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정당한 것이었다는 대법원이 판결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2심 재판부였던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대법원이 완전히 뒤집은 판결이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월, 2009년 있었던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2심 재판부와 달리 사 측의 정리해고가 유효하다고 보고 '파기 환송'한 것이다.
대법원은 '사실심'이 아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의 주장을 모두 듣고, 각각이 내놓은 사실관계를 다루지만, 3심인 대법원은 적용된 법률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법률심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고등법원인 2심의 판결을 대법원이 완전히 뒤집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것이 법률 관계자들의 얘기다. 어떻게 쌍용자동차는 '흔치 않은 일'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2심과 3심 판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명 '거대 변호인단' 가운데 대법관 출신 2명, 고등법원장 출신도…
쌍용자동차 사 측은 2심 재판에서 패소한 뒤, 변호인단을 전면 교체했다. 그 이후 새롭게 교체된 변호인단의 면면을 보면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하게나마 추정할 수 있다. 오랜 판사 경력을 지낸 변호사들이 대거 투입됐고, 그 가운데 대법관 출신도 2명이나 된다.
1심과 2심에서 쌍용자동차 측 변호를 맡았던 법률 대리인은 I&S(아이앤에스) 법무법인이었다. I&S 소속 변호사 가운데 판사 경력을 가진 사람은 대표변호사인 조영길 변호사가 유일하다. 조 변호사의 판사 경력은 1년 남짓이다.
2심 패소 후 새로 구성된 쌍용자동차의 변호인단은 총 19명이다. 법무법인 세종·바른·동인 3곳이 뛰어 들었다.
이들 법무법인에서 이 소송에 참여한 변호사 19명 가운데 판사 출신은 모두 6명이다. 그 중에 법무법인 세종의 김용담 대표변호사와 법무법인 바른의 박일환 고문변호사는 대법관을 지냈다. 김 변호사는 2003년 9월부터 2009년 9월까지, 박 변호사는 2006년 7월부터 2012년 7월까지 대법원 대법관을 역임했다. 이번 사건을 다룬 대법원 3부의 대법관 4명 가운데는 민영일 대법관의 임명 시점이 2009년 9월로 가장 빠르다.
고등법원장 출신도 있다. 법무법인 동인의 김진권 대표변호사는 대전고등법원장(2010)과 서울고등법원장(2011)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 외에도 이영구, 이병한(이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와 유성근(법무법인 바른) 변호사가 판사 출신이다. 이영구 변호사는 25년 간 판사로 재직했고, 이병한 변호사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재직 시 노동사건을 전담했던 인물이다. 유성근 변호사는 2001년부터 2012년까지 판사로 재직했다.
전국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관계자가 대법원 판결 직후 "사측이 고법에서 패소하고 나서 대법관 출신을 포함해 19명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는데, 대법관 출신에 대한 (사법부의) 고려만 아니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거라고 믿었다"라고 말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관련 기사 보기 : 2002일 기다림, 20초 선고, 쏟아진 눈물 )
무려 19명에 달하는 변호인단 가운데는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서 삼정 KPMG에서 3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 인물도 있고, 현대자동차 법무실장과 현대해상화재보험 대표이사,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 등의 경력을 가진 변호사도 있다.
박보영 대법관의 '안기부 X파일' 사건 판결도 새삼 도마 위에…
이처럼 '화려한' 변호인단과 별개로 이번 재판의 주심을 맡았던 박보영 대법관도 새삼스럽게 그 전력이 다시 주목 받는 분위기다. 박보영 대법관은 1961년 전남 순천 출생으로 이번 사건을 맡았던 대법관 3부 구성원 가운데 유일하게 비서울대·여성이다.
대법원 판결은 주심의 영향이 절대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판장은 권순일 대법관이었지만, 박보영 주심이 도마 위에 오르는 이유다.
박보영 대법관은 지난 2012년 임명됐다. 박 대법관은 지난해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의 '안기부 X파일' 폭로 관련 상고심에서 주심을 맡아 노 전 대표에게 '유죄'를 확정했다. 이 판결로 노 전 대표는 의원직을 잃었다. (☞관련 기사 보기 : 의원직 잃은 노회찬 "8년 전으로 돌아가도…")
하지만 지난 6월 대법원 1부(주심 고영환 대법관)는 이 사건과 관련해 김진환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노회찬 전 대표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박보영 대법관은 형사소송에 대한 판결에서 노 전 대표의 이른바 '떡값 검사' 명단 폭로가 정당행위가 아니라며 유죄를 선고했지만, 같은 사건의 민사 소송에서 대법원은 형법 310조를 적용해 "대기업과 공직자의 유착관계, 대기업에 대한 검찰의 수사내용이 국민적 관심 대상인 경우에는 의혹제기가 공적 존재의 명예보호라는 이름으로 쉽게 봉쇄되어선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록 형사와 민사 소송이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명단 폭로'라는 행위가 가지는 공익성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했다는 점에서, 다시 박 대법관의 관련 사건 판결이 논란이 된 바 있다.
서울변협 "현재의 대법원, 기업의 무한한 자유만 강조" 유감 표명
이런 탓에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사들은 17일 기자회견을 갖고 "주심인 박보영 대법관은 이른바 '소수자' 몫으로 임명됐는데도, 이번 판결에서는 소수자에 대한 고려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와 존재를 철저히 외면하고 사용자에게만 유리한 몰정책적인 판결"이라며 유감을 표명하고 "현재의 대법원은 경영판단 이론에만 입각해 정리해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부인하고 기업의 무한한 자유만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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