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대상 임상실험"…교육청 물품 논란

[언론네트워크] 일선학교 구입한 '시근운동기구'…EMDR 치료법 적용

충북도교육청이 교부한 예산으로 일선학교가 구입한  제품이 사실상 불법의료기기라는 주장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세계최초 정신치료장치 특허 인증", "EMDR 기법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한다"는 이 제품은 허가받은 의료기기가 아닌 일반 제품으로 확인됐다. 

일부 정신과전문의는 "EMDR 치료법은 특수한 정신질환 분야에 국한해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이라며 "의료기기가 아닌 도구로 EMDR 치료를 했다면 학생들을 검증되지 않는 장비에 대한 임상실험에 내몬 것"이라고 밝혔다. 물품 구매 과정도 투명하지 않았다. 일선 학교 관계자는 "교육지원청이 전화로 물품을 강제로 구매하게 했다"고 폭로해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해 충북도교육청은 제2회 추경예산을 편성하면서 일선 학교가 요구한 현안사업비를 교부했다. 유치원과 초·중학교는 각 시,군 교육지원청에서 예산을 배정했고 고등학교는 도교육청에서 직접 배정했다.

예산을 교부받은 학교 중 청주교육지원청 관내 10개교는 '시근운동기구'를 1억원어치 대량 구매했다. 각 학교는 '안구운동기구 구입'이라는 사업명으로 예산을 신청했고 "학업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심리적 불안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안구운동기구를 구입하여 학생들의 스트레스 해소 및 심리적 안정감을 갖도록 하고자 한다"고 사업 목적을 밝혔다. 

일부학교는 '학생 시력보호'를 목적으로 한다고 표기한 학교도 있었다. 세부 사업명칭에 '정신치료 기계 장치'구입이라고 표기한 학교도 있었다.

반면 충북도교육청은 해당 사업의 명칭을 '시근운동기구' 구입이라고 규정했다. 이렇게 시근운동기구 사업으로 청주시 관내 10개교가 구입한 제품은 모두 H회사의 '아이○○○○'이라는 제품. 고글 안경과 유사한 이 제품 1개의 가격은 49만5000원이며 각 학교별로 1000만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EMDR은 만병통치약?

각 학교가 대량 구입한 '아이○○○○'은 어떤 제품일까. 제조사인 H사의 홈페이지와 보도자료를 살펴봤다. H사는 "지속해서 받는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 모두의 상태를 하락시킨다"며 "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키며,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가 있으면 불면증을 초래하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된다"고 밝히면서 EMDR(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 안구운동 미감 소실 및 재처리 요법) 치료법을 소개했다.  

H 사에 따르면 "안구운동은 EMDR의 과정 중 하나 인데, 이 방법은 비교적 간단해 보이지만 치료효과는 매우 뛰어나 외상을 경험한 환자의 경우 3∼6회 시행으로도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EMDR은 기존의 약물치료에 비해 빠른 효과와 치료기간이 단축되어 만족도가 높다. 보통 정신과 병원이나 상담센터 등에서 주로 사용되는 믿을 수 있는 치료법으로, 미국정신의학회와 미국심리학회, 미국보훈청 등에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의 표준치료법으로 인정받았다"고 했다.

또 H 사는 "정신질환은 치료만 잘 받으면 완치가 되지만 병원 문턱을 넘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증상을 방치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병원 대신 가정에서 정신질환이나 정서불안, 틱 장애를 치료하는 EMDR로 자가치료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며 "자가 치료에 이용되는 가정용 EMDR 기기인 '아이○○'이 세계 최초로 정신치료장치 특허를 인증 받았으며, 이미 임상실험을 통해 효과가 입증됐다"고 밝혔다.

전문가, "큰 일 날 소리" 

H 사는 각종 보도자료와 홈페이지를 통해 '아이○○○○'이 정신질환 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처럼 일관되게 주장했다. 심지어 '세계최초 정신 치료 장치 특허 인증'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반면 본보가 식약청과 H사에 확인결과 이 제품은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는 우려와 경고의 목소를 냈다. 최영락(청주정신보건센터장) 정신과 전문의는 EMDR 요법이 정신질환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치료법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고위험 외상후스트레스 장애군이나 극단적인 공포증, 즉 죽음 직전의 공포감을 느끼는 중증 질환자에 대해서 선별적으로 적용하는 요법"이라며 "모든 정신 질환에 적용되는 것도 아니며 제한적으로만 적용하는 치료기법이다"고 밝혔다.

검증된 의료기기가 아닌 제품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도 지적됐다. 최영락 센터장은 "약품과 의료기기는 수년에서 많게는 10년 이상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  검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부작용을 검증하는 것"이라며 "검증되지 않은 도구로 EMDR이라는 기법을 무작위 학생을 대상으로 사용하게 한 것은 결국 임상실험을 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친 짓이다. 이런 제품을 사용하려면 전문가 자문이 필수다"며 "자기 자식이라면 이렇게 했겠나. 오히려 제품을 사용하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영략 센터장은 일부 학교가 '아이○○○○'을 구매하면서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학생들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컴퓨터실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한데 대해 "H사가 밝혔듯이 이 제품은시력 보호와 전혀 무관하다"며 "교육청이 얼마나 무책임한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가경동에 거주하는 학부모 신 모씨는 "1억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된 사업이 임상실험 논쟁으로 비화돼 어이가 없다"며 "진상규명과 책임자를 꼭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청 특정 물품 집중 구매 의혹이 해결은 커녕 의료법 위반 논란까지 확장되면서 의혹만 커지고 있다.
    
"교육청 간부가 전화로 구매 지시했다"
현직 교장 전격 폭로 …  "모든 것이 교육청 지시였다"
교육감 바뀌어도 여전…현재도 특정 물품 오더 내려와

임상실험 논란을 일으킨 EMDR 치료 제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교육청 고위간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청주 모 학교 A 교장은 "교육청 간부가 행정실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제품 구매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A 교장은 해당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목적사업비에서 지출이 되는 것인데 그 만큼 우리 학교 예산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것은 걱정하지 말고 다른 용도로 예산을 추가로 내려 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A 교장에 따르면 '아이○○○○' 뿐만 아니라 다른 제품도 구매 지시가 있었다. 그리고 두 제품을 구입한 뒤에 지출한 비용만큼 예산이 지원됐다고 A 교장은 밝혔다.

논란이 된 EMDR 치료기기를 현재도 구매할 것을 강요하는 교육청 고위 간부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청주시내 모 학교 행정실 직원 B 씨는 "최근에도 구입을 요구하는 교육청 간부의 전화가 있었다"며 "교육감이 바뀌었지만 적폐는 계속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EMDR 치료기기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사용되지 않고 방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제품을 구입한 청주시내 10개교중 5개교 학생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대부분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한편 해당제품은 청주시내 10개교, 충주시 소재 학교등 도내 20개교에 가까운 학교가 구입했다. 제조사인 H사는 학생들 전용 제품은 42만원, 패밀리형은 51만이며 충북지역에는 51만원하는 패밀리형을 보급했다고 밝혔다.

충북인뉴스=프레시안 교류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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