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회학자 정수복이 철학자 박이문을 만나다"라는 부제가 붙은 정수복 선생의 저서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알마 펴냄)는 "걷는"이라는 부제의 말 그대로 현실감을 강하게 풍기는 살아있는 책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필자 정수복 선생이 "철학자 박이문"을 만나기 시작한 지도 오래되었거니와 그 만남이 간헐적이거나 예의에 의한 만남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서로의 존재를 주고받은 끝에 그 '존재론적인 만남'을 정리한 책이다.
그런 가운데 저자 정수복은 최대한 '겸손하게'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가능하면 자신이 탐색해 들어가는 철학자 박이문에 생각의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고 그가 박이문의 학문적인 삶과 태도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만은 아니다. 특히 실천과 관련된 박이문의 학문적인 입장에 대해 은근하게 비판적인 태도를 내보이기도 한다.
박이문 선생님에게는 크게 못 미치지만 거의 40년을 철학 공부를 업으로 삼아 온 평자로서는, 철학자로서의 박이문 선생님의 진면목이 궁금했다. 정수복 선생께서 쓰신 이 책이 과연 그런 평자의 관심을 충족시킬 것인가? 이 책을 완독한 뒤, 과연 평자는 "철학자 박이문"에 대해 어떤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될 것인가?
아닌 게 아니라, 필자인 정 선생께서는 부제가 일러주듯이 "철학자 박이문"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지적인 충동은 말라르메의 시적 충동이나 헤겔의 철학적 동기처럼 우주의 삼라만상을 가능하면 하나의 전체로 명확하고 일관성 있게 파악하고 그것들이 갖는 지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52쪽)라는 박 선생님의 언명을 통해 일찍부터 그가 지녔던 철학적 사유의 근본 동기를 암암리에 강조한다. 이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평자는 과연 그런 박 선생님의 철학적 사유의 각오가 어떻게 결실을 맺게 되는가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 책을 끝까지 읽게 되었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점점 더 확실해 지는 것은 박이문 선생님께서 한 번 주어진 삶을 더없이 최대한 성실하게, 따라서 그 어떤 국소적인 고착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열정적으로 다양한 학문적 삶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국내에서 지성적으로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들과 적어도 대등한 위치에서 힘을 발휘했고, 국제적으로도 학문적인 업적에서 상당 부분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관한 소상한 내용들이 실감나게 손에 잡힐 듯 서술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미덕을 높이 평가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철학 후배로서 평자가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철학적으로 제대로 영향을 미치는 박이문 선생님의 위력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철학사상을 통해 진정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경우인가? 평소 평자는 자신의 철학사상이 과연 진정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그 주요 개념적인 원리와 이론이 적어도 인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론에 일종의 모태로서 활용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주요 사회과학들에도 사유의 기본 장치들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철학적인 이론이 그 자체로 일반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도 아니거니와 어쩌면 바람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매개자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매개자들은 바로 비평가들이다. 여러 문학과 예술 장르의 비평가들, 사회 ․ 정치 현상에 대한 비평가들이야말로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철학의 개념과 이론을 현장의 실제에 연결해서, 이른바 추상과 구체를 오르내리는 사유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자신의 철학이 이러한 비평가들에게 가능한 한 보편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라야 "자기철학 만들기"가 독백에 그치지 않고 그야말로 대타적인 위력을 지녔다고 평가될 수 있다.
여기에서 긴급하고 심각한 물음이 나선다. 우리나라에서 과연 이런 방향으로 영향을 미친 철학자가 있는가? 또 그렇다면 박이문 선생님께서는 과연 이런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등의 물음이 나선다.
그러나 방금 앞에서 평자 나름으로 제시한 철학자의 정의에 따르자면, 이 정도로는 "철학자 박이문"이라고 할 때, 그 "철학자"라는 적극적인 의미가 충족될 수 없다. 너무나 안타깝고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의 건국 이후 지금까지 "철학자"라는 말이 지닌 그 적극적인 의미를 충족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고 여겨진다. 이런 평자의 판단이 평자의 무식함 때문에 생겨난 오류이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평자는 오랜 동안 대학 바깥의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철학 강의를 했다. 그럴 때 가끔씩 수강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철학자가 누구지요? 혹시 딱 하고 떠오르는 사람 있습니까?" 대체로 특별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간혹 "도올 김용옥이요" 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결국 평자는 "여러분들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의 최고의 철학자를 단박 떠올리지 못한다는 것은 그런 철학자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인물이 있다면, 철학에 관심을 가진 여러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일반 대중들도 자신 있게 그 인물이 누구인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라는 설명을 하게 된다.
그럴 때면, 명색이 수 십 년간 철학 공부를 한답시고 나름 분투해 온 사람으로서 대단히 불행하고 난처하고 심지어 억울하기까지 하다. 위대한 철학자 스승을 만날 기회가 없었기에 철학 공부에서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는 것이 그 첫째 이유이고, 남북 분단과 맹목적인 이데올로기 대결로 인해 철학사상에 대한 강력한 정치적인 억압을 자행함으로써 창의적이고 이른바 자생적인 철학의 풍토를 발본색원한 한반도의 현대사가 처절하게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것이 그 둘째 이유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강력한 철학사상을 펼치는 인물이 나올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강렬하게 뇌리를 파고든다. 오히려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사회역사적인 질곡과 고통 속에서 위대한 철학사상이 꽃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역사적인 억압을 핑계로 자신의 무능력과 용기 없음 그리고 심지어 나태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박이문 선생님은 자기만의 철학 만들기를 철학적 사유의 화두로 삼았고, 그 결과 박 선생님은 <존재와 표현>(생각의나무 펴냄)을 통해 "표현의 존재론"을, 그리고 <둥지의 철학>(소나무 펴냄)을 통해 "둥지의 철학"을 일구어 냈다. 앞으로 시간 나는 대로 선생님의 이 두 철학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하여 지금의 불성실한 서평문과는 다른 비판적인 논문을 써야 하겠다는 반성적인 다짐을 한다.
끝으로 박이문 선생님께서 더욱 건강하시어 오랜 동안 우리 곁에 머물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아울러 박이문 선생님의 철학과 삶을 어림잡을 수 있게 해준 필자 정수복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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