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치 공작'으로 채동욱 찍어낸 의혹 짙어졌다

"靑, 채동욱 임명 전 혼외자 의혹 확인"…이정현 "경위 파악 중"

청와대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의혹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청와대가 이 사실을 4월에 이미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묵인하고 있다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 기소 직전인 6월 다시 꺼내들었던 정황이 드러난 것.

<한국일보>는 복수의 사정당국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직접 (청문회 당시) 채 전 총장에게 혼외아들 의혹에 관한 해명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3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2010년 채 전 총장이 고검장 시절 내연녀로 의심받는 여성이 집무실을 방문한 사실까지 거론하며 의혹을 추궁했다고 한다. 집무실 방문 사실은 지난 9월 5일 <조선일보> 보도로 관련 의혹이 제기된 후 법무부가 채 전 총장 감찰 전 조사 결과라며 내놓은 것이다.

청와대가 채 전 총장 관련 정보를 이미 4월 2일 인사청문회 직전에 쥐고 있다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특정 시점에 맞춰 하나씩 꺼내 터트린 듯한 정황으로 읽힐 수 있어 '정치 공작' 파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지난 9월 13일 사퇴 발표를 한 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4월 정보 확보, 6월 불법 조회, 9월 합법 조회, 왜?

이 사건은 지난 4월 채 전 총장 임명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4월 2일 청문회) 이후에도 (청와대에서) 직간접적으로 채 전 총장에게 의혹에 관해 거듭 물었고 채 전 총장은 계속 부인을 했다"며 "채 전 총장은 청문회 당시와 임기 초에 의혹에 대해 더 이상 언급이 없자 '클리어(해명)'됐다고 생각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6월 발생했다. 청와대 실세로 알려진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직속 부하인 조 모 행정관이 지난 6월 11일 문자메시지로 채 전 총장의 아들로 의심받고 있던 채 군 모자의 정보 조회를 요청한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최근 확인됐다. 조 행정관은 기소 전날인 13일,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에게 '채 군 정보를 확인해줘 고맙다'는 취지로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6월 11일은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기소하기 3일 전으로, 당시 청와대와 법무부는 채 전 총장이 이끄는 검찰 수사팀에 '기소 반대' 의견을 내며 강한 불만을 표했다.

청와대의 부탁을 받고 채 군 모자의 정보를 불법 조회했던 조이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은 원세훈 전 원장의 부하직원 출신이다. 원 전 원장과 청와대의 '커넥션'이 의심되는 부분이다.

그 다음에는 청와대 민정실이 나섰다. 조선일보 보도가 나온 후 이틀만인 9월 7일, 민정실은 서초구청에 공문을 보내 합법적으로 채 군 모자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조회했다.

<한국일보> 보도 및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들을 종합하면 이미 청와대 수뇌부가 4월에 정보를 입수한 상태에서 총무실이 6월에 채 군 개인정보 불법 조회를 한 후 민정실이 9월에 합법 조회를 요청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처리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제기된다. 청와대가 채 전 총장 임명 당시에는 문제 소지가 있다는 점을 알고도 '인사 파동'을 막기 위해 이를 덮었다. 채 전 총장이 청와대의 '심기'를 거스르자 관련 정보 확인차 '불법'을 자행했다. 국정원 사건 파장이 커지자, 특정 언론과 '공모'해 이 문제를 터트렸다. 이후 '합법 조회'를 가장하기 위해 민정실로 하여금 채 군의 개인정보 열람을 요청했다. 채 전 총장이 "저의가 의심된다"고 한 것은 바로 이같은 정황 때문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채 전 총장이 '버티기'에 돌입하자 법무부는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감찰을 지시한다. 감찰 전 조사 과정에서 청와대가 이미 확보하고 있던 '내연녀 의심자의 고검 방문' 사실을 마치 새로 알아낸 것처럼 터뜨렸다. 심지어 채 전 총장의 선산이 군산에 있다는 정보까지 흘렸다. 이에 대해 야권에서는 "서울 사람인 채 전 총장에게 '전라도 사람' 이라는 이미지를 은연 중에 덧씌우는 것으로 매우 악랄한 형태의 정치 공작"이라는 불만이 터져나왔었다.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는 '소설' 수준이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정황으로 봤을 때 충분히 의심해볼 만한 시나리오다.

특히 원 전 원장 측 인사가 개입한 것은 사안의 심각성을 더해준다. 피의자의 측근이 수사 검사의 '뒷조사'를 도운 셈이다. 청와대가 원 전 원장 수사를 적당한 수준에서 무마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도 제기될 수 있다. "국정원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한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공식 입장과 달리 원 전 원장에 대해 '책잡힌 부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당황한 청와대 "경위 파악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

이정현 홍보수석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채 전 총장의 정보를 미리 쥐고 있었다는 이날 <한국일보> 보도에 대해 "확인해봤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고 부인했다.

조 행정관도 불법 조회 요청 등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질문이 쏟아지자 이 수석은 "(조 행정관을 조사 중인) 민정실에 문의해봤는데 경위 파악 중이라는 답이 왔다"며 "경위 파악 중이어서 (검찰 수사에 협조할지 말지 등) 앞으로 절차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검찰이 사건의 실체를 밝혀낼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총장 찍어내기 사태'를 거치면서 검찰 조직 자체가 위축돼 있는 상황인데다, 바로 전날 김진태 검찰총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취임식을 가졌다. 새 총장을 맞이한 검찰이, 청와대가 연루된 전직 총장 '찍어내기' 사건을 어떻게 다룰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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