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평화헌법 개정, 동아시아 최대 위기”

[인터뷰] 일본 개헌 반대 시민 집회 참석하는 김영호 단국대 석좌 교수

“일본 아베 정권은 이달 중 내각 결정만으로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는 이른바 ‘해석 개헌’을 강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성공한다면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은 2차대전 이후 가장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과거 일본의 전쟁 책임을 인정하고 일본의 군사력을 오직 방어에만 사용한다는 것을 약속함으로써 그동안 동아시아 평화의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일본 헌법 9조가 사실상 사문화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오는 10일 일본 도쿄 시부야공원에서 열리는 개헌 반대 시민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떠나는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전 유한대 총장)를 9일 이른 아침 김포공항 출국 로비에서 만났다. 그는 아베 정권이 강행하는 평화헌법 개정의 위험성에 대한 국내 시민사회의 관심이 생각보다 너무 약하다며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의 운동에 한국 등 아시아 시민들이 힘을 보태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화헌법 개정을 막기 위해 10년 전 결성된 ‘9조의 회(九條의 會)’가 주최하는 이번 집회에는 5만-10만에 이르는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이 모여 아베의 개헌 시도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힐 예정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년인 지난 2012년 3월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원전 반대 시위 이후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평화헌법과 집단자위권’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집회에는 ‘9조의 회’를 이끌고 있는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해 미국의 양심적 지성 놈 촘스키, 한국의 김영호 교수 등이 연사로 참석해 아베 정권의 개헌과 동아시아의 평화에 관해 강연한다. 또 일본 최고의 헌법학자라는 오쿠헤이 야스히로 교수, 그리고 내각 결정에 의한 해석개헌에 반대하다 지난해 8월 아베에 의해 해임된 사카다 마사히로 전 내각법제국 장관도 연사로 참석한다.

“아사히신문이나 도쿄신문 등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65% 이상이 9조 개정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찬성은 30%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일본 국민들의 반대를 우회하기 위해 담당 장관을 전격 경질하는 무리수를 두어가며 헌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김영호 교수는 10일 강연에서 동아시아의 현실과 관련해 두 가지를 강조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하나는 중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적대적 상호 의존의 악순환이라는 함정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 이 악순환의 고리를 깨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시민사회의 분발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분쟁을 악화시킨 책임은 주로 일본에 있습니다. 1970년대초 중일 국교정상화 당시 양측은 영토분쟁을 덮어두기로 약속했으나, 이후 일본은 끊임없는 도발을 통해 분쟁의 강도를 높여왔습니다. 일본에 대한 중국의 안보 위협을 인위적으로 조장함으로써 이를 헌법 개정의 빌미로 삼은 겁니다. 반면 중국 공산당은 성장하는 중산층으로부터 민주화 요구에 직면해 있습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는 약 2백만개의 시민단체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중산층도 3억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지난 5일 천안문사태 25주년에 드러난 것처럼 이들의 민주화 요구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 요구를 억누르기 위해 중국 정권에게는 일본이라는 외부의 적이 필요합니다. 결국 이런 상황이 적대적 상호 의존의 심화라는 악순환을 초래한 것입니다”

적대적 상호 의존은 중일 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 남한과 북한 간에도 적대적 상호 의존이 작동하고 있다. 센카쿠, 독도 등 영토문제를 빌미로 한 영토 내셔널리즘이 기승을 부릴수록 전쟁을 바라는 제국의 논리는 강화되고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의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아베의 평화헌법 개정을 시발점으로 동아시아가 갈등과 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그중에서도 아시아 최초로 시민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화를 쟁취한 한국의 시민사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는 지적한다. 마침 집회가 열리는 6월 10일은 한국 시민의 민주화 열기가 폭발한 87년 6월항쟁 27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선도적으로 나서 일본 시민사회의 개헌 반대 운동을 밀어주어야 미약하나마 중국 시민사회의 참여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가 보기에 아베의 개헌 책동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의 관심은 너무도 미약하다. 일본의 개헌을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거나 또는 개헌이 동아시아의 평화에 미칠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해 아사히신문, 이와나미 서점 등 개헌 반대 운동을 이끌고 있는 일본 시민사회의 지도자들이 한국 시민들의 협력을 절실하게 원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들은 일본 시민사회가 1970-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던 것처럼 현재와 같은 일본의 결정적 국면에 한국 시민들이 힘을 보태주길 원한다. 하지만 개헌과 관련해 일본에 소개되고 있는 한국 언론의 논조는 뜨듯미지근하기만 하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이러한 한국의 입장은 일본의 개헌파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 시민사회의 방관자적 태도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미국이 대중국 군사포위망을 위해 일본을 내세우려 하고 있는 만큼 일본의 개헌과 군사화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3개월간 미국 하버드대학에 머무르면서 조셉 나이 등 미국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 의견을 나눈 김영호 교수의 판단은 이러한 통념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 내에는 중국과의 군사대결을 원하는 군사주의 세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에 반대하는 평화주의 세력도 만만치 않게 포진돼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일파이자 일본의 군사화를 요구해온 리차드 아미티지나 마이클 그린 같은 강경파 인물도 최근에는 일본의 거침없는 군사화 행보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 시민사회의 선도로 동아시아의 평화 여론을 강화시킨다면 미국의 대동아시아 정책을 평화주의 쪽으로 견인해낼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이른바 시민 아시아(Civil Asia) 운동을 벌이자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개헌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한다 해도 한국의 요청이 없는 한, 일본 군대가 한반도에 진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중대한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에는 전시작전권이 없기 때문이다. 전시작전권을 가진 주한미군이 요청할 경우 일본 군대의 한반도 진출을 한국은 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1894년에 그랬던 것처럼 재한 일본인 보호를 명분으로 일본 군사력이 한반도에 진출할 수도 있다. 나아가 개헌을 통해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될 경우, 한국은 한미일 삼각동맹의 최하위 파트너로 전락해 일본의 군사 지휘를 받을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현재 중국의 군사력이 일본에 앞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 교수에 따르면 아직은 일본의 군사력이 정보 수집 능력이나 타격의 정확성 등 질적 측면에서 중국을 앞서고 있다. 물론 중국이 국방 투자를 급속하게 늘여가면서 앞으로 그 차이는 줄어들 고 있다. 아베 정권은 중일간의 군사력 격차가 더 좁혀지기 전에, 즉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중국과의 군사 대결을 원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판단이다. 아베 정권의 해석 개헌이 갖고 있는 위험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위험성을 우리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더 큰 위험이 도사려 있다.

지금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과의 군사대결을 불사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상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 대결의 소용돌이 속으로 한 발 한 발 끌려들어가고 있다. 미사일방어망 참여,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 등이 그것이다. 일본처럼 미국과 중국 간의 군사대결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두 나라를 평화공존으로 이끄는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이 해내야 할 임무이다. 미일중이 대결구도로 나아가고 있다면, 미한중은 협력구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4.16 세월호 참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라는 점을 생생하게 깨우쳐 주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 한국은 세월호 참사와 지방선거, 그리고 다가올 7.30 재보궐선거 등에 파묻혀 한반도 주변에서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는 전쟁의 먹구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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