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료원 환자 죽어갈 때 현병철 인권위는 기막힌 꼼수

[기고] 인권위원 책임 회피하려 인권위법 무시하는 규정 만들어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했던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책임 방기와 회피는 인권위 내 세부 지침에 의해 이뤄지고 있었다. 물론 그 세부 지침도 국가인권위원회법(이하 인권위법)에 배치되기에 문제가 된다. 올해 4월 4일 인권위는 상임위원회에서 긴급 구제와 관련한 '긴급 구제 사건 처리 절차와 기준'을 신설했다고 한다.

물론 워낙 비밀리에 처리해서인지 시민들은 물론, 인권 단체 활동가들도 알지 못했다. 홈페이지에도 올라가 있지 않다. 아니 말도 안 되는 절차와 기준이라서 그런지 홈페이지에 올리지도 않았나보다. 다만 <서울신문>에서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 긴급 구제'와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대한 긴급 구제'에 대해 인권위 상임위에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는 보도를 하자 인권위가 이를 해명하는 보도자료를 내서 세상에 알려졌을 뿐이다.

진주의료원 긴급 구제 기각하던 날 만들어진 '긴급 구제 사건 처리 절차와 기준'

현병철 씨가 위원장이 된 이후 정부의 인권 침해에 대해 눈감고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 발언하지 않은 것은 세상에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인권 침해 사안에 대한 긴급 구제가 번번이 기각된 것도 사실이다. 2013년 3월 26일 진주의료원 폐업 조치가 환자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위협할 수 있기에 보건의료노조는 긴급 구제를 신청했지만 인권위 상임위원회는 4월 4일 회의에서 기각한다. 4월 4일은 앞서 말한 '긴급 구제 사건 처리 절차와 기준'을 마련한 날이다. 참,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인권위가 민감하고 시급한 현안에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러한 절차와 기준을 만든 것이다.

▲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취임식 당시 모습. ⓒ프레시안

그런데 인권위가 11월 국정감사 기간에 장하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검토 배경은 긴급 구제 사건이 진정 사건과 혼재되어 있어 사건 검색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처리 절차를 하나 더 둘 이유라기보다는 사건 전후 자료 정리를 잘하면 되는 문제이다. (시간을 끌자는 속셈이었는지 긴급 구제를 진정으로 처리한 것이 인권위였다. 진주의료원도 긴급 구제로 신청한 것을 기각하고 진정으로 처리했다.)

사실 인권위에서 자료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들다. 어떻게 국가 기관이 이렇게 자료 관리를 안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심지어 국제인권규약위원회에서 한국 정부에 내린 권고나 인권위가 국제 기구에 제출한 공식 자료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더 모순된 것은 이러한 '긴급 구제 사건 처리 절차와 기준'은 공개되지도 않았다. 회의도 비공개이고 결과도 비공개이다.

인권위법과 인권위 조사 규칙에도 어긋나는 방침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절차와 기준은 인권위법에 배치된다는 점이다.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긴급 구제 사건 처리 절차와 기준'에는 긴급 구제를 상임위원회에 상정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두었다. 상정하지 않는 경우 조사관이 해결하고 조사국장이 결재한 후 위원장과 사무총장, 상임위원에게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인권위법에 엄연히 인권위원회 상임위원회가 결정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법에 어긋나게 조사국장이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는 말이다. 이는 조사관이 인권위원의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다. 물론 욕도 대신 듣겠지만 말이다.

인권위법상 긴급 구제는 사안의 시급성과 심각성 때문에 상임위원회나 전원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에 어긋나는 세부 규칙을 만든 것이다. 그동안 조사관이 현장을 조사하여 조사 보고서를 올리면 상임위원회가 결정했다. 조사관이 긴급 구제가 필요하다고 조사 보고 의견을 올려도 기각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보니 기각 결정이 나면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상임위원들은 시민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게 된다. 이러한 절차와 기준은 인권위원들이 책임을 피해 가려는 꼼수일 뿐이다.

인권위법 제48조(긴급 구제 조치의 권고)에는 "① 위원회는 진정을 접수한 후 조사 대상 인권 침해나 차별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고, 이를 방치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면 그 진정에 대한 결정 이전에 진정인이나 피해자의 신청에 의하여 또는 직권으로 피진정인, 그 소속기관 등의 장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조치를 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인권위법 제10조(상임위원회 역할)에는 2호 1항에 "법 제48조에 의한 긴급 구제 조치의 권고 및 시행에 관한 사항"으로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인권 침해 및 차별 행위 조사 구제 규칙 36조(긴급 구제)에는 "② 상임위원회는 제1항에 의하여 안건이 상정된 경우 지체 없이 법 제48조 제1항 또는 제2항에 정한 조치가 필요한지 여부 또는 필요한 조치를 심의하여 의결하여야 한다.(개정 2009.9.3)"고 되어 있다. 지체 없이 상임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의결해야 할 사항을 상정조차 하지 않는 절차를 둔 것이니 법과 규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또한 이 절차와 기준이라는 게 어떤 위상을 갖기에 이렇게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지 알 수 없다. 규칙도 아니고 예규(지침)도 아니고 규정도 아니지만 조사국장이 상임위원회에 버금가는 권한을 행사하니 말이다.

알리바이 기구화와 전교조 관련 인권위원장 성명

인권위의 긴급 구제 관련 기준이 구체화되었다는 내용도 기존에 있던 것에 불과하거나 없어도 되는 것들이다. 제시한 기준에는 "위원회법 제48조 제1항 제1호(의료, 급식, 피복 등의 제공) 관련 WHO 하루 권장 식수 섭취 권장량 등을 기준으로 하되 향후 적용례를 분석하여 보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도대체 이러한 기준은 어디에 필요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인권적이지 않다. 경찰이나 기업 등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최소한도로 식수를 주면 된다고 보는지 의문스럽다. 그러면 씻을 물은 안 줘도 되는 것인가? 침해를 중단하라는 권고를 해야 할 인권위가 침해를 '최소한도로 지속하라'는 권고를 내리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적절한 식량 및 건강에 대한 접근권은 국제인권규약과 일반 논평에 명시되었듯이 수용성, 접근성, 질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WHO 하루 권장 식수 섭취 권장량이라니!

그런데 이러한 구체화 작업은 사실상 인권위가 알리바이 기구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인 듯하다. 현병철 위원장 체제에서 인권위의 권력 눈치 보기와 알리바이 기구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알리바이 기구화라는 것은 정권이나 인권위의 책임을 면하기 위한 알리바이를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권력의 핵심적인 인권 침해 사안은 피해 가고, 민감한 현안은 이슈로부터 멀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나중에 하거나, 파급이 안 되는 방식의 의견 표명을 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지난 11월 22일 현병철 인권위원장 명의로 고용노동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대한 의견 표명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전교조는 9월 26일 "인권위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전교조에 명령한 해직자에 대한 조합 활동 배제 요구를 철회하라고 권고해 달라"고 긴급 구제 신청을 했으나 인권위는 상임위원회에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그 후 언론과 국회에서 들끓자 택한 것이 위원장 명의로 '2010년 9월 30일 조합원 자격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 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인권위 결정을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물론 이러한 성명조차 내지 않았으면 시민사회의 비판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다. 최소한은 한 것이다. 하지만 긴급 구제 권고를 내렸다면 고용노동부는 이를 이행해야 하고 이행하지 않을 시 과태료를 내야 하는 등 효력이 다르다는 점에서, 위원장 성명은 수위를 낮춘 대응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현재 긴급 구제를 결정하는 상임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홍진표 상임위원(새누리당 임명)과 김영혜 상임위원(대통령 임명)이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대한 국내외적 인권 기준을 잣대로 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상임위원회에 상정조차 안 한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이번에 박근혜 정부가 연임을 결정한 김영혜 씨는 전교조 조합원 명단을 공개한 조전혁 전 의원의 소송 대리인을 맡은 경력이 있으며, 홍진표 씨는 조전혁 전 의원과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를 공동 저술하고 강연회를 할 정도로 전교조의 활동을 부정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상임위원회 구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의 인권위 상황은 단지 현병철 위원장의 문제만이 아니다. 계속된 무자격자의 임명으로 인권위는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으며, '긴급 구제 사건 처리 절차와 기준'처럼 인권위법도 무시하는 지침으로 인권위의 역할을 축소하는 운영을 마구잡이로 하고 있다. 현병철 위원장만의 문제가 아닌 전체 구성원의 문제, 전체 운영의 문제로 인권위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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