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회에서 존속살인이 우리 가족과는 무관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상담기를 통해 문제의식을 드러냈다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존속살인이 증가하는 배경에 경제적 요인이 점차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실을 조명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시대변화와 동떨어진 한국 특유의 가족문화가 존속살해의 비극을 배양하는 '죽음의 열차'가 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을 바탕으로 풀어본다. <편집자>
부모·자식 독립 없는 한국
살인사건 중에서 존속 살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외국에 비해 유난히 높은 가장 큰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가족문화를 꼽는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당연한 권리와 의무처럼 요구되는 문화가 시대가 달라졌는데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어, 존속살인의 자양분 노릇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회는 점점 사적인 관계에서 비인격적 관계로 급속히 대체되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적 거리'가 멀어지고, 법이나 제도마저 이런 변화를 수용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경제질서가 급격히 금융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런 '관계적 거리'는 심리적 충격을 줄 정도로 멀어지고 있다.
상징적인 사건은 2005년 호주제 폐지다. 호주제를 폐지한 논리는, 호주제가 가족 구성원을 호주에게 종속시켜 개인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부정하고 일률적으로 순위를 정함으로써 평등한 가족관계를 해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호주제가 폐지된 지 한참 지난 지금도 한국의 가족문화는 가족간의 거리감을 시대적, 제도적 변화에 맞춰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가 변화한다고 사람들의 의식이 금세 바뀌기는 힘든 법이다. 하지만 한국의 가족문화는 '거리감 상실'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유교 문화가 강할 때는 위계질서를 너무 따진 것이 문제라면, 지금은 위계질서는 무너진 채 '끈적이는 거리감'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최근 급증하는 존속살해 사건이 부모의 재산을 노린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캥거루족'이 존속살해범을 양산하고 있다는 뉴스도 나오고 있다. 캥거루족이란 성인이 돼서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자녀를 뜻한다. 심지어 30~40대 '늙은 캥거루족'만 50만 명에 육박한다는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도 나왔다.
▲ 개인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지난 2005년 호주제를 폐지하는 민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2008년 1월부터 호주제 폐지가 시행됐다. 하지만 한국의 가족문화는 호주제 폐지가 의미하는 시대 변화에 걸맞게 바뀌지 않고 있다. 사진은 2003년 7월 남자들이 국회 앞에서 호주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사랑이라는 이름의 '정서적 학대'
그렇다면 이렇게 캥거루족이 크게 늘어나고, 심지어 연령대까지 확대되는 이유가 뭘까? 갈수록 자식들이 형편없어지기 때문이라고 하면 그만일까?
전문가들은 부모와 자녀가 서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할 관계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가족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자식을 독립적인 존재로 길러내는 데 실패한 가정에서 캥거루족 자녀가 생기고, 이들 중에서 존속살해까지 서슴지 않는 패륜아가 나온다는 것이다.
'거리감 조절'에 실패한 부모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개입을 할 경우 이런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정서적 학대'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는 "과도한 부모의 개입이 살인을 불러오기도 하는데, 서구 사회에서는 그런 종류의 가족 관계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 결과 캥거루족이 되어서 부모의 재산을 노리고 존속살해를 하기도 전에, 정서적 학대만으로도 존속살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 2000년 발생한 '이은석 사건'이 그 예다. 이 씨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폭언에 시달렸다.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서울대 입학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학대가 계속됐다. 결국 부모를 살해하고 시체를 토막 냈다. 지난 2011년에는 고3 수험생이 어머니의 성적 압박에 시달리다 결국 어머니를 죽였다. 그는 "엄마가 없어야 내가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배상훈 교수(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는 "헌신과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한국의 가족 인식이 문제"라는 말로 시대변화에 동떨어진 한국의 가족문화에 대해 우려했다.
배 교수는 "우리는 가족을 자연적인 존재로 생각하지만 사실 가족은 인위적으로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관계"라면서 "한국인은 가족을 강요받고 있다. 그러니 평생에 걸쳐 스트레스가 쌓이다가 언젠가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거리 조절'에 실패한 가족관계에서 사회적으로 독립적인 적응에 실패하는 자녀가 나온다. 이수정 교수는 "성인 자녀가 금전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하는 것은 최근 4~ 5년 사이 청년층 실업이 악화하면서 늘어났다"며 "일찍부터 자녀를 독립시키는 서구와, 부모가 성인 자녀에게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하는 한국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같은 환경에서 부모가 경제적 지원을 끊으면 자녀들이 불만을 해결하지 못해서 범죄가 발생한다"며 "그런 사회 문화적 차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존속살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배상훈 교수도 "한국은 사회안전망이 없어서 복지 사각지대가 많다. 가정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데 이는 곧 부모가 책임진다는 의미"라면서 "한국은 다 큰 자녀가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서로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주고 받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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