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중국을 '천국'으로 만든 개혁의 신?

[프레시안 books] 에즈라 보걸의 <덩샤오핑 평전>

우리는 덩샤오핑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가? 아니면 미래 중국에 오히려 새로운 재앙을 제공한 인물인가? 역사적 인물을 평가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양면성을 지닌다. 결국 관점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 인물의 평가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후세 역사 발전에 미친 영향력이 더 중요하다.

하버드대학의 중국통이자 일본통인 에즈라 보걸(Ezra F. Vogel)은 2000년 여름, 한국의 제주도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이때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도 함께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돈 오버도퍼가 누군가? 일찍이 <워싱턴 포스트>에서 25년간 외교담당 기자(그 가운데 17년 동안 일본 도쿄 주재 특파원)였고, 은퇴 후 존스 홉킨스 대학 SAIS에서 연구하고 있던 한반도 문제 전문가다. 당시 보걸은 이미 하버드대학을 은퇴했었다. 그럼에도 그는 미국인들에게 아시아의 거대한 발전을 소개할 저서를 집필하려는 구상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오버도퍼가 보걸에게 "교수님! 덩샤오핑 전기를 한번 써보시죠!"라고 권했다. 보걸은 이 말을 듣고 며칠간 고민하다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10여 년간의 인물 취재와 중국 방문 등을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이 <덩샤오핑 평전>(심규호·유소영 옮김, 민음사 펴냄)이다. 당시 81세의 고령에도 이러한 방대한 저서를 집필하는 열정은 60세만 넘어도 원로가 되고 마는 우리 학계의 조로 습관과 비교하더라도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 지난 1월 내한한 에즈라 보걸 교수. 기자 간담회에서 <덩샤오핑 평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민음사

이 책에서 저자는 아시아의 중대한 변화와 발전을 핵심 주제로 설정하였다. 그는 아시아 변화의 중심을 궁극적으로 중국으로 보았다. 그리고 중국 변화의 중심에 덩샤오핑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사실 저자 보걸은 덩샤오핑을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고 인터뷰도 해 본적이 없다. 그가 중국의 지도자를 만난 것은 1973년 5월 미국국립과학원(NAS, National Academy of Science) 대표단의 일원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저우언라이를 만난 것이 전부였다. 그에게도 덩샤오핑을 만날 기회가 있기는 했다. 1979년 1월 덩샤오핑의 미국 방문 때였다. 그런데 덩샤오핑이 백악관에서 연설할 때 회의장이 너무 시끄럽고 초대된 인원도 많아 기회를 갖지 못했다.

보걸은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하였다. 그 가운데 5차례는 비교적 장기간 머물렀다. 2006년에는 5개월을 머물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간 다양한 인물들을 만났다. 그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했으며, 중국어도 페어뱅크(J. K. Fairbank)보다 훨씬 잘했다.

그렇다면 덩샤오핑이란 역사적 인물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는 이 책의 미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치밀하게 다양한 자료를 탐독하고 많은 인물들을 인터뷰했다는 점이다. 이제 더 이상 덩샤오핑에 대해 파헤칠 것이 없을 정도로 상세하고 치밀하다.

▲ <덩샤오핑 평전>(심규호·유소영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특히 저자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덩샤오핑과 관련을 맺었던 다양한 인사들을 인터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중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지를 방문하면서 생전의 덩샤오핑을 만났던 정치지도자 대부분을 만났다. 예를 들어 장쩌민 총서기, 리광야오(李光耀) 총리, 카터 대통령, 먼데일 부통령, 키신저 박사 등이다. 그리고 역대 미국의 주중대사 및 국무장관 및 안보보좌관 등을 만났다. 그리고 아버지의 전기를 출간한 덩샤오핑의 딸 덩롱(鄧榕:애칭 毛毛)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지덩쿠이(紀登奎), 후치리(胡啓立), 첸지첸(錢其琛), 황화(黃華), 천윈(陳雲), 후야오방(胡耀邦)의 자녀들도 만났다. 그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과는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그 밖의 사람들은 중국어로 하였지만 통역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덩샤오핑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을 섭렵하였다. 보걸은 심지어 덩샤오핑의 유격대 시절의 타이항산(太行山) 및 그의 고향 쓰촨 광안(廣安), 충칭, 청두 등지를 직접 발로 답사하면서 당시 덩샤오핑의 체온을 느끼고자 했다.

따라서 이 책은 덩샤오핑에 대한 전기일 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사이자 중국의 개혁개방사이기도 하다. 특히 덩샤오핑의 긍정적인 측면을 주로 쓰고 있다. 따라서 일부 평론가들은 보걸이 지나치게 "동정적인 태도"로 덩샤오핑을 평가했다고 비판한다.

그런 점에서 <덩샤오핑 평전>은 기본적으로 덩샤오핑을 "절망적인 가난한 국가에서 세계경제대국으로 중국을 깨운 최고 지도자"라고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천 카릴(Christian Caryl)은 덩샤오핑과 그의 당내 동지들이 1979년 이후 추진한 개혁을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적인 빈곤 탈출 행위였으며, 과거 30년 동안 중국은 시장경제를 추구하여 수억 명이 빈곤에서 탈출하도록 하였다'고 평가했다.

당연히 덩샤오핑이 중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한다. 특히 마오쩌둥이 추구했던 수구, 반동, 계속혁명, 계급투쟁을 새로운 생산력의 중요성의 가치로 대체하였다. 마침내 덩샤오핑은 중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들었고, 또 다른 지도자 마오쩌둥과 장제스를 뛰어넘는 업적을 이루었다.

▲ The Deng Xiaoping Era:An Inquiry into the Fate of Chinese Socialism, 1978-1994(Maurice Meisner, New York:Hill and Wang)
그러나 이 책은 문제점도 노출하고 있다. 보걸의 저서보다 15년 앞서 출판된 마이스너(Maurice Meisner)의 "The Deng Xiaoping Era:An Inquiry into the Fate of Chinese Socialism, 1978-1994"(New York:Hill and Wang, 1996)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모리스 마이스너의 덩샤오핑에 대한 평가는 보걸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마이스너는 중국 관료 자본주의의 형성 및 그에 따른 부작용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보걸의 저작은 사료의 다양성과 방대한 점은 장점이지만 마이스너만큼 자신의 입장이 분명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대부분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적인 측면이 약하다. 이에 비해 2012년 1월에 세상을 떠난 마이스너는 좌파지식인이었다. 그는 중국처럼 낙후된 국가는 정통마르크스주의에서 규정된 것처럼 어느 정도 자본주의 오류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인간성과 정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사회주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그는 마오쩌둥이 비록 정책적으로 많은 오류를 범했지만 그의 원래 의도는 좋았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류샤오치(劉少奇)와 덩샤오핑을 비판한다. 비판의 핵심은 이들이 국가의 역량으로 현대화를 추진함으로써 관료주의 오류를 범했다는 것. 이에 비해 마오쩌둥의 정책 시도가 실패하면서 이른바 '사회주의 정의'를 포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고도의 관료통치가 회복되었으며, 결국 덩샤오핑이 추구한 중국은 불공정한 관료 자본주의 사회라고 평가했다.

보걸은 마오쩌둥을 비난한다. 그는 덩샤오핑이 중국 개혁의 최전선에 서서 지휘하는 총사령관이며 실제적인 민생과 경제 문제를 살폈다면, 마오쩌둥은 마치 구름위에 앉아 있는 군왕처럼 역사와 철학서만을 읽고 칙령을 반포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렇듯 보걸은 덩샤오핑의 입장을 두둔한다. 마오쩌둥이 1957년 반우파 투쟁을 전개할 때 덩샤오핑이 겉으로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지식인들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덩샤오핑 딸 덩롱은 "아버지가 마오쩌둥의 대약진을 저지하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하셨다"라고 했지만 이는 후일담에 지나지 않는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의 역사에 대해서도 양자 간의 초점이 다르다. 마이스너는 개혁개방이 자본주의 시장을 경제체제를 들어온 것은 이후 극심한 사회문제를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생활수준이 낮은 농민과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경쟁에 내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농민공들이 대량으로 도시로 흘러들어감으로써 노동자들의 철밥통도 사라졌다. 이들은 거대한 노동예비군이 되었고 소수의 관료 자본가들의 착취에 편리하게 이용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빈부의 차이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중국 정부가 대처에 미숙하고 관료들의 부패 사건이 증가하자 군중들의 분노가 1989년의 천안문 사태로 폭발하게 되었다고 본다.

보걸은 개혁개방으로 나타난 사회문제는 크게 다루지 않았다. 관료부패 문제보다는 덩샤오핑의 성취를 더 많이 다루었다. 전체 24개 장에서 4개의 장을 할애하여 1978~1980년의 외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다시 7개의 장에서 덩샤오핑의 정치, 경제, 군사 및 특구방면의 개혁정책 그리고 타이완, 티베트, 홍콩 문제를 다루고 있다. 중국과 외국과의 정치적 사건에 지나치게 지면을 많이 할애한 느낌이다. 그것도 대부분 1985년 이전이다. 개혁개방의 장점만을 부각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중국은 그렇게 보랏빛이 아니다.

그렇다면 현재 지도자 시진핑의 '중국의 꿈'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중국 사회를 변화시킨 덩샤오핑의 공로는 인정해야한다. 그러나 그의 전략이 가져온 관료 자본주의의 부활이 오히려 중국의 독이 되어 가고 있다. 최근 이른바 다양한 신좌파들의 득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역설적으로 이 책을 통해 오히려 중국이 다시 사회주의의 장점을 고려해야할 시대임을 보여준다. 최선의 정책도 50대 50이라는 케네디(John F. Kennedy)의 말이 생각난다. 그만큼 중국을 통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자본주의의 길은 결국 빈부의 차이를 극복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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