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같은 기후변화 총회, '우리 공동의 실패'?

[유엔 기후변화총회 연속 기고 ③] 다시 공은 내년으로

기후변화협약 총회는 전세계인들의 관심사다 보니, 회의가 끝나기만 하면 다양한 분석과 논평이 쏟아진다. 정부대표단의 최종합의문이 나온 14일 오후(한국시각)부터 한국 언론에서도 회의의 의미와 영향을 분석한 기사가 쏟아졌다. “유엔기후회의서 전세계 온실가스 감축 동참 첫 합의”라는 잘못된 기사제목까지 뽑아가며 회의의 의미를 애써 부여한 언론사(KBS)가 있는가 하면(참고로 지구촌이 최초로 온실가스 공동 감축에 합의한 건 1992년의 리우 회의다.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됐다), “유엔기후변화회의서 각국 온실가스 감축안 형식 합의”라는 제목으로 사실만 전달한 언론사(연합뉴스)도 있고, “페루 리마 기후회의 폐막…새 기후체제 초안, 기대에 못미쳐”라며 부정적인 시각을 내보인 언론사(경향신문)도 있다.

이런 시각의 차이는 환경단체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페루 현지에서 만난 한 기후행동네트워크(Climate Action Network) 활동가는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내년 신기후체제를 합의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고 평가한 반면, 같은 조직의 다른 활동가는 알맹이가 빠진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다고 최종 합의를 평가절하 했다. 혼란스럽긴 우리나라 환경단체나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파국은 피했다는 입장이 있는 한편(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안병옥 소장), 신기후체제가 합의됐다고 봤는지 “신기후체제의 도래, 에너지정책의 판이 흔들린다”는 제목의 토론회를 연 정치인도 있다.(새정치연합 장하나 의원) 반면 “사실 진전이 하나도 없었다”고 평가한 정치인도 있다.(정의당 조승수 정책위의장) 같은 결과를 어떻게 하면 이토록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판이한 인식의 차를 보여준다.

▲ 리마 기후변화총회장 화면에 투사되어 있는 협상 키워드들. 하지만 이 의제들은 하나도 합의되지 못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회의가 성공적이었던 건지 실패한 건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확실한 한 가지는 리마 총회의 승자는 없다는 점이다. 43페이지에 이르는 최종합의문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각자 알아서 노력할 것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합의의 씨앗은 작년 폴란드 바르샤바 총회에서 등장했다. 바르샤바 결과에 따르면 신기후체제 하 각국 온실가스 감축행동은 자발적으로 결정한다. 전지구 감축총량을 결정하고, 이를 토대로 각국의 책임과 역량에 맞게 할당했던 교토의정서 방식이 뒤집힌 것이다. 그래도 리마 총회에서 일말의 기대를 갖게 했던 것은 각국이 자발적으로 감축계획을 설정한다고 해도 좀 더 세밀한 계획 수립 가이드라인을 두면 어느 정도는 구속력이 생길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폭탄 돌리기 식의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고, 결국 구체적인 목표 설정 없이 내년까지 각자가 알아서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을 제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심지어는 구체적인 감축방안을 적시할 의무는 배제됐고, 유엔 차원에서 각국의 계획을 검토하는 절차도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바뀌었다.(일부 국가의 반발로‘shall’이 아니라 ‘may’로 대체됐다.) 사실상 각자가 알아서 하자는 말과 무엇이 다른지 도통 모르겠다.

▲ 리마 기후변화총회 안에 설치된 안내표지판.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이정표가 기후변화협약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감축계획 제출 시기도 문제로 꼽힌다. 당사국들은 내년 1/4분기까지 유엔에 감축계획을 제출하기로 했지만, 그것이 어려운 국가는 이후에 제출해도 상관없다. 단지 최대한 빠른 시기에 제출하라는 언급만 있을 뿐이다. 유엔이 각국의 감축계획을 묶은 영향보고서를 11월 1일에 내기로 했고 유엔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는 절차도 없으니, 사실상 당사국들이 하반기에 계획을 제출해도 합의 위반이 아니다. 게다가 감축계획 형식을 합의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정부대표단들이 과연 감축계획에 관한 내용들을 1~2개월 만에 검토해서 파리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내년 총회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눈치작전은 기후변화대응 재정지원 논의에서도 반복됐다. 선진국들은 이전 총회들에서 녹색기후기금(GCF) 출연을 통해 2020년 이후 연간 1,000억 달러 이상을 마련해 개발도상국들에게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개도국들은 1000억 달러 이상 모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 역시 내년 파리 총회까지 결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인 기금은 100억 달러 수준밖에 되지 않아, 증액은커녕 2020년 이후에 과연 연간 1000억 달러 이상을 모을 수 있을지조차 의심받고 있다. 이런 우려는 최종합의문에서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의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을 위해 재정지원을 확대한다”는 있으나마나한 문구로 대체됐다.

올해 당사국 총회는 헛된 욕망이 분출되는 카지노와 같았다.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의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감축목표 수립을 위해 재정 지원을 카드로 이용했다.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구체적인 감축계획 수립을 카드로 활용했다. 하지만 결국 둘 다 카드를 꺼내지 않았고, 탐색전만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런 상황을 보고 ‘너희 모두의 성공이야’라며 치켜세울 사람이 과연 있을까?
전지구 감축목표, 각국의 감축계획, 재정지원.. 어느 것 하나 리마에서 결정된 것이 없다. 숙제를 뒤로 미루는 초등학생처럼 각국 정부대표단들은 다시 공을 내년으로 미뤘다. 덕분에 지구촌은 다시 전전긍긍하며 내년을 맞이하게 됐다. ‘우리 공동의 미래’가 아닌 ‘우리 공동의 실패’.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 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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