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합법적' 신상털기, 어떻게 가능했나?

'사이버 검열' 논란…'카카오톡 엑소더스' 이유 있었네

수사 당국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 도중 연행된 정진우(45) 노동당 부대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 부대표와 지인 3000여 명의 개인정보가 담긴 두 달치 카카오톡 대화를 들여다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검찰이 최근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수사팀'을 발족한 뒤 국내 모바일 메신저에서 해외 메신저로 옮기는 이른바 '카카오톡 망명'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수사 당국의 '사이버 사찰'에 대한 우려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인권운동사랑방,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등 6개 시민단체는 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수사 당국이 정 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무차별한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정 부대표는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경찰서로부터 '송·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에 대한 압수·수색·검증 집행 사실 통지서'를 받았다.

통지서에는 경찰이 지난 5월1일부터 6월10일까지 정 부대표의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대화 상대방 아이디 및 전화번호, 대화 일시, 수발신 내역 일체, 그림 및 사진 파일' 전체를 압수수색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 부대표는 "당시 지인들과 주고받은 카카오톡엔 초등학교 동창들과 나눈 대화부터 시작해 변호사와 재판에 관해 상의한 내용, 부인에게 신용카드 번호와 비밀번호를 보낸 것까지 담겨 있었다"며 "경찰은 수사와 상관없는 개인 정보까지 통째로 압수수색했고, 이 사실조차 석 달이 지난 후에야 통보했다"고 했다.

▲최근 카카오톡을 압수수색 당한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왼쪽에서 세번째)가 검찰과 경찰의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비판하고 있다.ⓒ프레시안(선명수)

앞서 정 부대표는 지난 6월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공관 인근에서 세월호 참사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6.10 청와대 만민공동회'에 참석했고, 경찰 해산 명령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현행범으로 구속된 뒤 지난 7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 과정에서 수사 당국이 카카오톡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정 씨와 지인들의 대화 내용을 통째로 넘겨받고도, 정작 당사자에겐 석 달이 지난 후에 문서 하나로 통보한 것이다.

정 부대표는 "당시 단체 대화창 등을 통해 대화를 나눈 사람이 3000여 명에 이른다"면서 "이들 중엔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경찰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 분들의 개인 정보까지 모두 들여다본 셈"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조영선 변호사는 "정작 검찰은 재판에선 압수수색한 카카오톡 내용을 증거자료로 제출하지 않았다"면서 "결국 수사가 목적이 아니라 정보 수집이 목적이었던 셈"이라고 꼬집었다.

경찰, 실시간 '위치 추적' 가능한 '맥 주소'까지 압수수색

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을 제안한 대학생 용혜인(25) 씨도 지난 6월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받았다. 특히 용 씨의 경우 대화를 나눈 상대방의 카카오톡 아이디와 휴대전화 번호는 물론이고 휴대전화 맥(mac) 주소, 접속 아이피(ip)까지 모조리 압수수색 대상이었다.

맥 주소란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에 장착된 랜 카드의 고유 식별 번호로, 이 번호를 알게 되면 와이파이로 접속한 사용자의 접속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경찰이 용 씨의 카카오톡 대화 상대의 '위치 추적'까지 가능한 정보조차 모조리 들여다봤다는 얘기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에도 카카오톡으로부터 철도노조 간부의 접속 위치까지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 18일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 수사팀'을 발족하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비롯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이뤄지는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수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사이버상의 폭로성 발언'의 엄단을 촉구한 지 이틀 만에 전격 수사팀을 구성한 것이다.

특히 카카오톡 간부가 지난 17일 검찰의 유관회의에 참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카카오톡 사용자들의 이른바 '메신저 망명'이 줄을 이었다. 이에 검찰은 "카카오톡 같은 사적 공간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수사할 계획은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정 부대표의 사례에서 보듯 전방위적인 카카오톡 압수수색이 이뤄지면서 국내 모바일 메신저 사용자들의 불안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명 수사에 제3자 정보까지 마구 빼낸다? "신공안시대 왔다"

문제는 이 같은 '사이버 사찰'이 전혀 불법이 아니라는 데 있다. 당사자는 모르게 사전 통지없이 압수수색이 이뤄져도, 다음카카오와 같은 사업자는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영장을 내밀면 자료를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형사소송법 122조는 "급속을 요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압수수색 영장 집행 시 미리 집행의 일시와 장소를 통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사전 통지없이 개인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들여다보고도 '정당한 절차'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 '예외 조항'을 근거로 한 것이다.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가 지난 2009년 "헌법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이 단서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법재판소는 올해 초 "사전통지 없는 압수수색은 합헌"이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문제는 카카오톡과 같은 사이버상의 통신·대화 내용에 대한 압수수색이 혐의 사실과 관계없는 제3자의 개인정보를 대상으로 무차별하게 이뤄진다는 점에 있다.

조영선 변호사는 "카카오톡 등을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은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제3자들과의 대화 내용까지 모조리 포함된다는 것이 문제"라며 "심각한 정보인권 침해이며, 모든 SNS상의 사적인 대화까지 리서칭할 수 있는 '신공안 시대'가 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카카오톡에 대한 압수수색은 물건이나 디지털파일 등의 일반적인 압수수색과 그 성격 자체가 다르며,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만큼 가장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면서 "성격상 감청과 다를 바가 없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가장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일반적인 압수수색은 수색부터 하고 그 중 혐의사실과 관련한 부분을 압수하지만, 디지털 정보의 경우 일단 압수부터 하고 수색을 한다"며 "혐의 사실과 관계없는 사생활 등의 내용까지 무차별적으로 수사기관에 제공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건 등을 대상으로 하는 압수수색은 증거 인멸 등을 이유로 사전 통지 없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카카오톡이나 이메일 등은 사용자가 지워도 서버에 남아 있다"며 "전혀 '급속'을 요하는 경우가 아닌데도, 수사기관이 항상 예외 조항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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