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러일전쟁기(1904~5) 러시아와의 최종 결전에 대비하기 위해 독도를 침탈했다. 이는 한반도 영토를 탈취한 제국주의적 침략 행위였다. 러일전쟁에서 승전일로에 있던 일본이 1904년 9월에 울릉도에 망루를 설치하고, 독도에 망루 설치를 위한 조사를 벌인 것은 러시아에 마지막으로 남은 발트함대가 출항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였다. 시마네현의 한 어부로 하여금 '독도편입원'을 일본 정부(내무,외무,농상무대신)에 제출케 한 것도 바로 이때다.
당시 일본의 도고(東鄕平八郞)제독은, 러시아 발트함대의 항로가 분명 대한해협을 통과할 것으로 확신했다. 도고가 대한해협에 일본 전 함선의 집결 명령을 내린 지 일주일 뒤에 일본 각의는 독도 편입을 결정했고(1905년 1월 28), 도고가 발트함대에 대한 임전 태세 완비를 선언한 바로 그 다음 날, '시마네(島根)현 고시(告示)'(2월 22)를 통해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이처럼 러일전쟁기에 일본은 군사전략적 차원에서 독도를 마음대로 자국령으로 편입했다. 일본의 일방적인 독도 침탈이 러일 전황과 연계되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일본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일본은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번번이 독도 도발의 기회로 삼아 왔다. 독도가 '무주지'이기 때문에 편입했다는 러일전쟁기의 논리는 한국전쟁기에는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독도가 자국의 고유영토라는 이론으로 둔갑했다. 한국전쟁기의 혼란을 이용한 일본은 독도에 영토를 표시하는 나무 기둥을 설치하고(1953년 6월),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를 회부하자고 제의하였다.(1954년 9월). 2005년에 제2차 북핵 위기가 가중되면서는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의 날이 제정되고 다케시마 반환운동이 가속하기 시작했다.
2008년 이래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는 독도가 일본령이라며 10개 국어로 홍보하고 있고, 중학교 사회과목 학습지도 요령 해설서는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고 있다. 독도를 일본 영토로 기재한 사회과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2011년 3월)한 데 이어, 이제는 문부성 주도하에 2014년 교과서 지도요령 지침서에 독도를 일본령으로 기술하는 역사조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일본 정부는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를 정부 차원의 행사로 격상시켜 독도 도발을 본격화하고, 노골적인 '혐한(嫌韓)'의식을 일본의 언론과 국민들 사이에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다. 현 아베정부는 야스쿠니 신사참배, 전시 여성인권의 문제, 남경대학살을 비롯한 침략전쟁과 식민 지배의 사실을 부정하는 군국주의적인 망언 등 그야말로 총체적인 극우로 치닫고 있다. 독도가 일본령임을 주장하기 위해 총리 직속의 '영토주권 대책 기획조정실'을 설치했다. 또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문제를 단독으로라도 제소하겠다는 아베총리의 공언은 동북아지역의 긴장과 불신을 극도로 심화시키고 있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와 인터넷 동영상에서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홍보하는 역사적 근거를 보면 실로 빈약하기 짝이 없다. 단언컨대, 독도가 일본령이라 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는 없다. 그러므로 필자는 대한민국의 독도 영유권 수호의 해법 또한 오로지 역사적 근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자 한다.
일본의 빈약한 논리…근거는 '러스크서한' 하나?
그렇다면, 일본이 독도를 자국령이라고 내세우는 이유는 뭘까.
첫째, 일본 정부는 독도가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입장이다. 고유영토라는 주장의 그 역사적 국제법적 근거가 어디에 있는 지 제국주의시대 전공자로서 오히려 되묻고 싶다. 사실 독도가 한국령이라는 고지도와 역사적 자료는 쏟아질 듯이 많다. 그리고 독도가 일본령이 아님을 입증해주는 자료 대부분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일본의 고문서와 고지도들이다.
독도가 한국령이라고 표기한 일본 고지도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반해, 일본이 내세우는 지도에는 여러 가지 모순이 있다. 가령,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나카쿠보 세키스이의 지도는 독도를 한국령으로 기술한 1779년 초판본이 아닌, 독도를 일본 영토로 색칠해놓은 1846년 개정본이다. 1760년대 나카쿠보 세키스이가 제작한 다른 지도들에 독도가 일본령으로 되어 있다지만, 에도막부의 지시로 새로이 제작한 나카쿠보 세키스이의 1778년 지도부터는 모두 독도가 한국령으로 되어 있다.
현재 시마네현청에 전시하고 있다는 모가미 도쿠나이의 1790년 지도가 독도를 일본령으로 표기했다면, 에도막부의 공식 지침을 어기고 지도를 제작한 모가미 도쿠나이의 지도 제작과정과 의도를 의심해보아야지, 일본의 고유영토론을 뒷받침해주는 자료라고는 볼 수 없다. 사실 일본이 내세우는 고유영토론이란, 러일전쟁기에 국제법적 명분을 위해 급조했던 '무주지 선점론'과 ‘실효적 지배론’, 그리고 1950년대의 "영유의사 재확인론"을 대체하는 자가당착의 궁색한 논리이다. 고유 영토라면서 왜 1905년 러일전쟁 중에 새삼 자국영토로 '편입'하며, '영유의사를 재확인'했는가.
둘째,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의 또 다른 근거로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미 국무부의 문서(일명 러스크서한, 1951년 8월 10일)를 들고 있다. 이는 그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된 미일 강화조약(9월 8일)에서, 일본이 반환해야 할 한국 영토에 '독도'가 들어가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명기한 미국문서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6차 초안부터 한국 영토 관련 조항에 독도만 누락된 경위에 이의를 제기하며 독도를 기재할 것을 미국 정부에 요구했다.(7월 19일) 미 국무부는 러스크서한을 통해 '독도는 1905년 이래 일본 시마네현 오키섬 관할 하에 있고, 1905년 이전에 한국이 독도를 영유한 증거가 없으며, 한국 정부가 영유권 주장을 한 적도 없다'고 주미 한국대사관에 통보해왔다.
그러나 러스크서한은 한국 영토에 관한 연합국 전체의 공식 견해가 아니다. 또한 연합국 합의로 초안을 확정해야 할 초안 확정 규칙을 미국 스스로 어긴, 원천적으로 무효인 문서이다. 더욱이 미국은 러스크서한을 일본에 보낸 적도 없고, 다른 나라에 공표한 사실도 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일 강화조약의 발효를 앞둔 1952년 1월에 '해양주권선언'을 선포하고 독도를 한국 수역에 포함시킨 평화선을 그음으로써 러스크서한을 무력화시켰다. '이승만라인'에 미국이나 연합국은 반대한 사실이 없으며, 독도를 한국령으로 포함한 이 라인은 지금까지도 유효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카이로선언(1943년), 포츠담선언(1945년), 연합국 최고사령부 지령(SCAPIN) 제677호(1946년)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설정(1952년) 등 국제적으로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한 공식 문건들을 제쳐둔 채, 오로지 '러스크서한'를 근거로 독도가 일본령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에 묻는다. 독도가 한국령이라는 역사적 문서적 근거를 부정할 수 있는 문서를 제시해보라.
요컨대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으며, 국제사법재판소에 단독으로라도 제소하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현재 시마네현청에 내부 회람문서 형태로 '고시(告示)'한 영토편입원 문서는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라는 사실이 최근에 국내 한 시민단체에 의해 밝혀졌다. 1945년 8월에 시마네현청이 불타면서 원본은 이미 소실되었다는 것이다. 원본도 아닌 사본으로, 그것도 자국의 주장에 불리한 자국의 역사적 자료와 고지도들을 가지고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정도로 일본은 어리석은가. 한국 측이 응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제소하겠다는 아베의 공언은 마치 명분을 쌓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도발을 감행했던 과거 일본 제국주의 망령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하다.
세계가 전쟁 반성하는데…일본만 '전쟁할 권리'확보에 주력
사실 역사적으로 일본 정부와 군부는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고 주도면밀하게 명분을 쌓기 위해 주기적으로 침략과 전쟁 행위를 도발해왔다. 청일전쟁(1894년), 러일전쟁(1904년), 만주사변(1931년), 중일전쟁(1937년), 태평양전쟁(1941년)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와 태평양에서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작전으로, 그것도 주기적으로 전쟁을 도발해왔다. 심지어 일본은 제국주의적 침략과 유린 행위와 전쟁의 명분을 복수로 포장하기까지 했다.
가령 청일전쟁 이후 러시아가 주도했던 '삼국간섭(러시아, 프랑스, 독일)'으로 일본은 전리품으로 차지한 대만, 팽호열도(현 다오위다오가 포함된), 랴오둥반도 가운데 랴오둥반도를 청국에게 반환하게 되었다. 그러자 일본은 삼국간섭의 공조가 약화된 틈을 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끔직한 국가범죄를 자행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도 삼국간섭에 굴복했던 러시아에 대한 복수를 친러정책을 꾀하고 있던 조선의 왕후에게 분풀이한 것이다.
또 러일전쟁시에도 일본은 뤼순 따렌을 점령함으로써 당시 랴오둥반도를 조차하고 있던 러시아에 삼국간섭의 굴욕을 10년 만에 되갚았다고 강변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에는 어떠했는가. 삼국간섭의 주도국 러시아보다도 독일의 어조에서 더 위협을 느꼈던 일본은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한다는 명분으로 독일이 갖고 있던 아시아 및 태평양 식민지들을 독점했다.
'중국문제(중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는 1000년 이내에는 없을 것'이라는 애국단체 '흑룡회'의 대국민선언(1914년 8월)이 말해주듯, 일본은 유럽전선의 배후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독일의 식민지들을 탈취함으로써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자국의 초중등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강조하고 있는, 지난 반세기 동안 전쟁을 하지 않은 평화국가로서의 일본이란 실체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과오에 대한 국제사회의 징벌의 산물일 뿐이다. 이제 일본은 ‘보통국가’ 즉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적인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헌법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내 일각에서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조상들의 잘못을 후손들이 대대손손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왜 한국과 중국은 과거를 끊임없이 들추어내며 그럴 때마다 왜 번번이 사과해야 하는가, 하는 정서가 있다. 일본인들의 수치심을 자극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역사의 부채의식과 반성의 책무를 회피하며, 자국이 저지른 국가적 침략 행위가 나치의 범죄행위와는 차원이 다른 경미한 행위인양 선을 긋는 일본정부의 총체적인 역사의식 부재에 전 세계인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2014년 제 1차세계대전 발발 100년을 맞아 독일을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 전쟁을 참회하고 반성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전쟁을 도발하고 이웃 국가의 영토를 강탈하고 병합하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인종 말살을 자행한 범죄는 잊혀서도 안 되고, 잊어서도 안 된다. 한 국가가 자국의 경계를 넘어 이웃 국가를 무단으로 침략하고 지배하고 말살하는 행위는 더 이상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기억이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역대 자국의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후안무치의 역사의식이 오히려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며 세계인들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의 역사적 과오는 과거를 인정하고 그 책임을 인정할 때 청산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역사의 평가는 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면서도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일본 정부는 들어라. 일본 내 관련 학자들과 시민단체, 역사 교사들의 절박한 호소마저 외면하는가. 아베정부는 "일본이 독도가 한국 땅임을 빨리 인정하는게 최선이다"(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독도가 일본령이라 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는 없다"(도쿄도 교직원조합의 교사용 지침서, 2011년 10월 28일자 <산케이신문>)는 역사 교사들의 선언에 부디 귀 기울이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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