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도시 귀농인, 시골 살아보니…

[귀농통문] 시골 사람은 거울이다

1997년 9월 이곳 충남 홍성에 둥지를 틀었으니까 올해로 17년째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기간 마을이나 지역 주민과 크게 다투거나 갈등으로 마음 상한 적은 없네요. 시골에서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참고 기다리며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리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 성정이 본래 한없이 부드럽거나 느긋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귀농 직후 모양새를 보니 시골에서 도시처럼 굴어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일찌감치 알게 되었습니다. 도시와는 다른 시골 특유의 작동 원리, 이걸 빨리 파악해서 행동 지침으로 삼는 것이 시골 사람이 되는 길이겠지요.

사례 하나, 매의 눈으로 보는 동네 사람과 친해지기

귀농 후 우리 부부는 동네 사람들과 아무런 문제 없이 지냈습니다. 마을분들도,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부지런하고 농사든 마을 일이든 열심히 하는 새내기 농부들을 특별히 예뻐해 주셨지요. 그런데 유독 어느 한 분만 우리에게 삐딱한 시선을 보내고 있음을 감지하고 그이와의 관계를 개선시킬 기회만 엿보았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몇 달 만에 천금 같은 기회가 왔습니다. 큰 목장을 운영하는 그이가 대형 트레일러에 사각 스트로베일을 잔뜩 싣고 가다가 우리 집 앞 도로 모퉁이에서 그만 볏짚 뭉치들을 우르르 쏟아버린 겁니다. 한쪽으로 쏟아져 도로 대부분을 막아버린 모습을 보고 '기회는 이때다!' 싶었습니다. 바로 트럭을 타고 나가 수습을 돕는 한편, 차에 두어 번 볏짚을 싣고 댁까지 가서 내리고 쌓는 걸 도와드렸습니다. 그 뒤 그이와의 관계는 어떻게 됐을까요? 부러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이후 달라진 눈빛과 태도를 보면 제가 '싸가지 있는 놈'으로 전환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사람 중에는 특별한 갈등 없이도 고정관념이나 편견 때문에 나를 백안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도시나 시골이나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지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불편한 건 나인 만큼 적극적으로 풀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존심 때문에 당사자와 불편한 상태로 지내는 예도 종종 보았습니다. 나 같으면 다른 누군가와 갈등이 있으면 불편해서 어떻게든 관계 개선에 나서려 할 텐데, 이런 분들의 답은 "그냥 꽃 보듯 하며 살지요!"였습니다. 사람을 꽃 보듯 하며 살아가기,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 이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귀농통문

사례 둘, 이랬다저랬다 하는 집 주인, 어찌해야 하나?

집이든 농토든 임차농으로 시골살이를 시작하는 경우 어려움을 당할 확률이 더 높고 이 때문에 주인과 심각한 갈등으로 치닫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도 집과 농토 모두 임차농으로 출발한 지라 같은 마을에 사는 주인과 부딪칠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소소한 것은 조금 양보하면 되는 일이니 넘기기로 하고, 집 주인의 말 바꾸기에 고심했던 사례 한 가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98년 초에 집주인이 제게 집 옆에 바짝 붙어 있는 큰 참죽나무 몇 그루를 베어버리라 했습니다. 죽나무의 잎사귀가 지붕 위에 떨어져 썩으면 풀도 나고 지붕도 상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으나, 나무가 집 가까이 붙어 있어 베어 넘길 때 지붕이 무너질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기 전에 말려서 무게를 줄이려고 전기톱으로 바깥쪽을 한 바퀴 살짝 돌렸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나무를 사겠다는 사람을 데려와서는, 처음과는 달리 나무에 흠집을 낸 걸 타박하더군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어찌어찌 참고 넘긴 뒤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주인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요약하면, '상대가 100을 원하면 120을 주는' 것으로, 뒤집어보면 상대가 저에게 의존하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손이 필요할 때는 그만한 대가를 받고 일을 해주되 상대의 기대 이상으로 노동력이나 서비스를 더해주는 겁니다. 당시 주인은 낙농가였고 연중 몇 차례 호밀이나 수단그라스 같은 목초를 길러 담근 먹이(엔실리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트랙터 덤프 작업 할 때 정확한 지점을 유도하는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힘든 일이 아니기에 트랙터들이 순차적으로 도착하는 사이에 예취기를 달라 하여 작업장 가까이에 있는 조상의 묘를 깎아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몇 달 동안은 정해진 시간에 축사 안의 젖소 똥을 치우는 일을 거들고 거름을 얻기도 했습니다. 매사 이런 식으로 저는 크게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점점 제게 의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물론 일하는 동안 늘 적극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인을 대했지요.

주인은 마을 안에서도 사람들이 거리를 두는 까다로운 성격이어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또한 젖소를 키우는 일은 농촌에서도 매우 바쁘고 힘든 일이므로 사람의 손이 절실합니다. 어떤 사람과 관계를 개선하는 비결은 '그이의 절실한 필요를 파악하고 채워주면' 됩니다. 호흡을 길게 하고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면 당장의 갈등은 약간의 인내력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 2년 뒤, 제가 집과 땅을 구해 옆 동네로 이사 가려 하자 그이는 저희가 너무 아쉬워서 어떻게든 그 집에 계속 살게 하려고 애쓰시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사례 셋, 기분 좋은 파격으로 나를 알려내기

농사 첫해에 제 논 이웃 한쪽이 현직 이장, 또 다른 쪽은 전직 이장 논이었습니다. 농촌에서 논둑을 깎는 것도 묵계가 있지만 저는 그걸 뛰어넘어 제가 조금 더 수고스럽더라도 양쪽 논둑을 깊숙이 깎아주었습니다. 전 이장은 '고생 많이 했으니까', 현 이장은 '지금 고생하고 있으니까'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두 사람과의 관계는 더 좋아지고 저도 크게 손해 보는 것이 없었습니다. 논둑의 풀이 자라면 그분들이 제 논둑 깊숙이 깎아주셨으니까요. 모든 일을 이런 자세로 살아가니 도무지 사람들과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사례 넷, 할 수 있는 한 대가 없이 친절을 베풀자

저희 부부의 기본적인 삶의 원칙 중 하나는 상대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할 수 있다면 돕는 겁니다. 그래서 면내나 시내 중심부로 갈 때도 시골 어르신들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누가 되었든 차에 오르시게 하여 적당한 곳에 내려드리고, 무거운 짐이라도 있으면 방향과 상관없이 댁까지 모셔다 드립니다. 모르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 같으신 분들을 인정상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입니다.

그러면 그분들은 나중에 어찌 하실까요? 시골은 도시와 달리 철저히 관계 중심인 사회입니다. 그것도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보은의 문화, 품앗이와 두레가 뼛속까지 각인되어 있는 공동체성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때문에 혼인 잔치에서, 밭을 매러 가서, 장례식장에서 음식을 나누다가, 선행을 베푼 이가 누구인지 서로 이야기하며 추적(?)에 들어가면 십중팔구 밝혀지기 마련입니다. 그 뒤에는 당연히 그이의 입지가 넓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로 관계가 틀어지면 회복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일례로 백 마력짜리 최신형 트랙터를 사도 일해달라 불러주는 사람이 없으면 말짱 헛것입니다.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많은 분이 제게 물어옵니다. 갈등 없이 농촌에 안착하는 비결이 뭐냐고 말입니다. 비결이란 '쉽고 빠른 비밀스러운 방법'일 텐데, 하도 자주 같은 질문을 하여오시니 오늘 만천하에 공개하겠습니다. 비결은 그냥 열심히 사는 겁니다. 때 되면 농사 열심히 짓고, 이웃을 도울 일이 생기면 열심히 돕는 겁니다. 마을에서 주어지는 일이나 직책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통과의례로 생각하고 그냥 열심히 하는 겁니다. 다른 비밀스러운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만사, 사람 할 나름이라고요. 누구나 이야기하는 것처럼 성공과 실패도 다 할 나름입니다. 중요한 건 열심(熱心), 즉 뜨거운 마음입니다. 의무로, 마지못해 해서는 절대로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명감이란 게 필요합니다. 얼마 전 마을의 재활용품을 치우는 날, 집집이 돌며 플라스틱과 비닐쓰레기를 치울 때 어느 형수님이 그러시더군요. "아리수 아빠, 우리 마을에 이사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요?" 질고 냄새나는 농로에 쌓인 1년 분의 바닥덮기 비닐, 1톤 트럭으로 한 대 가득 찬 비닐을 치우느라 제 윗옷 앞섶은 무논에서 나온 것처럼 엉망이 되었지요. 마침 형님이 외출해서 돕지 못해 고맙고 또 미안해서 하신 말씀일 겁니다.

저희 부부는 귀농인 중 이른바 성공한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의 일반적인 척도인 경제적인 잣대로 가늠해볼 때는 전혀 성공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다만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들어 올 때 저희를 무척 경계하신 아랫집 아주머니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지내고, 아주머니께서 아내보고 '아리수 엄마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다'고 공언하신 걸 보면 이런 쪽으로는 성공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겠지요. 또 마을에서 대(代)를 이어 갈등을 이어가던 두 집안을 화해시킨 사례도 드러낼 만합니다.

▲ 이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귀농통문

텃세의 뿌리는 깊고도 질기다

후배 귀농인들을 만나는 자리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얘깃거리가 있습니다. 주로 시골 특유의 텃세로 인한 어려움들이지요. 어떤 경우에는 정도가 지나쳐 이사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식을 벗어난 지나친 요구로 도저히 살기가 힘들다고 호소합니다. 찬찬히 들어보니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우리 부부가 경험했던 것과는 달리,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귀농인 주변에서 자주 생기는 것 같습니다.

농촌에서 텃세를 부리는 이들은 앞서 예를 든 것처럼 대개 임대인이거나 이웃, 혹은 논이웃, 밭이웃입니다. 집 주인의 경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무언가 지불해야 할 대가를 주지 않거나 관례보다 적게 주려고 합니다. 주변 이웃도 자기 이익을 위해 새내기 농부를 따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물 사정이 좋지 않은 공동 수로의 물로 논농사를 지을 때 당신 논에 물을 대려고 남의 논 물꼬를 틀어막는 경우입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고사성어가 딱 들어맞는 일이 실제로 눈앞에서 종종 벌어지기도 합니다. 사전에 양해 한마디 없이 일단 남의 물꼬부터 막습니다. 조목조목 따져봐도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거나 막무가내인 경우가 많지요. 싸우기도 그렇고 참자니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텃세는 결국 관계의 문제이자 속 깊은 이해가 걸려 있어 싸움으로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더욱이 농촌 정서는 한번 관계가 틀어지면 화해가 쉽지 않고 극단의 예이지만 불편한 관계가 평생 혹은 자녀 대(代)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차분하게 해결하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문제를 푸는 지혜로운 방법 하나는 텃세를 부리는 이와 친해지는 겁니다. 이런 분들은 대개 마을에서도 어려워하여 친하게 지내는 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외로워지고 고립되어 성품과 행동이 거칠어집니다.

문제있는 사람과 친해지기, 마음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내 주변에 있다면 피할 수도 없습니다. 때로 손해를 일정 부분 감수하고, 참고, 다가가다 보면 어느새 어려움이 풀리게 되어 있지요. 때가 되면 이웃인 나를 더 이상은 적이나 경쟁자로 보지 않고 동료로,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협력자로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그리하면 나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이와 마을분들과의 관계도 좋아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억울하고 분하다 하여 때마다 정면으로 부딪친 한 귀농인은 7년 동안 세 번이나 이사하고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는 예도 보았습니다.

도시인들이 조심스러워하는 농촌의 정서는 속 깊이 알고 나면 받아들이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저 비슷한 경험이 없어 조금 낯설어 보이는 것뿐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도시인들이 부담스럽게 느끼는 농촌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과 관련된 에피소드 한 가지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도시에서야 남의 일에 간여하는 것이 실례가 되지만, 농촌에서는 오히려 관심을 보이지 않아 섭섭해하는 경우도 있지요.

▲ 이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연합뉴스

사례 다섯, 때로는 오버도 필요하다

몇 년 전 아랫집에서 9미터짜리 컨테이너를 들여놨습니다. 농촌에서는 컨테이너 박스가 창고 대용으로 널리 쓰입니다. 며칠이 지나도 아무 인사가 없자 아랫집 아주머니께서는 "아니, 우리 집이 저걸 들여놨는데 들여다도 안 보유?"라며 서운해하셨습니다. 모를 심어도 벼를 베어도 농부들의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비록 지금은 농기계가 사람을 대신하지만, 예전에 마을 사람들이 두레나 품앗이로 함께 했던 일을 할 때는 술과 먹거리를 넉넉히 준비합니다. 행인 몫까지 두량하여 미리 챙기는 겁니다. 저도 귀농 초기 벼를 바심하는(곡식의 낟알을 떨어서 거두는 일) 날에 새참을 기계 부리는 이와 제 몫만 달랑 준비했다가 지나가는 이들이 함께하는 바람에 민망스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농촌 정서란 게 이렇지요. 좋은 일, 기쁜 일은 내보이고 인정과 지지를 받으려는 소박한 마음. 반대로 힘든 일, 슬픈 일은 위로를 받고 싶고…. 사실 도시도 똑같지 않은가요? 다만 드러내지 않을 뿐입니다. 그 뒤 우리 부부는 이웃의 변화에 더욱 민감해졌습니다. 농기계를 새로 사거나 소가 새끼를 낳을 때도 칭찬과 관심을 잊지 않습니다. "야, 이거 새 거네요. 좋으시겠습니다!", "암놈이에요, 수놈이에요? 고놈 잘생겼네요!" 등.

필요한 순간에는 조금 호들갑을 떨어도 좋습니다. 그래야 관계의 정겨움이 살아납니다. 그동안 우리는 도시적 사고의 틀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무감각해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서로 깊이 만나고 나면 그렇게 경계할 것도, 거리를 둘 것도 없습니다. 도시나 농촌이나 다 같이 사람 사는 세상이니까요. 농촌 사람이 되려면 농촌 정서와 문화를 잘 관찰하면서 따라해보고 닮아가면 됩니다. 시골 사람은 거울입니다. 내가 하는 만큼 그대로 돌려줍니다. 시골에서는 시골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정말 필요할 때는, 시골 사람보다 더 시골스럽게 살아갔으면 합니다.

*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4년 12월 현재 72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 전국귀농운동본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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