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역에서 토요일 저녁 화물차를 타면 서울에 하숙하거나 통근하는 또래의 서울 유학생들을 만났다. 같은 칸에 함께 모여서 한참을 떠들고 나면 바로 원주였다.
방학 때도 어디 여행하지 않고 원주에서만 지냈는데, 몇 차례 무전여행을 시도했으나 겁 많은 어머니의 간청으로 매번 포기하고 말았다. 원주에서 고등학교 공부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영화 연극을 보거나 하는 게 일이었다.
고2 때던가 어느 눈 많이 내리던 날이다.
친구 김재수가 이상스레 감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딴 집에 얻어둔 제 공부방에 가자고 해서 거기 들어갔더니 원주여고 여학생 둘이 미리 와 앉아 있었다.
한 학생이 말을 꺼냈는데 요지는 곁에 말없이 앉아있는 우리집 앞 가게집 딸인 정순이가 나하고 사귀고 싶어 한다는 거였다.
아랫배가 따뜻해지고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며 이마 복판이 더워지는 기이한 느낌을 생전 처음 맛보았다. 남녀가 만나면 그것 자체로서 천둥번개가 친다더니 맞는 말 같았다. 이것이 연애의 시작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감미로왔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그와 정반대였다.
‘대학 시험공부 시작할 때인데 사귈 틈이 어디있어!’
재수가 끼어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 모질고 단호했다.
설왕설래했으나 나는 점점 더 딱딱해졌고 결국은 정순이가 눈물바람을 하며 방을 뛰쳐나가는 것으로 그날 일은 끝이 났다.
내 자존심이 그것으로 만족을 얻었을까? 정반대였다. 말할 수 없이 쓰라린 후회가 왔고 그 후 두고두고 뉘우쳤다.
사실에 있어 나는 여학생과 사귀기를 몹시 원하고 있었고 원주에서도 길거리에서 여학생들이 지나가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됐고 서울에서도 학교 가는 길에 꼭 부딪히게 되는 진명여고의 한 뚱뚱한 여학생을 보면 마음이 희한하게도 수상쩍어지곤 하는 거였다. 그런데도 왜 정순이를 마다했을까?
검실검실하고 예쁘장한 정순이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사랑의 테크닉이 전무했던 것이다. 그런 경우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전혀 모르니 꼭 옛날식 도덕군자모냥 멋대가리 없이 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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