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조선족 비하' 개그에 웃으며 중국인들 마음 얻겠다?"

[이봉현의 신뢰경제] 시장외교, 자원외교보다 중요한 일

지난주 말 중국 지린성 옌볜(延邊)에 잠시 다녀왔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이어서 이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과 반응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곳 자치주의 조선족들은 이전 한국 대통령의 방문 시에 비해 박 대통령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높은 편이라 했다. 중국의 신문과 방송들도 지면과 시간을 더 할애해 박 대통령의 방중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었다.

박 대통령이 동북아 최초의 여성 정상이어서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각종 연설에서 중국 고사와 시문을 자주 인용하고, 일부나마 중국어로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것이 중국인의 마음에 다가가려는 노력으로 비친 것 같았다. "믿음과 마음을 쌓아가는 여정"이란 방중 슬로건 '심신지려'(心信之旅)를 지도층뿐 아니라 국민과의 소통으로 확대하려는 시도, 즉 '공공외교' (公共外交)를 펼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공외교는 한 마디로 외국인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외교다. 요즘처럼 지구촌이 온라인으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한 국가에 대한 이미지와 평판이 정치, 경제, 군사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국제 관계에서 '부드러운 힘'(soft power)과 '강한 힘'(hard power)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많은 나라가 일반 대중을 향한 공공외교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의 역대 정부는 '시장외교'나 '자원외교'에 매진해 왔다. 외국인에게 비친 한국의 매력이나 신뢰도가 중요하다는 공공외교의 자각이 싹튼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특히 중국은 앞으로 생산기지라기보다는 수 억 명 중산층 소비자가 거주하는 시장의 의미가 커질 것이기에,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신뢰를 높이는 일은 정부와 민간 모두의 숙제가 될 것이다.

▲ 중국을 국빈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9일 자오정융 중국 산시성 당서기로부터 박 대통령이 취임당시 한복을 입은 모습을 그린 그림을 선물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당서기와 면담 및 만찬을 갖고 한국과 산시성간 경제 문화 분야 교류협력을 논의했다. ⓒ연합뉴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조선족으로 불리는 수많은 재중국 동포들에 대한 인식과 정책의 재정립 필요성이다. 연변 조선주 자치주만 해도 200만 명 넘는 조선족이 산다. 이들은 한중 수교 초기 현지 네트워크의 연결 고리로서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에 큰 도움을 주었다. 청나라 말기 이주를 시작해 3~4대째 중국 내 성공한 소수민족으로 사는 그들이 한국에 대해 갖는 생각이나 공적, 사적인 담화의 내용은 다른 중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갖는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좌우하게 돼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 조선족들이 한반도에 대해 가진 감정은 남과 북을 막론하고 그리 좋지가 않았다. 북한은 못사는 동생 같아 애잔하지만, 핵 개발이다 뭐다 해서 민생을 내팽개치는 꼴이 보기 싫다. 남한은 잘 사는 시누이 같아 얄밉지만 내놓고 멀리하기도 아쉽다.

조선족들은 자신들의 뿌리가 엄연히 한국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삶이 어려워서, 또는 일제의 압제를 피해 간도에 개척 이주를 했고, 그곳에서 윤동주 시인을 비롯해 수많은 애국지사와 독립운동가가 배출됐다. 그런데도 수교 이후 한국인들은 조선족을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 정도로 낮춰본 게 사실이다. 정부로부터 조선족은 잠재적인 불법 체류자, 보따리 밀수꾼 취급을 받았다. 옌볜 자치주의 정치협상회의 간부로 조선족으로는 최고위직까지 진출한 한 인사는 첫 방문 시 공항에서 당한 수모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이곳의 국장급 간부였는데 바지까지 벗겨서 검색하더라. 조선족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했겠는가?" 그가 당시 짐 속에 갖고 있었던 것은 현지에서는 흔하게 파는 웅담 몇 알이었다.

그간 옌볜 일대에 투자한 한국인 중에는 국내에서 옹색해져서 돌파구를 찾아 나온 경우가 많아 여유가 없었고 현지 조선족과 마찰을 일으키는 일도 잦았다. 한국 정부나 국민이 재미, 재유럽 동호를 대하는 것에 비춰보면 조선족 동포에 대해서는 푸대접에 가까웠다. 조선족을 재외동포로 인정하는 문제에서부터 비자정책까지 힘들고 섭섭한 일이 적지 않았다. 옌지의 한 조선족 간부는 "이곳에서도 못사는 사람들이 한국에 돈 벌러 나가는데, 고생을 많이 하다 보니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좋게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요즘도 많은 시청자가 보는 일요일 밤의 개그프로그램에서는 보이스피싱범이 조선족 말투를 흉내 내는 코너가 방영된다. "당황하셨어요?" 라는 특유의 억양에 낄낄대는 방청객의 모습은 거의 실시간으로 연변 일대의 조선족들에게 방영된다. 중국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외교를 하고 싶다면 우리 마음 속에서 조선족을 낮춰보는 마음부터 지워야 하지 않을까?

* 필자 소개 : 2일부터 매주 화요일 [이봉현의 신뢰경제]가 연재됩니다. 필자인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겨레 경제부, 로이터통신사에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저서로는 <경제를 읽는 힘-금리, 채권>이 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 기술의 발달을 비지니스 측면 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중심에 놓고 들여다보고 싶어하며, 경제가 이렇다고 하는 담론들이 경제현실을 구성해가는 방식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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