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의 궤변과 삼성·현대, 그 수상한 합창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정규직 과보호? 과보호되는 건 재벌!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정규직은 과보호하고 비정규직은 덜 보호하다 보니 기업이 겁나서 정규직을 못 뽑고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상황 (…) 정규직은 계속 늘어나는데 월급이 계속 오르니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것 (…)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노동시장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규직 과보호'론의 최초 제기자인 최경환 부총리가 지난달 25일,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단 정책 세미나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우선 '인사이드 경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만 빼고 나머지 모든 내용에 대해 동의할 수가 없다. 정확히 표현하려면 "한국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나마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정규직만도 못하다"고 말해야 옳다.

우선 최경환 부총리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도대체 근거로 드는 얘기가 단 하나도 없다. 경제 부총리라면 최소한 수치 몇 개는 인용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근거로 드는 얘기가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열악한 처지에 있다"는 것 하나뿐이다. 이 정도 근거라면 초등학교 다니는 학생들도 다 아는 내용이다.

오히려 정부 기관이 꾸준히 공개해온 통계 수치에 따르면 최경환 부총리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인 것으로 보인다. 경제 부처 수장은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고, 어떤 정부 기관은 한국에서 매년 엄청난 규모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당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도대체 둘은 같은 정부 소속이긴 한 것일까?

입이 떡 벌어지는 정부 기관의 통계 수치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인 한국고용정보원은 매년 '고용보험통계연보'와 월별 현황 자료를 발표하고 있다. 이 자료들은 고용보험과 관련한 각종 통계 수치를 담고 있는데 '인사이드 경제'가 그중에서 주목한 항목은 '고용보험 피보험자격 상실 사유'이다. ('인사이드 경제'가 인용하는 자료는 언제나 여러분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자료들은 한국고용정보원 홈페이지에서 구할 수 있다.)

노동자가 직장에서 일하다가 어떤 사유로 그만두거나 해고되면 더 이상 고용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고용보험 입장에서는 "피보험자격을 상실했다"고 표현한다. 노동자가 피보험자격을 상실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다른 일자리가 생겨서 직장을 옮길 때, 병이 생기거나 일신상의 사유로 직장을 그만둬야 할 때, 정리해고 또는 징계해고 되었을 때 등등.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하는 자료는 그 다양한 사유별로 매월, 매년 몇 명의 노동자들이 피보험자격을 상실하고 있는지에 대한 수치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넓게 보면 자발적 사유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즉 비자발적 사유로 그만두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인사이드 경제'가 관심을 두는 쪽은 '비자발적 사유' 쪽이다.

비자발적 사유란 무슨 뜻일까? 나는 그만두고 싶지 않은데 나가야 하는 경우, 즉 정리해고, 권고사직, 계약 해지 등 넓은 의미에서 '해고되는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비자발적 사유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 범주로 구분하고 있다. "경영상 필요 및 회사 불황으로 인한 인원 감축 등(회사 사정)에 의한 퇴직", "계약 만료, 공사 종료", "폐업, 도산, 공사 중단" 등.

그래서 '인사이드 경제'는 비자발적 사유 중 위 3가지 범주를 중심으로 2008년부터 최근까지 비자발적 사유로 회사를 그만둔 노동자들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추이를 분석해 보기로 했다. 이 숫자가 바로 1년에 해고되는 노동자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줄 테니 말이다.

아, 그런데 통계 수치를 정리하기도 전에 입부터 떡 벌어졌다. '아니, 이게 정말 정부 기관 통계 맞아? 1년에 잘리는 노동자들 숫자가 이렇게 많단 말이야?' 그동안 정부 통계 자료라면 실눈 뜨며 파헤쳐온 '인사이드 경제'지만, 이번 경우엔 달랐다. 왜냐하면 한국고용정보원의 통계 수치를 활용해 표를 만들었더니 아래와 같은 그림이 나왔기 때문이다.

ⓒ오민규


우선 앞에서 얘기한 3가지 범주에 포함된 비자발적 사유에 의한 실업, 즉 해고자 규모가 2008년에 이미 1년에 150만 명을 넘었다는 점도 놀랄 만한 사실인데, 2009년부터 작년까지 그 수치가 200만 명으로 늘어났다는 점도 까무러칠 내용 아닌가!

정규직 100만, 비정규직 100만…한 해 200만 명이 해고되는 나라

이 중에서 '경영상 필요 또는 회사 사정에 의한 퇴직'이 바로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 규모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계약 기간 만료 또는 공사 종료'의 경우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하는 해고라 할 것이다. '폐업, 도산, 공사 중단'은 정규직·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당하는 해고이다.

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 규모는 매년 80~90만을 오가고 있으며, 비정규직 해고 규모는 그보다 약간 많은 90~100만 수준이다. 폐업, 도산, 공사 중단으로 인한 해고는 매년 20만 명 안팎을 기록해, 세 가지를 합하면 200만에 달하고 있다.

그렇다면 거칠게나마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겠다. "2008년까지도 한국은 엄청난 규모의 실직과 해고가 있었지만, 미국발 금융 위기와 세계 경제 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한국에서는 매년 정규직 100만 명, 비정규직 100만 명의 해고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이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홈페이지에는 지난 10월까지의 현황표가 발표되어 있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올해 1~10월까지 위 3가지 사유로 해고된 노동자들의 규모를 계산해보니, 아래와 같이 나타났다.

ⓒ오민규


올해 10개월 동안 182만 명이라면 월 평균 18만 명이라는 얘기이다. 이 추세가 연말까지 유지된다면, 올해 해고된 노동자들의 규모는 22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아니, 이런 사회가 "해고가 어려운 사회"란 말인가? 이런 나라가 "정규직이 과보호되는 나라"인가?

정리해고가 노동 이슈일 뿐인가?

최경환 부총리가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고 말한 이유는,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자는 얘기를 하기 위함이다. 최근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중화된 노동시장 문제 해결을 위해 '중규직'을 신설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이런 얘기들은 각 언론사의 '노동' 관련 뉴스, 또는 '경제 소식'에 실린다. 과연 '정리해고' 문제가 노동이나 경제 뉴스일까? 최소한 최경환 씨가 부총리를 지내고 있는 한국에선 그렇지 않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처럼, 한국에서 정리해고는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실업 신세가 되면 몇 달 나오는 실업급여 외에 국가는 아무런 보장을 해주지 않는다. 사회안전망이 완전히 제로에 가까운 우리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더 이상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적지 않은 해고 노동자들이 이혼이라는 불편한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다. 이렇듯 정리해고는 가족을 파괴하는 문제가 되어 있다.

어느 회사에서 정리해고 되었다는 경력만 써넣어도 번번이 재취업은 좌절되었다. 점점 입에 풀칠하고 사는 삶도 어려워진다. 친지들에게 돈 꿔달라고 말하는 것도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벼룩도 낯짝이 있어야지" 하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어가면서 비굴해지고 또 비굴해져야 한다.

술 한 잔 먹자고 연락할 동료? 그건 같은 처지의 해고자들하고나 가능한 얘기일 뿐이다. 정리해고를 피해 살아남은 이들은 미안한 마음에, 해고자들은 서운한 마음에 점점 대화가 사라져 간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살아남은 동료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론 부럽기도 한편으론 질투가 나서 해고자들 대부분이 집을 옮겨간다.

몇 년 전엔 평택의 초등학교에서 어떤 교사가 아이들에게 쌍용차 해고자를 빨갱이에 비유하는 일도 있었다. 도대체 이게 왜, 어딜 봐서 노동의 문제이고 경제의 문제일 뿐이란 말인가? 차라리 정리해고 문제가 그저 노동 이슈나 경제 뉴스로 치부되는, 정말 그만큼이라도 된다면 한국은 엄청나게 발전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정리해고란 놈이 노동자와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사회이다.

또다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가 치르라고?

도대체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권리가 뭐가 있다고 자꾸 '과보호' 운운을 하는 걸까? 노동자들에게 경영권이나 인사권이라도 주어져 있다면 책임의 일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사·경영권이 마치 노동자가 절대로 넘봐서는 안 될 '금단의 영역'처럼 자본가들은 물론이고 노동부와 법원조차 호들갑을 떨어대지 않는가.

사장이 배임·횡령을 해서 회사가 어려워지면, 그때도 노동자들에게 책임지라고 강요한다. 상하이차가 투자는 전혀 하지 않고 '먹튀'를 했는데, 결국 회사를 살리려면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와 임금 삭감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 이런 법이 어디에 있는가? 죄가 있어야 책임을 묻는 법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도의적 책임을 질 수준의 인사·경영권이라도 보장하든지. 권리는 쥐꼬리만큼도 주지 않으면서 책임은 무한대로 져야 하는 서러운 처지인데, 이제 '과보호'된다는 말까지 들어야 한다니!

더 억울한 것은 앞으로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현대중공업은 창사 이래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며 30퍼센트의 임원을 정리한 바 있다. 3분기까지 무려 3조 원의 적자를 보았다고 하는데, 노동자들은 그 적자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조만간 노동자도 30퍼센트 정리하겠다는 안을 들고나올 게 뻔하다. 힘없고 약한 사내 하청 비정규직이 제1순위 희생양이 될 것이고 말이다.

적자가 난 것도 아닌 삼성전자는 '흑자폭이 줄었다'는 이유로 구조조정 칼날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IMF 공황 이후 최대 '빅 딜'이라 할 사건, 즉 4개 회사를 한화 그룹에 매각하는 것이 그 신호탄의 성격을 갖고 있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노동자들이 벌써 노동조합 결성에 나서고 있지 않은가.

한국 사업을 축소하고 있는 한국GM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한국GM은 2012년 이후 매년 1∼2차례 사무직 상대 희망퇴직을 강행해 왔다. 물량 축소로 인해 일자리를 빼앗긴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도 상당하다. 아니, 당신들의 경영 정책일 뿐인데 왜 노동자들이 모든 대가를 다 치러야 한단 말인가.

대기업들이 이 정도라면 납품업체를 비롯한 중소기업은 벌써 한파가 몰아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블록이나 엔진을 만드는 중소형 조선소들, 삼성전자와 한국GM에 휴대폰·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 노동자들 역시 구조조정의 태풍권 안에 들어와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들이 지은 죄가 뭐란 말인가? 무슨 죄를 졌기에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가!

재벌들이야말로 '과보호'되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08∼2013년 동안 가계소득 증가율은 26.5퍼센트에 그친 반면, 기업소득은 무려 80.4퍼센트나 급증했다. 노동자와 서민들은 빚잔치를 벌인 반면, 기업과 재벌들은 돈벼락을 맞았다는 얘기이다. 다른 자료도 아니고 한국은행의 통계 수치이다. 이런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을까.

지난달 삼성SDS의 상장으로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이건희 일가는 말 그대로 '돈벼락'을 맞았다. 본래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SDS 지분(11.25퍼센트)을 매입하는 데 들인 돈은 103억 원이 채 안 된다. 이부진·이서현 사장 역시 각각 34억 원을 들여 삼성SDS 지분을 매입한 바 있다.

그런데 삼성SDS의 상장 첫날 주가가 32만7500원으로 마감하면서 이재용 부회장 삼남매의 지분 가치는 4조8280억 원으로 뛰어올랐다. 170억으로 4조8000억을 벌었으니, 무려 280배의 차익을 거둔 셈이다. 게다가 이들이 주식 지분을 보유하는 과정 자체가 온갖 탈법·불법을 일삼은 경우였다.

이재용 부회장 등은 지난 1999년 당시 비상장사이던 삼성SDS가 발행한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해 현재 엄청난 지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발행된 BW는 주당 7150원에 신주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것이었다. 이 부회장 등은 이 BW로 삼성SDS 주식을 주당 7150원에 인수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이제 32만7500원으로 뛰었으니, 주식 4조8000억 원 버는 게 저들에게는 '땅 짚고 헤엄치기'였던 것이다.

4조8000억 원이면 한국 정부 1년 예산의 1.5퍼센트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 돈이면 무상 급식과 무상 보육 문제가 해결된다. 이 돈이면 수십만 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 실업을 해결할 수 있다. 그 정도의 돈을 이재용 3남매는 단 하루 만에 벌어들인 거다. 그러면서 삼성전자가 위기에 처해 있다며 그 뒷감당과 책임은 노동자들에게 미룬다.

재벌들은 너무 보호받지 못해서 법인세도 깎아주고 부자 감세도 해주고 온갖 지원금을 퍼부어줘야 하고, 노동자들은 너무 많은 보호를 받고 있어서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부총리에게 묻는다. 과연 누가 '과보호'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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