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11일 밀양에서는 맨몸으로 저항하는 주민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모인 종교인들과 연대자들을 향해 '정부-한전-경찰'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며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행사했다. 나 역시 그 현장에 있던 연대자 중 한 사람이다. 우리를 향해 벌떼와 같이 몰려들던 수천 명의 경찰은 흡사 국민을 향해 전쟁을 치르려는 듯 섬뜩했다. 우리는 이날을 6. 11 대참사라고 부르곤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청도 삼평리에서는 매시간 연행과 부상자 상황을 알리는 숨 가쁜 문자와 SNS, 이메일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7월 21일 청도에서 마지막 송전탑 공사가 재개되며, 밀양의 눈물이 삼평리의 비명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청도에서도 처음엔 풍각·각북 2개 면이 함께 싸웠다. 그러나 2010년 10월 풍각은 대부분 한전과 합의하고, 피해가 가장 심한 삼평리는 마을 회의에서 마을 발전 기금 1억7000만 원을 거부하고 지중화를 요구하기로 한다. 외로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2012년 4월 중순에 22호, 24호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었다. 주민들 중 가장 젊은 이은주 씨 등은 KBS, MBC, TBC, 그리고 신문들에 취재 좀 와 달라고 애가 타게 전화를 했지만, "누구 한 사람이라도 방송국에서 오면 억울한 거를 알릴 수 있는데"(104쪽)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고립된 주민들은 "우물 안에 가둬놓고 우리를 밟아 죽일 그런 느낌"(104쪽)을 받으며 몸과 마음에 모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래도 할매들은 여름까지 이어진, 한전에 맞선 처절한 전쟁에서 송전탑을 막아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대구·경북의 시민들이 주민들을 위한 성탄절 예배를 올리겠다며 삼평리를 찾았다. 이날의 연대는 중요했다. 대구·경북의 시민들은 청도 삼평리의 송전탑 문제가 자기 문제임을 깨달았다. 이듬해 봄에는 '삼평리에 평화를'이라는 제목의 큰 잔치가 벌어졌다. '청도 345kV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도 결성하였다. 할매들의 외로웠던 투쟁에 다시 '한편'이 생긴 것이다. 이 글에서 소개할 책은 바로 이들의 연대 속에서, 연대의 한 방법으로 탄생하였다. 제목도 <삼평리에 평화를>(한티재, 2014년 7월 펴냄). 대구·경북 민중 언론 <뉴스민>이 기획하고 박중엽·천용길 기자와 이보나 활동가가 함께 쓴 책이다. 송전탑 반대 싸움에 나선 삼평리 할매 11명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전하는 이 책은 왜 탄생하게 된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왜 밀양에 이어 청도까지 저렇듯 무리한 폭력을 행사하며 공사를 강행하는 것인가? 아니 아니다. 이 글과 이 글이 소개하는 책 <삼평리에 평화를>이 말하려는 것은 그런 구조와 시스템이 아니다. 이 책의 질문은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사되는 저 폭력이 짓밟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거꾸로 말해 바로 그 폭력의 대척점에서 주민들이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생면부지의 삼평리를 찾는 연대자들이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이다.
공공성이라는 이름의 도둑질
이 책 <삼평리에 평화를>이 담고 있는 것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로 '흙'이다. 흙이라고?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해 보면 조금 이해가 쉬울 것이다.
"나무를 옮겨 심어 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뿌리 주변의 흙을 절대로 털어내서는 안 된다. 옮기는 중 그 흙이 상당 부분 유실된다면 나무는 제대로 심겨진다 하더라도 말라 죽기 쉽다. 옮겨 심은 그 땅이 설령 전보다 비옥한 땅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흙이 떨어지지 않게 뿌리를 조심스레 싸서, 묻을 때도 조심스레 함께 묻어야만 한다. 나무와 나무가 오랫동안 뿌리박고 있던 땅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나무가 뿌리박고 있는 땅과 분리될 수 없다." (63쪽)
삼평리에 평생을 뿌리박고 산 할매들도 그러하다. 할매들이 삼평리에 뿌리박게 된 사연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하나같은 점은 바로 땅의 의미다. 땅은 할매들이 "가스 불에 보리차 끓이는 것도 아까워하면서"(106쪽) 평생을 "손으로 벼 비고(베고) 보리 비고" 수십 년 온갖 고생을 감내하면서 자신을 바쳐 얻은 피와 땀이고, 살이다. 그리고 "평생 삶의 결과물인 땅이 있고, 자식들에게 물려줄 고향산천"(13∼14쪽)이 있어 그나마 "변변히 키우지 못한 자식들에 대한 평생 미안한 마음"에 위안이 되었던 터다. 그런데 그곳에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송전탑이 들어서고 34만5000볼트의 전기가 흐르게 되면 그곳은 농사도 못 짓고, 키우던 소도 시름시름 앓고, 은행에서 담보 대출도 못 받는, 자식들에게 쓸모없는 유산이 되어버린다. 자식들의 발길도 고향을 향하지 못할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이 알던 고향이 아니질 않은가. "그것은 그저 논 한 마지기, 밭 한 뙈기가 날아가는 게 아니다. 할매들의 자존심이, 거기에 쏟은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일이다." (14쪽) 할매들의 말대로 돈으로 팔아넘길 수 있는 것이면 진즉에 팔아넘기고 말았을 것이다. 온몸과 마음에 멍들지 않은 곳이 없도록 밟히면서도 싸움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할매들에게 삼평리가 '내 못난 평생이 일구어 온 유일한 자존심이고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할매들이 6년 넘게 지키려고 안간힘을 써온 것은 평생의 눈물과 웃음, 사연이 깃든 삼평리의 흙, 즉 삶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고 느껴야 한다. 할매들이 살아온 삶의 고단함과 그만큼의 소중함을 느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무심하게, 간단하게, 혹은 잔인하게 털어내려는 그 흙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한다. 삼평리의 땅과 흙은, 할매들의 삶과 그 삶 속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깊숙하게 뿌리를 내린 곳이다. 그것은 우리가 주식 투자를 하고 부동산을 사고 되팔아 얻는 재산과는 다르다. 그것은 오히려 정체성이라고 해야 옳다. 헌법에 적혀 있는 "우리와 우리들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이라고 해야 옳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정부와 한전은 '전력 수급'이라는 '공공성'을 들먹이며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도대체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전력 수급, 그러니까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핵발전소를 더 짓고, 그 핵발전소가 생산한 전기를 보내기 위해 정작 그 전기를 거의 쓰지도 않는 곳에 송전탑을 꽂고, 그래서 "진정한 공공성의 토대가 되어야 할 땅과 마을 공동체, 정의와 민주주의를 우롱하고 짓밟"으며, "우리와 우리들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기어이 침해하여 얻은 전기를 원활하게 공급하는 것이 공공성인가. 그리고 그렇게 국민의 삶을 헐값에 매도해 얻은 전기로, 정작 피땀 흘리며 일하는 사무실과 공장의 노동자들에게는 그 몫이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을 산업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공공성인가. 그리고 그렇게 얻는 돈과 편리를 할매들의 삶과 바꾸는 것은 과연 온당한가. 그만큼 소중한 것인가.
여기 삼평리 할매들이 그 삶과 투쟁으로 답하고 있다. 그 피눈물과 상처로 답하고 있다. 그것은 "공공성의 논리를 독점한 정부와 공기업이" 저지르는 도둑질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곳 현장이야말로 "위험천만한 핵발전소 확대와 부정의한 에너지 정책의 악순환으로부터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탈환하기 위한 최전선"(228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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