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기독교 순교자의 삶도 "허송세월"이라 할 건가?

[기자의 눈] 자신의 신앙 존중받길 원한다면, 다른 가치관도 존중하길

국무총리실이 논란이 된 문창극 총리 내정자의 강연 동영상 전체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찬찬히 다시 살펴봤다. 문 내정자의 강연 내용보다, 정부의 태도가 더 놀라웠다. 정부는 강연 내용이 정말 문제가 없다고, 단지 악의적인 언론이 왜곡 편집해서 문제라고, 국민이 강연 전체를 보고 나면 여론이 바뀔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던 걸까. 그래서 강연 전체를 홈페이지에 올릴 생각을 한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게 진짜 문제다.

문 내정자, 그리고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말한다. 개신교 신앙인이 같은 신앙인을 상대로 한 강연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라고. 그럴 수 있다. 신앙인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 신앙 공동체 내부의 상식을 외부의 잣대로 재단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되묻게 된다. 문 내정자는 “이조 500년은 허송세월”이라고 했다. 과연 그런가. 성리학에 바탕을 둔 조선은 근대 이후와는 전혀 다른 문명 체계였다. 요컨대 조선 문명을 주도했던 이들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삶을 동경하지 않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그들을 현재로 데려온다면,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현대문명을 근본적으로 부정할 가능성이 크다. 신념체계 자체가 다르다.

조선이 더 강한 폭력과 경제력을 지닌 세력에게 망한 건 사실이다. 또 다양한 내부 모순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500년 동안 이 땅에 터 잡고 살다가 죽어간 이들의 삶 전체를 싸잡아 깎아내릴 근거는 될 수 없다. (관련 기사: 광해군은 조선의 이명박?)

역사학자 오항녕은 말한다.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사람들은 조선이 근대로의 전환에 실패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근대로의 전환은 시험에 합격, 불합격을 따지듯 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일부만 제외하고는, 지구상에서 조선을 비롯해 대부분의 문명들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를 자신들의 미래로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설정하지 않은 목표나 결과에 어찌 실패와 성공이 있을 수 있겠는가?"(<조선의 힘>(역사비평사 펴냄), 5쪽)

문창극, 물질 대신 신앙 택한 순교자의 삶도 "허송세월"이라 할 건가

초기 기독교의 역사는 박해와 순교로 점철돼 있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올 때도 그럈다. 양반, 지주, 남성 등의 기득권을 버리고 ‘신앙’을 택한 이들이 한국 기독교 역사의 첫 페이지를 썼다. 이들이 결과적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고 해서, 재산을 날리고 벼슬을 잃었다고 해서, 문 내정자는 그들을 가리켜 “허송세월” 했다고 할 건가. 그렇지는 않을 게다. 순교자들의 목표는 돈이나 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조선 선비들의 목표 역시 물질적 성취는 아니었다. 초기 신앙인 중 일부가 신앙을 버리고 돈에 넘어갔다고 해서 초기 신앙인의 목표가 돈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선비답지 않은 선비가 많았다고 해서, 조선 선비의 이상이 물질적 성취였다고 할 수는 없다. 조선 선비들에겐 그들만의 신념 체계가 있었다. 현대적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는 기독교 신앙인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그들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건 잘못이다.

실제로 유림을 대표하는 성균관은 문 내정자의 퇴진을 요구한 최근 성명에서 "조선은 선비들이 경연을 통해 임금을 가르치고, 사관이 임금의 간섭을 배제한 채 실록을 편찬하고, 임금이 사림의 공론을 경청했던 문민국가의 모범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성균관은 "강도가 집안에 쳐들어오면 먼저 강도의 야만성을 규탄해야지, 집안 사람들이 모질지 못했다고 일제의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역사 인식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문 내정자에게 바란다. 자신의 신앙이 존중받길 원한다면, 다른 이들의 신념 체계도 존중해주길. 그게 조선 문명을 대체한 근대 사회의 운영원리다. 문 내정자의 강연 동영상을 홍보하는 박근혜 정부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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