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감금·폭행이 나을지도 몰라요. 그토록 사람을 짐승처럼 대하다가 이렇게 가버렸는데 어쩜 반성의 기미가 하나도 없을까. 사과는커녕 너무 뻔뻔해서 막막하고 암담하기만 해요."
전주 버스 운전사 고(故) 진기승 씨의 부인 김 모(44) 씨는 열흘이 넘도록 상복 차림이다. 기약도 없이 남편의 주검을 냉동고 속에 놔두고 장례식장 빈소 옆 작은 방 안에서 하루를 보낸다. 공공운수노조·연맹 신성여객지회 소속 동료들은 진 씨가 숨지고 다음날인 3일부터 무작정 운전대를 잡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전주의 한 장례식장에서 부인 김 씨 등을 만났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만 남편을 이대로는 보낼 수 없다"며 "남편이 당한 유린만큼의 진정한 사과를 신성여객으로부터 받고 싶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탈퇴하면 복직…무릎 꿇으라"
"유린". 많은 언론이 진 씨의 자결 배경을 설명하며 종종 빠트리는 부분이다. 물론 보도된 대로 그는 노동조합 탄압 중단, 근로기준법 보장, 식사시간 보장 등을 요구했던 2010~2012년 전주 지역 버스 파업(총 3차례, 271일)에 참여한 후 지난해 3월 해고됐고,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 왔다.
그러나 진 씨를 힘겹게 한 건 그뿐이 아니다. 진 씨의 부인과 그의 동료들에 따르면, 신성여객은 노조 활동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진 씨에게 "민주노총을 탈퇴하면 복직시켜주겠다"고 지속해서 회유했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이나 신성여객 한명자 회장 앞에서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고 한다.
"2009년 신성여객에 입사하고 시급 5300원을 받으며 쉬지도 않고 노예처럼 일했어요. 하루 15시간 이상씩 운전을 했으니 늘 소화불량이라 양치질할 때마다 구역질을 하고 그랬고요. 저는 미련 갖지 말고 그 직업 버리라고 했는데, 노동조합을 해서 다 바꿔 보겠다고 저를 설득했어요. 의협심이 굉장히 강한 사람인데 그렇게 무릎을 꿇게 했으니…."
당시 진 씨는 부당해고를 인정받기 위한 법정 싸움을 하던 중이었다. 지난해 5월 전북지방노동위원회는 진 씨에 대한 해고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부당해고를 판정한 바 있다. 그러나 약 3개월 후 중앙노동위원회는 "해고에 하자가 없다"며 회사 손을 들어줬다. 김 씨는 남편이 "행정법원에서도 지면 어떡하느냐"는 불안에 심하게 떨었다고 말했다.
진 씨는 갈등했다. 내년이면 대학생이 되는 딸의 등록금을 마련해야 한단 압박에 시달렸다. 해고 이후 친구 소개로 한 레미콘 운전 일도 생계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잇몸이 약해져 아랫니가 4개나 빠진 아내가 치료비가 없어 싸구려 의치를 해 넣는 것을 보고 "내가 너무 무능하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3월 중순 어느 날 퇴근해서 보니 집에서 울고 있더라고요. 그날이 회장 집에 가서 두 번째로 무릎을 꿇고 온 날이었어요. 정말 너무 자존심이 상해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고 대성통곡을 하는 남편을 붙들고 둘이서 정말 펑펑 울었어요. 결국 복직시켜줄 것도 아니었으면 어쩜 그렇게 파렴치할 수 있는 거죠."
□ 신성여객 및 전주지역 버스 파업 관련 기사 보기[전주버스파업 르포] / 이혜정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편집부장
"나 죽어 민주버스가 더 발전하길 빌게요"
진 씨의 동료인 김태훈 공공운수노조·연맹 신성여객지회 사무국장도 진 씨가 갈등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들어 알고 있었다. 지난 4월 막 노조 간부가 된 김 사무국장을 찾은 진 씨가 "미안하다"며 사정을 알린 터였다.
당시 김 사무국장은 "(노동조합) 조끼 벗는 것엔 연연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그러면서도 "소송은 한 번 취하하면 되돌릴 수 없으니 꼭 (복직에 관한) 확답을 받으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김 사무국장은 그러나 "인제 와서 보니, 회사는 애초 기승이 형을 복직시킬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엔 민주노총 탈퇴와 복직을 거래하자던 회사가, "나중에는 월급 250만 원을 맞춰줄 테니 사무직 간부로 오라"는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노조 탈퇴를 넘어선 그 이상의 '배신'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간부는 언제든 해고할 수 있잖아요. 예전 동료들을 탄압하는 데 도구로 쓰고 쓸모없어지면 버리려는 속셈 아니었겠어요. 그때 기승이 형도 '이용만 당했구나'란 생각을 한 거 같아요. 끝까지 법정 싸움으로 해볼 걸 그때 왜 꿇었나란 후회가 몰아치면서 죽고 싶을 만큼 자존심이 상했을 거예요."
실제 진 씨는 자결 시도 며칠 전 한 동료에게 "나 죽어 민주버스가 더 발전하길 빌게요. 내가 자존심 버리고 살아나려고 발버둥 쳤는데 나를 이용하네요. 용서하지 마세요"란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해고 이후 이미 많은 것이 무너져 있던 터였다. 김 씨는 "차라리 파업 때 부부 사이가 더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남편의 해고 이후 언제부턴가 나도 우울증이 와서 반찬을 하며 소주를 많이 마시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노동절을 하루 앞둔 4월 30일 밤 11시께, 진 씨는 자결을 시도했다. 이에 몇 시간 앞서 두 자녀에게 "아빠가 너무 보고 싶으니 집에 오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긴 그는 두 아이를 말 없이 안아주고 양복을 입은 채로 집에서 나가버렸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김 씨는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참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어요. 뇌사라고 하더라고요. 치료를 받고 조금 호전돼서 식물인간과 뇌사 사이까지도 갔었어요. 눈도 한 번 뜨고 엄지손가락도 움직였는데 욕창이 심해지고 합병증이 왔어요. 병원에서 이제 고비라고 해서 애들 데리고 가 산소포화도가 막 떨어지는 걸 지켜봤어요. 가고 나서도 한쪽 눈이 떠져 있어서 딸이 오열하며 남편 눈을 감겨줬고요."
자결 시도 이튿날 부당해고 판결…"신성여객 사과하라"
안타깝게도 진 씨가 자결을 시도하고 그 이튿날인 5월 1일, 행정법원은 부당해고를 판결했다. 전주지방법원 또한 지난해 8월, 진 씨의 노조 등이 2차 전주지역 버스 파업을 시작하고 7일 만에 신성여객 등 전주 시내버스 회사 2곳이 단행한 공격적 직장폐쇄(2012년 3~6월)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신성여객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외려 중노위는 포기한 항소를 신성여객은 지난달 19일 강행한 상태. 이때는 진 씨가 부당해고 판결을 알지도 못한 채로 한참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다. 급기야 지난 5일엔 사측 대표가 "민주노총이 죽였으므로 나는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망언을 했다는 이야기도 노조를 통해 나왔다.
"한명자 (신성여객) 회장이 한 번 병원에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뉘우치기는커녕 위로랍시고 '3년이고 몇 년이고 누워 있다 보면 깨어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남편 누나가 오열하며 '살려내라'고 고함을 치니 '어거지 쓰지 말라'고 해서 가족들이 전부 분개했었어요. 말이 어떻게 안 통할 정도로 파렴치해요."
부인 김 씨는 "그래도 우리 기승 씨가 한을 풀 수 있도록 꼭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이 염원했던 대로 버스 운전사도 대우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도 남겼다.
현재 공공노조 신성여객지회는 매일 저녁 전주시청에서 시작하는 촛불행진을 하며 승무 거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신성여객 측의 진정한 사과와 부당해고 인정 및 진 씨의 해고 기간 임금 지급에 따른 명예 회복을 요구하는 중이다.
계속되는 투쟁에 신성여객 측은 최근 월 200만 원씩 10년간 보상금 분할 지급, 진 씨의 자녀에 대한 대학 학자금, 장례비 등을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긴 했으나 노조와 유족들은 거부했다. 그간의 신성여객의 노조 탄압 전력과 말 바꾸기 행태를 보아 "언제든 보상금 지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