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가 버림받는 영아를 줄였을까"

[기고] 베이비박스 찬반논란, 대안은 없나?

2009년 12월에 문을 연 관악구 신림동의 베이비박스에 대한 찬반논란이 해를 거듭할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당신의 집 담벼락에 베이비박스 설치한 주사랑공동체교회의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개설한 사연을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토로했다. 사연인즉 어느 추운 날 한 밤 중에 익명의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대문 앞에 아기바구니를 두고 갔다는 것이었다. 황급히 나간 그는 아기바구니가 놓인 것을 발견했고, 또 바로 그 순간 고양이가 아기바구니 옆을 휙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버려지는 아이를 추위와 고양이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노라고 그는 말한다.

이 자연스럽고 사려어린 일에 누가 토를 달 수 있으랴. 베이비박스는 버려지는 아기의 생명과 안전을 생각하는 선의와 사랑으로부터 우러나온 하나의 결과물임에 틀림이 없다. 더 나아가 주사랑공동체와 이종락 목사는, 서울 변두리의 한 유적한 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베이비박스가 전국적인 지명도를 획득하면서 밀려들기 시작한 어린 생명들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 정성을 다해 돌보고 있다. 한밤중 벨이 울리면 파자마 바람으로 달려 내려가 아이를 안아내는 이종락 목사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는 때로는 미숙아인 핏덩이를, 때로는 탯줄도 갈무리되지 않은 아기를, 때로는 장애아동을 품에 안는다.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일 그 자체의 선함에 대해서 시시비비하는 일은 옳지 않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찬반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쪽에서는 이 일은 긴급한 일일 뿐 아니라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니 전국적으로 10개소 이상 확산해서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른 한 쪽에서는 베이비박스의 돌발적인 현출은 우리사회의 아동양육시스템, 혹은 재생산체계가 병들고 고장 났다는 사실을 드러내어 주는 일일 뿐 아니라, 베이비박스 그 자체가 아동유기를 조장하는 구성물이므로, 우리사회의 아동양육시스템을 전방위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둘 다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는 긴급구호의 불가피성에 기초한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시스템의 구축을 통한 근원적 해결을 역설한다. 무엇이 이 논란의 출구일까?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는 대안은 없는 것일까? 대안을 논하기 전에 베이비박스를 중심으로 해서 형성된 몇 가지 오해의 먹구름을 먼저 거두어 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1) 베이비박스가 영아살해를 예방한다는 주장, 2) 입양특례법이 영아유기의 증가의 원인이라는 주장, 3) 선진국들에도 다 베이비박스가 있기 때문에 우리사회도 베이비박스를 설치하는 일이 마땅하고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그것이다.

베이비박스가 영아살해를 감소시키거나 예방하는 것은 아니다

자식살해(filicide)에 관한 이야기를 건조한 마음으로 조곤조곤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혹과 탄식, 분노와 애도 없이 말할 수는 없다. 용서하시라. 이 참혹하고 슬픈 사안에 대한 다소 건조하게 서술하는 일을. 최근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의 공동대표인 로스 옥(Ross Oke)이 분야에 대한 연구결과를 정리해서 발표했다("베이비박스는 영아 살해를 줄이지 못한다" - 프레시안).

그의 연구는 한 마디로 베이비박스가 이종락 목사가 말하는 것처럼 영아살해를 예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전세계적으로 영아살해는 대체로 두 범주의 여성에게서 일어나는 일인데, 하나는 거의 미성년에 해당하는 10대 미혼모들이 임신사실 그 자체를 부인하는 행동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의 출산과 함께 우울증과 정신분열증 혹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베이비박스로 아이를 데리고 오는 여성들은 임신사실을 인지하고 출산 후의 양육에 대한 두려움과 곤경을 예측하고 사전에 면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아이를 데리고 오는 여성들이거나, 일정 기간 동안 아이를 양육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하지만 더 이상 해결책이 없다고 느끼는 여성들이다. 한 마디로 이 여성들은 아동을 살해하는 앞의 두 그룹의 여성들과는 범주적으로 전혀 다른 인격과 삶의 태도, 즉 아이를 살리려는 마음으로 가득한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실제 2009년 12월에 설치된 베이비박스가 지난 4년 동안 운영되는 동안 아동살해가 감소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는 2013년 5월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아동학대 조기발견 및 예방을 위한 대안 모색' 학술세미나에서 2000년부터 2012년까지 137개월 동안 살해된 아동이 141명, 다시 말하면 월 평균 한 명 정도인 점을 밝히고 있다( "출생등록 의무화로 영아 아동학대 막아야"- 베이비뉴스).

제인 정 트렌카의 2014년 서울대학교행정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입양특례법 개정 시행 초기 1년의 영향분석」에서도 비슷한 수치를 밝히고 있는데,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2012년 8월부터 2013년 7월까지 1년 동안의 영아살해 건수는 11건이다. 이 연구들을 통해 일관되게 알 수 있는 사실 중의 하나는 바로 베이비박스의 존재 여부와 아동살해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영아살해에 대한 개별 언론보도들도 이를 말해주고 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베이비박스로부터 지근거리에 있는 신도림역 부근에서도 영아는 살해되었고, 그리 멀지 않는 광진구의 한 고시원에서도 영아는 엄마와 함께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인천에 사는 한 십대 소녀는 베이비박스로 가서 아이를 두는 대신 부산으로 가서 출산을 하고 모텔 밖으로 아이를 던져서 죽게 했다. 최근에는 중랑구에서 16살 고등학생이 집에서 출산 자기 아이를 화장실에 넣어 살해했다. 베이비박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도처에서 살해되고 있는 영아들이 있다는 사실은 베이비박스가 살해의 위기에 노출된 영아의 생명을 구원한다는 이야기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반면에 아이의 생명을 살리려는 여성들은 거제도에서도 목포에서도 강원도나 충청도에서도 아이를 안고 베이비박스에 도착한다.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사회라면 ‘우리사회는 어떻게 하면 영아살해를 예방할 수 있을까’를 물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대안을 모색할 것이다. 십대청소년들에 대한 통합적 성교육과 상담적 접근을 통해 무분별한 임신을 예방하고, 임신 출산의 현실에 내어 몰린 이들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안전한 출산과 양육에 대한 민감성을 충분히 갖춘 지원 시스템을 갖추는 길이 무엇인지 모색할 것이다. 우울증과 정신분열과 극도의 양육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서도 의료적·상담적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왜 가장 긴요한 일로 베이비박스의 존치가 거론되는 것일까? 사실상 영아유기모들이 된 일만으로도 이 엄마들은 절망적 트라우마의 나락, 그 심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일생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터에, 이들에게 잠재적 영아살해모들이라는 혐의 덧씌우는 일은 가혹하고 불의하지 않은가?

이종락 목사는 거의 모든 언론 인터뷰에서 베이비박스가 없었다면 이 아이들이 살해되었거나 방치되어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언표는 엄마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숨기지만, 사실상 엄마들이 이 아이들을 죽음에 이를 자리로 유기하는 존재 혹은 살해하고야 말 존재라는 주장을 거듭해온 바나 다름 없다.

이 참담한 나락에 내어 몰린 엄마들에게 베이비박스는 또 다른 폭력 그 자체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실 이 엄마들이 아이를 살리고 싶은 엄마일 뿐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키우고 싶은 엄마라는 전제가 성립되면, 베이비박스는 폐기를 지향해야 하고, 이 엄마들에게 양육의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출발점 위에 서야 한다.

베이비박스의 존재 자체가 아동유기를 증가시키는 원인이다

그렇다면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의 숫자가 2013년에 들어 급격히 증가한 원인은 무엇일까? 여기에도 아동유기 증가의 원인이 입양특례법의 개정에 있다는 주장과 베이비박스의 존재 자체에 있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사회의 언론들이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유기아동 증가의 원인이라고 하는 언설을 폭넓게 유포시켰고, 사실상 국민의 상식이 되다시피 되었다.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한 반론으로 베이비박스의 존재 그 자체가 아동유기 폭증의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을 짚어두고자 한다.

관악구 신림동의 유벽한 골목 안에 베이비박스가 존재한다는 한 작은 사실(a tiny fact)이 우리사회의 거대한 현실(a huge reality)이 되게 한 것은 방송과 신문과 각종 인터넷 매체를 아우르는 언론이었다.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것은 2009년 12월이었고, 2012년 3년 10월까지 약 3년 동안 TV와 라디오방송과 신문과 인터넷신문을 망라한 거의 모든 언론에 의해 보도되었고 그 꼭지는 무려 270개나 된다.

특히 그 동안 간헐적으로 보도되던 상황이 2013년 1월 민주당의 백재현 의원이 베이비박스의 아동유기의 원인을 개정된 입양특례법으로 지목하고 그 재개정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9년 12월부터 2012년 말까지 37개월 동안 보도된 언론꼭지는 88개(월평균 2.4개)였던 반면, 입양특례법 재개정 논란이 제기되고 찬반논란이 격화되었던 2013년 1월부터 5월까지 보도된 보도꼭지는 114개(월평균 22.8개)로 무려 9.5배에 달했다(아래 그림[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서 베이비박스에 대한 인지도가 급격히 올라간 시점은 바로 2013년 1~5월 사이이다. 베이비박스에 대한 인지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시점과 맞물려서 유기아동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동안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 총수는 120명이고 월평균 3.3명인 반면에 2013년 1~5월 동안 유기된 아동총수는 96명이며 월평균 19.2명으로 약 6배로 뛰어 오른다.

그림[1] 베이비박스 언론보도 횟수와 베이비박스 유기 아동 수 추이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 대표인 제인 정 트렌카는 서울대학교행정대학원 석사학위 논문(「2001년 입양특례법 개정: 시행초기 1년의 영향 분석」, 2014)에서 이 주제에 대한 정교한 통계학적 분석을 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그녀는 2013년 1~5월의 베이비박스에 대한 언론보도의 폭증과 베이비박스 유기 아동 증가 사이에 95% 수준에서 예측지표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그녀는 통계분석시스템을 활용해서 언론 보도 3회가 나갈 때, 아이 하나가 베이비박스에 유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언론보도에 의한 베이비박스 인지도 상승이 결과적으로 아동유기를 견인했다는 이야기다.

실제 네이버트렌드의 키워드 분석시스템에 의하면, 2013년 4월 베이비박스에 41명의 아동이 유기되었을 때, 베이비박스에 대한 키워드 트렌드가 다른 시기와 비교 불가능한 최고점에 이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키워드 트렌드는 베이비박스 인지도 상승의 결과에 따른 행위인 동시에, 실제로 아동을 유기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베이비박스에 대한 정보욕구 내지 언론과 일반인들의 베이비박스에 대한 궁금증이 바로 이 무렵에 정점에 달했음을 드러내어 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가 바로 2013년 1월 민주당의 백재현 의원이 발의한 입양특례법 재개정안의 입법을 위해 베이비박스의 이종락 목사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입양특례법재개정추진위원회의 활동이 몇 달 동한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였고 무엇보다도 이들이 주도해서 ‘영아유기와 입양특례법 재개정’이라는 매우 자극적인 타이틀을 걸고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었던 때이기도 하다.

그림 [2] 네이버트렌드의 ‘베이비박스’ 키워드 트렌드 분석


그렇다면 베이비박스에 대한 언론보도의 폭증을 통해 인지하게 된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을 관악구 신림동의 베이비박스로 가면, 아이를 익명으로 유기할 수 있고, 그러면 이종락 목사는 이 아이들을 따뜻하게 돌본다는 것이다. 베이비박스를 개설한 이종락 목사에 대한 미담 차원의 언론보도가 결국 익명으로 아동유기가 가능할 뿐 아니라 아동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라는 정보를 전국적으로 유포시킨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는 이 아동들이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즉시 관할 관악구청에 신고해야 하고 관악구청에서는 베이비박스로 공무원을 보내 이 아동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와 서울에 산재한 아동보육원으로 재배치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베이비박스의 이종락목사가 이 모든 아이들을 돌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베이비박스가 이 아동들의 양육에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박스에 대한 언론보도는 베이비박스의 존재를 전세계적인 수준의 아동구호기관으로 각인시켰다. 미국에서는 이 베이비박스를 후원하는 ‘친족 이미지(Kindred Image)’라는 재단이 설립됐고 이 재단은 이종락 목사의 언설, 즉 베이비박스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이 아이들은 죽었을 것이라고 하는 주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 중에 있다. 지난 1월 한 달 동안만 해도 8000만 원(8만 달러)을 상회하는 후원금을 모금했다(Kindred Image, kindredimage.org). 하지만 베이비박스가 세계적 수준의 인지도 상승과 후원금의 쇄도라고 하는 엄청난 선의와 사랑의 혜택을 누리는 동안, 베이비박스에 유기되었던 아동들은 그 아동의 친모나 가족의 기대와는 달리, 난방도 제대로 안 되고 수돗물이 없어 지하수로 우유를 타 먹이는 열악한 아동보육시설들로 보내지고 있다(<한겨레> 2014년 1월 12일 보도).

결국 베이비박스에 대한 대대적이고 선정적인 언론보도를 통해서 이뤄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있다면 베이비박스에 대한 인지도를 상승시킨 일 뿐이다. 자식을 버린 엄마라는 깊고 어두운 내상을 안고 이 사회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사라지는 엄마들과 열악하기 그지없는 보육시설에서 혼자서 젖병을 들고 외롭고 고단한 생의 첫걸음을 내딛는 갓난아이들을 위해서는 아직 해답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 언론들은 엄마와 아이의 베이비박스를 통한 분리의 사회적 트라우마를 온정주의적 드라마로 치환해왔을 뿐이다.

이 땅의 재생산체계의 고장의 징후로서 베이비박스를 바라보는 성찰적 대안 제시가 결핍된 빈 공간을 온정주의적 인간애가 차지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불행과 비참에 기초해서만 성립 가능한 온정주의로는 병든 이 땅의 재생산체계를 치유할 수 없다. 그 누구도 마더 테레사의 아름다운 삶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인도의 가난과 비참이 그녀의 위대성을 성립시켰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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