히 거부하고 있다. 정연희의 <바람 타는 깃발>(1963)은 미국인들의 생활양식이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하근찬의 <왕릉과 주둔군>(1963)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미군 부대의 영향으로 한국의 전통적 사회윤리와 관습이 파괴되는 모습을 그린다. 널리 알려진 이 단편소설은 왕족 후손의 딸이 야만적인 미군을 따라 가출했다가 혼혈아를 낳고 살아가는 충격적이고 수치스러운 생활 모습을 담고 있다. 정한숙은 <어느 동네에서 울린 종소리>(1963)를 통해 한 미군이 가정불화를 이유로 한국인 아내를 총 쏘아 죽이는 것을 고발한다.

실제로 미군과 한인 여성 사이의 국제결혼은 1960년대부터 늘기 시작했다. 그 무렵엔 거의 금기처럼 여겨졌지만, 1965년의 한 보고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이루어진 국제결혼에서 신랑의 99% 이상이 미군이었다. 이에 따라 미군 부대를 배경으로 하는 기지촌 소설은 주로 미군들의 한인들에 대한 범죄를 비롯한 비행과 일탈을 그리고 있다.

미군의 손에 잡힌 한인 양공주들의 고통스러운 삶은 오영수의 <안나의 유서>(1963)와 박순녀의 <엘리제 초>(1965)에 잘 드러나 있다. 전자에서는 은퇴한 양공주가 미군들이 정말 무섭다며 그들이 자신의 전 생애를 망쳐놨다고 한탄한다. 후자에서는 양공주의 어머니가 한국전쟁 중 미군의 폭격에 의해 죽은 1000여 명의 피난민 가운데 하나였고, 자신은 미군으로부터 얻은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지만, 미군들을 증오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성일의 <흑색 시말서>(1961)와 유주현의 <임진강>(1962)은 미군들이 한국인들을 왜 어떻게 총 쏘아 죽이는지 고발하고 있다. 특히 <임진강>은 1962년 1월 파주의 한 산에서 땔감 나무를 구하던 두 나무꾼을 미군들이 쏘아죽인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소설에서나 실제로나 두 나무꾼 가운데 한 사람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이였는데, 임신한 아내는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기절했고 배 속의 아이는 죽었으며, 이에 그의 어머니는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해버렸다. 미군의 총질이 궁극적으로 한 가족 전체를 파멸로 이끈 것이다. 게다가 죽은 나무꾼은 한국전쟁 중 함정에 빠져 부상당한 두 명의 미군을 구해준 일이 있었으니, 그 총질은 선을 악으로 갚은 것이었다. 이 비극적 사건은 30년이 흐른 1992년 오연호에 의해 <살아나는 임진강>이라는 이름의 소설로 다시 태어났고, 이는 1993년 5월 연세대학교에서 마당극으로 공연되었다.

박경리는 1964년 발표한 <시장과 전장>을 통해 미국을 이념적으로 비판한다. 그는 한반도의 분단이 미국의 경솔한 계획에 따라 약탈자들의 무리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한탄한다. 최인훈이 <광장>에서 그랬듯이, 박경리 역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둘 다 거부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유를 빙자하여 기업합동과 기업연합을 합리화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임금의 노예로 만들고, 공산주의 사회는 미래의 행복이라는 공허한 약속 아래 자유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미군 부대가 마을 근처에 주둔하면 어린 소녀부터 노파에 이르기까지 매일 밤 절망적으로 숨을 곳을 찾아야 했기에 '검둥이들'은 마을의 모든 한인 여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음도 드러내고 있다.

남정현의 <분지>(1965)는 아마 1980년대 이전에 발표된 가장 격렬한 반미소설일 것이다. '똥으로 된 땅'이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독백 형태의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어머니는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남편을 환영하러 나가는 길에 미군에게 강간당한 뒤 미쳐 죽어버린다. 그의 누이동생은 미군의 첩으로 살며 온갖 학대를 당한다. 홍길동의 후손인 주인공은 이를 보복하기 위해 그 미군의 아내가 한국을 방문하자 그녀를 겁탈한다. 그가 어느 산속에 들어가 숨자 미국 국방부는 그 산에 핵폭탄을 떨어뜨릴 준비를 하고, 그는 미국으로 도망쳐 미국 여성들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런 가운데 한국사회를 "민중을 위해서 투쟁한 별다른 경험이나 경륜이 없어도 어떻게 '반공'과 '친미'만을 부르짖다 보면 쉽사리 애국자며 위정자가 될 수 있는 것 같은 세상"이라고 묘사한다.

이 소설은 그때까지 발표된 다른 반미소설과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첫째, 다른 작품들에서는 한인들에게 온갖 종류의 비행과 범죄를 저지르는 미국인들이 흑인들이었지만, <분지>에서는 백인들이었다. 둘째, 다른 소설들에서는 한국인들이 미국인들의 공격에 고통당하고 좌절하는 모습만 드러내는 데 반해, 이 소설에서는 한국인이 미국인들에게 대항하고 보복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남정현은 <분지> 때문에 5.16쿠데타 직후에 제정된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이 소설이 <현대문학> 1965년 3월호에 처음 실렸을 때는 별로 주목받지 않았는데, 그해 7월 북한의 <통일전선>에 실리면서 갑자기 문제가 된 것이다. 어떻게든 북한과 연계되면 처벌당하는 현실이 예나 지금이나 반세기가 흐르도록 변치 않고 있는 셈이랄까.

참고로, 당시 검찰은 <분지>가 "반미감정을 조성·격화시켜 반미사상을 고취하여 한미 유대를 이간함을 표현하는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단편소설"로 "북괴의 대남 적화전략의 상투적 활동에 동조한 것이다"라며, 반공법 제 4조 제 1항 "북괴의 활동을 찬양·동조하여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는 죄목으로 기소했다. 판사는 "이 작품을 읽은 독자 중 많은 사람들에게 반미적·반정부적 감동을 일으키게 하고 심지어 계급의식을 고취할 요소가 다분하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에 덧붙여, 당시 <조선일보> 문화부장 남재희는 작가 남정현에게 원고를 청탁한 죄로, 그리고 문학평론가 백낙청은 "남정현 씨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저항 행위는 지금 우리 문학으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과제"라고 옹호한 죄로 정보부에 끌려간 기막힌 사실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분지>를 통해 비판받고 보복당한 미국의 언론은 작가를 오히려 옹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타임>(TIME) 1967년 3월 10일자는 "애국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제목으로 "한 청년 작가가 한국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풍자적 우화로 엮은 단편을 발표하고 북한이 이를 입수해 개재하였다는 이유로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남정현은 이에 앞서 1962년엔 <자수민>이라는 제목의 조금 덜 알려진 소설을 통해서도 미국을 빈정대며 비판하였고, 한참 뒤인 1993년엔 <허허 선생 옷 벗을라>는 연작 장편을 통해 미국을 비판적으로 풍자하기도 했다. 그는 그의 작품에 풍자기법을 자주 활용하는 이유를 한국의 억압적 정권 아래서 민감한 이슈들을 직설적으로 다룰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황석영의 <탑> (1970)은 외국 문화재에 대한 미국인들의 오만과 무차별적 파괴를 꼬집고 있다.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 단편소설은 명분 없는 베트남전쟁 속의 무의미한 죽음을 고발하는 가운데, 베트남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탑에 대한 한국군들과 미군들의 인식 차이를 그리고 있다. 한국군들이 작전 명령에 따라 한 마을의 조그만 탑을 지키다 떠나자 미군들은 즉시 탑을 파괴해버리고 만다. "그런 골치 아픈 것은 없애버려야지. 미합중국 군대는 언제 어디서나 변화시키고 새롭게 할 수가 있네. 세계의 도처에서 말이지..... 노란 놈들은 이해할 수 없단 말야"라고 말하면서.

1972년 유신체제가 들어서기 직전 몇 편의 주목할 만한 중편 반미소설이 발표되었다. 이문구의 <해벽>은 한 어촌에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그 마을의 자연미가 어떻게 파괴되고 폐허로 변해 가는지 묘사하는 가운데, 미군들의 범죄와 야만적인 행위가 마을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이제 갓 결혼한 여인이 네 명의 미군들에게 윤간당하는 동안, 그걸 막으려는 시아버지는 죽도록 두들겨 맞는데, 그녀는 며칠 후 자살하게 되고, 남편 역시 곧 정신병자가 되어 죽는다.

실제로 1960~70년대에 한인 여성을 상대로 한 미군들의 윤간은 한미행정협정이 체결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사법당국은 미군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없지 않은가. 1970년 7월과 1971년 10월엔 거의 10명의 미군들이 한 여성을 집단으로 강간하는 사건이 빚어지기도 했다.

조해일은 1972년 단편 <대낮>과 중편 <아메리카>를 통해 동두천 미군 부대 주변 상황을 잘 그리고 있다. 미군이 한인 양공주를 끔찍하게 살해하자 동료 양공주들이 그에 대해 데모하는 모습, 미군 헌병이 한인이 운영하는 클럽을 강제로 폐쇄시키는 장면, 미군들이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는 군표를 미군당국이 갑자기 변경함으로써 한인 상인들이 금전적 손실을 입는 상황 등을 보여준다.

신상웅은 1972년 <분노의 일기>에서 주한미군과 미군 부대에 소속된 한인 병사(카투사, KATUSA) 사이의 갈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소설에선, 남정현의 <분지>에서처럼, 카투사들이 미군들과 격렬하게 싸우면서 두 나라 사이의 불균형적인 관계를 바로잡으려고 시도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중대장은 부하 병사들에게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영어로 말하지 말도록 지시하고, 미군들에 대한 비굴한 열등감에서 벗어나도록 요구한다. 그 자신 역시 한인들에 대한 미군들의 우월감이나 편견 또는 보호자 같은 태도에 맞서 싸운다. 나아가 그는 한국인들이 주한미군에 대해 무한하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미군부대장에게 공개적으로 조소를 던진다. 이에 그는 결국 그 부대장으로부터 미군부대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사실 주한미군과 카투사 사이의 갈등과 마찰은 1970년까지 몇 차례 언론에 보도되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1966년 4월엔 34명의 카투사가 미군들의 차별에 항의하며 부대를 이탈했다. 1967년 8월엔 50여 명의 카투사가 미군들의 차별대우에 항의하다 부대에서 추방당하거나 감금당했다. 1970년 1월엔 100여 명의 카투사가 한국군에 대한 미군의 폭력에 항의하며 중대장 사무실에 돌을 던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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