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무죄, 땅땅땅"…뭉개진 검찰 자존심

"이 사건 공소 사실 중 2009년 6월 22일자 국가보안법(특수잠입탈출) 위반. 8월 23일자 국가보안법(편의제공) 위반, 2011년 2월 경 국가보안법(간첩 및 회합통신) 위반 등 각 무죄. 원심 판결 무죄부분 중 검찰 항소 기각."

'땅땅땅'. 검찰의 자존심이 뭉개지는 순간이었다. 최행관 검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비비곤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간첩 만들기' 실패를 예견했기 때문일까. 이현철 부장검사를 포함해 6명이 총동원됐던 결심 공판과는 달리, 선고일인 25일, 검사석에는 세 명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유 씨에게 처음 공소장을 날렸던 이문성, 이시원 검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도 남은 검사 세 명 중 한 명은 선고 도중 자리를 떴다.

한숨은 반대편에서도 나왔다.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있던 양승봉 변호사가 한숨을 내쉬며 살며시 눈을 떴다.

▲25일 항소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서울 서초동 법원 앞마당에서 유우성씨와 변호인단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프레시안(서어리)

무죄 판결 선고를 듣기까지 한 시간 반이 걸렸다. 판사가 당초 약속한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선고 내내 죄인처럼 피고인석에 서 있던 유우성 씨는 기지개를 펴고, 변호인들은 긴장이 풀렸는지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았다.

"천낙붕 변호사님은 옆에서 울고 있더라고요."
"양변도 울려고 하더만"
"저도 진짜 눈물날 뻔 했어요. 판사님이 가려(유 씨 동생) 진술 증거 능력 인정 안 된다고 하나하나 말씀할 때마다 울컥해서, 그래서 눈 감고 있었어요."

이 순간, 가장 홀가분한 건 유우성 씨다. 북한이탈주민보호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지만, 적어도 간첩 혐의는 벗었다.

"좋은데 뭔가 허무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 씨는 이날 선고가 "예상보다도 훨씬 잘 나왔다"고 했다.

"판사님이 생각보다 판결문을 정말 꼼꼼하게 해줬어요. 제가 간첩이라는 검찰 공소 내용을 하나하나 다 쳐줬거든요. 만약 3심에 간다 하더라도 안 될 겁니다."(관련 기사 : "유우성 사건, 국정원 '불법 구금' 인정됐다","[속보] 유우성 간첩 혐의 2심에서도 '무죄'")

낭보는 유 씨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도 날아들었다.

"오늘 왜 이렇게 판결이 늦게 났대요?"
"검찰이 말도 안 되는 증거들 내놓아서 그거 일일이 기각 사유 밝히느라고 그랬대요."
"어쩐지 빨리 속보가 떠야 하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 안 뜨더라고요."

민변 상근자들은 '말도 안 되는' 증거들을 늘어놓아 선고 시간만 늘여놓은 검사들을 험담했다.

"대한민국 온 지 딱 10년… 재판 받던 1년 4개월, 무서웠다"

다소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유 씨는 이날 오후 민변 사무실에서 다시 기자들 앞에 섰다. 국가보안법 혐의로 검찰에 긴급 체포된 지 1년 4개월, 항소심 재판이 시작된 후로 7개월. 그간 이곳에서 제법 많은 기자회견을 거쳤지만, 이날 회견은 더욱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항소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소감을 묻는 취재진에 둘러싸인 유우성 씨. ⓒ프레시안(서어리)

2014년 4월 25일. 유 씨가 한국에 건너온 지 딱 10년째 되는 날이다. 10년 전 대한민국 국민임을 인정받았던 그는 이날은 간첩이 아님을 인정받았다.

"많이 무서웠습니다. 변호사님도 소송에 걸리고, 제 사건을 취재한 기자도 소송에 걸렸습니다. 저 같은 사람을 위해 어떤 사람이 진실을 알려줄까 조바심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사건이 많이 알려져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 앞으로 (수사기관이) 저를 더 못살게 할지 모르지만 진실만 추구하고 지금처럼 대응하겠습니다."

그는 거푸 "진실을 추구하겠다"고 했다. '유우성 사건'뿐 아니라 밝혀져야 할 진실들은 여전히 켜켜이 쌓여있다. 변호인들도 "역사적 판결"이라면서도 "이제 빙산의 일각이 밝혀졌을 뿐"이라고 했다. 유 씨 사건을 처음 민변에 알린 장경욱 변호사는 유 씨 사건과 함께 또 다른 간첩 사건인 '북한보위부직파간첩 홍 씨' 사건 변론을 맡았다.(관련 기사 : "'유우성 사건' 2탄? 재판 공개 여부 또 쟁점")

"우성이는 운이 좋은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우성이 사건을 계기로 분단 상황을 악용해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알려줄 겁니다."

서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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