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성공에는 현대 여성에게 어필하는 스토리가 있었다. 남성에 의지하지 않는 여주인공들의 당당함과 자주성, 그리고 자매애가 여성 관객을 파고든 것이다. 나는 엘사가 궁전을 박차고 나가며 불렀던 <렛 잇 고>라는 노래를 들으며 "나는 나 자신의 것"이라며 '인형의 집'을 떠났던 노라를 떠올렸었다.
입센(1828~1906)의 원작(A Doll's House)과 달리, 1919년 중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후스의 희곡 <종신대사>(<중국 현대 단막극선>(한상덕 옮김, 한국학술정보 펴냄)에 수록되어 있다)의 노라(톈 야메이)는 단순히 나 자신을 찾아 집을 나간 것이 아니라 사랑을 찾아 나가는 것으로 각색이 되었다. 신문화운동시기 신문학작품의 98퍼센트가 연애소설이었으며 당시 청년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연애를 꼽았을 정도로 '연애', 구체적으로는 나 자신이 선택한 배우자와 동거 혹은 결혼하는 것이 당시로서는 억압의 상징인 대가족제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자립의 실천을 의미했으며 그 자체로 문명화의 상징적 행위였다. '노라'는 가출과 저항, 연애의 화신이 되었고 실제로 수많은 남녀청년들이 가출을 감행했다. 그야말로 노라 강박증(Nora compulsion)이었다.
20세기 중국의 여성해방운동은 정치(정권)주도를 그 특징으로 한다. 페미니즘은 늘 민족주의나 민권운동 같은 정치운동에 종속되었다. 이에 중국의 여성해방운동을 주도한 것은 남성이며 여성은 계몽의 대상일 뿐이었다거나, 중국에서의 '노라'는 여성이 아니라 담론의 주체인 남성의 시선으로 구축된 '거성화된(desexualized, 去性化)'된 '신여성'의 형상이라는 등의 논의들이 지난 20년간 중국근현대 연구자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였다.
특히 '거성화된 노라' 논의는, "젠더는 남성과 여성, 남성성과 여성성 간의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경계가 아니라 오히려 유동하는 범주이며, 그렇기에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연구되어야 한다"고 하는 조앤 스콧의 탈구조주의적 젠더 히스토리를 비롯해 에드워드 사이드, 가야트리 스피박, 호미 바바 등 탈식민주의 이론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탈구조주의의 관점으로부터 보면 개인 혹은 집단의 정체성, 경험과 이익은 담론에 의해 생산되며 특정한 문맥(context)과 구조 아래 배치된 것이다. 따라서 남녀 구분 자체는 중요하지 않고 그것이 어떤 문맥 하에 구성되었는가를 연구해야 한다.
하지만 마지막 두 장에서는 이러한 남성의 사고를 내면화한 빙신의 단편 '두 가정'(<빙신 단편집>(조성환 옮김, 지만지 펴냄)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에 대한 뒤집기를 시도한 장 아이링의 단편 '패왕별희'를 통해, 여성은 남성이 만들어놓은 기준과 가치를 내면화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그에 대항하며 재규정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중‧일 세 나라에서의 노라 수용 방식의 차이라든가 각 시기에 따른 노라 형상의 변화를 세밀하게 추적하지 않아 아쉽긴 했지만 그런 연구는 이미 역사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이루어질 것이다.
다만 저자는 노라로 상징되는 반전통주의와 민족주의 서사를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중국의 주류 민족주의자가 마치 반전통주의자인 것처럼 말하면서, 또 이것이 인도의 민족주의와 다른 점이었다고 썼다. 나는 문화민족주의나 문화보수주의를 빼고 중국 민족주의를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 근대 중국의 젠더와 국민국가의 서사의 고리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입센의 노라보다는 연애지상주의와 모성주의로 한동안 지식인을 사로잡은 스웨덴 여성 사상가 엘렌 케이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강요된 개항과 근대화로 인해 겪어야 했던 한국과 중국의 고난의 역사, 그 수모와 굴욕을 여기에서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식민주의의 희생자, 피해자라고 하는 동병상련의 감정이 한국의 청년을 중국근대사 연구로 인도했다. 물론 독재의 어둠이 깊었던 만큼 붉은 중국은 희망의 등불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살짝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중국의 (저항)민족주의에 감동해 그 주제로 박사논문도 썼는데, 알고 보니 중국(의 지식인)은 강자의 논리를 비판하는 한편에서 강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부단히 추구해왔으며, 거기에서 여성은 늘 주변인일 뿐이었던 것이다.
지난 4월16일 이후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사의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하고, 나 같은 인문학자의 입장에서는 1995년 바로 내 앞에서 무너져 내린 삼풍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압축적 근대화'가 쌓아놓은 또 하나의 모래성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생명과 인권, 개인주의나 자유주의 같은 보편적 가치를 희생해서라도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다면 독재도 일종의 아시아적 가치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엄존하는 한, 앞으로도 이런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다만 아시아적 가치 논쟁도 그랬지만 중국의 민족주의가 갖는 양면성 또한 구미와 그 영향을 받은 일본 지식인들의 이론을 갖고 논증해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씁쓸함을 안겨준다. 혹시 우리도 식민주의(또는 오리엔탈리즘)를 내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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