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은 말한다, "'문학의 종언'은 허풍이라네!"

[프레시안 books] 조너선 갓셜의 <스토리텔링 애니멀>

2010년 7월에 문을 연 '프레시안 books'가 이번 5월 30일, 191호를 끝으로 잠시 문을 닫습니다. 지난 4년간과 같은 형태의 주말 판 업데이트는 중단되나, 서평과 책 관련 기사는 <프레시안> 본지에서 부정기적으로나마 다룰 예정입니다. 아울러 시기를 약속드릴 수 없지만 언젠가 '프레시안 books'를 재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실린 글을 편하게 검색하고 볼 수 있는 아카이브를 여름 내로 구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프레시안 books'를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 참여해 주신 필자 여러분, 지켜봐주시고 도와주신 출판계 관련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프레시안 books'가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에 조합원으로 함께해 주세요! -프레시안 books 편집부 올림


"수만 년 전, 인류의 정신이 미숙하고 인구가 소수이던 시절에 우리는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로부터 수만 년 뒤, 지구상에 인류가 넘쳐 나는 지금도 대다수 인간은 사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에 귀를 쫑긋 세우며 종이 위에서, 무대에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살인 이야기, 섹스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모 이야기, 진실 이야기, 거짓 이야기 등 온갖 픽션에 열광한다. 인간이라는 종은 이야기 중독자이다. 몸이 잠들었을 때조차 마음은 밤새도록 깨어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너선 갓셜이 지은 <스토리텔링 애니멀>(노승영 옮김, 민음사 펴냄)의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별로 새로운 내용도 아니다. 사실 우리는 숱한 이야기들에 둘러싸여서 살고 있다. 문학도 그렇고 일상의 대화도 그렇고 허구의 신을 상정하고 온갖 종류의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자체 숭상하는 종교도 마찬가지다. 영화나 게임은 말할 것도 없다. 꿈도 매한가지다. 그런데도 수학 교육에조차도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해야한다고 난리다. 이 정도면 이야기 중독이라고 할만도 하다.

▲ <스토리텔링 애니멀>(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이 책은 생물학, 심리학, 신경과학을 동원해 그 화창하던 가을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네버랜드에 과학을, 번들거리는 기계와 차가운 통계와 추한 전문 용어를 들이대는 것이 거북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픽션, 공상, 꿈은 인문학적 상상력의 성소이며 마법의 마지막 보루이니까. 이곳은 과학이 침투할 수 없는, 침투해서도 안 되는 영역이다. 고대의 신화를 뇌 속의 전기 화학 작용이나 이기적 유전자 간의 영원한 정쟁으로 환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네버랜드의 힘을 해명하면 모든 신비가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려워한다. 워즈워드가 말했듯 해부하는 것은 곧 죽이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여전히 이야기나 문학을 인류의 진화와는 동떨어진 하늘에서 뚝 떨어진 뭔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것으로 상정하면서 스스로의 사고를 고립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을 통해서 갓셜은 진화심리학의 입장에서 '우리는 어쩌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이 되었을까?'에 대한 대답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질문의 범위와 깊이를 좀 더 확장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이 책에서 풀고자 하는 수수께끼 중 하나는 단지 '이야기가 왜 존재하는가?'가 아니라(물론 이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이야기가 왜 이토록 중요한가?'이다."

▲ <이야기의 기원>(브라이언 보이드 지음, 남경태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휴머니스트
이야기의 기원과 형태와 패턴을 진회심리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살펴보는데 기본이 될 만한 책을 고르라면 일단 세 권을 선택하겠다. Jonathan Gottschall과 David Sloan Wilson이 엮은 ≪Literary Animal: Evolution and the Nature of Narrative≫, Brian Boyd가 지은 ≪On the Origin of Stories Make Us Human≫ 그리고 역시 Gottschall이 쓴 ≪The Storytelling Animal: Evolution, Cognition, and Fiction≫. <이야기의 기원>(브라이언 보이드 지음, 남경태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은 이미 번역이 되었고 <스토리텔링 애니멀>의 번역본은 이번에 나왔다. <이야기의 기원>이 좀 더 무겁고 학술적으로 이야기의 기원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면 <스토리텔링 애니멀>은 이야기의 기원 자체 보다는 이야기의 온갖 형태를 보여주면서 그 의미를 되묻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참에 ≪Literary Animal≫도 번역이 되면 금상첨화겠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에는 별의별 종류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이 책을 읽어내려 가다보면 우리가 정말 스토리텔링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여겨보면 어느 것 하나 스토리텔링이 아닌 것이 없는 듯하다. 우리는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다!

인류의 조상들이 살아남기 위한 적응 과정에서 이야기를 발명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당연해서 이젠 좀 지겹기도 하다. 종교가 진화적 적응인지 아니면 진화적 부산물인지 또는 둘 다인지 따지는 것도 학문적으로는 쟁점이 되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사실 좀 진부하다. 한편 적응의 결과든 부산물이든 종교는 성공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사하면서 그 생존에 유리했다고 할 수 있다는 갓셜의 주장은 눈길을 끈다. 그는 "성스러운 픽션에서 우리는 이야기하는 마음이 구사하는 말 짓기의 최고봉을 본다"라고 종교의 스토리텔링 성공담을 서술하고 있다. 종교야말로 진화심리학적 요인에 충실하게 스토리텔링을 만들어서 인간의 마음의 허점을 성공적으로 (그렇다고 선하다는 것은 아니다.) 파고든 진화의 한 사례라는 것이다.

많은 문학평론가들이 현대 사회에서 문학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종언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전통적인 픽션이 죽어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보편 문법이 바뀌리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향후 50년간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롤플레잉 게임의 방식을 차용한 쌍방향 픽션은 괴짜나 즐기는 주변부 장르에서 벗어나 주류로 진입할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라프 게이머처럼 상상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캐릭터를 구상하고 직접 연기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무대는 현실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일 것이다."

상상을 통한 가상의 현신화를 바탕으로 발현한 이야기는 스토리텔링의 형태를 갖추면서 이미 그 끝에 가상의 세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스토리텔링의 무게 중심이 구술 문학에서 문자 문학으로 그리고 영상으로 옮겨가다가 이제는 그 원류라고 할 수 있는 가상에 정착해 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은 이야기를 단지 고전적인 의미에 묶어두지 않고 가상으로까지 확장시킴으로써 눈에 보이는 위기가 사실은 위기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야기는, 스토리텔링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디지털 기술이 진화하면 어디에나 있으며 몰입적이고 쌍방향적인 이야기의 매력이 위험 수준에 이를지도 모른다. 정말 두려운 것은 이야기가 미래에 인간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완전히 집어삼키는 것이다."

갓셜은 스토리텔링만 남은 인류에 대한 성찰도 보여준다. 인간은 사라지고 가상 세계 속에 이야기만 남은 세상을 상상해 보면 오싹하기까지 하다. 스토리텔링은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숙성된 인간의 본성이다. 멈출 수 없다, 더구나 가상이라는 세계를 이미 구축해놓고 번성 중이다. 그렇다면 대안이 있는가?

"아마도 우리는 그러한 운명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갓셜은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어떻게? 내게는 다소 낭만적인 낙천주의자의 진술처럼 들리지만 갓셜은 <스토리텔링 애니멀> 마지막 페이지를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여러 대책들로 채우고 있다. 일단 한번 믿어보기로 한다.

보이드와 갓셜의 책은 진화심리학적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기원과 패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번역된 두 권의 책을 읽으면 이 분야에 대한 어느 정도의 균형 잡힌 개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갓셜과 윌슨이 엮은 ≪Literary Animal≫까지 번역된다면 더할나위가 없겠다.

다윈주의 문학비평의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문학을 다루고 있는 책들도 있다. 데이비드 바래시와 나넬 바래시가 지은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박중서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가 대표적인 책이다. 국내 저작으로는 석영중이 쓴 <뇌를 훔친 소설가>(예담 펴냄)가 있다. 이 두 권의 책들은 다윈주의 문학비평의 관점에서 문학 작품을 어떻게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다윈주의 문학비평 이론적 기둥이라고 할 만한 책들은 여전히 번역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생각나는 대로 몇 권을 적어보면 이렇다.

- Brian Boyd, Joseph Carroll, Jonathan Gottschall이 엮은 ≪Evolution, Literature, and Film: A Reader≫ (2010)
- Joseph Carroll이 쓴 ≪Evolution and Literary Theory≫ (1995)
- Joseph Carroll이 쓴 ≪Literary Dawinism: Evolution, Human Nature, and Literature≫ (2004)
- Joseph Carroll이 쓴 ≪Reading Human Nature: Literary Darwinism in Theory and Practice≫ (2011)
- Joseph Carroll, Jonathan Gottschall, John Johnson, Daniel Kruger이 쓴 ≪Graphing Jane Austen≫ (2012)

특히 다윈주의 문학비평의 창시자로 불리는 조셉 캐롤의 책이 아직 번역되지 않고 있는 것은 정말 아쉽다. 갓셜의 <스토리텔링 애니멀>은 <이야기의 진화>와 서로 보완하면서 이야기의 진화론적 기원과 패턴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책이다. 이 책의 번역이 마땅히 번역되어야 할 다른 많은 다윈주의 문학비평 기본서들의 번역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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