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돈 내려 매춘"? 황당해도 귀 기울인 이유

[청소년 범죄, 법과 복지 사이] <4> 의뢰인-변호인의 신뢰 관계의 중요성

청소년 범죄가 늘어 걱정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청소년 범죄에서 강력 범죄의 비율이 높아지고 재범률이 높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위험한 10대'를 묘사하는 보도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를 깊이 있게 탐색하는 시도는 그리 많지 않다.

<프레시안>은 법률구조와 사회 복지를 결합해 이 문제를 풀어갈 것을 제안하는 김익태 변호사(법무법인 도담)의 글을 게재한다. 김 변호사는 미국 변호사로서 미국 형사 법원에서 국선 전담 변호사로 활동하며 청소년 범죄를 비롯한 다양한 범죄를 접했다. 귀국 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통상교섭본부 민간자문위원과 인하대 법학 전문 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12∼2013년 론스타와 ISD, FTA 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연재를 진행하기도 했다(☞ 론스타 연재 바로 가기). <편집자>

청소년 범죄, 법과 복지 사이
<1> '알바' 구하던 15세 소년, 살인범으로 몰리다

<2> 강간범 누명 6년 옥살이, 13년 만에 무죄 밝혀졌지만

<3> 부유한 백인들이 흑인 청소년 범죄자 위해 돈 낸 이유

"미스터 킴, 잠시만요." 오전 스케줄에 밀려 서둘러 샌드위치를 가지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나를 누군가 불렀다. 단정한 외모와 교양 있는 말투 때문에 인상이 남아 있던, L양의 어머니였다. "죄송합니다. 점심시간인 줄 알지만 마음이 급해 이렇게 또 찾아왔습니다. 잠깐만 시간을 내주시면 안 될까요?" 나의 점심도 중요하지만 어머니의 표정은 너무나 절박해 보였다. 그리하여 더운 여름날, 누런 샌드위치 백을 들고 서서 L양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 18세의 백인 여성이던 L양은 마약 소지 재범자로 체포된 나의 고객이었다. 경찰의 물증 확보가 워낙 철저했고 L양 또한 이미 유죄를 인정하기로 한 상태라, 사실상 나로서는 검사와 협상해 좀 더 나은 구형을 확보하는 것 이외에는 별반 할 일이 없던 상태였다. 그런 나에게 L양의 어머니는 말했다. "아시다시피, 제 딸은 점점 심한 마약 중독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 고운 얼굴이 점점 추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L양이 이전에 어땠는지 알 수 없었지만, 눈에 띄게 미인이던 그녀의 눈빛이 참 불안해 보인 것은 사실이었다. 감옥에서 나간다 하더라도 또다시 마약 사범으로 잡혀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어머니는 시카고 시가 속한 일리노이 주와 인접한 위스콘신 주의 한 종교 기관에서 운영하는 무료 여성 전용 마약 치료소와 관련한 자료를 꺼내 보이며 열심히 설명했다. 어릴 적 교회를 다녔던 L양에게 종교 기관이 운영하는 치료소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얘기다. 그 치료소의 마약 치료 성공률이 높다는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다. 치료를 목적으로 마약 사범을 다른 주로 보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보호관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 판사와 검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내는 것뿐이었다. 다행히도 어머니의 눈물 어린 호소 덕인지 판사와 검사는 L양을 위스콘신 주의 치료소로 보내는 것에 동의했고, 사건은 그렇게 어머니의 정성으로 좋은 결실을 보는 듯햇다. 남은 것은 일주일 후로 잡힌 선고 공판뿐이었다.

선고 공판 전날 오후, L양 어머니의 긴박한 전화가 나를 긴장시켰다. 이틀 전 L양이 보석금을 내고 감옥에서 나갔다는 것이었다. L양의 친구들이 돈을 모아 그녀를 빼낸 것이었다. L양이 다시 친구들을 만나 마약에 빠져 있다면, 그녀가 선고 공판에 불참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수배자 신세로 다시 잡혀와 모처럼 공들여 만든 기회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 또한 시간 문제였다.

드디어 공판일.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그녀를 초조히 기다리던 나와 어머니에게, 검사가 다가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니 영장을 발부하겠다며 돌아섰다. 바로 그때, 어머니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L양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잠깐만요! 지금 그 애가 저기 오고 있어요." 달려가는 어머니를 보고는 L양도 달려온다. 그러고는 서로 말없이 한참을 부둥켜 울었다. 지켜보는 나와 검사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결국 그렇게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며 돌아온 L양은 치료소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L양은 성공적으로 마약 치료를 마치고 대학으로 복귀하였다. 한국 어머니에게만 해당되는 줄 알았었는데,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이렇게 보편적인 것이며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힘이었다.

자녀의 인생을 바꾼 어머니의 힘

당시, 이 사건을 통하여 나는 마약 치료에 관한 신축성 있는 법 적용이라는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었다. 한데, 그 모든 과정이 어머니의 정성과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변호사인 내가 다른 주의 마약 치료소에 대해서 알 리가 없고, 더욱이 L양의 종교적 성향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내가 그곳이 L양에게 더 나은 치료소일 것이라는 점을 알 리도 없었다. 그 모든 것은 어머니가 알아보고 판단한 것이다. 어머니의 역할은 전문적인 사회 복지사의 역할 못지않았다.

바로 이 지점이 청소년 범죄에 대한 사회 복지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법률구조를 맡은 변호사와 애정을 가지고 대하는 사회 복지사의 역할이 융합할 때 큰 시너지 효과가 나리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융합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두 가지 기능을 결합하는 것만이 아니다. 때로는 두 가지의 기능이 섞여 있어서 서로 해체가 불가능한 단계까지 이를 때 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 법률구조 센터의 변호사 또한 청소년에 대한 믿음과 소명 의식을 가진 법조인이어야만 한다. 변호사의 역할은 단순히 기능적으로 법적 대변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의뢰인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식을 끝까지 믿어주는 부모님처럼 의뢰인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믿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소송 변호사로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고객이 유죄인 것을 알면서도 당신은 그를 위해 변호할 수 있습니까?" 나도 언젠가 나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과는 무관하게, 실제 상황에선 별로 고민할 만한 경우가 생기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겐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법으로 보장된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권리"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모든 사건을 자기 시각에서 보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건을 놓고 100명에게 물으면 100가지 이야기가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만큼 개인들의 시각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다. 하물며, 자신의 이익이 걸려 있는 중대 사안에서 누군들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하지 않을까?

물론 그럼에도 사람의 느낌이라는 것이 있는지라, 어떤 때는 내 고객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조차 고객을 믿어주어야만 하는 것이 변호사의 일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살인자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가장 가까운 친구와 가족들은 나의 무죄를 믿어주기를 바라는 이치와도 같은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말을 믿어주고 내 입장에 서주기를 바라는 것은 심리학적인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설령 재판에서 패하더라도, 누군가가 나를 믿어주고 끝까지 함께 간다는 느낌만으로도 인간은 커다란 심리적 위안을 얻지 않을까? 그럴 때 변호인과 의뢰인의 신뢰 관계가 형성된다. 청소년 사건은 아니지만, 이에 관한 개인적인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오래전, 음주운전 재판 때의 일이다.

▲ 미국 연방 대법원 문장(紋章). ⓒ위키미디어커먼스

"변호사님은 내 말을 믿지 않았지요?"…순간 말문이 막혔다

멕시코에서 미국에 온 지 1년 된 R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 후, 무료 영어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수업 후 맥도날드 가게에 들러 햄버거를 사서 집으로 향하던 R씨는 뒤따라오던 경찰차의 명령으로 차를 세워야만 했다. 경찰은 R씨에게서 술 냄새가 난다고 판단, 간단한 테스트를 했다. 손가락을 따라 눈동자 움직이기, 한 발로 서 있기, 일자 걷기 등과 같은 것이었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경찰은 R씨에게 음주 측정기를 불게 하였다. 하지만 R씨는 측정을 거부했다. 경찰은 테스트 결과만을 가지고, R씨를 음주운전 혐의로 연행하였다.

재판에서 R씨와 그의 부인은 R씨의 음주 사실을 완강히 부정했다. "남편이 한때 술을 많이 마신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와 결혼한 후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각오로 딱 끊었습니다." 부인의 증언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 히스패닉 부부가 12명의 백인 배심원들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배심원의 마음은 아마도 경찰에 대한 변호인단의 대질 심문에서 결정이 났던 것 같다. 증언대에 선 경찰의 태도는 분명했다. R씨에게서 술 냄새가 났고, R씨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R씨가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R씨는 영어를 거의 못하는데, 테스트 요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지요?" 경찰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스페인어를 할 줄 압니다. 직접 설명해 줬지요. 그리고 직접 시범까지 보여줬습니다." 자충수를 둔 것이다. 나의 질문이 이어졌다. "테스트 중에 일자 걷기가 있는데, 발가락과 발꿈치를 맞붙이고 일자로 걸어야 된다는 것을 스페인어로 어떻게 설명했지요?" 경찰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똑바로 걷는다는 말을 스페인어로 어떻게 합니까?" "스페인어로 발가락과 발꿈치를 뭐라고 합니까?" 경찰은 그 정도까지는 알지 못했다.

결국 경찰이 R씨에게 테스트 방법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채 무리한 수사를 벌였고 당황한 R씨는 영문도 모른 채 따라 하다가 실패했다는 변호인의 주장은 배심원들에게 접수되었다. 나는 판사에게 불법적인 증거 배제 신청을 냈다. 이 배제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사건은 증거 부재로 자연스레 기각될 상황이었다. 초초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우리에게 별로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증거 배제 신청만이 유일한 승소의 길이어서 마음이 여유롭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데, 경찰을 포함한 모든 증인이 피고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고 증언하던 불리한 상황에서도 피고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다. 담당 변호사인 나조차 조금은 확신이 안 섰던 재판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고객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마음 한구석의 석연찮은 기분 때문이었다. 그런데 판결을 기다리던 내게 서툰 영어로 이 히스패닉 고객이 물었다. "변호사님, 나의 결백을 믿습니까?"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그는 결과엔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단지 재판에서 자신의 결백을 소리 높여 외치고 싶었고,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결백을 믿어줄 사람이 필요한 듯했다. "예스" 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눈을 마주칠 수는 없었다.

재판은 피고의 승리로 끝났다. 판사가 증거 배제 신청을 받아들임으로써 사건이 기각됐기 때문이다. 승리를 기뻐하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넨 나에게 R씨는 서툰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에만 초미의 관심이 있었던 내게 던진 그 질문은 그 이후에도 변호사의 역할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사법제도는 의견이 상반된 양쪽이 서로 목청을 높이게 한 뒤 판사가 심판하도록 하는, 다분히 헤겔의 정반합의 원리를 연상케 하는 서양 철학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상반되는 양극단의 의무는 각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변호사가 섣불리 심판을 하려 하면, 이 구조는 깨지고 만다. 심판은 판사의 몫이다. 변호사는 철저히 자신의 극단의 위치를 지키면 된다. 씨족사회에서 마을의 어른이 시비를 가려주던 그때 그곳에서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닌 바에야, 무딘 칼이나마 법의 칼을 이용하여 진실에 접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한쪽의 극단에 서 있는 변호사가 고객의 말을 믿고 전적으로 고객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도 역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성인도 이러한데 청소년은 이 문제에 더욱 예민하지 않을까? 자신을 믿어준다는 확신이 없다면, 청소년 의뢰인이 변호인을 신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청소년이 변호인을 신임하지 않는 상황에서 불리한 법적 판단이 나왔을 경우 그 청소년이 결과에 승복하고 이후의 조치에 순순히 응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점에서, 재차 변호인과 청소년 의뢰인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강조하고 싶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철저하게 의뢰인의 말을 신뢰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믿어주기 위해서는 잘 들어주어야 한다는 작은 지혜를 얻게 되었다. 잘 들어주고 진심으로 공감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사회 복지사나 심리 상담가의 역할일 수도 있는 이러한 일은 의뢰인과 관계를 정립하고 의뢰인의 삶에 작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실례로 재판에 지고도 의뢰인에게 감사의 말을 들은 적이 여러 번 있다. 처벌 대신 교화 명령을 받은 의뢰인과 끈끈한 관계를 기반으로 성공적인 교화를 마치게 하는 경험도 여러 차례 했다. 그중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청소년 의뢰인과 변호인의 신뢰 관계

20세의 흑인 K양이 매춘으로 체포되었고, 사건은 내게 배당되었다. 보석금이 없어 구속 수감돼 있는 K양을 만나러 감옥에 갔다. 까만 피부, 헝클어진 머리, 거기에다 부러진 앞니에 작고 뚱뚱한 K양은 영화에 나오는 매춘 여성의 일반적인 외모는 아니었다. 매춘 전과가 이미 있던 그녀에게 사건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이미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집을 나간 아버지와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를 둔 K양은 일찌감치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런저런 경범죄로 법원을 들락거리던 그녀가 생계를 위해 선택한 일은 매춘이었다. 미국에서 매춘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매춘에 대한 흥정만 해도 체포된다. 돈을 건네거나 직접적인 성행위를 하지 않아도 거래만 이루어지면 체포할 수 있기에 경찰들은 함정 수사를 통해 체포하기도 한다.

이미 과거에도 K양은 고객을 가장한 남자 경찰의 함정 수사로 한 차례 체포된 적이 있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K양은 매춘을 그만두고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삶은 고달팠고 그녀는 항상 외로웠다. 그러던 그녀가 찾은 곳은 교회였다. 집 근처의 교회에 나가면서 그녀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신앙생활을 적극적으로 했다. 교회의 소모임에도 가입해 활동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의 소모임에서 작은 행사를 기획하였다. 그러면서 회원들에게 십시일반 회비를 걷었다. 생활이 어려우니 회비를 내지 않으면 그만일 텐데, 그녀의 선택은 다소 황당했다. 기죽기가 싫어서 어떻게든 회비를 마련해 보고 싶었던 그녀는 그 방법으로 다시 매춘을 하기로 맘먹은 것이다. 어디에 가서 어떤 식으로 호객을 하면 되는지 잘 아는 그녀는 예의 그 거리로 가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남자의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가격 흥정까지 다 마친 그 남자는 주머니에서 현금 대신 수갑을 꺼냈다. 경찰의 함정 수사였던 것이다.

믿기지 않는 다소 황당한 얘기를 꺼내놓고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런 부정한 돈으로 교회 행사에 참석한다는 것조차 죄일 텐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무죄를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차라리 벌을 받겠습니다." 이 얘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망설였으나, 유죄를 인정한다는 그녀를 보며 믿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의뢰인이 유죄를 인정하면 변호사는 별로 할 일이 없다. 검사와 협상해 낮은 구형을 끌어내는 것 말고는 법정에서 다툴 일이 없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녀의 법적 권리와, 유죄를 인정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었다. 내가 한 일은 변호사의 일이라기보다는 그녀를 믿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사 비슷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검사와 판사에게 전했다. 검사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과 다르지 않게 시큰둥했다. 하지만 판사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나의 진정성 때문인지, 순순히 유죄를 인정하는 그녀의 태도 때문인지 징역형을 면할 수 있었다. 그 대신 판사는 그녀가 보호관찰 기간 동안 구직 활동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명했다. 정기적인 보고 또한 명령하였다. K양은 성실히 명령을 이행하였다. 추가로 내게는 성실히 종교 생활을 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덧붙였다. 그 후 K양은 보호관찰을 무사히 마치고 지역 내에서 시간제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갔다. 적어도 나는 그녀를 형사법원에서 다시 볼 수 없었다.

의뢰인의 얘기를 진정성을 가지고 잘 들어주기만 해도 변호인과 의뢰인의 신뢰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체험한 사건이었다. 물론 변호사가 필요 이상으로 사회 복지라는 비전문적인 영역에 개입한다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요지는 변호사가 섣불리 상담사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변호사의 자리에서 의뢰인의 이야기를 믿고 의뢰인을 인격적으로 대할 때 더 효과적인 형사 구조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겪은 사례들은 변호사의 입장에서 사회 복지적인 지향성을 가지고 접한 사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회에 소개한 모란센터는 나의 인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법률구조에 조금 더 많은 무게가 실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법률구조와 사회 복지의 융합은 정확한 공식에 따라 몇 대 몇의 비율로 저울로 재듯이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지역과 문화의 특수성 그리고 청소년 개개인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유연하게 작용해야 할 것이다. 이에 또 다른 청소년 법률 지원 센터를 소개한다. 팀 차일드(Teamchild)라는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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