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건은 피해자의 목소리에서 시작해야"

[인권오름] 통합진보당 충남도당 성폭력 사건 2차 가해를 바라보며

운동사회는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달리 운동사회 내에서 성폭력과 성별 위계는 막강했다. 2000년 운동사회 성폭력에 대해 폭로한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 의 활동은 법적인 테두리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는 문제조차 은폐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협박과 2차 가해를 가해왔던 운동사회에 대해 문제제기하였고, 그 결과 금기시되어온 성폭력 문제에 대해 다시 바라보고 반성폭력내규 제정 등의 일련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흐름은 오래 가지 못했다. '100인 위원회' 사건 이후 운동사회는 여러 공동체에서 변화를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지만 변화의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고, 사건 대응에 머물렀다. 가해자가 성폭력을 부정하거나, 약속을 파기하고 조직을 이탈하였으며 사건 이후 공동체가 노력해야할 조직 전반의 여성주의 실천과 성적 위계에 대한 성찰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생존자들은 2차 가해에 노출되거나 조직보위의 논리에 고립되었다.

2008년 발생한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은 운동사회가 놓인 반성폭력 실천의 현재를 보여주었다. 조직보위 논리 속에 발생한 2차ㆍ3차 가해에 피해생존자의 목소리는 묻히고 왜곡되었으며 피해생존자에 대한 치유와 지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한 피해생존자에게 신뢰를 깨트리는 행동을 한 사람들이 여전히 조직의 꼭대기에서 활동하거나 노동운동을 대표하여 여의도에 진출했다. 피해생존자는 고립되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확인해야 했으며 신뢰했던 공동체의 잔인함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통합진보당 충남도당에서 2011년과 2012년에 발생한 이OO, 김OO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가 발생하였다. 이에 대해 통합진보당은 2차 가해자에 대한 징계결정을 했지만 그들 중 일부는 2차 가해를 수용하지 않고 운동사회 내 반성폭력 운동이 만든 '피해자중심주의와 '2차 가해'에 대한 자의성 때문에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를 입었다며 '또 다른 피해자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피해생존자의 목소리를 감추고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반성은커녕 자신들이 피해자라 주장하고 있는 이 사건은 운동사회가 10년 전 어느 날로 돌아간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해자들의 모임 '또 다른 피해자 모임'

2차 가해자들은 피해생존자의 동의 없이 사건의 자료를 확보하고, 자료를 통해 피해자의 말을 왜곡한 행위, 공개된 자리에서 피해자에게 사건을 이야기하거나, 성폭력이 피해생존자 때문인 것처럼 말한 행위를 하였다. 통합진보당 충남도당에서 5월 27일, 6월 14일 위원회에 제소된 2가지 성폭력사건의 가해자 및 2차 가해자에 대한 징계결정문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당을 탈당하고 집단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만든 '또 다른 피해자 모임'은 피해생존자 공동대책위원회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조사 및 징계를 결정한 당기위원회를 부정했다. 자신들의 주장을 게시판과 메일을 통해 알렸으며 급기야 민주노총 충남본부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피해생존자의 목소리와 피해자중심주의, 2차 가해 담론을 부정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가해자들이 구성한 '또 다른 피해자 모임'은 조사가 피해생존자 중심의 주관적 해석이라 객관적이지 않고 피해생존자의 말이 진실이 아니며 왜곡된 피해자중심주의가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다 주장한다.

피해자중심주의는 피해생존자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한 사건 해결의 자세이자 피해생존자의 권리이다. 피해생존자의 목소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은 성폭력의 맥락을 보여준다. 또한 기존의 성별권력관계에 기반을 두어 구성된 '객관성'을 해체하고, 성폭력을 여성의 시각에서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사건 속에 다양한 폭력의 맥락과 놓치기 쉬운 감정과 폭력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또 다른 피해자 모임'에서 주장하는 객관성은 기존의 성별권력관계를 그대로 둔 채 피해생존자의 목소리를 왜곡하여 자신들의 말을 진실로 포장하려는 변명에 불과하다.

'또 다른 피해자모임'이 2차 가해 담론을 부정하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 사건의 해결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가해는 피해당사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사람들, 왜곡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로 인해 폭력과 고통은 지속할 뿐 아니라 증가한다. 2차 가해는 피해생존자가 성폭력 사건 이후 문제 해결과정에서 노출되는 피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여전히 성폭력을 여성의 문제로 치환하는 사회 분위기, 조직을 먼저 보호하려는 조직문화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건이 공개되거나, 피해생존자를 배제한 채 사건을 해결할 때 피해생존자는 고립된다. 또한 피해생존자에게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는 언어와 행동들은 생존자의 피해를 지속시킨다.

그럼에도 가해자들이 '또 다른 피해자모임'을 구성하고 민주노총 충남본부에서 농성을 진행하는 행위는 피해생존자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다. 성폭력은 최초 가해자에 의해서만 발생되지 않는다.

성폭력사건의 해결은 피해자의 목소리에서 시작해야

성폭력사건은 가해자가 처벌받고, 피해생존자가 조직에 복귀하는 것으로 종료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건의 처리과정의 일부이다. 중요한 점은 사건의 처리과정 속에서 얼마나 피해생존자의 목소리에 공동체가 집중했는지, 그리고 들은 이야기를 울림 있게 공동체에 소통했는지이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 왜곡된 이야기가 아닌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기, 객관적이라는 이름으로 피해생존자의 목소리를 감추었는지 끊임없이 돌아봐야 한다. 가해자 처벌은 목소리에 대한 공동체의 대답 중 하나이지 전부가 아니다.

피해생존자에 대한 지지와 치유 또한 공동체의 몫이다. 또한 성폭력 사건을 통해 공동체가 얼마나 가부장적 폭력과 성적 위계와 불평등한 사회인지 바라봐야 한다. 그것이 성폭력사건의 공명이고 울림이다.

그런 점에서 성폭력 사건의 종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생존자의 치유는 끝나지 않은 긴 싸움이고, 특히 공동체라는 신뢰와 믿음의 공간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치유는 더욱 그러하다. 공동체의 변화는 긴 호흡으로 조직의 성적 위계와 불평등과의 또 다른 투쟁을 이어가야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커다란 맥락에서 함께 움직이고 변화할 때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피해자모임'은 즉각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

'또 다른 피해자모임'은 즉각 민주노총 충남본부 앞에서의 농성을 중단하고 온라인을 통한 사건의 왜곡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무엇을 외면하였는지, 피해생존자에게 어떠한 행위를 저질렀는지 되돌아보고 용서를 구해야 하며, 가해자들 스스로 변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에서는 피해생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피해생존자의 목소리에 기반을 두어 노력해야 한다. 피해생존자의 목소리가 숨겨질 때 그 어떤 치유와 회복도 불가능하다.

지금도 여전히 이들과 싸우고 있을 피해생존자들에게 진심어린 지지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외롭고 고단한 싸움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내딛는 걸음, 목소리에 한껏 귀 기울이겠습니다.

(*이 글은 "[인권으로 읽는 세상]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의 목소리에서 시작해야 한다"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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