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행정 4단독 정재우 판사는 27일 삼성전자 기흥 공장에서 일하다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한혜경 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법원은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기 위한 입증 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원고에 있으며, 뇌종양은 현대 의학상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며 "납이 뇌종양과 연관성이 있다는 일부 연구 결과가 있으나, 상반된 연구 결과도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일반적 무기 납과는 달리 금속 납은 발암물질로 보기 불충분하고, 건강검진 결과 원고의 혈중 납 농도는 직업적으로 납에 노출되지 않은 일반인의 혈중 납 농도 범주에 있었다"며 "원고가 건강에 유해할 정도로 납에 노출됐다고 보기 불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납에 노출돼 뇌종양이 발병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다수의 의학적 견해이며, 원고가 납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 하지만,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결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산재보험 취지에 따라 직업병이 일어날 개연성만으로 요즘은 산재를 인정하는 추세인데, 판사가 노동자의 의학적 입증 책임을 엄격히 적용해 보수적으로 판단했다"고 비판했다.
이 노무사는 "역학조사를 할 때 (삼성전자가) 이미 현장을 폐쇄해서 공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한혜경 씨가 일하면서 썼던 솔더크림에 무기 납이 들었는지 금속 납이 들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중요한 것은 혈중 납 농도"라고 말했다. 그는 "한혜경 씨의 혈중 납 농도가 일반인보다 높은 수치로 나왔고, 그 정도 수치에서 뇌종양이 발병할 수 있다는 의학적 견해도 제출했지만, 법원은 삼성 측 주장만 받아들였다"고 비판했다.
이날 한혜경 씨의 산재를 불승인한 정재우 판사는 희귀병인 루게릭병에 걸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 이윤성(41) 씨의 산재를 지난 8월 불승인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산재의 인과관계는 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데, 희귀병인 루게릭병의 발병 원인이 현대 의학상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관련 기사 : 법원, 루게릭병 걸린 前 삼성 노동자 산재 불승인)
이 노무사는 "반올림에 제보된 뇌종양 피해자 19명 가운데 16명이 삼성전자 노동자이며, 미국의 IBM에서도 문제가 된 질병이 바로 뇌종양이었다"라며 "뇌종양 피해 제보는 점점 늘어나는데,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속 내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 원고 패소 판결을 받고 눈물 흘리는 한혜경 씨 모녀. 한 씨는 "내가 직업병이 아니라는 생각을 전혀 안 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19살이 되던 해인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발암물질로 알려진 납 등을 다루며 LCD를 만들었던 한 씨는 퇴사 후 뇌종양 수술을 받고 지체장애, 시력장애, 언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지난 9월 13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최종 변론에서 한 씨는 "돈 걱정 안 하고 치료받을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말을 재판부에 남겼다.
한 씨의 산재 소송은 삼성전자가 고용한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광장' 출신 변호사 9명이 개입돼 주목을 끌기도 했다. 반올림은 "돈 걱정 없이 치료받고 싶다는 사람에게 삼성이 대형 로펌을 고용하는 것은 대기업으로서 할 짓이 아니"라고 비판한 바 있다. (☞ 관련 기사 : 열아홉에 삼성 입사한 그녀의 절규 "삼성은 마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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